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 [77화]리셋 후일담
* * *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마침 코더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해결되었다.
"휴. 다행이네요. 리셋을 시도한 건 오랜만이라 불안 했거든요."
"일단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의 미숙한 운영과 대처로 여러분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코더들은 들어오자마자 도미닉 경 일행의 안위를 확인하고 사과했다.
"일단 이벤트 스테이지는 폐쇄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께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이번 버그로 인해 여러분들이 받은 심적, 물적 피해와 비교하면 충분하진 않겠지만, 저희 사비로 여러분들께 보상을"
코더들은 이번 사건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고 보상을 약속했다.
보상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운영팀의 권한이었으나 자신들이 급하게 결과물을 보여주려고 했다가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그와는 별개로 사비를 들여 보상을 하려고 한 것이다.
"혹시나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말해주세"
"빨리 고쳐줘요!"
"해 줘, 해 줘!"
코더들의 말은 여우들의 말에 끊겼다.
여우가 되어 버린 여파인지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짧고 단순한 말만 하게 된 히메와 츠키는 여차하면 코더들의 발목을 물어버릴 생각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히메와 츠키에게 찾아온 불운은 곧 해결되었다.
"어, 아무래도 리셋의 충격으로 인해 장비 테이블과 종족값 테이블이 바뀐 모양이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에 대해서도 추후 보상이 있을 겁니다."
모자 장수 코더가 콘솔창을 열어 히메와 츠키에게 닥친 일을 기록했다.
그 사이 바니걸 코더 역시 콘솔창을 열어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곧 히메와 츠키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이매망량도 아니고 축생이라니, 이 무슨 끔찍한 일이외까."
펑. 하는 이펙트와 함께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히메와 츠키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히메와 츠키는 알지 못했다.
눈앞의 코더들은 막내 코더였기에 어딘가 미숙한 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의 귀가 여전히 쫑긋거리고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다는 점.
"일단 스테이지는 중단입니다. 오류가 생긴 이상, 이 스테이지는 폐기될 예정이니까요."
"대신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저희 스테이지를 즐겨 준 보답으로 원래 이벤트 보상도 드리겠습니다."
코더들의 말이 끝나자 도미닉 경과 그 일행은 스토리 모드 로비로 돌아왔다.
여전히 이벤트 스테이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으나, 바니걸 코더가 포탈을 정지시키고 팻말을 하나 걸었다.
'이벤트 스테이지에 이상이 생겨 접속을 제한합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고 적힌 팻말을 건 바니걸 코더는, 다시 도미닉 경의 일행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보상은 이벤트가 끝나는 날 일괄적으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혹시나 문의사항이 있으시다면, 시스템 인더스트리 개발팀에게 문의해주세요.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바니걸 코더는 이미 철거를 시작한 모자 장수 코더를 도와 이벤트 스테이지를 철거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이 서글퍼 아무도 그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
"이제 어쩔 건가요?"
밴시 박사... 아니, 도미닉 경의 여동생 레미가 말했다.
"이벤트는 폐쇄되었고, 남은 이벤트는 없네요. 혹시 총선 이벤트를 하실 분들 계신가요?"
팬텀 박사가 레미의 말을 이어받아 물었다.
"전 이만 집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음."
히메와 츠키는 당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방금 전 여우가 되었던 그녀들은 아직 자신들이 여우 귀와 꼬리를 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처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과 마주했을 때, 여우가 되라는 말을 오해해 정말 여우처럼 행동한 것이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아무튼 오늘은 즐거웠어요. 다음에 또"
급하게 도미닉 경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던 히메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리셋 이후 충격에서 깨어났을 때, 히메는 본의 아니게 도미닉 경과 밴시 박사의 관계를 듣고 말았다.
도미닉 경과 밴시 박사는 남매 관계였으며, 그 말은 둘은 가족이라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어쩌면, 도미닉 경의 가족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도미닉 경과 데이트를 한 셈이 아닐까?
리셋의 충격일까?
갑자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한 히메의 머릿속에는 엄청난 생각의 비약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는 츠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도미니카 경과 팬텀 박사의 관계를 들었고, 역시나 온갖 생각에 머리가 혼란해졌다.
