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93화 (93/528)

〈 93화 〉 [92화]오해

* * *

도미닉 경과 종자 앨리스가 기대감에 부풀었다가 시무룩해졌을 당시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는 두 사람이 있었다.

"으. 저도 고기 좋아하는데."

"그러게. 왜 거기서 가위를 내서..."

피곤에 절어 도시락처럼 싸 온 티라미수를 먹기 시작한 둘.

이들은 시스템 인더스트리 디버그 팀이다.

디버그 팀은 버그 발생 시 임시로 회선과 백도어를 차단하고 현장직 코더들에게 연락해 현장으로 보내는 등 초동대응을 하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았기에 평소에는 수백 명의 인원이 상주하는 곳이었으나, 오늘의 인원은 겨우 둘.

사실 오늘은 사내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모든 시스템 인더스트리 직원은 회식에 반드시 참여해야 했지만, 디버그 팀은 언제 버그가 생길지 모른다는 이유로 두 사람이 남아야 했다.

그렇게 남은 사람이 바로 이 둘인 것이다.

"그나저나 선배."

티라미수를 포크로 크게 떠낸 후배가 선배를 불렀다.

"왜."

선배는 방금 전 가위바위보 결과가 아쉬웠던지 투덜거리며 후배의 말을 받았다.

"저거, 버그 아니죠?"

"뭐가?"

선배가 깜짝 놀라 황급히 수천 개의 모니터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저거요. 지금 화면에 뜬 거."

후배가 포크의 끝으로 한 화면을 가리켰다.

그 화면에는 [{User:sir_Dominic}{set_ACC:hHhG_Alice}{Eq}]처럼 일반적으론 알 수 없는 글자가 가득 떠 있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장비로 귀속되다니, 문제 있는 거 아니에요?"

"아. 난 또 뭐라고."

선배는 시력이 나쁜 듯 눈을 찌푸리며 그 모니터를 한참 노려보다가 후배의 말에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버그가 났을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티라미수를 크게 한 술 뜬 선배가 입안 가득 티라미수를 집어넣고 말했다.

"걱정하지마. 가차랜드에선 자주 있는 일이거든."

...

"이렇게 허무할 줄은 몰랐어요."

앨리스가 실망한 듯 말하자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랄까.

물이 끓으며 굉음을 내는 스팀펑크 엔진과 삐익 소리를 내며 여섯 개의 황동관을 타고 빠져나오는 증기.

구리와 강철로 된 이 금속의 거미는사람의 마음을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었다.

도미닉 경은 슬쩍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이 보통 실망한 것이 아닌 듯 보였다.

도미닉 경은 아직 어린아이인 이 종자를 위로하고자 말을 꺼내려고 했다.

"괜­"

"하지만 도미닉 경의 종자로서 실망만 하고 있을 순 없어요!"

도미닉 경이 위로의 말을 꺼내려던 찰나, 앨리스는 갑자기 급발진했다.

"도미닉 경이 걸어 다니더라도 상관없어요! 종자가 되어서 도미닉 경의 탈 것에 함께 타는 무­ 무­ 무래? 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무례라고 말하고 싶었던 앨리스는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몇몇 어려운 단어들을 잘 몰랐다.

도미닉 경은 그런 자기 종자를 바라보더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저 정도는 되어야 종자라고 할 수 있지.

지금까지 수많은 기사들이 종자를 들이는 것을 보았던 도미닉 경은, 이런 성격의 종자들이 더 빠르게 기사가 되고, 더 빠르게 명성을 얻는 것을 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받은 종자는 합격점을 넘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참 아자아자 힘내자를 외치던 앨리스는 갑자기 무언가를 본 듯 흔들던 팔을 멈췄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공중을 몇 번이고 바라본 앨리스가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저, 도미닉 경. 귀속 장비가 뭔가요?"

도미닉 경은 앨리스의 말을 듣고 앨리스에게 귀속 장비가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자기 전에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알아보기 위해 위키를 몇 번 본 적 있는 도미닉 경은 흐릿한 지식을 더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한 번 장착하면 해제하지 못하는 장비지."

"그럼 5년 귀속 장비는요?"

"그럼 5년 동안은 해제할 수 없는 장비일 테고."

도미닉 경은 앨리스가 비슷한 단어를 계속 물어보는 것에 의문이 들었으나 아직 어린 앨리스의 말에 충실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다음에 앨리스가 한 말은 도미닉 경의 사고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럼 제가 5년 귀속 장비가 되어서 도미닉 경에게 귀속되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정적.

도미닉 경은 도대체 앨리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는 했으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느라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앨리스가 5년 동안 도미닉 경에게 귀속된다? 도미닉 경은 사람이 사람에게 장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현 상황에서 도망치는 행위.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도미닉 경은 아무래도 종자 계약 때문이라고 생각의 흐름을 마무리 지었다.

