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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87화 (87/528)

〈 87화 〉 [86화]사탕을 박살내는 이야기

* * *

그렇게 성좌 아임 낫 리틀이 흑역사를 만들고 있을 무렵, 도미닉 경은 궁지에 몰려 있었다.

현재 레이드 룰이 적용되는 이 사탕 부수기 게임에서 보라색 사탕은 적인 참모장의 색깔.

이미 보드 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보라색 사탕의 주인은 잔악무도하게 웃으며 도미닉 경을 도발했다.

"역시나 범죄자는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감히 마왕님을 납치한 대가를 치러라!"

참모장이 도미닉 경에게 손가락질 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물론 도미닉 경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또한 참모장도 정의가 아니었으며 마왕이 납치당한 것도 아니다.

참모장의 발언은 마치 신성로마제국 같은 말이었으나, 궁지에 몰린 도미닉 경은 그저 사탕으로 가득한 판 위를 바라볼 뿐, 참모장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참모장이 한 번에 쌓아 올린 연쇄 카운터는 무려 최대 17번.

사탕이 박살 나며 들어오는데미지는 만만치 않은 것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도미닉 경의 특수 능력, [기수]가 발동하며 4%의 피해를 감소시켰다.

"아무래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 같소."

도미닉 경은 방패를 들어 참모장이 쏘아낸 보라색 에너지 구체를 막아 냈다.

도미닉 경의 아래에 있는 붉은 체력 막대기가 거의 사라졌으나, 말 그대로 거의 사라졌을 뿐 조금은 남았다.

덕분에 사실상 마지막 한 턴을 번 도미닉 경의 파티는 아직 풀피에 가까운 참모장을 바라보며 각자의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턴이야. 게다가 모두 특수 능력 게이지가 거의 다 차오른 상태고. 하지만..."

도미니카 경은 뚜 르 방 마왕과 뽀 르 작 대공을 힐끗 보았다.

의욕이 넘치는 뽀 르 작 대공은 머리 위로 스펀지 검을 휘두르며 다음 턴을 준비하고 있었고, 마왕 뚜 르 방은 보드 판 위에 있는 사탕을 바라보며 흘러나오는 군침을 닦아내고 있었다.

[도미닉 경의 파티 전원의 특수 능력 게이지가 전부 채워졌습니다.]

"!"

"?"

그때 마침 도미니카 경은 기다리던 말을 들었다.

몇 번의 싸움을 통해 참모장의 전략이 거의 무적에 가까울 정도로 사기라는 것을 알아챈 도미니카 경은 기존에 있던 퍼즐 맵에서 원시 버그를 고쳤을 당시를 생각했다.

퍼즐 요소로 가득한 정글 맵에서 파견나온 코더와 같이 버그를 고칠 때, 코더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퍼즐은 해답이 있습니다. 반드시 해답이 있어요. 이건 PVP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 시스템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전략은 애초에 통과시켜 주지도 않아요.'

그렇다. 해답은 있다.

지금, 이 막막한 상황에서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도미니카 경은 그 해답이 특수 능력의 연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보통 이렇게 특수 능력을 쓸 수 있으며, 해결한 퍼즐로 상대의 피를 깎는 형식의 맵은 언제나 연계가 중요했다.

퍼즐이 연속적으로 터질 때마다 추가적인 피해가 들어오고, 특수 능력이 연속으로 사용될수록 그 피해는 곱절로 들어가기도 한다.

"게이지 다 찼다!"

도미니카 경이 자기 특수 능력 버튼을 누르며 방패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총을 꺼내 필드를 겨눴다.

이제 이 총을 발사하면 필드에 있던 상대의 사탕, 그러니까 보라색 사탕이 어느 정도 제거되리라.

떨리는 손으로 필드를 겨눈 도미니카 경이 막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때였다.

"그거, 꼭 필드에 쏴야하오?"

옆자리에 있던 엉망이 되 멀쩡한 도미닉 경이 물었다.

참모장에게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데이터 측면에서 피해가 기록되었을 뿐, 본체에는 타격이 없었던 상황이기에 생긴 모순이었다.

"룰을 보니 꼭 필드로 쏠 필요는 없어 보이던데. 참모장만 하더라도 우리 쪽으로 공격하고 있지 않소."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듯 두 눈을... 아니, 한눈을 크게 뜨고 도미닉 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도미닉 경의 말이 마음에 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히죽 웃었다.

"역시나. 전투에 대한 건 나보다 더 나은 모양이네."

도미니카 경의 특수 능력, [충격과 공포]는 범위 내 대상을 방패로 쳐 짧은 기절 상태이상으로 만든 후 총격을 가해 [제압] 상태로 만드는 기술.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를 크게 감소시키는 역할이지만, 지금은 참모장이 퍼즐을 푸는 속도를 늦추는 데 쓸 수 있을 것이다.

방패를 땅에 찍으며 사탕들의 배열을 바꾼 도미니카 경은 곧팔을 들어 올려 참모장에게 총구를 겨눴다.

히죽히죽 사악하게 웃던 참모장의 표정이 굳었다.

"퍼즐에 군중 제어 기술은 반칙이지!"

"어차피 아프지도 않잖아. 받아들여."

탕­하고 참모장의 목이 기괴하게 꺾였다가 돌아왔다.

뿔과 뿔 사이의 이마에 정확하게 박혀 찌그러진 총탄.

쪼글쪼글하게 납작해진 총탄에선 아직 화약이 타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끙. 그래도 아직은 내게 유리하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꺼내보아라!"

