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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02화 (102/528)

〈 102화 〉 [101화]폐허...?

* * *

"맙소사."

딕 트레이시가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유성이 우중충한 하늘을 찢으며 마치 창 끝 처럼 뾰족한 모서리를 드러내었다.

그 모서리는 천천히 전장의 연기와 안개를 찢으며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온전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돌덩이!]라는 무식한 이름의 궁극기는 마녀들과 그렘린들이 합작이었다.

마녀들이 땅 위에 우주의 존재를 도발하는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면, 우주의 존재가 이 미개한 필멸자를 징치하러 운석을 집어던지곤 했다.

그러면 그렘린들이 그 유성에 엄청난 출력을 가졌으나 안정성따위 없는 로켓을 장착시키고 미신 가득한 빨간 염료를 뿌려 세 배 빠르게 유성을 강하시킨다.

엄청난 속도로 떨어진 유성은 상상 이상으로 넓은 범위에 심각한 피해와 함께 강한 넉백을 유도하고 기절 및 어지러움 상태 이상을 부여한다.

이 궁극기는 마녀와 그렘린의 시너지로 탄생한 걸작.

[시험장에 운석이 유도 되고 있습니다. 3분 남았습니다.]

얼마나 강력한 궁극기인지 시스템 창마저 경고를 띄워줄 정도.

"...3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최대한 달리면..."

일부는 최대한 빠르게 결승점과 현재 지점 사이의 거리를 계산했다.

그나마 빠른 속도를 가진 이들은 생각하기도 전에 선두를 돌려 결승점으로 향해 날아가기도 했다.

죽는 건 두렵지 않다.

가차랜드에서는 가치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으니까.

이들이 두려워하는 건 단 하나.

탈 것의 수리비와 다시 시험을 쳐야 한다는 귀찮음이었다.

운석은 딱 봐도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가차랜드의 특성상, 대파 이펙트가 일어난 이후 수복하라는 메시지가 뜨리라.

그들이 타고 있는 드래곤과 우주 전함은 하나같이 그 가격이 비싼 고급품.

보통 수리 비용이 가치의 절반 정도로 책정된다는 것을 감안 할 때, 그들이 완파, 혹은 대파된 탈 것을 수복하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 나라 하나의 반년 예산 정도는 가뿐히 날아가리라.

물론 여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 그 정도는 흔쾌히 낼 수 있는 거부들이지만, 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지출하는 건 누구라도 꺼리기 마련.

이는 딕 트레이시라도 다르지 않았다.

"함장. 운석이 떨어지면 우리가 입을 피해는 어떤가요?"

"빗겨 맞으면 반파, 제대로 맞으면 중파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최신 전함인 만큼 전체적인 스펙이 좋으니까요. 구형이었다면 완파였을 겁니다."

"그런가요..."

딕 트레이시는 함장에게 예상 피해를 물었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충분히 면허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

"일단 최대한 적은 피해를 입게끔 자리를 잡으세요. 약간의 피해는 감수합시다."

수리 비용은... 아버지가 대주시겠지.

안일한 마음가짐으로 의자에 몸을 파묻은 딕 트레이시였다.

[1분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동안 이미 유성은 그 모습이 다 드러나 있었다.

얼마나 큰지 슬로우모션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는 유성을 바라보며, 딕 트레이시는 조용히 욕을 내뱉었다.

[30초 남았습니다.]

물론, 딕 트레이시는 신형 전함이었기에 내구를 믿고 버틴다는 선택지를 골랐지만, 드래곤처럼 조종석이 노출되어 있거나 구형 전함이라 내구도가 아슬아슬한 이들은 딕 트레이시처럼 느긋하지 못했다.

도망친 이들이야 그대로 결승점을 통과해 시험장을 벗어났으나, 차마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최대한 피해가 적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15초 남았습니다.]

올 것이 오는군. 딕 트레이시는 거의 지면에 닿을 정도로 떨어진 유성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10초 남았습니다.]

그녀는 유성을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유성 너머에 나타난 한 비행체를 보지 못했다.

[5초.]

그 비행체는 엄청난 연기를 내뿜으며 창과 같이 유성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는데, 일반적인 상황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4초.]

딕 트레이시는 순간 유성 너머로 유성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같은 비행선을 보았다.

[3초.]

그리고 그 비행선은 순식간에 유성과 충돌했다.

[2초.]

유성이 터지며 피해 판정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지형에 떨어진 유성은 지형을 변화시켰으나, 정작 어째서인지 범위 피해가 아니라 단일 피해로 떨어지는 유성.

버그일까? 아니면 그저 트리거가 느슨한 상태였던 것일까?

일반적인 세계관이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가차랜드는 코딩과 트리거가 있는 세계관.

원래라면 발동되지 않을 트리거가 발동되었다.

