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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11화 (111/528)

〈 111화 〉 [110화]도미닉 AND 히메

* * *

정신을 차린 히메가 가장 먼저 느낀 감각은 청각과 후각이었다.

누군가가 움직이는 소리와 맛있는 냄새.

히메는 힘겹게 눈꺼풀을 움직였다.

하필이면 시선이 닿은 곳이 조명이 있는 곳이라 히메는 시각을 회복하는데 오랜 시간을 써야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며 불빛으로 생긴 눈의 잔상을 없애던 히메.

그 노력을 통해 시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히메는 문득 여기가 어딘지 혼란에 빠졌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

히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지 부터 확인했다.

깔끔한 소파.

본가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아기자기한 거실.

백팔나한진을 펼치고 있는 작은 외눈 기사 조각상들.

어째서 자신은 여기에 있는가?

"일어났소?"

"꺅!"

그때, 히메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히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펄쩍 튀어 올랐다.

그녀의 머리에 바짝 긴장한 여우 귀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갑자기 쓰러지길래 걱정했소. 혹시 저녁은 드셨소?"

도미닉 경은 거실의 탁자에 스튜가 가득 담긴 냄비를 내려놓았다.

히메는 아무리 자신이 혼란스러웠다고 해도 인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해져 얼굴이 빨개졌으나, 이내 분노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섰다.

꼬르륵. 하고 히메의 배에서 신호가 울렸다.

히메의 여우 귀가 쫑긋하고 털을 세웠고, 꼬리는 부끄러운지 갈 길을 잃고 방황했다.

히메의 얼굴은 터질 듯 더욱 빨개져 있었고.

"스튜를 만들다가 그만 너무 많이 만들었지 뭐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드시겠소?"

도미닉 경이 그 소리를 들었으나 모른 척 권유했다.

"괜찮­"

꼬르륵.

히메가 부끄러움에 거절하려고 했으나 몸은 솔직했다.

이 완벽한 타이밍에 할 말을 잃은 히메는 고개를 푹 숙이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곧 손가락을 하나 펴며 말했다.

"하, 한 접시 정도라면..."

쿠노이치가 공복에 굴복하고 말았다.

잠시 후.

"뜻밖에 맛있네요."

"그렇소? 고향의 맛이라오."

히메는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묻은 잔해를 닦아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닭고기와 감자, 당근, 그리고 브로콜리와 양송이로 만들어진 심플한 스튜였으나 공복에는 이런 심플한 요리가 결정타로 다가오는 법이다.

"요리를 꽤 잘하시네요."

히메는 당주의 딸로서 산해진미를 자주 접했으나 이렇게 속이 편해지는 음식을 먹은 적은 드문 편이었다.

"아무래도 농노 출신 기사다 보니."

도미닉 경이 희미하게 웃었다.

귀족 출신이거나 부유한 기사라면 요리를 잘하는 종자를 들이거나 아예 수행원으로 요리사를 고용했겠지만, 도미닉 경은 그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는 가난한 기사였다.

전장에서 간단히 해먹을 요리 몇 개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고, 또 할 줄 알아야 했다.

"양송이가 숨겨진 수요. 감칠맛을 높이거든."

히메의 칭찬에 멋쩍어진 도미닉 경이 말을 돌렸다.

히메는 그런 도미닉 경을 빤히 쳐다보았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도미닉 경만이 눈에 보인다.

어째서일까?

히메는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자기감정을 확인하려 노력했다.

여러분들은 어째서 히메가 이렇게 두근거리는지, 그리고 도미닉 경만 보이는 지 알겠는가?

그렇다.

히메는 지금 공포의 여운에 잠겨 있었다.

방금 전, 해적 리얼리티 쇼크가 일어나며 히메는 무의식적으로 도미닉 경에게서 해적의 형상을 떠올리고 있었다.

도미닉 경만 보이는 이유는 히메가 도미닉 경을 '포식자'로 인식했기 때문에 포식자의 행동을 경계하는 것이었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저 포식자에게서 도망치라는 본능의 절규였다.

그러나 히메는 이 감정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그건 사랑이란다.'

히메가 아버지의 말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갑자기 히메의 귀에 도미닉 경의 말이 들렸다.

히메가 화들짝 놀라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네네네네네에?"

히메가 당황하며 되물었다.

"...뭘 그리 놀라시오? 아무튼, 사과하러 여기에 온 것 아니었소?"

"아."

히메는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떠올렸다.

그래. 사과하러 온 것이지.

그리고... 용기가 생기면 고백을...

거기까지 생각한 히메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변했다.

