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화 〉 [109화]도미닉 경 VS 히메 2차전!
* * *
도미닉 경은 우선 샤워부터 하기로 마음먹었으나 한 가지 커다란 문제가 존재했다.
"옷이... 없다."
그렇다.
도미닉 경은 페럴란트에서 행하던 그대로 가차랜드에서 행동하고 있었다.
바로 하나의 옷을 낡아서 입지 못할 정도로 입은 뒤에야 새로운 옷을 사는 것.
물론 여분으로 하나 정도는 더 가지고 있었으나, 그 여분마저 아침에 있었던 히메의 습격에 넝마가 되어 있었다.
가차랜드인데 그 정도는 수리 버튼 하나로 되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여기는 도미닉 경의 집.
아무리 생활 곳곳에 침투한 시스템이라도 프라이버시 정도는 존중할 줄 안다.
개인적인 공간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생각만으로 소름이 돋는 법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시스템이 악수가 되었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지 깊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 새로운 옷을 사서 올까?
아니면 빨래를 하고 말리는 하루 동안 이 옷을 입고 있어야 할까?
전자를 선택하기엔 옷이 비쳐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고, 후자를 선택하기엔 너무 찝찝했다.
전자는 이상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었고, 후자는 가차랜드의 위생에 익숙해진 도미닉 경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문 너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오?"
도미닉 경이 문 너머에 있는 이에게 물었다.
"택배입니다."
문 너머에 있는 이가 말했다.
도미닉 경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언제나 그랬듯이 하얀 날개를 단 천사 택배원이 택배를 들고 서 있었다.
"여기 서명해주시면 되구요, 네. 다음번에도 저희 천국 택배를 이용해주세요!"
천사는 도미닉 경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부렸으나, 프로답게 방긋 웃으며 빠르게 떠나갔다.
도미닉 경은 그런 천사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도대체 누가 보낸 거지?"
발신인 가차업지 컴퍼니.
오랜만에 들어 본 이름이다.
어떻게 도미닉 경이 이 이름을 잊을 수 있겠는가?
도미닉 경을 유명 인사로 만들어 준 게임, 언찬트를 개발한 이들.
도미닉 경은 문득 돈 카스텔로와 하네스, 그리고 개발자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도미닉 경은 택배를 열어 보았다.
몇 번의 택배를 받아보면서 어느 정도 물건이 들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된 도미닉 경.
택배를 뜯던 도미닉 경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이 택배만 확인하고 온라인 쇼핑 몰에서 옷을 좀 사야겠어. 이번엔 여분도 넉넉하게."
그렇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 스마트폰이 있지 않은가.
도미닉 경은 스스로 이런 생각했다는 사실에 대견해했다.
다시 택배에 집중하기 시작한 도미닉 경.
택배 안에는 편지 하나와 옷 세 벌이 있었다.
도미닉 경은 우선 편지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친애하는 내 친구, 도미닉 경에게.'
'이봐, 친구! 돈 카스텔로야. 잊지 않았겠지?'
'이야, 너무 바쁜 나머지 연락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군.'
'아무튼, 네가 나온 언찬트가 너무 크게 히트 친 나머지, 우리가 새로운 사옥을 지었어!'
'언제 한 번 놀러 와. 개국공신을 박대하면 나라도 회사도 망하는 법이지.'
'예전 사무실을 정리하다가 추억을 발견했지 뭐야.'
'추억에 빠질 겸 편지와 함께 너에게 그 추억을 보내 본다.'
'크로마 스킨과 함께!'
'아주 너를 친애하는 너의 친구, 돈 카스텔로가.'
편지는 돈 카스텔로의 것이었다.
뜻밖에 돈 카스텔로의 필체는 유려한 필기체로 쓰였으며, 고급스러운 종이와 만년필을 사용한 것 같았다.
편지에 잉크가 번진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으며, 만년필 특유의 눌린 자국이 있었으니까.
도미닉 경은 그때를 기억하며 추억에 빠졌다.
물론, 몇 달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도미닉 경은, 이제 편지를 한쪽으로 곱게 모셔두고 택배에 남은 옷들을 꺼내보았다.
그 옷들은 도미닉 경이 잘 아는 옷이었으나, 조금은 어색한 옷이기도 했다.
"해적 기사 스킨이로군. 맙소사."
빨간 해적 옷.
그러나 예전에 엉성하게 만든 옷과는 달랐다.
이 옷은 꽤 고급스러운 원단에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하고 있다.
분명히 중간에 새롭게 만든 옷이리라.
도미닉 경은 다른 옷들도 꺼내보았다.
색깔만 다를 뿐 익숙한 해적 기사의 복장들이었다.
빨강, 파랑, 녹색의 세 가지 옷.
도미닉 경은 향수에 빠져 그 옷을 입어보려 손을 뻗었다.
"아니, 아니지. 일단 씻고 생각해야겠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자신이 아직 목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추억에 빠져 마치 누군가가 옆에 있는 듯 중얼거린 도미닉 경은 마침 새로운 옷도 생겼겠다, 기분 좋게 목욕탕으로 향했다.
