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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76화 (76/528)

〈 76화 〉 [75화]■부■은 버■이ㅂ■■■

* * *

f가차랜드의 데이터는 아주 섬세하고 예민해서, 약간의 변화만 있어도 결과가 완전히 바뀌곤 한다.

한 줄의 실수가 한 세상의 파멸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차랜드엔 코더란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고, 법적으로 코더를 제외한 이가 데이터를 조작하면 엄벌을 받았다.

그러나 데이터 조작에 대한 법률에서 한 가지 예외 조항이 있었다.

바로 버그로 인해 고립되었을 때였다.

"하아..."

팬텀 박사는 콘솔창을 조작해 자신이 아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그 조치가 먹혔는지 스테이지가 붕괴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으나 여전히 붕괴는 진행되었다.

남은 건 관리자, 즉 코더들이 와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팬텀 박사는 눈앞에 스파게티처럼 꼬인 코드만큼이나 복잡해진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

"바로 복구 시작한다! 지원 부탁해!"

"당장 시작해! 먼저 안에 있는 인원들과 연결이 되는지 확인할게!"

두 코더는 이벤트 스테이지로 들어가 엉망이 된 콘솔창을 켰다.

누군가가 임시로 막아 놓은 명령어 덕분에 시간은 벌었으나 코드와 코드 사이는 이미 오염되거나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다.

"제길! 왜 첫 시도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야?"

바니걸 코더가 콘솔창을 통해 지속해서 내부의 인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코드의 복구는 모자 장수 코더가 진행하고 있었기에 바니걸 코더가 할 일은 초조하게 사람들과 연락이 닿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일단 임무 코드를 복구했어! 임무를 마치면 바로 끝나도록 설정도 마쳤고!"

모자 장수 코더는 괜히 자신이 코더가 아니라는 듯 팬텀 박사가 하지 못했던 부분을 고쳐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걸."

한참 코드를 고치던 모자 장수 코더가 코드와 코드 사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버그가... 없어."

코드가 엉망진창이 되고 오염된 상황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전혀 오류가 없었다.

이는 코딩의 세계에서 가끔 있는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의 코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사실 이는 슬라임의 특징을 이해해야 했다.

슬라임은 어디에서나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며, 핵만 살아 있다면 언제든지 살아날 수 있는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슬라임의 점액은 점성이 강해 끈적거리면서도 잘 들러붙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시스템은 슬라임을 버그라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조금 달랐다.

안티 앨리어싱 문제와 라이브러리 9버전과 11버전의 호환성 문제로 인해 발생한 균열.

이 균열에 슬라임이 빨려 들어가며 문제가 발생했다.

슬라임의 핵이 스테이지와 섞여 버리며 스테이지의 균열을 '상처 입은' 상태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방금 전에도 서술했으나 슬라임은 핵만 살아 있다면 얼마든지 재생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 상처를 수복하기 위해 슬라임의 점액이 균열을 뒤덮은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애초에 슬라임의 코드는 새롭게 개편된 스테이지의 코드와 호환이 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어긋났던 코드는 슬라임의 적응력이 작용하며 서서히 스테이지 코드와 융합했고, 엉망인 코드들을 이어 주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버그라고 생각했던 슬라임은 그저 자기 방식대로 스테이지의 오류를 해결한 것뿐이었다.

"...라는 거지?"

끈적한 검은 공간에서 도미니카 경이 한숨을 내쉬며 슬라임의 핵과 대화하고 있었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고독한 삶을 살던 슬라임은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에 강아지처럼 기뻐하며 들러붙었다.

생명체를 보면 반가워 달려드는 슬라임의 본능.

비록 지능을 가지긴 했으나, 슬라임은 슬라임인 것이다.

슬라임은 고개를 끄덕이듯 핵을 움직였다.

지능을 가진 슬라임은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살고자 본능적으로 발버둥을 친 것일 뿐이었으나, 우연에 우연이 겹쳐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비록 자신이 구 데이터를 상징하는 이스터에그일 뿐이었으나, 결국 슬라임도 이 스테이지의 일부다.

스테이지가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지는 것이다.

도미니카 경은 이 순한 사고뭉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사고를 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왜 여기에 있으며, 내가 본 눈은 뭐지?"

도미니카 경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수도에서 자신을 덮친 검은 액체.

그리고 스프라이트가 깨진 채로 나온 충혈된 눈.

누가 보더라도 그 의도가 의심되는 상황.

슬라임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구강 구조 데이터가 없었기에 말하지 못했다.

