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06화 (106/528)

〈 106화 〉 [105화]도미닉 경 VS 히메

* * *

'이거 맞아요?'

'맞으니까 계속하시죠.'

사실 도미닉 경은 이 경이로운 게임적 허용에 놀란 상태라 보지 못했으나, 히메와 조제프 준장은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사실 히메는 앨리스를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

자신보다 먼저 도미닉 경의 옆에 선 여성에 대한 질투심 비슷한 것은 있었으나, 성격 자체가 순한 히메가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올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히메는 앨리스를 향해 쿠나이를 던지고, 도미닉 경과 냉정하게 대치하는가?

'도미닉 경의 스토리를 보강하는 걸 돕기로 했잖습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가야 하는 줄은 몰랐다구요!'

그렇다.

가차랜드에서는 소위 '인연 스토리', 혹은 '배경 설정'으로 불리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시민이 가차랜드에서 어떤 활약을 펼쳤습니다! 라며 성좌와 개척자들에게 더 몰입감을 선사해 캐릭터에 애정을 가지게끔 하는 장치.

사람들은 유명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 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는 지 궁금해한다.

그렇기에 이런 소소한 스토리를 풀면 풀 수록 더욱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강해지고 마치 진짜 옆에 있는 듯 친근해지는 것이다.

...라고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주장한다.

히메는 방패를 앞세워 달려드는 도미닉 경과 멀어지기 위해 뒤로 도약하며 손에 쥔 쿠나이를 던졌다.

도미닉 경이 방패를 들어 쿠나이를 튕겨 내는 동안 충분한 거리까지 멀어진 히메는 문득 자기 등 뒤에 숲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도미닉 경의 주거시설의 가장자리에 몰린 것이다.

더 이상 뒤로 간다면 그대로 포탈을 타고 시내로 나가 버려야 하는 상황.

사실 여기까지 했으면 그대로 퇴장해도 상관없었으나 히메는 묘한 곳에서 쓸데없는 오기를 부리는 성격이었다.

앞에는 방패를 든 도미닉 경. 뒤에는 포탈.

히메는 여기서 한 번 도박 수를 던졌다.

갑자기 도미닉 경의 품으로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무슨!"

도미닉 경이 방패를 휘둘러 히메를 쳐 냈다.

아니, 쳐 내려고 시도했다.

히메는 도미닉 경의 방패를 뚫고, 도미닉 경마저 유령처럼 지나친 후에 도미닉 경의 뒤에 선 것이다.

[위상 전이].

이는 물건 뿐 아니라 히메 자신을 대상으로도 지정할 수 있었다.

위상 전이는 물질계와 영계 사이를 오가는 것인 만큼 원래라면 제법 리스크가 큰 기술이다.

까딱하면 영계에서 영혼을 잃거나, 물질계로 돌아오며 박살 나는 부작용은 흔하디흔한 편.

신체가 뒤틀리거나 영혼에 들러붙은 잡귀가 흡수되는 일도 비일비재한 편이다.

그렇기에 생명체에게는 써서는 안 된다는 금제가 걸린 기술.

하지만 히메는 자기를 대상으로 이 기술을 썼다.

어째서인가?

사실, 이는 여기가 가차랜드라서 그렇다.

모든 기술에는 툴 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는 대개 기술에 대한 중요한 요소들을 설명하는 문구다.

과거, 히메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위상 전이]는 위험하지만 툴 팁에는 이 기술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문장이 단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생명체에게 써도 부작용이 없는 것이 아닐까?

히메는 그 사실에 어쩌면 목숨을 건 도박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리고 도박은 아주 멋지게 성공했다.

물론, 약간의 부작용이 존재하기는 했으며 은근슬쩍 잠수함 패치를 통해 툴 팁에 경고문이 삽입되기는 했으나, 아직 히메는 모르는 상태였으니 이는 사소한 문제다.

히메는 구석에서 빠져나온 이후 그저 도미닉 경과 대치만 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사실, 조제프 준장이 충분하다는 사인을 보낸 덕분이기도 했다.

"대단하군요."

조제프 준장이 박수를 치며 도미닉 경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히죽히죽 웃으며 도미닉 경 몰래 히메에게 신호를 보냈다.

히메는 처음 약속했던 신호가 보이지 마자 순식간에 조제프의 옆에 섰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렸다.

"설마 숨겨둔 한 수가 있었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습니다."

조제프 준장이 이렇게나 환하게 웃는 이유는 꽤 괜찮은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탱커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옵션과 선택적인 옵션이 있다.

필수적인 옵션으로는 '얼마나 적의 피해를 잘 막아 내고, 또 얼마나 잘 아군을 보호하느냐?'가 있으며, 선택적인 옵션으로는 '군중 제어 기술', '도발', '무시할 수 없는 스킬의 존재', '이동기' 등이 있다.