...
히메사이고 성.
"결국 가기로 마음먹었니?"
"네. 어머니."
기모노를 입은 단아한 동양의 미인이 히메를 바라보았다.
히메의 어머니이자 스승인 운류 이치코.
이치코가 히메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결자해지. 제가 원인을 제공했으니, 제가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히메는 이미 표정부터 굳은 의지로 가득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타난 여우 귀와 꼬리는 불안한 듯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이치코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굴 닮아서 이렇게 허당일까?
아마 무사시가 있었더라면 이치코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꼭 닮았다고 하리라.
그렇기에 이치코는 더 이상 히메를 막을 수 없다고 여겼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운류 가의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곳에 꽂히면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래. 좋은 결과가 돌아올 거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히메가 귀여움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귀와 꼬리는 쫑긋하고 기쁨을 표시하고 있었다.
"그럼 저는 도미닉 경을 만나러 가 보겠습니"
"아 참! 내 정신 좀 봐."
이치코가 히메의 말을 자르며 손바닥을 서로 부딪쳤다.
그러고는 기모노의 소맷자락에서 금으로 된 머리핀을 꺼내 히메의 머리에 달아주었다.
그 사이에 나름 정리한다고 정리한 머리가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계속 빗어 주면서 말이다.
"이 머리핀을 꽃고 가거라. 행운이 있을 거다."
"행운이라고 하심은?"
"행운 스탯 1의 효과가 있지."
가차랜드는 미신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계.
행운마저 시스템의 손길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정말 가 봐야겠어요. 더 늦으면 실례가 되니까요."
이미 저녁에 가까워진 시간.
지금 출발하면 저녁 먹기 전에는 도착할 수 있으리라.
히메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잘 다녀오려무나."
이치코는 그런 히메를 배웅했다.
소매에서 부채를 꺼낸 이치코가 부채를 펼쳐 입을 가렸다.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 히메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저 머리핀에는 매력을 증가시키는 옵션도 같이 붙어 있으니까.
...
도미닉 경은 목욕을 끝마치고 해적 기사 세트로 갈아입었다.
티셔츠는 세탁기에 고이 넣어 둔 상태였다.
"참 오랜만에 입어보는군."
도미닉 경은 전신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해골이 그려진 이각모.
하얀 와이셔츠.
펑퍼짐한 바지와 부츠.
그리고 붉은 코트.
제법 비싼 스킨인지, 검과 방패도 해적 테마에 맞게끔 변경된 상태였다.
연철로 된 닻이 달린 오크통 방패와 상어 이빨 같은 톱날 검.
내친김에 도미닉 경은 깃발도 꺼내보았다.
"이런 곳까지?"
그리고 이 스킨의 섬세함의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깃발은 졸리로저, 즉 해골과 X자로 된 대퇴골이 그려진 검은 깃발로 변해 있었다.
도미닉 경은 이 고급스러운 옷감을 매만지며 추억에 젖어 들었다.
언찬드를 만들 당시 이 옷을 입고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야 했던가?
그리고 그 결과가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무엇보다도 언찬트와 관련된 사람들은 도미닉 경이 왈록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사람들이었다.
도미닉 경이 아는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사건에 휘말려 알게 된 사이였으며,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으로서 만난 이들이었다.
그러나 언찬트를 만든 인원들 만큼은 '가차랜드의 도미닉 경'이 만든 인연이다.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평상시에는 술을 잘 안마시는 편이지만 오늘만큼은 감성에 취해 한 잔 정도는 괜찮겠다 싶었다.
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도미닉 경이었기에, 예전에 도미니카 경이 채워둔 술들 중 가장 예쁜 병을 꺼내 들었다.
잔과 함께 거실로 돌아온 도미닉 경.
도미닉 경은 잔에다가 그 진녹색의 아름다운 술을 따랐다.
향이 제법 좋다.
그리고 쭈욱 들이킨 도미닉 경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마신 술은 도수가 높은 독주였다.
콜록거리며 타는 듯한 목을 진정시킨 도미닉 경은 다시 병의 뚜껑을 닫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도미니카 경은 도대체 왜 이런 술을 마시는 거지?
기사의 정석과도 같은 도미닉 경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때였다.
다시금 문 너머에서 초인종이 울려 퍼졌다.
"이번엔 누구지?"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다가 갔다.
"누구요?"
"히메예요. 이전의 일들을 사과하고 싶어서"
아, 히메 공이었군.
도미닉 경은 히메라는 말에 문을 활짝 열었다.
지금 추억에 잠긴 도미닉 경은 같은 언찬트의 동료를 반긴 것뿐이었다.
그러나...
"에에에에에엑? 해적? 어째서 해적?"
히메는 성대하게 해적 리얼리티 쇼크를 일으켰다.
어느정도 해적에 대해 내성이 생겼다고 해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일.
그대로 히메는 기절하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