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99화 (99/528)

〈 99화 〉 [98화]벤허

* * *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그때, 프테라노돈을 탄 불량배는 용 위에 탄 마법사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당장 싸우는 걸 멈춰! 적이다!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모히칸의 불량배가 놀라운 곡예 비행을 선보이며 용과 전함 사이를 날아다니며 계속해서 현재 상황을 알렸다.

곡예 비행에 놀란 전함 하나가 무심코 주포를 발사했으나, 불량배는 도끼의 날을 기울이는 것으로 그 엄청난 에너지 덩어리를 빗겨내었다.

현실성이 극히 떨어지는 장면이었지만, 여긴 가차랜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

모히칸의 불량배는 핑크색 리본이 달린 우주 전함을 보았다.

다른 전함보다 크기가 크고 좀 더 신형의 느낌이 나는 것이 아무래도 저 전함이 기함이리라.

주포를 튕겨 내느라 빨갛게 달아오른 도끼를 높이 든 모히칸이 핑크색 리본이 달린 우주 전함, 아포칼립틱 아포크리파 MK.III를 향해 외쳤다.

"지금 당장 싸움을 중지하고 힘을 뭉쳐야 한다! 무의미한 사격을 멈춰라!"

용들을 타고 있던 이들은 이미 불량배의 말을 듣고 공격을 멈춘 상태였다.

그리고 용들을 탄 이들이 모히칸이 탄 프테라노돈의 뒤에 일사불란하게 정렬했다.

면허 시험에 자주 보이는 얼굴이기도 했거니와 익룡도 용이 아니겠는가.

비록 드래곤과 드레이크, 용과 익룡 등의 차이는 극명하지만 이는 메이커의 특색이 강하게 반영된 것일 뿐, 세세하게 따지지 않는 이들에겐 다 같은 종류일 뿐이었다.

가장 노련한 이의 말에 용들의 편대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우주 전함 함대는 이내 승산은 있으나 피해가 클 것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당신의 말에 따르도록 하죠."]

딕 스테이시는 그런 모히칸에게 사실상 휴전 선언을 내뱉었다.

...

"우­햐­아­!"

엔진에 과부하가 걸리자마자 세 배는 되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두 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거미전차 위에서 앨리스의 환호성이 들렸다.

거의 깃대에 걸린 깃발처럼 난간을 잡고 펄럭이던 앨리스가 다시 땅을 밟게 된 건 시간이 지나 과부하가 끝난 이후였다.

"대­"

앨리스는 발갛게 상기된 볼을 만지작거리며 고양감을 숨기지 않았다.

"대단했어요!"

"그러게 말이다."

도미닉 경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속도감이 있다는 것은 꽤 좋은 경험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중간부터 이상하게 조종간이 잘 꺾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속도가 다시 느려지자 조종간은 원래대로 돌아왔으나, 방금 전까지 최대한 부딪치지 않기 위해 도미닉 경은 있는 힘을 다해 조종간을 움직여야 했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의 높이가 높았기에 주변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도미닉 경은 진짜로 한 눈 밖에 없었기에 매우 커다란 장점인 것이다.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한 도미닉 경은 다음 경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덕을 넘어가면 가장 빠르겠지만, 어째서인지 감이 좋지 않았다.

트랙을 따라가도 좋겠지만, 역시나 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 전체적으로 이 자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그 사실을 깨닫고 잠시 엔진의 회전수를 낮췄다.

도미닉 경이 배우지 않은 심화적인 내용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그 일을 행했다.

"스승님?"

"쉿."

도미닉 경은 말을 걸어오는 앨리스의 입을 막았다.

그 순간, 도미닉 경의 머리 위로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작살이나 화살촉처럼 생긴 전투기가 도미닉 경을 지나치자, 그 이후에 쌩­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바람이 느껴졌다.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는 발각되기 쉬운 모습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언덕 아래에 있어서인지 그 전투기는 도미닉 경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첫 전투기 이후 몇몇 자기주장이 강한 속도광 파일럿들의 탑승물이 도미닉 경의 머리 위를 지나쳤다.

도미닉 경은 진행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을 바라보며 당황했다.

"왜 저들은 거꾸로 갈까요?"

앨리스도 그 사실이 의문이었던 모양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면허 시험이 처음이었기에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누군가가 곁에 있지도 않았고.

"나중에 알아보자꾸나."

도미닉 경은 앨리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자기 머릿속에 의문 하나를 추가했다.

도미닉 경은 우선 이 시험을 끝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다시 엔진이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도미닉 경이 엔진의 회전수를 높였기 때문이다.

최대한 안전하게, 그리고 빨리 결승전에 도착하려면 일단 있는 힘껏 속도를 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도미닉 경이 조종간을 움직이자, 거미전차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다져진 도미닉 경의 감이 경고를 울릴 때마다 그곳엔 지뢰나 함정이 있었고, 도미닉 경은 감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움직였기에 그 지뢰와 함정을 피할 수 있었다.

"저기 결승선이 보여요!"

앨리스가 크게 외쳤다.

