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 [82화]초차원적 기관
* * *
도미닉 경이 하이퍼 오센틱이 건넨 편지를 읽는 동안, 방 안은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이상한 사람이구려."
"이상한 사람이긴 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하이퍼 오센틱에 대한 평론을 나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일하러 가는 날이던가? 행정부 쪽?"
"당신은 행정부 쪽 일하는 모양이오? 나는 시스템 인더스트리 쪽이외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각자 난장판이 된 거실을 치우며 대화했다.
마침 오늘은 도미닉 경이 경비로 출근하는 날이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특성상 시공간이 뒤틀려 있는 경우가 많아 분명 매일매일 갔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1880시간을 일했다고 뜨거나 한 달에 3분 일했다고 뜨는 경우도 잦았다.
가차랜드 노동법 상 하루 24시간 이상의 노동은 불법적인 비인가 시공선을 사용했다고 판단, 일한 사람과 일을 시킨 사람 모두 추가적인 노동으로 인한 보상을 모두 압수당하고 벌점을 부과받았다.
후자의 경우 노동법에 적시된 바로는 무통보 해고가 가능한 사유였고.
불평해도 어쩔 수 없다.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그만큼 시공간이 불안정하게 뒤틀린 곳이었기에 이를 인지하지 않은 자의 잘못이었다.
도미닉 경이 직업이 있음에도 직업에 대한 서술이 자주 나오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불안정한 시공간선이 시스템 인더스트리를 지나갈 동안, 그는 백수나 다름없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스템 인더스트리도 기업이었다.
불규칙적인 업무와 업적보다는, 안정적인 업무와 보고가 회사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법이다.
그렇기에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회장은 그 명석한 두뇌에서 튀어나온 놀라운 아이디어로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게끔 도왔다.
그게 바로, 가차랜드 중앙에 위치한, 날아가던 드래곤이 부딪혀 떨어질 만큼 높게 솟은 첨탑이었다.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이 읽은 편지를 건네받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제 초록 불이던가?"
"초록 불, 초록 불, 노란불.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때요."
첨탑은 모든 차원, 모든 시간 선, 모든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규모였으나, 너무 큰 나머지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이른바 인지부조화 상태를 일으키는 건물이었다.
그러나 가차랜드는 이 첨탑이 세워진 중심지였고, 사람들은 가끔 이 첨탑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시공간의 불확실성에 의해 그 모습마저 본모습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직원들에게 배부되는 직원 교육용 자료에 의하면 첨탑은 시공간선이 안정적일 경우, 초록불이 켜진 커다란 신호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적혀 있었다.
초록, 초록, 노랑.
시간 선과 공간선은 안정적이지만, 미세먼지에 주의.
동부 순환 차원로에서 약간 물류가 밀리고 있음.
이런 식으로 적힌 신호등은 언제나 정확도 100%를 자랑했다.
전에 이 상황이 신기해 왈록에게 신호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야 당연하지.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미래에 설립되어 과거로 향하는 기업이니까.'
어제의 불확실성보단, 내일의 확실함인 셈이지. 라고 왈록은 알 수 없는 소리를 했었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각자 출근을 위한 준비를 끝마치는 동안, 레미는 아직 도미닉 경이 어색한지 슬쩍 냉장고를 뒤졌다.
그리고 그런 바쁜 아침에, 마침내 팬텀 박사도 문을 열고 나왔다.
"좋은 아침..."
이마에 산타 공룡 다이보 그림이 그려진 안대를 올려 두고 눈을 비비며 나타난 팬텀 박사는 평소보다 세 배는 더 복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거실에 놓여 있던 남은 안주를 골라 집어먹었다.
"다들 뭐하고 있어요? 어디 가려는 것처럼."
팬텀 박사는 식어 딱딱해진 마늘빵을 토마토소스에 찍어 우물거렸다.
그나마 팬텀 박사는 레미와 달리 뻔뻔함을 내세우기로 마음먹은 상태였기에 이 상황에 녹아들 수 있었다.
"일."
"직업을 얻었으면 성실하게 해야 하지 않겠소."
도미니카 경이 경비 유니폼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어두운 남색 빛의 옷을 입었다.
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은 도미니카 경의 흉흉한 흉부가 드러났다.
어째서인지 채찍과 진압봉을 허리춤에 찬 도미니카 경은 거울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도 마찬가지였다.
경비복을 입고 모자까지 쓴 도미닉 경은 그래도 도미니카 경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방패와 검까지 착용한 도미닉 경은 모자 아래 깔린 깃털 장식을 떼어 모자 위에 달았다.
그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며 마늘 빵을 씹어먹던 팬텀 박사가 갑자기 먹던 마늘빵을 툭. 하고 떨어뜨렸다.
"왜 떨어뜨리고 그래, 아깝게."
한참 동안 말할 타이밍만 찾던 레미가 이때다 싶었는지 끼어들었다.