여우 귀와 꼬리가 맹렬하게 까딱거렸다.

이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본론을 말했다.

"그... 저번엔 제가 오해를 했어요. 종자라는 단어를 몰랐거든요. 그래서 다른 뜻으로 오해를... 아니, 이게 아니라­"

두서없이 말하는 히메.

도미닉 경은 그런 히메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하고 탄식을 내뱉었다.

다른 종자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그, 오해요. 애초에 그 아이는 15살이란 말이오. 인간의 기준으론 3살도 안 되는 애요."

도미닉 경도 필사적으로 오해를 풀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고, 서로에게 사과를 하려는 기묘하고 혼란한 상황.

"그... 서로 오해였으니 푼 것으로 합니다."

그나마 사과를 받는 입장인 도미닉 경이 제안했다.

"사과받아주셔서 감사해요."

히메가 공손하게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묘한 정적.

둘 사이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방금 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거짓말이라는 듯,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말을 아끼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소파에 앉아 그릇을 정리했다.

히메는 그런 도미닉 경을 보며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답답할 정도로 무거운 공기.

사실, 두 사람 모두 오해를 푸는 것 외에도 서로에게 용건이 있는 상태.

히메의 경우에는 도미닉 경이 아직 솔로라면 고백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가 있었다.

그렇다면, 도미닉 경은?

그렇다.

도미닉 경도 히메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실례가 될까 봐 둘 모두 선뜻 말을 꺼내지 못 하는 것이다.

침묵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도미닉 경이 그릇과 냄비, 그리고 수저를 부엌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돌아올 때까지.

그리고 도미닉 경은, 기사다운 결단력으로 히메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히메 공."

"네, 네엣?"

히메의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가 움직임을 멈췄다.

그만큼 도미닉 경의 말에 집중했다는 표시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히메에게도 의외의 말을 뱉었다.

"히메 공, 당신에게 관심이 있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도미닉 경이 히메에게 반하기라도 한 것일까?

지금까지 그 어떤 전조도 없었는데?

아니, 히메를 생각한다는 징조는 있었으나 도미닉 경이 직접 히메에게 관심을 표한 적이 있었던가?

"네네네네네엣­?"

히메도 의외였는지 음을 이탈하며 말을 더듬었다.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고백하려고 온 것이 맞았으나, 이렇게 갑자기 훅 들어오는 상황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주 훌륭한 기습! 닌자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들어간 유효타!

히메는 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라 그저 눈만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고백? 고백인가?

도미닉 경이 고백한다고?

아냐, 아직 정해진 건 아니야. 히메.

우사기 상의 말을 생각해. 그라면 어떻게 말했을까?

혼란이 혼란을 몰고 오는 혼돈의 연속.

히메의 생각은 너무 멀리 나아가 어느새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 것인지, 손자는 몇 명이나 있을지 가족계획까지 짜버린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히메의 가족 계획은 무산되었다.

"당신의 기술, [위상 전이]에 대처할 만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더군. 아무래도 그런 식의 공격은 처음 겪어보는 일이오."

히메의 텐션이 팍 식었다.

도미닉 경이 히메에게 관심이 있다고 한 말은 히메 자체가 아니라 히메의 기술이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호승심이 강한 기사이자 전투에 미친 전사였고,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히메의 기술을 알아내고 분석해 파훼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는 성격인 것이다.

히메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아무래도 정말 히메보단 히메의 기술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히메는 어째서인지 레미가 도미닉 경을 허당이라고 부르는 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아니지.

히메는 고개를 저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자신은 이런 남자에게 반한 것이다.

그의 허당스러운 면모마저 사랑해야 그와 사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녀에게 조언해준 스승들의 조언들을 하나하나 곱씹은 히메는 다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심장이 거세게 뛴다.

숨이 턱 막힌다.

여전히 자신은 도미닉 경을 사랑하고 있었다.

물론, 이는 포식자에 대한 피식자의 감정이었으나 이제 히메에겐 상관없어진 정보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히메의 기술이 어떤 식으로 피해를 입히는지, 그리고 어떤 메카니즘을 가지고 위상 사이를 오갈 수 있는지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었으나 히메는 그 장황한 말이 들리지 않았다.

도미닉 경을 보고 숨이 막히고 심장이 뛸 때, 이미 히메는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입 밖으로 꺼냈다.

"도미닉 경, 저랑 사­"

띵동.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또 누구지? 라며 자리에서 일어난 도미닉 경은 현관으로 걸어갔다.

히메의 고백은 고작 초인종 하나에 방해받았다.

히메의 텐션이 팍 식어 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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