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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79화 (79/528)

〈 79화 〉 [78화]막간

* * *

성좌 아임 낫 리틀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설마 거기서 그게 그렇게 될 줄이야."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싸인을 받은 뒤 집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글로 표현하면 17권 분량의 대 서사시가 나올 것이었으나, 간단히 표현하자면 성난 성좌들과 개척자들에게 쫒겼다는 뜻이었다.

집에 도착해 이제 안전하다는 판단이 서자, 아임 낫 리틀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온몸의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조금 쉬어야겠다. 라고 생각한 아임 낫 리틀은 침대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가 털썩 누웠다.

완전 편한 자세로 침대의 폭신함을 만끽하며 천장의 격자무늬를 세던 아임 낫 리틀은 문득 깨달은 표정으로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었던 카드들을 꺼냈다.

"헤."

바보 같은 표정으로 싸인이 된 도미닉 경의 카드와 도미니카 경의 카드를 감상하던 아임 낫 리틀은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엄지 발가락으로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배경 화면에서 자기 가차튜브 바로가기를 누른 아임 낫 리틀은 잠깐 누웠다고 엉망이 된 머리를 대충 빗고는 방송 시작 버튼을 클릭했다.

이 시간에 방송?아, 기만하려고 방송 켠 거 다 암.기만자! 기만자! 기만자!

방송이 켜지자마자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들.

데포르메한 아임 낫 리틀의 캐릭터가 그려진 대기화면이 전환되면서 아임 낫 리틀의 캠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예이­ 맞습니다! 기만하려고 켰어요!"

이젠 숨기지도 않네?수상할 정도로 신앙심 깊은 팬;;

이미 아임 낫 리틀이 도미닉 경의 카드를 뽑으려고 가차랜드에 갔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임 낫 리틀이 방송 공지에 적어두고 갔으니까.

그리고 아임 낫 리틀의 심리를 잘 아는 시청자들은 지금 방송을 켰다는 사실만으로 아임 낫 리틀이 도미닉 경 카드를 뽑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뽑음? 하나?얼마나 박았음? 기둥 뿌리 하나 뽑음?

그러나 아직 시청자들은 아임 낫 리틀이 얼마나 뽑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썼는지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 채팅이 올라오자마자 아임 낫 리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짠! 여러분, 이거 좋은 건가요?"

아임 낫 리틀은 주머니에서 세 장의 카드를 꺼냈다.

그 카드를 본 시청자들은 단체로 발작하기 시작했다.

와;; 세 장!그런데 하나는 도미니카 경이라고 적혀 있는데 짭임?

"평행세계 이벤트로 추가된 거래요. 평행세계의 도미닉 경!"

시청자 중에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을 하다 밴을 먹는 자가 생겨났다.

"무엇보다 이거 보세요. 보이세요? 이거?"

아임 낫 리틀은 카드를 캠에 가까이 대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싸인이 들어간 초판본! 와! 세상에서 유일한 카드!"

미쳤나 진짜.그거 삽니다. 방장 쓴 가차석의 10배 드림.

"에이, 얼마나 쓴 줄 알고 그렇게 불러요?"

시청자들은 자신이 예상한 금액을 적기 시작했다.

3만?이번에 200만 꼬라박고 못 뽑은 사람 있다던데. 아임 낫 리틀의 주머니를 생각하면 50만?10만은 쓰지 않았을까?

"땡! 이거 첫 10연차에서 다 뽑은 거거든요?"

아임 낫 리틀의 기만질이 시작되었다.

채팅창에 잠시 정적이 일었다.

그리고 한껏 누른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채팅창이 불타기 시작했다.

기만자! 기만자! 김환자!의사 선생님! 환자가 발작하고 있어요!의사도 같이 발작함;;와;; 누군 200만 쓰고 못 뽑는데 누군 10연차에 3장 뽑고 사인까지 받네;;선생님 길 가다가 뒤통수에 충격이 느껴지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십쇼.

"그나저나 아쉬워요. 싸인 받은 카드 두 장은 보존할 생각이라, 실질적으로 도미닉 경 카드 하나만 쓸 수 있잖아요? 도미니카 경 카드 하나 더 나왔으면 페어로 쓰는 건데."

소수점 7자리 확률 카드를 3장이나 뽑아 놓고 복장 뒤집네.

그래. 더 불타올라라. 이 맛에 기만질하지. 라고 우쭐해진 아임 낫 리틀이었다.

밖이었다면 이렇게 기만질하지 않았겠지만, 아임 낫 리틀은 저들이 화면 너머에 있는 자신을 해코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방구석 여포 기질이 충만했다.

"잠깐만요. 생각해 보니까 나 팩 다 안깠네?"

몇 팩?

"스타터 3팩이랑 기사 3팩이요. 이왕 방송 킨 거, 카드깡 방송이나 할까요?"

6장을 누구 코에 붙임;;어차피 박춘배 나옴 수고.님 카드 박춘배.

이미 뿔이 잔뜩 나 있는 시청자들은 아임 낫 리틀을 향해 저주를 내뱉었다.

그러나 묵묵히 채팅을 무시한 아임 낫 리틀은 첫 카드 팩을 손에 쥐었다.