현재 도미닉 경은 필수적인 옵션에 대해서는 만점에 가까운 상태였고, 2성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실제로 써본 개척자와 성좌들은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선택적인 옵션의 부재.

도미닉 경 자체는 꽤 괜찮은 캐릭터지만, 스킬 구성을 보면 조금 심심한 맛이 있다.

어디에서나 쓸 수 있으나, 정작 2% 부족한 느낌.

그러나 이동기가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방금 전의 모습대로라면 확고한 원거리 딜러 학살자이자 완벽한 방패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찰나의 시간 동안 놀라운 지략으로 분석을 끝낸 조제프 준장!

하지만 정작 도미닉 경은 얼떨떨한 상태였다.

"숨겨둔 한 수라니?"

"더는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미닉 경은 도대체 조제프 준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앨리스의 존재를 깨달았다.

분명히 사람이 장비가 되는 일은 희귀하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저런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눈썰미가 좋구려."

"그렇게 대놓고 드러내셨는데, 어떻게 모를까요?"

하긴. 앨리스가 장비라는 증거를 너무 흘리긴 했다.

앨리스 대신 도미닉 경이 피해를 보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번엔 이 정도로 끝내고 돌아가도록 하지요. 다음번엔 확실하게 대비해서 올­"

"잠깐, 잠깐."

도미닉 경이 과장된 행동을 하는 조제프 준장의 말을 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상황이 이해되질 않는군. 왜 히메 공이 당신들과 함께 나를 공격하는 거요?"

조제프 준장의 모자에 달린 토끼 귀가 쫑긋하고 세워졌다.

생각해 보니 문답 무용으로 공격을 하기만 했지,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히메도 마찬가지였다.

"그... 제가 설명을 안 했던가요?"

조제프 준장이 멋쩍게 웃었다.

"한 적 없소."

도미닉 경이 방패를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게 제 3자가 말하기엔 좀 그렇긴 한데..."

조제프 준장이 히메를 힐끗 바라보았다.

자기가 말해도 되냐는 신호였다.

히메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히메는 여전히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으니까.

히메의 허락도 받았겠다, 조제프 준장은 도미닉 경에게 머쓱하게 말했다.

"그, 히메 씨가 저희 비밀결사 요.양.원에 들어왔다는 건 봐서 아시겠지요?"

도미닉 경은 히메를 빤히 쳐다보았다.

요한 양치기 원정대의 제복.

확실하게 증거가 있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럼 바라는 바가 있어서 저희 요한 양치기 원정대에 속했다는 건 아셨나요?"

도미닉 경이 고개를 저었다.

이거 분명히 짝사랑이었군. 조제프 준장이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히메와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제프 준장은 히메의 성격을 잘 알았다.

그의 뛰어난 지략과 분석력 덕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건 정공법으로 물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한 조제프 준장이 입을 열었다.

"그... 히메 씨는 사실 당신을­"

그때였다.

도미닉 경의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통은 진동으로 해 두지만, 아침 훈련 도중엔 폰을 빼두었기에 잠시 설정을 바꾼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아, 네. 얼마든지."

조제프 준장이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전화기를 들어 발신자를 보았다.

도미니카 경에게서 온 전화.

슬라임이 도미니카 경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뿅뿅 튀어 오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반갑소, 도미니카 경."

["도미닉 경? 지금 거기도 그래?"]

"무엇을 말이오? ...아."

도미닉 경은 힐끔 히메와 조제프 준장을 보았다.

"혹시 거기도 그런 거요?"

["츠키가 갑자기 이오시프 함장이라는 사람하고 내 집에 쳐들어오더니 갑자기 칼부림을 하더라고."]

"그런 거라면... 맞소."

둘은 전화를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 모두 곤란한 상황에 빠진 모양이었다.

["그래서 혹시 짐작 가는 거 없나하고 물어보려고 전화했어."]

"그거라면 잠시 기다리시오. 마침 들으려던 참이었거든."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 조제프 준장을 바라보았다.

"그, 아까 하던 말 계속 하시면 되오."

"아, 네."

조제프 준장이 흠흠 목을 풀며 왼쪽 손을 가슴에, 오른쪽 손을 높이 들어 과장된 연기 톤으로 말했다.

"히메 씨는 당신을..."

["그래, 도미닉 경을?"]

도미니카 경이 어째서인지 흥미진진한 느낌으로 수화기에 귀를 가져다 댔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맙소사!

도미닉 경은 상상도 못한 말을 들은 충격에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뒤에 서 있던 히메의 얼어붙은 얼굴도 부끄러움을 참느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말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