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 [100화]폐허
* * *
"고맙소. 내 지식의 저변이 넓어지는 기분이 드는구려."
"무언가 보답해드리고 싶은데,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구려."
"일단 지금 유용한 지식 하나를 내어드리리다. 나머지는 나중에 셈하도록 하겠소."
거대한 소라게, 미스터 허밋은 껄껄 웃으며 도미닉 경과 앨리스, 그리고 거미전차를 결승점에 내려주었다.
지금까지 보름이나 달려온 것과 비교하면 고작 이십 분 만에 성취한 일이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결승점에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실기 시험 총 점수 120점 중 [신호 위반 : 3점]과 [드리프트 안 함 : 15점], [지정된 길이 아닌 하늘길 사용 : 3점]으로 21점 감점. 99점을 얻으셨습니다.]
[합격 커트라인은 80점입니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추가 시험을 보시겠습니까?]
도미닉 경은 시스템 창의 말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늘길을 보니 큰 싸움이 일어나고 있소."
"하늘길이 어지러우나, 반대로 그렇기에 지금이 공중 면허를 딸 기회요."
거대한 소라게가 자기에게 도움을 준 대신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은 이 현명한 소라게의 말을 경청했다.
언제라도 조언은 들어서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우주 전함이 날아다니고, 용들이 불타는 숨결을 내뱉으며, 마녀들이 엉망진창인 포션을 던지며 깔깔대고 스팀펑크 풍의 자이로콥터가 조악한 미사일을 날리는 곳.
감히 지상의 떨거지들이 올려다보기도 황송한 전장.
"좌현! 좌현! 탄막이 얕다!"
"5호기 추락합니다! 8호기가 빈자리를 막아서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하늘이 어둡습니다! 적이 7! 하늘이 3!"
"조준도 필요 없겠군! 마구 쏴라! 여기선 장님도 특등 사수다!"
여기, 그들만의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
왜 일어났는가? 그리고 어째서 일어났는가?
알 수 없다.
전쟁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기 마련.
그래.
지금 면허 시험장에 있던 이들은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그저 서로를 잡아먹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전장의 모든 이들에게 알린다! 적이 좌측으로 병력을 빼돌렸다! 으. 용기병들은 좌측의 돌격을 막아!"
딕 트레이시는 목이 쉬도록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그녀의 말은 기함 곳곳에 붙어 있는 스피커를 통해 전장 전체에 전달되었다.
"제독! 지금 아군의 피해가 늘어나고 있소."
기함아포칼립틱 아포크리파 MK.III의 함장이 딕 트레이시를 향해 외쳤다.
"어느 정도 늘었죠?"
"4% 정도. 아주 미약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치요."
제독이 함장보다 높은 직급임은 맞지만 배의 주인은 함장이었기에 상호 존대를 쓰던 딕 트레이시가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저번 전장에서 검과 방패를 들고 깃발을 휘날리던 시대 착오적인 기사.
4%.
적어보이지만 변수가 되기엔 충분한 숫자.
"설마."
그가 여기서 같이 면허 시험을 보고 있다고?
딕 트레이시가 피식 웃었다.
면허 시험장은 여기 하나가 아니다.
수많은 면허 시험장 중 같은 시험장에서, 그것도 같은 시간대에 같은 트랙에 있다고?
그리고 그 전쟁광이 전투를 피한 채 혼자서 날름 결승점을 밟았고?
하나하나를 놓고 본다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한꺼번에 일어나기에는 너무 적은 확률이지 않은가.
"아."
딕 트레이시는 실없는 생각 하며 실실 웃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함장. 이거 지금 면허 시험이죠?"
"...그렇군요."
"우리, 싸울 필요 없는 것 아니에요?"
"그 말도 옳습니다."
"그럼 한 군데를 돌파해서 도착하면 되겠네요?"
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딕 트레이시가 한숨을 내쉬고 자기 머리에 꿀밤을 한 번 먹였다.
멍청한 딕 트레이시. 라며 자조적인 웃음을 내비친 딕 트레이시가 바로 마이크를 켜고 전장에 방송을 내보냈다.
...
["지금부터 이 쓸데없는 전투를 멈추고 한 지점으로 돌파한다! 방향은 북북동! 전 인원은 지정한 지점으로 돌파를 시도한다! 방향은 북북동!"]
"망할, 지금?"
프테라노돈을 탄 모히칸이 빗자루로 편대를 짠 마녀들 중 하나의 목을 도끼로 베며 중얼거렸다.
이미 난전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딕 트레이시의 말은 정론임에도 실제로 이행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명령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13명의 마녀를 잡을 수 있다고!"
일부는 이미 전장의 마력에 사로잡혀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우리는 '면허'를 따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본 목적을 잊지 말라! 다시 한번 말한다"]
그러나 이내 기함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은 그들의 머릿속에 느낌표를 띄우기 충분했다.
그렇다.
너무 혼란스러운 전장의 상황에 잊고 있었으나,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면허를 따는 것이었다.
싸우는 것은 부가적인 문제.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면허 시험의 베테랑임에도 본래의 목적을 잃었는가?
그건 바로, 지금 상대하는 적들에게 그 이유가 있었다.
그렘린과 마녀들.
