〈 113화 〉 [112화]후일담 VS 후일담
* * *
"...라는 일이 있었소."
도미닉 경은 폰을 들어 수화기 너머의 존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세상에. 세상에! 이건 100% 너에게 호감이 있는 건데!"]
수화기 너머, 도미니카 경이 호들갑을 떨었다.
["나갈 때 입을 옷은 준비되었어? 화장은? 중요한 순간에 끼려고 준비한 안대는?"]
도미니카 경은 계속해서 도미닉 경에게 질문했다.
얼마나 재잘거리는지 도미닉 경이 질릴 정도였다.
"뭘 준비할 게 있다고 그러시오. 평소처럼 나가면"
[아, 맙소사. 여심을 이렇게나 몰라?]
도미닉 경은 슬슬 이 말 많은 또 하나의 자기 말을 끊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다간 내일 히메를 만나러 가기도 전에 탈진할 것이 분명했다.
도미닉 경은 재치를 발휘해 역으로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당신도 츠키 공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았소?"
도미닉 경이 히메에게 사과받았으니 도미니카 경도 츠키에게 사과 받았으리라 어림짐작한 도미닉 경의 회심의 일격.
그리고 그 일격은 도미니카 경에게 제대로 들어갔는지, 도미니카 경의 말이 뚝 끊겼다.
"혹시나... 사과하러 왔다던가?"
도미닉 경이 다시 물었다.
수화기 너머로 헙 하고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도미니카 경의 어색한 목소리가 들렸다.
["글.쎄. 과.연. 그.럴.까?"]
"맞군."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반응을 통해 확신을 가졌다.
또 하나의 자신인 만큼,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반응이 자신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도미니카 경도 그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도미니카 경이 황당한 말을 내뱉었다.
애초에 도미니카 경도 여성이면서, 도대체 여자의 마음을 모르겠다는 말이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러나 도미닉 경은 숨을 죽이고 도미니카 경의 말을 경청했다.
여기서 끊었다간 정말 다시 들을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츠키가 사과를 하러 오더라고. 뭐, 중간에 카우보이모자를 보고 기절한 사건이 있긴 했지만 무난하게 사과를 끝마쳤지."]
그렇게 말한 도미니카 경이 잠시 침묵하더니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로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있잖아, 도미닉 경. 여자끼리 여기저기 만지는 건 자연스러운 건가?"]
"그걸 왜 나에게 묻소."
도미닉 경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말이지, 츠키 말로는 이 정도 스킨십은 당연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몰라서 그래."]
그러니까 굳이 그걸 왜 나에게? 라고 도미닉 경이 생각했다.
["그... 여자끼리는... 가슴을 만지거나 하는 건가?"]
도미닉 경이 이 황당한 대화에 이마를 탁 쳤다.
도미니카 경은 정도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기사도에 충실한 도미닉 경으로서는 이 성적인 대화가 영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도미니카 경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기사이가도 했지만, 그 전에 전투 수녀, 즉 수녀의 몸이다.
순결을 중시하는 수녀원의 규율에 따라 음욕에 대한 규제는 철저함을 넘어 혹독했고, 어렸을 때부터 이런 규제에 익숙했던 도미니카 경은 스킨십이라는 것은 적을 업어 메칠 때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미간을 쪼글쪼글하게 만들 때에나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전장에서 그녀를 음흉하게 쳐다본 이들은 있었으나 그런 식의 접촉은 기분 나쁜 종류였고, 그마저도 무력으로 밟아버렸기에 이런 애정어린 스킨쉽이 더 어색할 수밖에 없다.
도미닉 경은 잠깐 고민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엉터리라도 조언해 줘야 하나,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하나 하고 말이다.
이는 도미니카 경이 진지하기도 했거니와 도미닉 경의 기사도가 그녀에게 조언을 아끼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결국 의무와 무시 사이에서 의무를 고른 도미닉 경이 입을 떼었다.
"글쎄. 너무 어렸을 적일지도 모르지만 방앗간집 루시의 예를 보면 그 정도를 넘어 주먹다짐도 하거나 그랬소. 그렇게 촌장네 베스와 친구가 되었지."
생각보다 건실한 조언!
그 조언에 도미니카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이런저런 스킨십이 있는 거겠지."]
"혹시 아직 어색하거나 그러오?"
수화기 너머의 도미니카 경은 말이 없었다.
이는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였다.
["그런 것 같아. 아마 츠키도 친해지려고 무리수를 던졌던 게 아닐까?"]
도미니카 경의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그래. 츠키는 자신과 다시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그 일환으로 스킨십을 시도한 것일 테고.
도미니카 경은 그런 츠키가 대견했다.
한 때 오해로 사이가 틀어졌으나 이렇게나 살갑게 구는 동생을 싫어할 언니가 어딨겠는가!
