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86화 (86/528)

〈 86화 〉 [85화]사탕을 박살내는 이야기

* * *

이 무시무시한 마왕 뚜 르 방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의 편에 섰다.

분명한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이들이 많은 곳에 섰을 뿐이었다.

마왕의 입장에서 보면 참모장은 말할 것 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도미닉 경은 자신에게 사탕을 준 사람.

도미니카 경은 아직 모르지만 도미닉 경과 닮았으니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뽀 르 작 대공도 자신에게 커다란 막대 사탕을 준 사람.

결론적으로 믿을 만한 이가 하나인 곳 보단둘인 곳으로 걸음을 옮긴 것이다.

그야말로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는 민주주의의 마왕!

그러나 그 사소한결정은 참모장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큭. 그렇군. 그런 거였어..."

참모장은 피를 토하려다가 마왕의 앞이라는 것을 깨닫고 순식간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분한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노려봤다.

"스톡홀름 증후군! 인질이 납치범에게 공포 대신 연민이나 애착을 두는 것! 마왕님께선 지나치게 많은 납치로 인해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리신 것이다!"

아주 거하게 헛발질을 한 참모장은 너무 분한 나머지 쾅. 하고 발을 굴렀다.

참모장 앞에 있는 격자 무늬에 올려져 있던 사탕이 퉁­ 하고 일제히 튀어 올랐다.

"퍼즐은 나의 주특기! 내가 왜 참모장이 되었는지 똑똑히 보여주겠다! 선공을 양보하지!"

도미닉 경은 참모장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으나, 일단 선공을 양보한다니 감사한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안 좋아. 이거 아주 안 좋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뽀 르 작 대공과 뚜 르 방 마왕의 앞에는 [X1]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춘 사탕 더미를 바라보던 도미니카 경은 자기 앞에 있던 붉은색 사탕을 밀어 위의 보라색 사탕과 자리를 바꿨다.

그러자 4개가 한 줄로 이어진 빨간 사탕이 팡! 하고 터지면서 빈자리가 생겼다.

빈자리는 주변에서 밀려온 다른 사탕들이 차지했다.

"역시나. 연쇄가 없어. 방금 발로 땅을 굴렀을 때, 그래서 사탕들이 하늘로 치솟았을 때 뭔가 조작한 거야."

"연쇄는 또 뭐요?"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옆에선 뽀 르 작 대공과 마왕 뚜 르 방이 커다란 사탕이 신기한 듯 이리저리 옮겨보고 있었다.

"사탕을 3개 이상 한 줄로 만들면 그 사탕이 사라지고 위쪽에 있던 사탕이 내려오지. 그때 기존에 남은 부분과 새로운 부분이 닿아 또 다른 3개 이상의 한 줄이 나오면­ 아, 세상에. 일단 3 개 이상의 사탕을 한 줄로 만들어 봐."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일단 도미니카 경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보라색의 묘한 사탕을 밀어 무려 7개로 한 줄을 만든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에게 물었다.

"이렇게 말이오?"

"그래. 그렇... 잠깐. 이거 룰이 어떻게 되지?"

도미니카가 황급하게 반대편의 참모장에게 물었다.

참모장은 입을 가리고 비열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래 PVP는 색깔이 4가지밖에 없지. 하지만 이건 색깔이 5개. 이미 룰을 알 것 같지 않나?"

"아, 레이드 룰이야?"

도미니카 경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기존 룰도 머리 아픈데 레이드 룰이라니.

도미닉 경은 도대체 이 말들이 뭘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요?"

그래. 모르면 그저 물어볼 수밖에.

"글쎄. 룰이 얼마나 변형되었을진 모르지만 레이드 룰 기반이라면..."

보라색 사탕들이 사라지며 나타난 기묘한 보라색 기운들이 참모장에게 흡수되었다.

참모장의 앞에 있던 [X1]이라는 문구가 [X3]으로 바뀌었다.

"방금 그 수는, 최악의 수였다는 소리지."

참모장의 턴이 돌아왔다.

참모장의 등 뒤로 불타는 구덩이가 생기더니, 그 안에서 건틀릿을 낀 커다란 악마의 팔 세 개가 나타나 판에 있던 사탕들을 뒤집어 엎었다.

이제, 판 위에는 보라색 사탕들이 절반 이상이 되었다.

...

사실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자다가 도네이션 소리에 깨어났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이어지는 도네이션 소리에 리액션을 하기가 싫어 그저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5만 가차석 이상의 후원이 들어올 때 나오도록 설정된 음악이 나오자, 아임 낫 리틀은 더 이상 자는 척을 할 수 없었다.

"아이고, 큰 손 회장님께서 5만 가차석 후원을­ 엥?"

­['데'님께서 10 가차석 후원하셨어요!]­[영상 후원]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영상 후원으로 온 비슷한 느낌의 노래.