"이거 보이시죠? 여기에 싸인하면 열리는 거 신기하지 않아요?"

누가 모름?누가 물어 봄?

시청자들 중 아임 낫 리틀의 편은 없었다.

"스타터 팩은 기대하지 않아요. 어차피 내 카드 박춘배일 텐데. 대신 기사 팩에서 좋은 걸 뜨면 도미닉 경 카드랑 묶어서 기사단 만들 거예요."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안 뜨기 전까진.

"네, 네. 그럼 카드 깡, 시작하겠습니다! 처음은 스타터 팩으로 시작할게요!"

아임 낫 리틀은 스타터 팩 하나를 들고 위에 서명했다.

그러자 봉인이 풀리며 안에서 금색 빛이 스며나왔다.

"아, 3성 이상 없네요. 오히려 좋아. 도미닉 경이랑 도미니카 경은 금색인 거 아시죠?"

행복 회로 ON!그게 뜨겠냐;;

시청자들은 간절히 아임 낫 리틀의 불행을 빌었다.

"자, 갑니다! 하나, 둘, 셋!"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공중에 뜬 10장의 카드.

금색 카드 한 장과 무색의 카드 9장.

완전히 망했쥬?응, 보정 아니었음 전부 일반 카드야.

시청자들은 아임 낫 리틀의 불행에 기뻐했다.

"아직 모르는 일이에요. 일단 일반 카드나 보죠."

[★ 개암3동의 자랑 박춘배][2코스트] X3

[★ 짐꾼 하인스][1코스트] X5

[★ 피셔 네이스터][1코스트] X1

처참한 성적.

성좌 아임 낫 리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나같이 성능이 구려 밈으로 승화된 카드들.

"아직 몰라요. 금색 카드에서 좋은 걸 뜨면 되지."

응, 아니야.황금 투구 나왔으면 좋겠다 엌ㅋㅋ.

시청자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아, 진짜! 아니지, 짜증 내면 안 되지. 경건한 마음으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감사를 표하며­"

지금! 아임 낫 리틀이 엇박자로 카드를 뒤집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오는 컷씬.

...???이게 뭐임?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이 컷씬을 본 적이 있었다.

도미닉 경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분위기.

폭발하는 화산을 배경으로 한 요새 앞에서 방패에 기댄 여기사.

'행복하라고. 나만 행복할 순 없잖아?'

"페럴란트의 도미니카 경이야. 잘 부탁해."

[★★도미니카 경][5코스트]

성좌 아임 낫 리틀은 눈앞에 떠오른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놀라 순간 채팅창을 바라보았다.

그날, 아임 낫 리틀의 방송이 터졌다.

...

"아, 총독. 어서 와. 여기 탐색 보상."

총독이라고 불린 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어깨에 차를 메고 돌아왔다.

보라색 피부와 과도한 얼굴이 합쳐져 괴상하게 보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 총독. 결과가 안좋은거야?"

분홍 머리에 맹한 표정을 지은 장교는 총독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자 당황하며 다독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못 뽑았으면 어때. 난 총독만 있어도 행복한걸. 무엇보다 이번에 결과가 안 좋았으니 다음엔 좋을 거야. 호사다마,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잖아?"

총독은 분홍 머리의 장교의 다독거림에 더욱 인상이 처참해졌다.

사실, 그는 도미닉 경을 뽑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 황궁을 세 번을 지을 수 있는 가차석을 소비하고 말았다.

심지어 이성을 잃고 가차석 대출까지 받았으니, 당분간은맛 없는 군용 식량으로 식사를 때워야 하리라.

그 사실이 너무 서러워 인상이 구겨진 것이었지만, 차마 눈앞에 있는 자기 부관, 분홍 머리 장교에게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분홍 머리 장교는 자기 클랜에서 재정을 관리하는 행정보급관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성을 잃고 황궁 세 개는 지을 가차석을 소모했다는 사실을 알면, 자신은 반쯤 죽은 목숨이었다.

대출받은 사실까지 알려지면 그날이 병풍 뒤에서 향 냄새 맡는 날이었고.

...

"있잖아..."

"응."

"그러니까..."

"응."

여기, 산더미 같은 시말서의 언덕 아래 두 코더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속한 팀의 코더 열다섯 명이었으나, 연이은 시말서의 작성에 지쳐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는 건 가장 젊은 피를 가진 막내 코더들 뿐이었다.

하지만 막내 코더들도 멀쩡하진 않았다.

그들은 손이 부르트도록 시말서를 작성하고 있었지만, 이번 이벤트 스테이지와 연관된 1543개의 업체에도 사과문을 보내야 했기에 이미 이틀은 밤을 샌 상태였다.

그런데도 눈앞의 종이의 언덕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있잖아..."

"응."

"우리 보상 문제... 제출했던가?"

"...아니."

두 코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이번 사건에 휘말린 이들에게 보낼 보상이 책정되지 않았다.

운영팀에게 보상 문제에 대해 말해야 했으나, 지금 여기 있는 인원 중 그 누구도 일어설 만큼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있잖아..."

"응."

"우리 이거 언제 끝날까?"

"...응."

결국 그나마 남은 힘을 짜내 다시 자필로 시말서를 작성하기 시작한 두 코더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보상은 조금 미뤄질 모양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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