"히메 공?"
도미닉 경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계속해서 표정이 바뀌는 히메를 보며 어디 아픈 것이 아닐까 고민했다.
결국 히메가 괜찮은지 확인하려고 말을 걸자, 깊은 상상에 빠져 있던 히메가 화들짝 놀라 튀어 올랐다.
"아, 네! 괜찮아요. 이만 가 볼게요. 데이트는 즐거웠"
히메는 갑자기 튀어나온 데이트란 단어에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깊게 상상한 나머지 순간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히메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갈 길을 잃었다.
"데이트?"
"아뇨, 아니에요. 말실수에요. 아무튼, 오늘 즐거웠어요!"
히메는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연막탄을 던지고 사라졌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막의 잔재만이 남아 있었다.
"허당이로군, 히메 공."
츠키는 그런 히메를 보며 혀를 찼다.
자신은 히메와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나저나 그 귀랑 꼬리, 아직도 달고 있네?"
도미니카 경은 아까 전부터 살랑살랑 흔들리는 여우 귀와 여우 꼬리에 관심을 가졌다.
도미니카 경은 전투에 이골이 난 베테랑이었으나 내심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전사적 기질과 취향은 다른 것이니까.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귀엽네."
"뭐, 뭣!"
츠키는 도미니카 경의 말에 당황하고 말았다.
귀엽다니. 츠키가 도미니카 경에게 듣고 싶어 했던 말이긴 했으나, 이렇게 대놓고 들으니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작 도미니카 경은 츠키가 달고 있는 귀와 꼬리가 귀엽다는 뜻이었으나,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를 한 츠키는 그녀의 말을 왜곡해서 들은 것이다.
츠키는 철립을 깊게 눌러쓰며 빨개졌을 것이 분명한 자기 얼굴을 가렸다.
"그, 그럼 본인도 가 보겠소이다. 도미니카 경."
황급하게 작별 인사를 한 츠키는 고개를 숙인 채로 경공을 써 벌써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이제 남은 이들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밴시 박사와 팬텀 박사.
두 제로들은 히메와 츠키가 떠나는 것을 본 박사들이 미리 연구소로 돌려보낸 상태였다.
"할 말이 있어요."
밴시 박사. 아니, 레미가 말했다.
레미는 도미니카 경에게 양해를 구했다.
"혹시 저와 오빠만 남겨 주실 수 없을까요? 그쪽도 할 일이 있으실 텐데."
레미의 말에 도미니카 경은 팬텀 박사를 바라보았다.
도미니카 경은 한숨을 내쉬며 레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둘만 남았네요. 혹시 술, 마실 수 있겠어요?"
레미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도미닉 경은 묵묵히 앞서가는 레미를 따라갔다.
지금 도미닉 경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
죽은 줄 알았으나, 어째서 가차랜드에 있는지.
다른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지.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는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급할 것은 없다.
가차랜드는 죽어도 가치만 있다면 다시 살아나는 곳.
그 말은, 얼마든지 레미와 지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시간이 많다는 뜻이었다.
...
레미는 길을 걷다 만난 적당한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자주 가는 바 올드 월드 블루스로 가고 싶었으나, 팬텀 박사도 똑같은 생각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적당한 자리에 앉은 레미는 바로 독한 럼주 한 병과 적당한 안주를 시켰다.
평소라면 술이라는 말에도 기겁하겠지만, 오늘은 왠지 독한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었다.
도미닉 경도 레미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의자 하나만큼의 거리.
어색함의 거리.
"...오빠는 어떻게 여기 온 거에요?"
처음 말문을 뗀 건 레미였다.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에 어떻게 온 거야?"
도미닉 경은 격식을 버리고 말했다. 예전처럼.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 도미닉 경의 대답에 레미는 바로 나온 독한 럼주를 한 잔 쭉 들이켰다.
목이 타는 듯한 감각에 인상을 찌푸린 레미는, 술기운을 빌려 말하기 시작했다.
"망자들이 마을을 습격했어요."
이는 도미닉 경도 아는 사실이었다.