["다음에 오면 밥도 같이 먹고 대련도 좀 하고 그래야겠어. 그러면 더 친해지겠지?"]
도미니카 경은 자신이 알고 있는 친해지는 방법을 모두 머릿속에서 꺼냈다.
물론, 그 친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이 죄다 수녀원과 기사단의 기준이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도미닉 경도 따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기사인 도미닉 경도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친해진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좋아. 이제 고민이 해결되었으니 다른 안건으로 넘어가자고.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거야. 어때?"]
"음."
도미닉 경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스럽게도 도미니카 경은 자기 고민이 해결된 나머지 도미닉 경을 놀릴 생각도 잊은 모양이었다.
"우선 여기는"
늦은 밤.
그렇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정보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
만월이 뜬 날 밤, 히메사이고 성.
"하아..."
히메는 어째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성벽 위와 마천루 꼭대기 사이를 거닐며 산책하고 있었다.
잠시 깃대의 위에서 쉬기 위해 멈춘 히메가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았다.
"데이트..."
그렇다.
히메는 지금 내일 있을 도미닉 경과의 데이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묘한 감정이 마음속을 가득 채워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물론 데이트라는 것은 히메의 착각이었으나, 사실 누가 보더라도 데이트로 착각하리라.
하늘 중앙에 떠오른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
블랙 그룹 비밀 연구소 지하.
여기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가 있었다.
"...내가 도와준 건 실수가 아닐까?"
밴시 박사... 아니, 도미닉 경의 여동생 레미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제로에게 물었다.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런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그러니 진정하시는 게"
"이성은 그렇게 말하지."
레미가 제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하지만 감성의 영역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져. 마치 낮은 확률에도 한 번에 당첨되거나 높은 확률에도 연속으로 실패하다가 특별한 행위하면 항상 성공하듯이 말이야."
레미의 말은 두서가 없었으나 일종의 미신의 영역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사람의 사진을 문지르고 강화하면 더 잘된다거나, 특정한 노래를 틀고 특정한 타이밍에 뽑으면 더 잘 뽑힌다거나 하는 미신.
"오빠는 허당이야. 그것도 사건을 불러일으키는 허당이지. 이건 지금까지의 정보로 알 수 있어."
페럴란트의 기록은 알지 못하더라도 가차랜드에서 도미닉 경이 일으킨 사건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레미의 말은 사실에 가까웠다.
"그리고 히메라고 한 그 여자. 지금 생각해 보면..."
레미가 몸을 소스라치게 떨었다.
무언가 불길한 듯 손톱을 더 거세게 물어뜯기 시작한 레미가 제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와 비슷한 냄새가 나."
"정정 요구. 도미닉 경과 히메 씨의 냄새는 전혀 다릅니다."
"아니, 그 냄새 말고. 뭐랄까... 분위기."
레미는 히메에 대해서 생각했다.
술에 취했다는 것을 감안 해도 전체적으로 허당스러워 보이는 느낌.
도미닉 경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분명히 무언가 사건을 몰고 올 법한 분위기.
보통 사람들은 모자란 사람들 끼리 모이면 서로를 보완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레미는 허당과 허당이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거라고 내심 단정 지은 상태로 분석하고 있었다.
분명히 내일 사건이 일어난다.
평소 자랑하던 철저한 이성과는 정반대의 분석.
그래서일까?
레미는 제로를 보며 말했다.
"내일 오빠를 미행할 거야. 준비해 두자."
"꼭 그래야만 합니까, 박사님?"
안드로이드 제로가 레미의 말에 반박했다.
윤리적인 이유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내일 저 휴가입니다, 박사님."
"아."
그렇다.
안드로이드도 휴가가 있는 세상, 가차랜드.
박사는 멍청한 탄식을 내뱉었다.
"어쩔 수 없지. 혼자서 가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한 레미는 오랜만에 귀신 같은 표정으로 변해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이런 귀신 같은 행동이 그가 밴시 박사라고 불린 이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안드로이드 제로 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인지, 밴시 박사의 분위기는 오빠인 도미닉 경과 닮아 있었다.
...
마지막으로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여기 또 하나.
"으. 세상에. 혹시나 먼저 갔다고 먹었던 거 계산하라고 하면 어쩌지..."
비밀 결사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일원, 조제프 준장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명백했다.
어제 술집에 히메를 혼자 두고, 심지어 계산도 안 하고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름의 양심은 있는 모습.
조제프 준장이 비밀 결사의 아지트로 가는 골목으로 꺾은 그때였다.
"응?"
조제프 준장은 골목에서 이유 모를 한기를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조제프 준장은 어두운 골목길에 두려움이 일었으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천천히 한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다가 갔다.
그리고 조제프 준장은 골목에 있던 무언가의 정체를 보았다.
골목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