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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91화 (91/528)

〈 91화 〉 [90화]초차원 카르텔

* * *

["일단 가벼운 것부터 교환해 보는 게 어때?"]

도미니카 경이 말했다.

도미닉 경은 수십 개의 외눈 기사 조각상을 선반 위에 올리며 그 말을 경청했다.

애꾸 눈의 기사 피규어들은 각각 자세가 달랐는데, 그중 일부는 도미니카의 모습인지 흉악한 흉부가 도드라졌다.

"무엇을 교환한단 말이오?"

도미닉 경이 마지막 애꾸 눈의 기사 피규어를 선반에 올리며 말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도미니카 경이 잠시 침묵하더니 곧 다시 말을 이었다.

["정보.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 큰 정보보단 사소한 것이 우리에게 더 도움이 될지 누가 알겠어?"]

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무거운 것을 옮기는 듯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도미니카 경도 받은 택배를 정리하느라 고생하는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편지 묶음을 보고 지금 당장 풀어볼까 생각했지만, 일단 도미니카 경과의 통화가 우선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뭘 말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소."

["간단해. 이런 거지. 행정부의 관리들은 하루의 절반 정도 점심을 뭐 먹을지 고민하는 거 알아?"]

"나머지 절반은 저녁 뭐 먹을지 고민하며 보내고 말이오?"

["정답."]

도미니카 경의 말은 정말 시시한 것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 정도의 정보라면 얼마든지 교환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잠시 고민한 도미닉 경이 별것 아닌 정보를 뱉었다.

"이상하게 코더들은 단 것을 좋아하더군. 비정상적으로 달수록 더 좋아하는 모양이오."

사실 도미닉 경이 본 코더들은 몇 없지만, 비품실에서 만난 코더들이 자조적으로 웃으며 뱉은 말이니 얼추 사실일 것이다.

["달달한 거라. 그런 정보 괜찮네. 나중에 코더랑 사귈 사람 생기면 조언해 줄 수 있겠어."]

수화기 너머에서 코더는... 달달한... 것을... 좋아함... 하고 무언가를 적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른 정보 말인데­ 이런."]

좀 더 많은 정보를 교환하고 싶었던 도미니카 경이 다시 말문을 떼었으나, 무언가 곤란한 듯 당혹스러운 탄성이 들렸다.

["슬라임의 핵이 불안정해졌어. 아무래도 차원 간 통화가 부담되는 모양이야. 슬라임이 안정될 때까진 연락을 안 하는 게 좋겠어."]

도미닉 경은 그 말을 듣자마자 귀에서 폰을 떼어 액정을 바라보았다.

화면 너머에서 슬라임이 반쯤 녹아내린 상태로 힘겨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여기도 그렇군. 그럼 다음에 또 연락하도록 하겠소. 언제가 좋겠소?"

["글쎄."]

도미니카 경은 잠시 생각하는 듯 길게 음. 하고 소리를 내더니 이내 꽤 현명한 말을 뱉었다.

["너는 나고, 나는 너니까. 네가 쉴 땐 나도 쉬지 않겠어? 그럼 언제라도 상관없겠지."]

"그렇겠구려. 그럼 슬라임이 안정된 이후, 시간이 나면 연락하겠소."

["그래. 이 번호는... 저장할 필요가 없겠네. 어차피 우린 번호가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뚝 끊겼다.

도미닉 경은 이 통화를 더 길게 이어가고 싶었으나 슬라임이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다면 다시는 연락할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쉬움에 한숨을 내쉰 도미닉 경은 액정 너머를 바라보았다.

S.P.Y앱에 돌아간 슬라임이 몸을 웅크리며 새근새근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잠깐 멍하게 바라보던 도미닉 경은, 이내 자신이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편지 뭉치를 읽는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편지가 오다니. 내게 편지를 보낼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텐데."

도미닉 경은 적어도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편지 더미를 들고 하나하나 보낸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행정부, 행정부, 시스템 인더스트리, 국세청, 사랑의 열매, 구세군...

대부분의 편지는 행정적인 절차가 바뀌었다는 공문이거나 새롭게 선출된 의원들에 대한 간략한 설명, 그리고 세금과 기부 권유였다.

그런 편지들을 한쪽으로 넘겨두자, 그 많던 편지들 중 단 2장만이 남았다.

다른 것들이야 공무적인 것이니 편지로 올 만도 하지만 폰이 있는 세계에서 편지라니.

도미닉 경은 꽤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보자...이건..."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해서 눈앞에 편지가 사라지겠는가?

도미닉 경은 편지들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에픽 앤더슨, 그리고 앨리스.

둘 다 자신이 아는 이름이었다.

물론, 정말 자신이 아는 사람인지는 다른 문제였지만.

도미닉 경은 일단 에픽 앤더슨의 편지를 열어 보았다.

주군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기대했다간 그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최대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도미닉 경은 앨리스의 편지를 옆으로 잠시 치워두었다.

에픽 앤더슨의 편지에는 은은하게 알 수 없는 기호가 찍혀 있었다.

폰을 산 이후 자신에게 노래를 헌정한 것에 대한 감사를 전하러 들어갔던 가차튜브에 박혀 있던 인장과 같았다.