그렇다.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또 속은 것이다.

­이걸 속네;;­그래도 일어났으니 된 거지.

아임 낫 리틀은 충분한 밴 사유가 될 만한 가짜 후원에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채팅창의 흐름이 이상해 일단 채팅창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야, 우리가 충신임. 어떻게든 깨우려고.­ㄹㅇㅋㅋ

"조용히 해요. 충신인지 아닌지는 부검 후에 밝혀질 거니까."

연이은 방송의 피로와 방금 전 가짜 후원의 여파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임 낫 리틀은 마우스를 조작해 채팅창을 올려보며 중요해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의 마우스가 멈췄다.

"화면...을 보라구요?"

성좌 아임 낫 리틀은 고개를 돌려 방송 화면을 보았다.

분명 그곳엔 심심하지 말라고 틀어놓은 성좌용 CCTV가 있었다.

캐릭터 카드를 얻었을 때, 성좌와 개척자는 그 사용법이 달랐다.

개척자의 경우 안드로이드에 데이터를 넣어 인스톨하면 끝.

이후 아직 새 몸에 적응하지 못한 새로운 인격이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작업을 통하면 어엿한 개척단의 일원이 된다.

개척자들은 이것을 '호감작', 즉 호감도 작업이라고 부르며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반면, 성좌의 경우는 데이터의 사용 방식이 달랐다.

게임, 혹은 자신만의 세상에 새로운 캐릭터를 데려다 놓았을 때, 기본적으로 정말 상태창에 적힌 대로만 움직이는 인형을 보는 기분은 썩 좋지 않을 것이다.

대신, 성좌들은 기억의 파편이라는 것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 캐릭터가 움직이는 경로를 따라 얻을 수 있는 기억의 파편은 조금씩 자기 캐릭터가 더 자연스럽고 원본과 비슷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법의 가루.

어차피 원본과 만날 일이 없고, 만에 하나 만나더라도 중앙 시스템의 보호와 조치가 내려졌다.

자기 캐릭터에 더욱 애정을 가지기 위한 작업.

그것이 기억의 파편을 모으는 일인 것이다.

사족을 붙여 안드로이드에 인스톨한 뒤 기억의 파편을 통해 강화시키는 무식한 '개척좌'도 있었지만, 그런 인물은 개척자와 성좌 모두에게 괴짜 취급을 받았다.

아무튼, 지금 아임 낫 리틀이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의 파편은 아무 데서나 떨어지지 않는다.

중앙 시스템이 정한 구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의 경우 광장, 연단실, 실험실, 교실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성좌가 얼마나 꾸준히 이 장소를 방문했느냐에 따라 추가적으로 기억의 파편을 얻을 수 있는 장소가 열었다.

이런 장소에 CCTV를 박아 두고 캐릭터들의 기억의 조각을 마구잡이로 가져가는 것은 불법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뜻밖에 이건 불법은 아니었다.

기억의 조각이 필요한 이들은 성좌들 뿐이었고, 성좌들 중에서 필멸자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있어도, 성적인 흥미를 가진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찾으면 있기는 하겠지만 그런 이들은 가차랜드를 관찰할 자격마저 상실했기에 오늘도 가차랜드는 평화롭다.

"어, 어어?"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너무 놀란 나머지 인간의 언어를 잊고 입에서 원시적인 고대의 언어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방장 놀랐죠?­거 봐, 우리 충신이라니까?

"그러네요. 오늘만큼은 다들 충신이야."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자신을 깨워준 시청자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희귀하다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기억의 파편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어? 우냐?­방장 울어?

감사와 감격이 합쳐져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아임 낫 리틀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아임 낫 리틀은 방송하면서 점점 감정이 삭막해지고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도미닉 경이라는 사람에게 빠져 팬이 된 이후로 이 얼마나 인생... 아니, 성좌생이 잘 풀리던가.

심지어 지금까지 자신을 놀리기만 하던 시청자들도 이렇게나 자신을 응원하는 것처럼 도와주는데, 감정이 북받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분... 고마워요. 고마워. 그냥 다 고마워."

­어어? 이런 거 원한 게 아닌데?­우리 방장 놀리려던 건데 이렇게 착즙을?­아 ㄹㅇㅋㅋ만 치라고;;

아임 낫 리틀의 진심 어린 감사에 시청자들이 당황하고 말았다.

오히려 몇몇 시청자들은 이건 아임 낫 리틀이 과하게 놀리는 이들을 밴하려는 함정 수사라며 눈치를 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임 낫 리틀의 감정은,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이 흑역사가 클립으로 따여 가차튜브를 하는 거의 모든 성좌가 그 흑역사를 보게 된 사실도, 아임 낫 리틀이 그 흑역사를 보며 이불을 뻥뻥 걷어차는 것도 모두 진실이었다.

저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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