[1초.]

피해 판정 트리거 이후 바로 군중 제어트리거가 발동했다.

스턴과 넉백 효과는 [피해 판정 트리거가 성공적으로 일어난 이후], [피해를 받은 대상에게]였기에, 비행선은 현재 상태 이상을 받은 건지 받지 않은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상태로 떠 있을 뿐이었다.

[0초. 오류. 오류. 대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미묘한 시간 차이를 두고 일어난 일로 인해 트리거 버그가 터졌다.

원래대로라면 카운트 다운의 끝이 트리거가 되어 피해 판정을 유발하고, 피해 판정을 계산해 넉백과 스턴을 부여하는 식이었지만 이미 피해 판정과 군중 제어 판정이 어긋나버린 상황에서 아무리 트리거를 발동해도 효과가 일어날 리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글쎄. 한 가지는 알겠구나. 가차랜드는 참 버그가 많은 곳이라는 걸."

알 사람은 다 알았겠지만, 이 비행선의 주인은 도미닉 경이었다.

연습장에서 조작에 제법 익숙해지자마자 시험장으로 들어온 도미닉 경은 있는 힘껏 속력을 올렸다.

그러나 면허 시험장의 환경을 너무 얕보았던 도미닉 경은 갑자기 불어닥친 바람에 휩쓸려 제어권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제어권을 잃은 비행선이 유성으로 빨려 들어가 부딪혀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제대로 절차를 밟았더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어디 지금 도미닉 경이 제대로 절차를 밟았던가?

"그래도 참 이상하네요. 왜 저 큰 유성에 닿아도 멀쩡한 걸까요?"

"그러게 말이다."

도미닉 경은 나름 이 상황을 유추해 보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두 번의 버그를 겪은 도미닉 경이었으나 버그라는 것은 언제나 새롭고 신선한 것이니까.

사실 이건 트리거 버그가 맞았다.

특정 상황, 특정 타이밍에 반격하면 피해를 보지 않고 군중 제어마저 씹어 버리는 버그.

시너지로 급조된 궁극기였기에 그 사이가 엉성한 나머지 일어난 버그였다.

하지만 도미닉 경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결국 이해하길 포기한 도미닉 경은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멍하게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마녀와 그렘린은 빼고.

이미 마녀들과 그렘린들은 유성을 피해 사라진 지 오래였다.

...

"말도 안 돼..."

딕 트레이시는 유성을 박살 내고도 멀쩡하게 떠 있는 비행선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어디서 본 듯한 깃발이 줄줄이 장식된 거대한 비행선은 여전히 증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사실 이는 관성에 의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었지만, 이미 유성을 부쉈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상태였기에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사기 아냐?"

그들이 보기에 도미닉 경이 탄 비행선은 괴물 그 자체였다.

버그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상황에서 도미닉 경의 비행선은 엄청난 피해를 견디고 상태 이상마저 씹은 뒤 유유히 떠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딕 트레이시는 저 괴물 같은 비행선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문득 저 깃발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시대 착오적인 기사.

그 기사가 쓰던 깃발과 비슷했다.

아니, 같은 깃발이리라.

애초에 깃발을 쓰는 이들은 가차랜드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그만큼 겹치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니까.

"효과가... 피해 감소였지."

딕 트레이시는 기억을 더듬어 그 효과까지 기억해낼 수 있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그 효과로 인해 버틸 수 있었으리라.

무엇보다도 탑승물의 스탯은 탑승자를 따라간다.

[탱커]특성을 가진 상태에서 수십 명과 싸운 전적이 있는 그라면 지금쯤 유성을 막아 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않았을까?

탱커는 귀하다. 그리고 이처럼 능력치 높은 탱커는 더더욱 귀하다.

아무래도, 조만간 클랜 가입 제안 해봐야겠어.

물론, 이는 그저 가정일 뿐이었으나 그녀의 마음속에서 도미닉 경에 대한 평가가 조금 오르고 있었다.

...

도미닉 경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신경 쓰이기는 했으나 그저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 방해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비행선의 조종타를 잡았다.

"그나저나 참 재밌는 상황이었어요."

앨리스가 말했다.

누가 유성과 부딪쳐 본 적이 있겠는가!

"그러게 말이다... 음?"

도미닉 경은 유유히 그 자리를 피해 비행선을 움직이다가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반복된 상황의 연속으로 새로운 특성이 개화됩니다. 패시브 특성 [시네마틱]이 활성화됩니다.]

[[시네마틱] : 당신이 행하는 행동은 '극적인' 상황을 연출합니다. 당신의 코스트가 1 상승합니다.]

도미닉 경은 이 엉망진창인 상황에서 나타난 새로운 특성을 보며 생각했다.

특성은 한 사람당 하나 아니었던가? 하고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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