도미닉 경은 전력으로 에픽 앤더슨이라고 말하는 듯한 편지지를 잠시 훑어보고는 그 내용을 읽었다.

[외눈, 하나, 일등.]

[그대에게 보낼 수 있는 내 유일한 찬사.]

[자크 대공령의 행정관의 말들.]

[작은 내 도움이 해 줄 것을 만듬.]

[하지만 앤더슨, 굉장히 유명.]

[당신도 유명. 하지만 일시적.]

[없기를, 오해. 이건 당신을 위한 걱정.]

[내 팬들, 극성. 당신에게 역정.]

[BUT, 3성이 되면 이야기가 진보.]

[BEST, 3개월 안에 있을 진급.]

[그때가 되면, 당신에게 헌정가를 보내리다.]

[에픽 앤더슨.]

에픽 앤더슨의 편지는 엉망진창인 말들과 문법으로 가득했지만, 도미닉 경은 그 글을 읽으며 이상하게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왈츠의 박자를 맞추듯... 아니, 그런 것보다는 좀 더 신나는 노래. 선술집에서 거나 하게 취한 음유시인이 부르는 노래같은 느낌.

과연, 거대 가차튜버이자 작곡가라는 명성이 허황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다시금 편지를 읽어 본 도미닉 경은 그 내용을 겨우 알아보았다.

지금 당장 노래를 하나 주고 싶지만, 추종자들이 극성이라 도미닉 경을 질투하고 해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소한 3성은 되어야 자신도 변명할 거리가 생긴다. 라는 느낌의 내용.

도미닉 경은 거의 끝에 적혀 있던 3개월 뒤 진급이라는 말에서 눈길이 멈췄다.

저번 성급 심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새로운 심사가 있단 말인가?

사실, 도미닉 경이 있던 페럴란트에서 공무원을 뽑거나 기사가 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시험을 보긴 하지만 생색내기용으로 몇 년에 한 번 치를까 말까 한 유명무실한 것.

그랬기에 이렇게나 시험을 자주 본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다.

"3개월 뒤라. 한 번 도전은 해 보고 싶은데..."

하지만 그러기엔 또 확장성이라는 것이 발목을 잡았다.

저번에도 확장성 때문에 한 번 시험에서 떨어지고 재시험을 보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이번에 시험에 합격하려면, 3개월 동안 아주 힘겨운 행군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제 다른 편지도 봐야겠군."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주군이었던 앨리스 백작 영애.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기사로서 한 번 충성을 맹세한 이를.

편지에 적힌 글씨는 평소 앨리스 백작 영애의 편지에 적힌 필체와 달랐기에 아직 모르는 일이었으나, 앨리스 백작 영애는 너무 악필이라 필경사를 고용해 서명마저 대신 했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도미닉 경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봉인한 밀랍을 뜯어냈다.

그리고 힘겹게 안에 든 편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리고 편지를 펼치는 순간­

도미닉 경의 긴장이 풀렸다.

[대단한 도미닉 경에게!]

[안녕하세오. 저는 앨리스라고 해 오.]

[연락처를 몰라 도미닉 경 앞으로 편지를 보내오.]

[저는 기사를 꿈꾸고 있어오. 그리고 15살 이에오.]

[엄마가 오타가 났다고 뭐라고 하는데,▦사실 제가 악필이라 오타처럼 보이는 거에오.]

[저번에 도미닉 경이 전장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반했어오.]

[부디 저를 종자로 받아주시면 안 될까오?]

[당신의 종자가 되고▦▦싶은 앨리스가.]

도미닉 경은 편지를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이 편지는 참... 뭐랄까. 엉망이었다.

'요'의 모음 부분이 모여 '오'로 보이질 않나, 중간중간 틀린 부분을 대충 펜으로 지운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질 않나, 종자로 받아달라면서 어디에 살고, 또 어디로 가면 되는지 적어두지도 않았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이 맹랑한 꼬맹이가 재밌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도미닉 경만 하더라도 대책없이 부딪치고 보는 성격이지 않는가.

이 꼬맹이도 그런 부류라고 여긴 것이다.

도미닉 경은 긴장이 풀린 탓인지 소파에 몸을 푹 기댔다.

아무래도 너무 과민반응을 한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하나 남은 눈을 껌뻑거리며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언젠가 주군과도 만나게 될까? 그래. 주군이 온다면, 그 또한 무언가 인연이겠지. 내가 동생을 다시 만난 것처럼, 만날 인연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되는 거야.

왠지 감성적이게 된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이 웃긴 지 피식 웃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감성적인 사람이었다고.

"흠. 만일 저 편지를 쓴 꼬맹이가 대책도 없이 문을 두드린다면, 얼마든지 종자로 받아줘야겠어. 그만큼 열정적이라는 뜻이겠지."

도미닉 경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피식 웃었다.

사실 이 말은 이 감성을 떨쳐 내기 위해 일부러 내뱉은 말이었다.

똑똑.

"계신가요? 편지를 보낸 앨리스인데요!"

정말 누군가가 찾아오기 전까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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