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85화 (85/528)

〈 85화 〉 [84화]사탕 이야기

* * *

참모장이 도미닉 경과의 3차전이 시작되기 전.

­야야, 자냐?­자네?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방송을 켜둔 채 모포를 덮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동인마트에서 890 가차석을 주고 산 8비트 도미닉 경이 그려진 모포.

정식 굿즈는 아니었으나 꽤 알음알음 파는 곳이 있었다.

아무튼,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왜 방송을 켜둔 채 잠을 자는 것일까?

이는 그녀가 기만질을 위해 방송을 켠 순간부터 예정된 운명이었다.

피곤함에 절어 있었지만 기만을 위해 꿋꿋이 방송을 켠 아임 낫 리틀은 남은 카드를 까며 의도하지 않은 추가적인 기만을 해 버리고 말았다.

어그로의 화신, 줄타기의 달인 아임 낫 리틀도 예상하지 못한 시청자들의 폭발.

결국 아임 낫 리틀은 72시간 노 방종 방송으로 겨우 민심을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성좌는 잠을 잘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태어난 지 만 년도 되지 않은 어린 성좌였고, 여전히 필멸자 시절 잠을 자던 버릇이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가차랜드에서 겪었던 일들과 현재 시청자들에게 시달린 일이 합쳐져 엄청난 정신적 피로도에 시달린 것이다.

결국 다시 한번 시청자들과의 합의로 방송을 켠 채 잠깐 눈을 붙이는 중이라는 소리다.

­어? 잠깐만. 저기 저거 도미닉 경 아님?­에이, 지금 아카데미 쪽이잖... 이게 왜 진짜임?

그때, 아임 낫 리틀의 화면 구석에 작게 떠 있는 화면에 도미닉 경이 보였다.

­야, 야. 방장. 일어나!­도미닉 경 떴어! 3채널! 아카데미 3채널!

성좌 아임 낫 리틀이 얼마나 도미닉 경의 팬인지 아는 이들은 충신처럼 아임 낫 리틀을 깨우려고 노력했다.

­['안티 아'님께서 100 가차석을 후원하셨어요!]­['홀 오브 아가'님께서 10 가차석을 후원하셨어요!]

후원이 쉬지 않고 울렸다.

그리고 성좌 아임 낫 리틀의 닫힌 눈초리가 씰룩거렸다.

...

"네 이놈...! 마왕님을 납치하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마왕님이 아끼는 양귀비까지 납치하려 해!"

"!"

사실 이 꽃은 양귀비도 아니었고, 마왕이 아끼는 꽃도 아니었다.

그냥 학교 숙제인 식물 성장 일기를 쓰기 위해 심어둔 민들레였다.

처음엔 참모장에게 받은 양귀비를 키웠으나, 양귀비는 불법이라며 민들레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양귀비를 제대로 본 적 없는 전형적인 책상물림 행정의 표본인 참모장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참모장의 말에 정말 자신이 그만큼 이 꽃을 소중히 대했나 고민하던 마왕은 그냥 참모장의 말대로 아끼던 꽃인 척했다.

사천왕 중 하나인 돈 카스텔로의 말에 따르면, 괜히 소중한 물건인 척하면 상대가 미안해서라도 더 많은 보상을 준다고 했으니까.

마왕의 눈썹이 미묘하게 화난 것처럼 움직였다.

그러나 엉성하게 파닥거리는 팔에 진짜 화난 게 아닌 화난 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아라! 마왕님께서도 너의 잔악무도함에 분노하셨다! 지금까지 알 수 없는 행운이 너에게 있었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다!"

라며 하체를 낮춘 안정적인 자세를 취한 참모장은 이내 오른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왼팔을 앞으로 뻗은 채 손바닥을 도미닉 경을 향해 펼쳤다.

당장에라도 정권을 내지를 것 같은 기세!

그리고 도미닉 경이 방패를 채 꺼내기도 전에 참모장은 비겁하게 기습을 하고 말았다!

엄청난 충격파가 일어나며 순식간에 도미닉 경의 사각, 즉 안대를 향해 날아오는 이글거리는 주먹!

마침내 그 비겁하지만 강력한 한 수가 작렬하는 순간!

[경고. 어린이 보호 구역입니다.]

참모장은 눈앞에 떠오른 경고창과 함께 갑자기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네...네놈... 여기까지 계획을...?"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폭력적인 행위를 적발했습니다. 과태료 15만 크레딧이 부과됩니다.]

그 말과 함께 참모장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뜻밖에 쓸데없는 곳에서 현실적인 가차랜드다.

"!"

"아, 그래. 다녀와. 우린 매점 가 있을게­"

마왕은 쓰러진 참모장이 걱정되었는지 잠시 주변의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참모장에게 다가 갔다.

사실 참모장은 바로 힘을 회복했기에 일어나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으나 또한 번 도미닉 경의 치사한 수에 넘어갔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지고 쪽팔려 기절한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왕님께서 걱정하신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은 불충한 존재. 충신 중의 충신인 참모장이 그런 불충을 저지를 수는 없었다.

