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97화]벤허
* * *
면허 시험에서는 어설픈 자들을 걸러내기 위해 꽤 힘겹고 무시무시한 시련을 준비한다.
처음엔 대충 운전법을 배워 컨셉으로 써먹겠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어설픈 컨셉은 가차랜드에서의 가치를 깎아 먹는 법.
면허 시험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스승님! 저희 꼴찌예요!"
앨리스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활짝 웃으며 콧물을 훌쩍거렸다.
거미전차의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으나 전장의 거친 바람이 꽤 매서웠던 탓이다.
"저희 이렇게 천천히 가도 괜찮을까요?"
"본질을 생각해라."
도미닉 경은 조종간을 조금씩 꺾으며 앨리스에게 답했다.
도미닉 경의 말은 정론이었다.
지금, 이 시험은 무엇인가?
바로 면허 시험이었다.
비록 전장을 방불케 하는지형과 서로에 대한 공격이 허락된다는 점 때문에 쉽게 잊혀질 수도 있는 사실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 본질을 잊지 않았다.
늦게 가더라도, 안전하게 운전하더라도 제대로 가기만 하면 성공이라는 것이다.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는 도미닉 경.
그러나 그는 외눈이다. 필연적으로 안대를 낀 왼쪽은 사각이 되는 법.
그리고 도미닉 경에 대한 시련은 그 사각지대에서 오고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가 피격당한 것은 아니다.
하늘을 떠다니던 용 중 하나가 우주 전함의 주포를 제대로 맞고 산화되며 생긴 일이다.
그러나 그 용도 마지막 발악을 하려 했던지 브레스를 뱉으려 숨을 크게 들이쉰 상황.
용이 터지면서 생긴 폭발은 예상을 크게 웃도는 것이었다.
그나마 우주 전함들 중 작은 축에 속하는 전함 하나가 그 폭발에 휩쓸려 통제권을 잃었다.
정확하게는 드래곤이 가진 마나가 EMP의 역할을 하며 셧다운 된 것이지만, 이런 자세한 것까지 도미닉 경이 알지는 못하리라.
그리고 통제권을 잃은 전함은, 중력에 이끌려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스승님! 왼쪽! 왼쪽에!"
앨리스가 황급하게 말했으나 도미닉 경은 커다란 엔진 소리로 인해 그 말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문득 피부에 닭살이 돋고 등골을 따라 위험신호가 찌르르 울리자, 그제야 도미닉 경은 왼쪽을 바라보았다.
"오, 이런."
도미닉 경이 탄 거미전차 옆에 전함이 떨어진다.
떨어진 전함은 허리 부분이 우그러지더니 이내 반으로 접혀 뜯어지며 내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철근이 구부러지는 끔찍한 소리.
도미닉 경은 갈라진 틈 사이로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푸른 불의 구체를 보았다.
3초. 길지 않은 시간.
도미닉 경은 그 3초가 마치 3년인 듯 느리게 보였다.
전함이 폭발하며 생긴 불꽃과 충격파가 도미닉 경의 거미전차를 집어삼켰다.
...
면허 시험의 선두는 언제나 스피드 프릭스, 즉 속도광들이 선점하는 법이다.
이들은 면허 시험에서 누가 가장 먼저 도착하느냐로 암묵적인 내기를 건다.
그리고 면허를 딴 이들은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하고 꼭 면허 정지를 당해 다시 이곳으로 온다.
그러나 스피드 프릭들은 이 순환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어쨌거나, 속도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낼 수 있는 족속들이었으니.
"이거 뭔가 이상한데."
프테라노돈에 탄 모히칸 머리의 불량배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금 견제하려고 던진 도끼를 형을 탄 동생이 쳐 내서는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속도광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무언가가 이 트랙 위에 있다는 감이었다.
"하하! 형! 달려! 필요하면 말해. 약을 더 주지!"
"나...달린다...!"
약물의 힘을 빌려 핏줄과 근육의 갈라짐이 선명하게 드러난 장딴지로 땅을 박차며 나아가는 형제.
이대로라면 이 형제가 1등을 차지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는 면허 시험장.
어설픈 각오로는 살아남지 못하는 마경.
프테라노돈에 탄 모히칸은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어? 형! 멈춰! 멈추라고!"
"멈출 수 없다...! 이대로 돌파한다!"
형의 위에 탄 동생이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황급하게 형의 목에 걸린 고삐를 당겼으나, 너무 약을 과하게 투여한 탓일까? 오히려 속도는 점점 빨라지며 동생이 관측한 위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멈춰, 멈춰, 멈춰! 안"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산화되어 버린 형제.
"맙소사."
모히칸의 불량배는 그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왜 저들이 폭사했는지 알아차렸다.
지뢰가 있다.
프테라노돈을 탄 불량배가 황급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야. 이제야 알아차리다니. 역시 스피드 프릭들은 앞만 보고 주변을 살피지 않는구나?"
"넌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늘에는 다빈치의 설계도로 만든 자이로콥터를 탄 파일럿과 빗자루를 탄 마녀가 있었다.
이곳은 트랙의 중간 정도 되는지역.
그렇다는 말은 저들이 자신들보다 빠르게 여기 도착해 지뢰를 설치했다는 말이 된다.
"이놈들!"
