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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88화 (88/528)

〈 88화 〉 [87화]사실 이건 광고였습니다!

* * *

용사 뽀 르 작 대공이 검을 들어 올렸다.

이에 맞서 마왕 뚜 르 방이 양손에 거대한 에너지 구체를 만들어 주변에 둥둥 띄웠다.

서로를 귀엽게... 아니, 매섭게 노려보던 둘은 이내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달려가 부딪혔다.

"컷!"

그리고 그때 행정관이 감격한목소리로 컷 사인을 외쳤다.

그 호탕한 컷 소리가 나자마자 용사는 바로 땅에 엎드려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고, 마왕은 에너지 구체를 없애고 판에 남아 있던 사탕을 마저 집어 먹기 시작했다.

"그, 아무래도 이미지랑 다른 것 같은데, 괜찮은 거야?"

도미니카 경이 걱정된다는 듯 행정관에게 물었으나, 도미니카 경에게 적대적인 행정관은 버럭 화를 냈다.

"갈! 용사님의 멋진 모습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이다, 미천한 것!"

"그렇게 심하게 말할 건 없잖소."

도미닉 경이 행정관을 노려보았다.

행정관도 자기 말이 심했다는 걸 알았는지 몇 번 헛기침을 내뱉었다.

갑자기 변한 상황에 당황한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건 광고의 일부분이다.

눈치채지 못했는가?

도미닉 경이 하이퍼 오센틱에게서 편지를 받았을 때, 그들이 편지를 읽으면서 편지에 대한 말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면서 갑자기 학교에 가는 동생들을 따라 아카데미로 가는 없다 못해 어이가 없는 개연성을?

급발진한 참모장이 어째서 같은 색의 사탕을 맞춰 부수는 퍼즐 게임을 시작했을까?

그리고 어째서 용사 뽀 르 작 대공이 있음에도 행정관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 외에도 많은 복선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나오는 결론은 단 하나.

마왕과 용사의 캐릭터 소개 영상인 것이다.

"설마 즉석에서 그런 제안을 하다니. 생각도 하지 못했소."

도미닉 경은 지쳐 있는 뽀 르 작 대공을 대포처럼 생긴 카메라로 찍어대는 행정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 프로젝트는 비밀 유지가 생명이었으니까요."

행정관은 도미니카 경에게 하던 태도와 달리 도미닉 경에겐 제법 공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도미닉 경은 기사였고, 아직 행정관과 척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마왕을 모시는 참모장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이 호감으로 다가왔다.

행정관의 부하 하이퍼 오센틱이 전해준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도미닉 경. 그리고 천박한 것아. 흠흠. 실례. 감히 손으로 쓰고 있음에도 차마 숨기지 못한 감정을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현재 대공님께선 캔디 디스트로이어 테일즈라는 퍼즐 게임에 콜라보 캐릭터로 참전하시게 되었습니다. 불편하지만 마왕도 같이 말이죠.'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승냥이 같은 기자들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들러붙기 시작했군요.'

'이미 당신의 집에 도청기가 설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촌극을 벌인 점, 후에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콜라보는 대공님에게 아주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지금까지 4성에서 머무르시던 대공님이 드디어 5성에 닿을 수 있는 한 걸음이지요.'

'하지만 대공님께서 그 천박한­ 실례. 도미니카 경을 좋게 보셨는지 이번 캐릭터 소개 영상에 이스터 에그처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넣자고 하셨습니다.'

'실례가 되는 말이지만, 도미닉 경이 어중간한 캐릭터였다면 아무리 대공님의 제안이라고 할지라도 수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언찬트의 판매량과 다운로드 수는 이미 어중간함을 넘어 '차기작이 기대되는 IP'라는 명성까지 가진 작품이 되었습니다.'

'저희의 영상에 등장해도 대공님의 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리지요. 실례. 무시하려던 발언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저 천박한­'

'이 논쟁은 그만두지요. 만일 여러분께서 대공님과 마왕의 영상에 이스터에그로 나오길 바라신다면, 아카데미로 와 주십시오. 그리고 아카데미 정문에서 꽃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신호로 자연스러운 영상 녹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도와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도와주신다면 충분히 사례해 드리겠습니다.'

'행정관, 아드미니스타르 오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둘이 집에 없는 틈을 타 도미닉 경의 집에는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실 이 도청기는 대공의 일과는 상관없었으나, 행정관은 그런 변수마저 통제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바로 이 편지였다.

구식이지만, 그만큼 지금 가장 효과적인 방식.

엉망진창인 상황을 연출하며 자기 심복 하이퍼 오센틱을 보낸 행정관의 의도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알아차렸다.