"망자들은 제물이 필요했대요. 아르젠 퀼트. 기억나요? 오빠랑 내가 처음으로 본 도시였잖아요."
평소에 술을 멀리한 탓인지 금방 취기가 오른 레미의 말은 두서가 없었으나 도미닉 경은 충분히 그 말을 이해했다.
아르젠 퀼트. 망자의 행진이 일어나 사라진 도시.
"원한이 필요하대요. 망자들이 이 땅에 간섭하기 위해선 산 자의 원한이 필요하대요. 그래서 죽었어요. 망자들의 손에."
도미닉 경은 그 인과관계를 알아차렸다.
아직 도미닉 경이 기사가 되기 네 달 전, 그는 아르젠 퀼트를 향한 망자들의 행진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마을이 사라진 것은 기사가 되기 여섯 달 전.
"무지한 사람은 원한을 품지 못한다면서... 강제로 지식을 주입했어요. 똑똑할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다면서. 뇌가 터지고 녹아내릴 때까지. 마을 사람들을 하나씩 하나씩."
술잔을 든 레미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그때를 생생히 기억했다.
"대부분 하루를 넘기지 못했어요. 마지막에 제가 남았죠. 엄마와 아빠가 바로 제 앞에서...아니, 이건 넘어가요. 아무튼..."
레미는 또 한 잔의 술을 마셨다.
"그들은 제안을 했어요. 자신들이 주입한 지식을 모두 견디면 돌려보내주겠다고. 살려주겠다고."
또 한 잔.
"거짓말이었죠. 하지만 정신적으로 몰려 있던 난 그 말을 믿었어요. 버티고 또 버텼죠. 뇌가 녹아내리고 터지는데도."
또 한 잔.
"결국 버텨 냈지만... 그들은 그저 희망 고문을 한 거에요. 희망 끝에 절망으로 떨어지는 것이, 가장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니까."
또 한 잔.
말 한마디에 술 한 잔을 마시던 레미의 손이 느려졌다.
취한 것이 틀림없었다.
레미는 말없이 또 한 잔의 술을 마시려고 했다. 아픈 기억. 술로 씻어내야지. 라고 생각하며.
그러나 그 잔이 레미의 입으로 들어갈 일은 없었다.
도미닉 경은 그 잔을 뺏어 자기 입에 털어 넣었다.
독한 술 특유의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도미닉 경을 엄습했다.
레미는 그런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눈이 풀려 있었으나, 여전히 눈동자는 명확하게 도미닉 경을 향했다.
"...그래요. 결국. 그렇게 죽었어요. 하지만 제 영혼에 주입된 지식은 계속 남아 저를 괴롭혔죠. 지금 제 상사를 만나기 전까지."
"상사?"
도미닉 경은 여동생의 상사라는 사람이 궁금했다.
애초에 여동생은 자기보다 먼저 이 가차랜드에 도착한 사람이다.
도미닉 경도 바로 직업을 얻었는데, 자기보다 더 똑똑했던 여동생은 말할 것도 없었으리라.
"좋은 분이죠."
레미는 배시시 웃으며 곱슬거리는 자기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제 가치는 지식이래요. 여전히 공허한 눈들이 저를 바라보고, 반투명한 손길이 저를 매만지는데도 이 지식만큼은 남아 제 가치가 되었죠."
그게 제가 여기 있는 이유에요. 라고 말한 여동생은 순간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깜짝 놀란 도미닉 경이 레미를 부축하려 했으나, 레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웃었다.
"이래서 술이 싫어요. 아픈거 꺼내기 싫은데 자꾸 꺼내게 되잖아. 잊으려고 마신다는 거 다 뻥이에요. 이렇게 똑똑히 기억나는데"
라고 말한 레미는 다시 탁자에 고개를 파묻었다.
일어나지 않는다.
이 상황에 놀란 도미닉 경이 벌떡 일어나 레미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그저 취한 것뿐인지, 레미는 작게 코를 새근새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레미가 그저 취했을 뿐이라는 걸 알아낸 도미닉 경은 다시 자리에 앉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
못해도 십 수년 만에 만났으니 반가울만도 하련만.
도미닉 경은 반가움보다 안타까움이 앞섰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고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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