"있잖아, 밴시."
팬텀 박사는 평행세계의 자기 이름을 아직 모르는 상태였기에 여전히 밴시 박사라고 불렀다.
레미를 부른 팬텀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공허한 눈으로 레미를 쳐다보았다.
"...?"
레미는 왜 팬텀 박사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몰랐지만, 다행스럽게도 팬텀 박사는 다음 말을 바로 이어갔다.
그리고 레미도 팬텀 박사와 같은 눈동자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우리, 오늘 등교 날 아니던가?"
"아."
그렇다.
팬텀 박사의 눈동자는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황당한 진실을 마주하는 바람에 동공이 떨리고 현실을 도피하려는 눈빛이었다.
레미는 방금 전까지 인질극을 겪었기에 잊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그리고 팬텀 박사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출근을 하려는 모습에 무언가 잊은 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침내 그들의 첫 등교 날이라는 사실을 도출해 낸 것이다.
"등교?"
도미닉 경이 셔츠 위로 남색의 넥타이를 매며 되물었다.
"학교...란 말이냐?"
도미닉 경은 학교라는 말이 어색했지만, 이는 평생 학교(universitas magistrorum etscholarium)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탓이다.
사실 레미와 팬텀 박사가 가는 곳은 아카데미였지,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중하고 엄숙하며 신성하고 진실된 교육의 장이 아니었다.
현대사회에서 학교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구분되는 현실성 넘치는 교육이거나, 아카데미 혹은 사관학교로 이루어지는 캐릭터 성을 위한 교육이 대부분이다.
가차랜드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공교육과 헌터, 슬레이어, 기사, 정령사, 마법사 등 특성을 육성하는 아카데미가 따로 있다.
레미와 팬텀 박사가 말한 곳은 바로 후자로서, 그들은 기계와 관련된 특성을 얻으려고 아카데미에 지원서를 넣은 상태였다.
현재 어정쩡한 상황의 로봇인 제로를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게 하려는 엄청난 학구열.
물론, 현재 레미와 팬텀 박사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갈 법한 외관이기도 했고, 또한 사망 시의 나이로 따지면 실제로도 그런 나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카데미가 도미닉 경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말 세상을 변혁시키겠다는 꿈과 의지가 넘치는 학구열의 도가니로서의 학교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 뭔가 오해를..."
"이미 늦었어."
레미는 감격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도미닉 경이 분명 무슨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팬텀 박사는 도미니카 경도 비슷한 상태가 되자 한숨을 내쉬며 그저 이 순간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참에 레미와 팬텀 박사를 데려다주기로 마음먹었다.
명분은 두 박사들이 위험할까봐 였으나, 사실 단 한 번도 학교를 본 적 없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그저 학교를 구경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가... 학교?"
"이런 곳이었군. 확실히 귀족들이 자제들을 학교로 보내려고 했던 이유가 있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 환상적인 장소에 넋을 잃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평범한 아카데미잖아?"
평범한 아카데미. 가차랜드는 이렇게나 발전했단 말인가?
레미와 팬텀 박사는 고급스러우면서도 편안한 재질의 옷감으로 된 교복을 입고 있었다.
갈색의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갈색계통의 빵모자와 멜빵이 달린 치마. 혹은 조끼와 멜빵이 달린 양복바지.
도미닉 경은 그런 재질의 옷을 가차랜드에 오면서 몇 번 보았지만, 모두 제법 가격이 비싼 편이었던 걸 기억했다.
교복만 그런가?
수십 만 평의 부지. 커다란 본관과 별관, 그리고 체육관에 남자 기숙사와 여자 기숙사.
대운동장이라고 적힌 곳은 그야말로 엄청난 넓이를 자랑해 군단이 야영지를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고, 놀랍게도 운동장 너머에는 기사들을 위한 훈련장과 마법사들을 위한 사격장, 그리고 기술자들을 위한 병기고가 개개인별로 따로 준비되어 있었다.
이런 곳을 '평범하다'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귀족 자제들이 다니거나 왕족과 황족이 다니는 곳은 얼마나 대단하다는 말인가?
핀트가 살짝 어긋나기는 했으나, 아무튼 이 아카데미 자체만 본다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으, 첫날부터 지각이라니. 분명 찍혔을 거야."
"일단 우린 먼저 갈게!"
레미와 팬텀 박사는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고개를 살짝 들어 둘이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으나 어느새 계단을 올라갔는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거기 당신! 무례하군요! 당장 내 앞에서 비키세요!"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우아한 듯 경박한 듯 소리치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뭐죠? 그렇게 보지만 말고 비키라니까요!"
그곳엔 순정만화에서나 볼 법한 드릴처럼 말린 금발과 프릴이 잔뜩 달린 핑크색 드레스, 과하게 반짝이는 눈이 인상적인 귀족 영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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