엔진소리가 요란했기에 크게 말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미닉 경도 저 멀리 결승점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눈이 하나뿐이라 거리 감각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 거리라면 1시간 정도면 충분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던 도미닉 경은, 문득 불길한 감각이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꽉 잡아!"

도미닉 경은 앨리스에게 크게 외쳤다.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으나, 바로 난간을 강하게 붙잡았다.

스승님의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선택은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요­호! 여기 쯤인가?"

옆에 있던 바위 언덕의 아래에서 유령선이 튀어 올라왔다.

엑토플라즘으로 된 파도가 철석이며 주변을 영적으로 끈적끈적하게 만든 유령선은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를 옆에서 치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떨어졌다.

거미전차가 그 엄청난 크기의 유령선에 제대로 직격했다.

그리고 거미전차는 충돌로 인해 도미닉 경이 위험을 감지한 곳을 향해 밀리며 그곳에 심어져 있던 지뢰를 밟아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폭발이 거미전차를 덮쳤다.

모래가 폭발과 함께 후두둑 하늘로 솟아올라 거미전차를 가렸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인 유령선은 땅 위에 둥둥 떠서 마치 물에 적신 천처럼 엑토플라즘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유령선의 선실에서 선장으로 보이는 유령 해적이 나타났다.

"앍그르르르! 여기가 어딘지 확인해, 이 머저리들아!"

"아이아이 써!"

반투명한 형광색의 유령 해골 선원이 낡고 먼지 가득한 망원경을 들고 망루에 올랐다.

그리고 여기저기 보며 지형을 확인하더니 선장을 향해 외쳤다.

"3cm 움직였습니다!"

"뭐라고!"

유령선장이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역정을 내었다.

"아까보다 0.3cm나 더 움직였잖아! 보라고, 하면 된다니까!"

아니, 역정이 아니라 기쁨의 표정이었던 모양이다.

해적 선장은 험악한 얼굴로 시시덕 거리며 웃었다.

이제 앞으로 열하고 아흐레 정도면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으리라.

바람만 조금 불어 준다면 열 닷새 정도로 역대 최고의 속도를 낼 수 있겠지.

사실, 그 정도면 지나가던 거북이가 더 빠르겠으나 해적선에 묶인 이들에겐 평생 겪어보지 못한 스피드였다.

역시나 제대로 된 시험장은 무언가 다른 모양이군. 이라며 자신을 대견해하던 선장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봐! 어디서 삐걱대는 소리 안 나나?"

"삐걱대는 소리요? 혹시 제 턱이 어긋났습니까?"

선장의 질문에 가장 가까이 있던 선원 하나가 자기 해골을 매만졌다.

정말 턱뼈가 어긋나 있었던지 다시금 달달 거리며 자리를 맞춘 해골 선원이 선장에게 되물었다.

"이젠 좀 소리 덜 납니까?"

"아니, 그 소리가 아니야. 좀 더 소름 끼치고... 쇠와 쇠가 부딪치는 듯한..."

선장은 여전히 들려오는 이 기분 나쁜 삐걱삐걱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한 발자국씩 이동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마찰음.

선장은 그 소리가 난간 너머, 바로 이 유령선 아래에서 들린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쯤인가?"

선장의 반투명한 손이 달달 떨렸다.

선장은 유령답지 않게 오컬트에 푹 빠져 있었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괴물, 특히 침대 아래에 있는 괴물을 가장 무서워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배 아래 존재하는 수상한 소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장은 이 유령선의 주인.

유령선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선장은 두려움을 견디고 난간 너머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으...으... 으아아아아아!"

그리고 엄청난 비명을 내지르며 난간에서 멀어진 선장은 자기도 모르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선장님! 왜 그러십니까?"

해골과 유령 선원들이 선장에게 달려왔다.

선장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 아니, 심해의 괴물이라도 마주친 것처럼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선장이 난간 너머를 보며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저 난간에! 저 난간 너머에!"

"난간 너머예요?"

선원 중 하나가 선장의 말에 난간 너머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선원도 선장처럼 엉덩방아를 찧더니 난간에서 필사적으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으...으아아..."

"그, 그게 온다! 그게 온다고!"

"그게 뭔데? 제럴드 씨?"

선원이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본 다른 선원이 나름 회심의 농담을 건넸다.

"아니, 농담이 아니야!"

콰직. 소리가 들렸다.

선원들은 처음 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

콰직. 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선원들 중 일부가 다시 이 소리를 들었다.

와지직. 하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선원들은 이제 그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적. 하는 소리와 함께 여덟 개의 다리가 달린 황동 전차가 유령선의 벽을 타고 기어올랐다.

"거..."

마침내 유령선의 모든 선원들은 선장이 왜 저렇게 두려워하는지, 다른 선원들이 왜 공포에 질렸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거친 바다 사나이들은 크라켄도, 심연의 주인도 두렵지 않았으나 공통적으로 단 하나의 생물을 무서워했다.

"거미다­! 거미가 나타났다!"

그래. 거미였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