참모장은 이마의 주름 사이에 낀 총탄을 빼내며 다시 간악무도한 표정을 지었다.

"!"

"마왕님의 심정은 잘 알지만, 저는 마왕님을 성장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마왕님과 적이 된다고 해도. 이것이 바로 저의 충심!"

마왕이 폴짝폴짝 뛰며 참모장에게 화를 냈지만, 참모장은 단호했다.

마왕은 그런 참모장의 태도에 더욱 화가 났는지, 볼이 빵빵하게 부어오르며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마침내, 마왕은 분노를 통해 자신이 숨기고 있던 진정한 특수 능력을 사용하고 말았다.

[마왕의 특수 능력, [룰 브레이커]와 [불패신화(조건부)]가 발동됩니다!]

분노의 극에 달한 마왕은 게임이라면 절대로 있어선 안 될 특수 능력, [룰 브레이커]를 꺼내 들고 말았다.

지나친 분노에 당분이 모자랐던지, 마왕은 게임판에 있던 보라색 사탕을 집어 들어 마구마구 입에 쑤셔 넣었다.

"어, 어어? 마왕님! 그러다가 이 썩습니다! 사탕은 하루에 하나씩­"

그러나 마왕은 참모장의 말을 듣지 않았다.

참모장은 적이고, 있는 힘껏 자신을 상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있는 힘껏 일탈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마치 다람쥐처럼 사탕으로 볼이 빵빵해진 마왕은 화난 표정으로 참모장을 보았다.

그래도 여기까지라면 여전히 참모장이 이겼겠지만, 마왕 뚜 르 방의 두 번째 특수 능력이 발동하고야 말았다.

지금까지 발표된 적 없는 숨겨진 특성.

실력 좋은 코더가 데이터 마이닝을 한 것이 아니라면 절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을 특성.

[불패신화(조건부)]가 발동된 것이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마왕은 어째서 용사가 나타나기 전까지 승승장구 하는가?

어째서 제국 전체보다는 약할 용사가 마왕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가?

마왕과 용사, 그리고 무능한 왕국과 제국의 전승.

이 스킬은 그런 전승에서 기인했다.

조건부인 만큼 특정 상황... 즉, 용사가 있다면 이 특성이 소용없겠으나 현재 마왕 뚜 르 방에겐 천적이 없는 상태!

마왕 뚜 르 방이 '이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게임은 이긴 것이다.

참으로 부조리하고 절대자다운 능력!

"이건... 마왕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참모장이 절규했다.

마왕님께서 온전히 힘을 보이셨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한 적으로 보겠다는 의미.

이는 마왕의 충직한 신하를 자처하는 참모장에게 가혹한 일이었다.

도대체 저들이 뭐라고, 납치범이 뭐가 좋다고!

참모장은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잘 알았다.

이번 판을 졌다고 선언하고 다시 마왕님에게 돌아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납치범이 논리의 중간에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참모장은 납치범, 도미닉 경에게 또 지고 싶지 않았다.

이는 마왕의 측근이 가진 자존심이었으며, 또한 마왕의 위신과 관련된 일이라고 여겼다.

참모장의 생각으론 둘 모두 마왕님을 위한 일.

그렇기에 이렇게 하나의 선택지를 고르지 못해 머리를 쥐어 짜내는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길 것 같소."

"아직 플래그 세우면 안 될 것 같은데."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고뇌에 빠진 참모장을 보며 승기가 거의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옳았다. 참모장은 결국 마왕님을 이길 수 없어 무릎을 꿇고 패배 선언했다.

"졌습니다. 마왕님."

마왕에게 무릎을 꿇은 참모장은 고개를 숙이고 분노로 가득한 마왕에게 죄를 청했다.

"감히 제가 마왕님을 화나게 했으니 마왕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완전히 부복하며 엎드린 참모장이 마왕의 처분을 기다렸다.

마왕은 싸늘한 눈으로 참모장을 바라보았다.

2등신의 작은 몸. 참모장의 정수리와 높이가 비슷해 보였으나, 마왕의 존재감은 이미 거인과 같았다.

사실, 여기서 이미 마왕은 자기 몸과 마음을 컨트롤할 수 없는 상태였다.

[룰 브레이커]는 원하는 룰을 박살 내는 것.

그러나 그만큼 정교하고 세밀한 힘 조절이 필요한 특수 기술이었다.

아직 이런 강대한 힘에 익숙하지 않은 마왕은 심지어 두 번째 스킬인 [불패신화]까지 써버리며 완전히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직 순수하지만 사악한 작은 마왕에서, 모든 일에 신상필벌이 엄격하며 자신에게 대적하는 모든 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냉혹한 마왕으로.

이는 그녀의 신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2등신이던 육체가, 어느새 3등신까지 자라난 것이다.

정말 마왕이 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상황.

마침내 참모장의 처우를 결정한 마왕은, 마기로 된 칼을 만들어 목을 내리치­

챙­

하고 날카로운 것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

휘날리는 황금빛 태양과도 같은 머리와 붉은 파도처럼 일렁이는 벨벳 망토.

휘둘러진 유연한 칼에 부딪혀 깨져 버린 마기의 칼날 사이로 보이는 굳센 의지의 눈.

머리에서 빛이 나기 시작해 마치 후광처럼 보이는 황금 왕관.

그렇다. 여기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마왕 뚜 르 방을 제외한 또 하나의 인원이 있었다.

뽀 르 작 대공.

그리고 뽀 르 작 대공은, 용사였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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