레미의 목에 흘러내린 붉은 실선도 피가 아니라 메시지였다.

말 그대로 붉은 실. 페럴란트에서 붉은 실을 칼에 감는다는 의미는 동맹을 의미했다.

도미닉 경이 레미의 목에 단검이 있는데도 크게 화를 내지 않았던 이유.

행정관은 도미니카 경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낸 적이 있었고, 자기 말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또한 도미닉 경은 자신이 본 라디오에 대해 화제를 던졌을 때, 하이퍼 오센틱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척하며 귀를 만졌다.

확실히 도청이 있다는 신호.

이때부터였을 것이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최대한 연기를 시작한 것이.

이상하지 않던가?

도미닉 경이 아무리 오랜만에 여동생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방금 전까지 목에 칼이 들이닥쳤던 여동생보다 직장 이야기가 먼저 튀어나왔다는 사실이?

사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연기에 재능이 없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했으나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부분이 꼭 나타난 것이다.

놀랍게도 도청을 하던 기자들은 도미닉 경의 말에서 무언가 어색함을 느끼긴 했으나 그냥 넘어가고 말았다.

이 발연기 논란은 레미와 팬텀 박사가 자연스럽게 학교, 즉 아카데미에 대한 화제로 넘어가며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호기심으로 가득 차 평소의 도미닉 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마왕과 용사의 멋진 장면이 탄생한 것까지가 사건의 전말이다.

"그나저나 꽤 놀랐소."

도미닉 경이 열심히 사진기의 촬영 버튼을 누르는 행정관에게 말했다.

"무엇을 말입니까?"

행정관이 잠시 고개를 떼고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확인했다.

조금 흐린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행정관은 몇몇 사진을 지우려다가 감히 대공님의 사진을 지울 수 없다며 한탄했다.

"하이퍼 오센틱 말이오. 정말 바보 연기를 잘하더군."

도미닉 경의 순수한 감탄에 행정관의 손이 멈췄다.

"...그 바보는 진짜 그렇게 믿는 거요."

"그런...?"

도미닉 경은 행정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차랜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자신도 아는 사실을 외면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 하이퍼 오센틱은 자기주장이 없고 무식하지만 신념을 가진 케이스라..."

행정관은 말끝을 흐렸다.

대신 이런저런 유틸성이 뛰어나고 이렇듯 비밀 작전에서 설마 저런 바보가 첩보원이겠어, 라는 인상을 심어 주기에 비밀 요원으로선 꽤 좋은 요원이긴 합니다. 라며 행정관은 하이퍼 오센틱에 대한 변호를 마쳤다.

"...그나저나."

도미닉 경은 하이퍼 오센틱의 바보스러움에 생각이 혼란스러워졌으나 이내 슈퍼 디럭스같은 자기애의 화신도 있는 마당에 그런 사람도 있겠지. 라며 넘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슈퍼 디럭스는 자기애가 너무 강해 도미닉 경을 납치한 전적도 있었으니까.

대신, 도미닉 경은 좀 더 현실적인 문제를 묻기로 했다.

"보상은 어떻게 되는 거요?"

"아, 보상. 저희 자크 대공령의 사람들은 보상 문제에 확실하지요."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외눈 안경을 눈썹 아래 부분과 광대뼈 사이에 끼운 행정관은 한 손은 등 뒤로, 한 손은 가슴 위로 올린 채 허리를 빳빳하게 세웠다.

"하지만 선택지를 드리는 것도 자크 대공령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부디 저희의 제안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기를."

대공령의 행정관에 걸맞은 깐깐함을 보여주던 행정관은 도미닉 경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내밀었다.

[행정관이 당신의 도움에 보상을 주려고 합니다.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 당신은 금전적인 보상을 받습니다. 2,000 가차석.]

[둘. 당신은 희귀한 보물을 보상으로 받습니다. 희귀 장신구 랜덤 박스 3개.]

[셋. 당신은 대공가의 인맥을 소개받습니다. 성좌 에픽 앤더슨의 연락처.]

도미닉 경은 눈앞에 떠오르는 선택지를 유심히 보았다.

잠깐 도와준 것치고는 지나치게 많은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보상들.

첫 번째 보상부터 2,000 가차석이었으니 나머지도 그에 따르는 가치의 보상이리라.

"너무 보상이 많은 것 아니오?"

"대부분 그렇게 말합니다만, 대공가의 도움이 결코 싸구려가 아니듯, 대공가에게 도움을 주는 손길도 결코 싸구려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행정관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귀족 특유의 노블리스...오블... 아무튼,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선택은 하셨습니까?"

행정관이 느긋하지만 어찌 보면 재촉하듯 말했다.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젓고 잠깐 보상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의 보상을 선택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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