혼돈과 혼란에 있어선 그 누구보다 진심인 생명체들.
"이봐, 위치! 저놈들이 오와 열을 맞춘다!"
"이런! 우리의 계획이 들통났나 봐!"
이들이 끊임없이 응시자들을 혼란스러운 혼돈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상습범이다.
시험을 치러 온 이들에게 혼돈을 선사하려 몰래 트랙에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건 예삿일.
응시자를 꼬드겨 같이 난동을 피우거나,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 하거나, 엔진 오일 대신 참기름을 넣는 이들.
이들은 그 베테랑인 프테라노돈을 탄 불량배가 트랙의 기믹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악독하게 혼란을 조장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저 응시자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것을 보며 낄낄대는 것뿐이다.
"아직 계획은 남았어. 이럴 거라고 예상했고, 또 당해봤잖아!"
그렘린의 우두머리 중 하나가 말했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평소보다 많은 그렘린들이 우두머리를 따라 혼돈을 일으키러 놀러 온 상태.
이렇게 끝낸다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질서야! 혼돈과 정반대의 성질이지!"
마녀 중 가장 늙은 이가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선문답처럼 말했으나 그는 질서라는 성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용!"
"그래! 조용히 하도록!"
자이로콥터를 탄 그렘린과 젊은 마녀가 외쳤다.
모든 이들은 입을 다문 채 그저 싸우는 데 열중했다.
그러면서도 귀는 두 생명체를 향해 쫑긋 세우고 있었다.
"도망친다!"
"하지만 최대한 부순다!"
"완벽한 절충안이지!"
그렘린과 마녀의 말은 그저 두 의견을 엉성하게 절충한 것뿐이지만 모두가 만족했다.
그래. 모두가 만족했다.
이들은 그저 혼란을 즐길 뿐, 애초에 계획과는 어울리지 않는 족속들이었다.
...
도미닉 경은 로비로 돌아오자마자 나룻배를 탄 직원에게 말했다.
"다음 시험을 보고 싶소."
"비행선이요?"
"그렇소."
도미닉 경은 마음이 약간 급한 상태였다.
그는 거대한 소라게의 말을 떠올렸다.
'하루에 한 번. 면허 시험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그리고 한 번 시험을 본 이가 바로 시험을 볼 때, 원래 있던 장소로 돌아갈 확률이 높소.'
'그리고 익숙한 곳에서 시험을 치면 합격할 확률도 더 높아지고.'
도미닉 경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상태.
앨리스가 도미닉 경의 뒤에서 참을 수 없다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직원은 그런 도미닉 경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곧 프로페셔널하게 서류를 두 장 내밀었다.
"그럼 우선 실기를 보고 필기로 넘어가죠. 이건 그렇게 하길 바란다는 동의서와 고객님이 잘못될 경우를 위한 서류에요."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급하게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원칙대로라면 필기를 치고 실기를 쳐야하지만, 가차랜드에선 순서가 바뀌는 일 쯤은 다반사였다.
마침내 작성을 끝낸 도미닉 경은, 다시 연습장으로 향했다.
이제 비행선을 시운전할 차례였다.
...
"이상해."
딕 트레이시는 갑자기 전장에서 멀어지는 스팀펑크 그렘린들과 마녀들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간이라도 보는 듯, 혹은 미끼를 살랑거리듯 적당한 거리에서 딕 트레이시와 그 동맹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이상해..."
일부 마녀들은 마치 원하는 만큼 지나가라는 듯 우스꽝스럽게 예의 바른 척하며 손을 흔들었고, 그렘린들은 꿍꿍이가 있다는 듯한 미소로 길을 터주었다.
"이상할 게 뭐가 있소. 이제 저들도 즐길만큼 즐겼다는 거겠지."
프테라노돈을 탄 모히칸이 외쳤다.
지난 두 번의 경험 상, 이들은 그저 자신들이 만족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돌아가는 족속들이었다.
비록 그때는 돌아갔고, 지금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 달랐으나 모히칸의 불량배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주변에 점점 그렘린과 마녀들이 모여들자, 모히칸의 불량배도 무언가 지금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군."
모히칸이 프테라노돈의 목줄을 끌어 제자리에서 선 뒤 주변을 살폈다.
이들은 만족하면 떠나는 족속들이었지, 이렇게 모여서 기분 나쁜 웃음을 보이는 녀석들이 아니었으니까.
분명히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직 저들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는 상황.
이제 결승점이 거의 다가오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비행하면 도착할 거리.
그때였다.
"얘들아! 준비해라! 시간 됐다!"
"함정에 걸렸구나, 바보들!"
젊은 마녀와 그렘린 두목이 낄낄 웃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리를 유지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듯 순식간에 시야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딕 트레이시는 저들의 행동에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말문이 막혔다.
"세상에..."
모히칸의 불량배는 지상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지상은 마녀들이 생성한 안개로 한 치 앞도 보지 못할 정도였으나, 마녀들이 사라진 후 지상은 다시 원래의 시야를 되찾았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붉은 용암과 녹아내리는 금속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언제 저런 걸"
그리고 모히칸의 불량배도 갑자기 몸을 짓누르는 중력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면허 시험장의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잔뜩 달린 유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