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09화 (109/528)

〈 109화 〉 [108화]오해 VS 히메

* * *

"으으으..."

마침내 모든 상황을 파악한 히메는 머리를 감싼 채 탁자에 웅크렸다.

숨어 있던 여우 귀와 여우 꼬리가 뿅 하고 나타났지만 현재 히메는 자기 과거를 후회하느라 바빴기에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저번보다 자연스러운데?"

"그렇습니다. 생동감이 28.7% 증가했습니다."

레미와 제로는 갑자기 나타난 여우 귀와 꼬리에 놀랐으나 이내 평행세계 이벤트 때도 본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신묘한 생동감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실제로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며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지만, 철저한 이과인 레미와 제로가 감성을 이해할 리가 없다.

그저 참 생동감 넘치는 '가짜'. 즉 스킨이라고 생각했지 진짜일 것이라곤 생각하지도 않은 것이다.

레미와 제로가 여우 귀와 꼬리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사이, 히메는 계속해서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는 중이었다.

만일 레미의 말이 맞다면, 자신은 오해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오해를 멋대로 확대하고 뒤튼 것은 자기 자신이었고.

"생각해 보니 제대로 대화도 해보지 않았지..."

히메는 항상 속으로만 생각하고 끙끙대는 자기 성격이 싫어진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히메의 여우 귀가 시무룩하게 접혔다.

여기가 밖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일 집이었다면 발로 뻥뻥 걷어차느라 이불이란 이불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

히메는 엎드린 자세로 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 뻔했다.

히메는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속으로 앓을 때가 아니었다.

상황을 정리하지 않으면, 점점 더 커진다는 사실을 히메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행동하는 것.

당장 도미닉 경에게 사과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게닌... 아니, 종자에게도 사과해야겠지.

자기 오해로 둘에게 멋대로 피해를 끼쳤으니 당연한 일이다.

평소와 달리 히메의 행동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이는 사실, 히메가 속한 닌자 마을의 특징이었다.

모두 조용히 사는 듯싶지만, 결례를 끼치면 그 누구보다 깊게 머리를 숙이는 마을의 문화.

히메도 닌자 마을의 일원으로서 예의에 대한 일은 성격과 상관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마치 놀이공원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내성적인 아이가, 놀이공원에 끌고 가면 그 누구보다 즐기듯이 말이다.

예시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히메가 딱 그런 상태.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 오해를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히메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고,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생각이 정지해 버린 것이다.

"그... 가장 날카로운 칼이라도 들고 가야... 할복을 통해 사죄를..."

히메는 지금 고장 난 상태였다.

심각한 상태의 히메를 본 레미는 일단 정석적인 조언을 내뱉었다.

"그... 일단 사과부터 하는 것이 좋겠죠? 그렇게 급발진하면 오히려 싫어할 수도..."

"그렇겠죠? 아아, 어쩌지? 이걸 어쩌지?"

히메가 고장 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어설프게 꺼져가던 도미닉 경에 대한 관심이 다시 활활 불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미닉 경에 대한... 히메는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감정도 그만큼 커져만 갔고.

너무 큰 사랑은 너무 큰 트라우마와 다를 것이 없다.

아마도.

"좋아요. 지금 당장 사과하러 가야겠어요."

히메는 레미의 말에 동조하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하는 모양새로는 바로 도미닉 경에게 찾아갈 모양이다.

레미는 그런 히메를 애써 말렸다.

"히메 씨, 바로 오빠한테 가시려구요?"

"네. 사과는 빠를수록 좋으니까요."

"그 꼴로요?"

레미는 히메의 현재 상태를 지적했다.

사실 지금 히메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검은 군복은 각을 잃은 채 흐트러져 있었고, 볼에는 책상에 드러누워 눌린 자국이 빨갛게 남아 있었다.

술을 마시면서 엉망이 된 화장과 개털이 되어 버린 머리카락까지, 히메의 모습은 총체적으로 난국.

"...일단 집에 가서 단정히 하고 나와야겠어요."

히메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평온함을 되찾았다.

이런 꼴로 사과하러 가 봤자 부정적인 효과만 일어나리라.

평온함을 되찾자마자 히메에게 나타났던 여우 귀와 꼬리가 사라졌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정리하고 가요. 오빠는 허당이라 횡설수설하면 잘 알아듣지 못할 테니까."

정말 도미닉 경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레미는 이 허당인 쿠노이치를 왠지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나름 유용한 조언을 건넨 것이다.

"고마워요."

히메가 일단 옷깃의 매무새를 다듬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도미닉 경에게 가서 사과를 하리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고백까지 성사시킬 생각 마저 하고 있었다.