그 대신필사적으로 점액을 움직여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하수도 모양, 바닥에 그려진 점선과 화살표, 코더로 추정되는 누군가. 그리고 그 점선 밖에 있던 것.

갈라진 하수도. 그 위에 선 누군가. 그리고 검은 액체로 채워지는 하수도.

도미니카 경이 그 그림들을 유심히 보더니, 이내 가설을 하나 꺼냈다.

"그러니까, 그 눈은 코더가 장난으로 넣은 이스터에그다? 그리고 하수도를 기준으로 균열이 있었고, 네가 그 균열을 채우는 과정에서 이스터에그가 쓸려왔다?"

슬라임이 고개를 끄덕이듯 격하게 핵을 흔들었다.

도미니카 경은 그 슬라임이 마치 잘못한 걸 들킨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외견은 전혀 다르지만.

그때, 도미니카 경은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자, 검은 액체에 균열이 생기며 도미닉 경이 땅에 떨어졌다.

꽤 오랫동안 떨어진 듯 도미닉 경은 떨어진 충격에 잠깐 일어나지 못했으나, 바닥이 말랑말랑한 덕분인지 다친 곳은 없었다.

"여긴...?"

"지옥에 온 걸 환영해, 평행세계의 나."

도미닉 경이 아직 어지러운 머리를 문지르며 주변을 둘러보자, 장난기가 발동한 도미니카 경이 도미닉 경에게 농담같지 않은 농담을 건넸다.

"지옥? 우리가 지금 또 죽은 거요?"

도미닉 경은 낙하의 충격으로 제대로 된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랬기에 도미니카 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말았다.

그 순진한 반응에 도미니카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농담이야. 그걸 또 순진하게 믿고 앉았어?"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핀잔을 들었지만, 일단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그 말을 넘겨 들었다.

슬라임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자 화들짝 놀라 핵을 숨겼다.

그리고 액체 사이로 아주 약간만 내밀어 새로운 인물을 확인해 보았다.

도미니카 경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분위기.

슬라임은 조금 더 자세히 도미닉 경을 보고자 더 가까이 다가 갔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다가온 슬라임에 놀라 검을 뽑았으나, 이내 적대적인 의사가 없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검을 집어넣었다.

무엇보다 슬라임과 싸우기엔, 검은 너무 비효율적인 무기였다.

"슬라임이라. 이번 스테이지는 스팀 펑크인가 뭔가가 아니었소? 슬라임이 나오던가?"

도미닉 경은 여러 각도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슬라임의 너머로 도미니카 경을 쳐다보았다.

"이스터에그. 예전 데이터가 남아 있었다더라고."

슬라임은 도미닉 경이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느끼자마자 본능적으로 들러붙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의 행동과 같았으나, 정작 검고 끈적한 액체가 달려들자 도미닉 경은 움찔하고 놀라고 말았다.

도미니카 경은 이미 경험한 일인지 도미닉 경의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하오."

도미닉 경은 위에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다가오는 촉수를 쳐 냈다.

"글쎄. 적어도 이 슬라임은 우릴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도미니카 경이 슬라임의 핵을 가르켰다.

슬라임은 그저 기쁜 듯 꿀렁거리기만 할 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보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기사였고, 상대는 적대적 의사가 없으니 분명 대화를 시도하면 말이 통할 거로 생각했다.

물론, 아직 도미닉 경이 충격의 여파가 남아정신이 덜 돌아온 상태라는 것을 감안 하면 꽤 멋진 시도였다.

"우릴 보내주시오."

슬라임의 본체가 꾸물거렸다.

"아쉬운 것은 알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도 임무가 있소. 그 임무를 끝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우리에게 죄를 짓는 거요."

슬라임의 핵이 떨렸다.

"그래. 지금 상황도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잖소. 이번에도 그럴 의도는 없었다며 회피할 생각이오? 내가 이렇게 문제가 될 거라는 걸 경고했는데도?"

어째서인지 도미닉 경은 슬라임과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제대로 된 대화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도미닉 경과 슬라임은 말이 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제대로 미친놈이 아닐까?"

도미니카 경은 그런 도미닉 경을 황당하게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도미니카 경 자신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적어도 자신은 슬라임이 행동으로 보여줘서 알았지, 약간의 꿈틀거림으로 원활한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보통 미친놈이 아니야.

도미니카 경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아아, 들리십니까? 들리신다면 옆에 있는 [예]를 눌러 주세요. 만일 몸을 움직이지 못하신다면 예라고 말하기만 하셔도 됩니다."]

시스템을 통해 스테이지에 울리는 소리.

눈 앞에 뜬 시스템 창.

코더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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