"걱정 하지마십시오, 마왕님! 이 참모장은 멀쩡합니다!"

"!"

나름 멋지다고 생각한 자세를 표출하며 자기 건재함을 알리는 참모장.

그리고 참모장이 다 나았다고 생각해 기뻐하는 마왕.

"나를 도발해 여기가 어린이 보호 구역이라는 사실을 잊게끔 만든다. 참으로 뛰어난 계략이었다, 납치범."

"뭐래."

옆에 있던 도미니카 경이 어이가 없다는 듯 참모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너희의 계략을 안 이상, 더 이상 너희의 수에 놀아나지 않는다! 보아라!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너를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것을!"

참모장의 주변에 검은 안개가 몰려들며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점점 피부가 그라데이션처럼 어두워진 참모장은 지면에서 살짝 뜬 채로 도미닉 경과 거리를 두더니, 이내 둘 사이에 가로 세로로 나뉜 격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세상에. 퍼즐은 질색인데."

도미니카 경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요?"

도미닉 경은 그나마 지금 상황을 아는 듯한 도미니카 경에게 현 상황을 물었다.

"일단 4인 파티가 필요한데, 지금 둘 뿐이네. 어쩌지?"

그러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의 말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폰을 들고 지금 상황이 즐겁다는 듯 찍고만 있을 뿐, 도와주려는 이는 없어 보였다.

"하하! 시간이 없으니 결국 2인으로 해야겠구나! 절대 과태료 15만 크레딧 때문에 삐져서 급하게 시작하는 게 아니다!"

참모장은 정말 과태료 15만 크레딧 때문에 삐진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애초에 이 전투방식은 미리 짠 덱으로 겨루는 방식이었으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이 모드에 맞는 덱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도미니카 경은 모르겠으나, 도미닉 경은 이런 전투방식이 처음이기도 하고.

참모장이 비열하게 웃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이, 참모장과 도미닉 경 사이에 그어진 격자에 다섯 가지 종류의 사탕이 우수수 떨어졌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색이 메인인 사탕들은 자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리려는 듯 화려하게 반짝거렸다.

"도대체 저게 다 뭐요?"

"일단 해 보면 알아. 우린 설명해주는 것보단 직접 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쉽잖아?"

도미닉 경은 다시금 물었으나, 도미니카 경의 논리적인 말에 입을 다물었다.

"4인용 보스... 아마 마왕도 저기 붙을 테니, 적어도 풀방..."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도미니카 경.

도미닉 경은 집중하는 도미니카 경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일단 방패를 들고 참모장과 도미니카 경 사이를 가로막았다.

히힝­

그때였다.

학교 옥상에서 말이 우는 소리와 함께 붉은 망토가 펄럭였다.

금빛 찬란한 찰랑이는 단발.

붉은 벨벳 망토와 고급스러운 프릴이 달린 교복.

하늘 높이 치켜올린 위엄 넘치는 검.

바로 백마를 탄 왕자님­

"!"

아니, 하얀 조랑말을 탄 대공님이었다.

옥상에서 한껏 폼을 잡던 뽀 르 작 대공은 충분히 멋있었다고 생각했는지 양 볼을 빨갛게 붉히며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뚜방뚜방 걸어 4층 높이의 계단을 구르듯이 내려온 뒤, 도미닉 경 옆에 나란히 서서 스펀지로 된 검을 치켜들었다.

"...!"

대공은 정의의 편이었으며, 용사였다.

그 말은, 악에 대항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누가 보더라도 참모장은 거대한 악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뽀 르 작 대공이 나서기엔 충분한 상황!

4칸의 슬롯 중 3칸이 찼다.

"하! 그래도 나머지 하나는 절대 구하지 못할 것이다! 사악하고 비열한 계략이 없으면 너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똑똑히 알 수 있도록­ 응?"

참모장은 남은 한 자리는 절대 차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도미닉 경을 비웃었다.

애초에 참모장이 만든 필드는 원래 4:4의 PVP맵이었으나, 친구가 없었던 참모장이 무턱대고 개조해 1:4의 PVP로 만든 맵이었다.

모든 개조맵은 중앙 시스템의 검수가 들어간다.

중앙 시스템은 이 맵의 승률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아니라, 서로 어느 정도 승산이 있어야 개조맵을 승인했다.

보통은 코더만이 이런 일할 수 있겠지만, 아카데미에서는 실습이라는 명목하에 개조 맵이 자주 튀어나오는 편이었다.

참모장은 필드의 격자 사이사이 존재하는 사탕 중 하나를 꺼내 으득 씹어 먹었다.

달다. 아주 달다.

빈 격자에 주변의 사탕이 밀려들어가고, 위에서 새로운 사탕이 나타난다.

이 맵은 1:4 풀방에 서로 마음이 맞아야 반반 승률이 나오는 개조맵.

마침내 참모장은 지금까지 저 비열하고 치사한 계략으로 자신을 농락한 도미닉 경을 무릎 꿇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

"마, 마왕님?"

뚜 르 방 마왕이 뽀작뽀작 걸어가 마지막 4번째 자리에 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는 참모장의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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