가게의 입구까지 고작 열일곱 걸음.

히메는 이미 자기 세계에 빠져 망상의 바다를 헤엄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멈춰세우기 전까지 말이다.

머릿속에서 아이는 열 명이 좋을까 열한 명이 좋을까 고민하는 그때.

"저기, 손님?"

바텐더가 마침 문을 열고 나가려는 히메를 불러세웠다.

"네?"

히메가 바텐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바텐더가 자신을 부른단 말인가?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술 값은 계산하시고 나가주시길 바랍니다."

그렇다.

히메와 같이 왔던 조제프 준장은 비밀결사답게 더치페이마저 안 하고 가 버린 것이다.

히메는 그 사실을 깨닫고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술 값을 계산했다.

...

늦은 오후.

앨리스는 이미 집으로 돌아갔음에도 도미닉 경은 여전히 수련에 힘쓰고 있었다.

평소라면 오전에 앨리스와 함께하는 훈련으로 끝내고 다른 일이라도 알아보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마음이 심란한 탓이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선 몸이 피곤하면 된다.

이는 페럴란트 기사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지론이었다.

주로 선배 기사가 후배 기사에게 알려주는.

"음."

도미닉 경의 방패가 허수아비를 빗겨쳤다.

이미 몇 시간을 쉬지 않고 방패를 휘둘렀으니 빗나가는 것은 이상할 일이 없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다른 일로 상념에 잠겨 있었다.

그렇다.

오늘 있었던 일.

히메와 관련된 일 때문에 도미닉 경은 이렇게 번뇌하고 있었고, 번뇌를 떨치기 위해 훈련에 매진하는 것이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벗어 허수아비 옆에 내려놓았다.

'이건 티셔츠가 아니야'라고 적힌 하얀 티셔츠는 땀에 푹 절어 있었다.

오전에 느꼈던 근육통 따위는 지속적인 움직임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미닉 경은 허수아비 옆 화단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잠시 바람을 쐬었다.

숲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의 바람이 도미닉 경의 뜨거운 몸을 식혀주었다.

"후."

약간의 휴식이 끝나고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방패를 팔에 끼우고 허수아비 앞에 섰다.

얼마나 번뇌가 심한 것일까?

그리고 얼마나 혼란스럽길래 이렇게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일까?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으론 알 수 없으리라.

도미닉 경은 다시 방패를 휘둘렀다.

이번엔 방패의 아랫 부분으로 머리, 목, 가슴과 배, 그리고 팔과 정강이와 발등을 연속으로 찍어낸다.

하나하나가 일반적으로 치명적인 부위지만, 가차랜드의 피해 시스템상으로는 확률적으로 치명타가 들어갈 뿐, 이런 부위를 친다고 해서 추가적인 피해가 들어오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도미닉 경이 이 약점처럼 보이는 부위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이유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할 줄 아는 전사였다.

그는 어디를 공격해야 사람이 '두려워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공략하는 곳은 비록 가차랜드에선 일반 공격으로 집계되겠지만, 직접 당한 이들에겐 영 점 몇 초의 경직을 유발할 수 있는 최고의 군중제어 기술이 되는 셈이다.

물론, 이는 시스템에 기록되지 않는 도미닉 경 만의 시그니쳐.

사실, 이런 사소하다면 사소한 점 덕분에 도미닉 경의 카드를 쓰는 사람들은 묘하게 운용하기 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검을 들어 올렸다.

사실, 도미닉 경은 검을 잘 쓰지 못했다.

검술의 달인(Sword Master) 칭호는 있었으나 페럴란트에서 검술의 달인 칭호는 그저 마족을 몇 마리 잡으면 국가에서 내려주는 훈장에 가까웠다.

검을 얼마나 잘 쓰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검으로 마족을 처단하면 주는 칭호인 것이다.

도미닉 경의 농노 출신다운 근본 없는 칼질로도 검술의 달인 칭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칭호에 속지 않는다.

자기 검술이 근본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오히려 방패를 쓰는 법을 배웠다.

적어도 전장에서 살아남기에는 방패만한 것이 없었다.

방패를 들고 전방에서 살아남기만 하면, 남은 적은 다른 기사들이 처리한다.

이 효율적인 분업을 깨달은 도미닉 경은, 그날로 하루에 한 번 방패를 갈아치웠다.

거친 훈련에 방패가 버티질 못했다.

그런 때도 있었지. 라며 검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던 도미닉 경.

순간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어야겠군. 오늘 훈련은 그만하는 게 좋겠어. 라고 생각한 도미닉 경은 충격에 살짝 기울어진 허수아비를 제자리로 돌려놓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히메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는 아직 모른 채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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