시간 상으로는 10초가 채 되지 않는 침묵이 있었으나 그 10초동안 도미닉 경이 한 생각의 흐름은 세계를 일곱 바퀴 반 정도 돌았으리라.

"아무래도 종자 계약 때문에 내게 귀속된 듯 하구나."

"네?"

앨리스가 화들짝 놀랐다.

도미닉 경은 그 반응을 보자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내게 인생을 저당 잡혔다. 그런 생각 마저 들었다.

도미닉 경은 자세를 바로 하고 앨리스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

"세상에! 정말 멋진 일이잖아요! 5년간 절대로 기사님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 아니에요?"

앨리스는 박수를 치며 꺄르르 웃었다.

그 모습은 매우 소녀다운 것이었으나, 앨리스가 도미닉 경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탓인지 조금은 무섭게 보였다.

"기사님, 기사님! 한 번 장비가 된 저를 살펴봐 줘요! 성능이 어떤가요? 당연히 기사님에게 도움이 되는 옵션이 붙었겠죠?"

도미닉 경은 너무 좋아하는 앨리스를 보며 이렇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앨리스를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무언가 오류가 있는 것 같다. 버그나 뭐 그런 거겠지. 네가 괜찮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일단 이 상황에 대해 알아보러 가자."

"네!"

앨리스는 도미닉 경의 말에 활기차게 대답했다.

...

"도미닉 기사님, 저희 어디로 가요?"

앨리스는 자기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도미닉 경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다녔다.

도미닉 경보다 키가 컸기에 보폭도 더 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등 뒤에 너무 잘 보이는 가방엔 가시처럼 랜스 하나가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일단은 시스템 인더스트리로 갈 생각이다. 버그라고 하면 가장 먼저 코더들이 잘 알 테니까."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에 도착한 이후 경험한 바에 따르면 버그를 잡는 건 코더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만일 이게 버그라면 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

쿠노이치 히메는 상업지구 근처를 걸으며 사색에 잠겨 있었다.

"으, 세상에.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 앞에서 여우짓을 한다는 것이 그만 진짜 여우가 되어 버린 사건에 대해 여전히 부끄러워하는 중이었다.

그동안 히메가 잘 보이지 않았던 건,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히메사이고 성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위로한 건, 역시나 그의 아버지이자 당주인 운류 무사시였다.

'네가 다른 이들에게 행한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거라. 혹시 모르지. 그런 모습이 상대에게 좋게 보였을지도 모르잖느냐.'

아버지의 말씀은 늘 옳았다.

그랬기에 히메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고자 했으나­

여전히 소심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한 히메였기에, 도미닉 경에게 다시 찾아가기 위한 각오가 필요했다.

지금 상업지구 근처를 걸어 다니는 건 그 각오를 채우기 위한 준비운동인 것이다.

"저건­"

'그건­ 사­ 나­'

그때였다.

저 멀리 도미닉 경의 소리가 들리자, 히메는 움찔하며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히메와 도미닉 경 사이의 거리는 몇 키로미터는 되어 보였으나 쿠노이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마친 히메는 아무리 먼 곳의 소리라도 구분할 수 있는 청력을 가졌다.

"어, 어쩌지. 아직 각오가 안 되었­"

히메는 그 순간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이 떨렸다.

도미닉 경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과 여우가 되었던 부끄러움이 한 번에 몰아쳐 어지러워졌다.

"도, 도망가야­"

패닉에 빠져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히메는 그 순간 아버지의 조언을 기억해내는 데 성공했다.

'상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선 부딪쳐야 하는 법이란다. 종은 쳐봐야 그 소리를 알 수 있듯이.'

'도망치기만 한다면 영원히 종의 소리를 듣지 못한단다. 그러면 언젠가 그 소리라도 들어볼걸, 하고 후회하게 되겠지.'

도망가려고 등을 돌린 히메의 몸이 우뚝 섰다.

그리고 히메는 복면을 매만지며 결심했다.

그래. 도망치기만 할 순 없어.

'가끔은 맞서 싸우는 것이 활로다.'

그녀의 스승 중 하나의 말이 생각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도약하자, 히메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닌자다운 몸놀림이었다.

...

"기사님! 도미닉 기사님! 계속 기사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 제가 어떻게 부르면 돼요?"

앨리스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듯 헤실헤실 웃는 앨리스는 무엇이 그리 궁금한 것이 많은지 계속해서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다.

"스승님이라고 부르거라. 내가 종자일 때에도 스승님을 그렇게 불렀거든."

도미닉 경이 앨리스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했다.

그의 한쪽 밖에 없는 눈이 따뜻하게 휘었다.

"도미닉 경! 할 말이...?"

그때, 닌자가 나타났다.

"도미닉 경, 옆의 여성분은...?"

그래. 쿠노이치 히메가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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