모히칸의 불량배가 투척용 도끼를 마녀에게 던졌다.
"안 되지, 안 돼."
그러나 그 도끼는 자이로콥터를 탄 파일럿의 특수 능력, 보호막에 가로막혔다.
그러면서도 자이로콥터는 지뢰를 하나씩 땅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조금 더 놀고 싶지만, 우린 한 사람과 놀기엔 바쁜 사람들이잖아?"
마녀가 호호 웃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마녀와 파일럿은 서로 양쪽으로 갈라져 다른 이들을 찾으러 떠났다.
모히칸의 불량배는 다시 되돌아오는 도끼를 손으로 낚아채며 형제가 폭사한 자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끼리 경쟁할 일이 아니었어!"
모히칸은 다 회차에 걸친 면허 시험을 보며 다양한 경험을 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를 딱 두 번 겪어보았다.
응시자를 두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시작점을 결승점으로 만든 경우.
호전적인 가차랜드의 성향 상, 팀이 나뉘었다면 마주쳤을 때 절대 훈훈하게 끝날 리가 없다.
실제로 모히칸이 겪은 두 번의 경험에서의 합격자는 없음!
팀 내에서 경쟁하며 너덜너덜해진 이들이 다른 팀을 만났을 때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다른 팀을 제압했더라도 코스가 제시하는 무시무시한 시련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당장 돌아가야 해! 우리끼리 싸우는 걸 멈추고, 상대 팀에게 온전히 힘을 쏟아야 해!"
모히칸의 사내는 자신이 탄 프테라노돈의 방향을 꺾어 다시 뒤로 날아갔다.
혼자서 결승전으로 갈 법도 했으나, 오히려 개인 행동이 더 위험한 행동이라는 걸 두 번의 경험으로 알아차린 상태였다.
반드시 이 상황에선 협동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모히칸은 반드시 이 시험을 통과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내일 '여자 친구'랑 프테라노돈을 타고 '데이트'를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불량배로 보이는 외견처럼, 그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나쁜 사람.
참으로 나쁜 사람이었다.
...
도미닉 경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지만, 정작 외관만 보면 멀쩡했다.
"괜찮나."
도미닉 경은 자기 몸 상태를 살피며 쿨럭거렸다.
고통보다는 전함이 떨어지며 피어오른 흙먼지를 많이 마셔버린 탓이다.
"우와 세상에! 스승님, 괜찮아요?"
앨리스는 쿨럭거리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앨리스는 그 어떤 피해도, 상처도 없어 보였다.
심지어 그녀가 입은 사슬 갑옷과 서코트에도 그을린 곳 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너는 피해를 보지 않는 모양이구나."
도미닉 경은 이 와중에도 멀쩡한 앨리스를 보며 장비는 따로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나름의 호기심을 해결했다.
흙먼지가 걷히며 도미닉 경이 탄 거미 전차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거미전차도 긁힌 자국만 있었을 뿐, 멀쩡한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도미닉 경과 거미전차는 그 충격에서 멀쩡할 수 있었는가?
이는 도미닉 경의 깡 스텟과 특성[탱커], 특수 능력[기수]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며 생긴 일이었다.
탑승물에 탄 이상, 탑승물과 도미닉 경은 하나의 개체로 인식되었다.
도미닉 경의 특성과 특수 능력을 받은 거미전차는 그 많은 파편과 충격을 받고도 HP가 조금 깎였을 뿐 멀쩡했다.
무엇보다도
[거미전차의 이스터에그를 발견하셨습니다!]
[스팀펑크의 근간 : 증기와 전기]
[스팀펑크 시리즈는 증기 기관이 유명하지만 뜻밖에 전기의 발전도 함께라는 사실, 알고 계셨습니까?]
[놀랍게도 황동은 전기가 잘 통한다는 사실을 스팀펑크 측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거미 전차는 특별한 장치를 통해 전기 에너지의 일부를 동력으로 변환시키고 나머지를 땅으로 흘려보냅니다.]
[플라즈마요? 글쎄요. 스팀펑크 측 사람들은 이를 '전기'라고 주장하긴 합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가능하겠죠.]
도미닉 경의 눈앞에 떠오른 창.
시스템 창은 설정충 코더가 짠 세세하고 깊지만 알고 싶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이스터에그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이스터에그 특성 덕분에 전함의 엔진이 폭발하며 생긴 플라즈마 폭풍에서도 멀쩡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없다고 생각했던 거미전차의 특성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도미닉 경은 플라즈마가 무엇인지, 전기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가차랜드에서는 전기 속성으로 취급하는 모양라고 생각했다.
세세한 정보를 알아가는 것은 언제나 행복한 일이다.
"스승님? 엔진이 이상해요!"
나름 새로운 지식을 얻고 만족해하던 도미닉 경의 뒤로 앨리스의 외침이 들렸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엔진에서 파지직 거리며 푸른 불꽃이 주기적으로 튀어 올랐다.
[엔진 과부하 준비 완료. 30초 간 이동 속도가 증가하며, 이후 10초 간 방전됩니다.]
도미닉 경은 엔진에서 튀어나온 시스템창을 바라보며 전율했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빠르다고 느꼈는데,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한 도미닉 경은 바로 과부하를 걸어 버렸다.
그의 거미전차가 두 배는 더 빠르게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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