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73화]대부분은 버그입니다.
* * *
도미닉 경들에게 설명을 마친 코더들은 다시 스토리 모드 앞 부스로 돌아왔다.
"진짜 하기만 하면 재밌는데 말이야."
"그러게. 아, 홍차 마실래, 커피 마실래?"
"커피로. 마침 도넛이 있거든."
코더들은 부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뒤편에 티파티 세트를 깔았다.
그들의 복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이벤트에서 코더들의 컨셉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중에서도 모자장수의 티파티였다.
"정말 다행이야. 모자 장수나 바니걸만 있었다면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으, 겨울잠 쥐의 어감이 이상하다고 컨셉 단계에서 거절당하지만 않았더라도 바니걸 대신 겨울잠 쥐를 했을 텐데!"
겨울잠 쥐가 얼마나 귀엽다고. 커피를 마시며 인벤토리에서 도넛을 꺼낸 바니걸 코더가 투덜거렸다.
도넛 하나를 건네받은 모자 장수 코더가 도넛을 한 입 베어물고 행복하게 우물거리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손을 멈췄다.
"그나저나 그거 말이야."
"그거?"
"그, 더미 데이터로 남긴 스프라이트."
"아, 슬라임?"
바니걸 코더가 남은 도넛 조각을 한입에 털어 넣으며 답했다.
모자 장수 코더가 오묘한 표정으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내 그 더미 데이터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거, 우리가 코드 지웠던가?"
뚝. 하고 바니걸 코더의 움직임이 멈췄다.
바니걸은 잠시 주마등처럼 과거의 기억이 지나갔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은 그 코드를 만진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래도 누군가 지웠겠지."
바니걸은 애써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며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맛이 쓴지 단지 모를 정도로 손을 달달 떨면서.
"내부에서 시험했을 때엔 아무 일도 없었잖아."
"그거 빌드 1.03.77B 였잖아. 오늘 우리가 가져온 건 1.03.78A고."
바니걸 코더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손에 든 커피잔이 얼마나 진동하는지, 커피의 절반은 땅이 마시고 있었다.
아니, 아니겠지. 설마 그 사소한 빌드 차이로 문제가 생기겠어?
그렇게 자신을 위로한 바니걸 코더는, 이내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에이. 설마. 만일 문제가 생기더라도, 첫 손님부터 버그가 나오겠어?"
"그렇지? 희박하지?"
사실, 모자 장수도 불안감에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으나 그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두 코더는 현실을 도피하며 다시 편안한 티파티를
"와! 열린 보호막 서포터당 의원이랑 힐풍당당 의원끼리 일기토를 벌인다!"
"뭐? 서포터 개싸움은 못 참지. 보러 가자!"
그때, 주변에서 선거 활동을 벌이던 의원 둘이 싸움이 붙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바니걸과 모자장수는 서로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사람도 없겠다, 잠깐 자리를 비워도 큰 문제는 없을 거였다.
설마 자신들이 없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하겠어? 라며 자신을 속인 채.
...
도미닉 경의 조는 제국 중앙 공장을 지키던 경비들을 처치하고 공장에 불을 질렀다.
[제국 중앙 공장이 불타고 있습니다! 잠입조를 향하는 기갑 병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제국 수도의 사람 모두가 불길을 보고 있습니다. 경비를 보던 이들이 갑작스러운 화재를 수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곧 공장을 향해 진압 인원이 투입될 것입니다.]
"좋군. 이제 선택해야 하오. 다음 선택 목표를 공략할지, 아니면 이곳에서 기다리며 찾아오는 인원들을 제압할지."
도미닉 경은 불타오르는 공장을 배경으로 검과 방패를 든 채 다른 이들을 보았다.
츠키는 거미 전차를 베며 검신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살 확률을 높이려면 다른 목표를 공략하는 것이 맞겠죠. 치고 빠지는 건 병법의 기본이니까요."
"여기 공장의 잔해들로 바리케이드를 치면 충분히 진압하러 오는 인원들을 상대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기엔 저희 파티가 근접 위주라..."
팬텀 박사는 자기 누나를 닮은 도미닉 경을 보며 말을 흐렸다.
도미니카 경은 또 하나의 도미닉 경이니, 그녀가 자기 누나일 확률이 더 높아지고 있었다.
"그럼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하겠소. 일은 신속하게 할 수록 좋은 법이니."
도미닉 경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공장에서 유출되던 기름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기름을 가득 채운 탱크에 불이 옮겨 붙으며 공장의 일부가 폭발해 무너졌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기엔 좀 위험하기도 하고."
그 폭발을 멍하게 보던 도미닉 경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안. 공장에 있던 서류를 확인한 결과, 제국 군수창고가 가장 가깝습니다."
"그럼 군수창고로 향하도록 하겠소."
도미닉 경이 결정하자 제로는 가장 빠른 경로를 찾아 앞장섰다.
도미닉 경이 그 뒤를 따랐고, 츠키와 팬텀도 걸음을 옮겼다.
불타는 공장.
호수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불타는 기름이 공장에서 흘러나왔다.
검은 기름이 땅에 닿아 스며들기 직전, 갑자기 불이 멈췄다.
불길이 진압된 것은 아니다.
불길이 말 그대로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그러나 몇 프레임 지나지 않아 다시 불길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불길 사이로, 기름처럼 검지만 전혀 다른 성질의 무언가가 기름에 섞여 흘러내렸다.
도미닉 경과 그 일행은 앞만 보고 움직였기에, 그 불길한 검은색을 보지 못했다.
...
[무력조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아직 경비가 삼엄합니다.]
[약간의 틈이 생겼으나, 어디에 생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조도 잘하는 모양인데."
도미니카 경이 하수도의 끝에서 중얼거렸다.
그녀의 머리 위에는 맨홀 뚜껑이 있었는데, 바닥에 그어진 점선은 그 맨홀을 향해 이어져 있었다.
아마 여기가 독재자의 거처로 들어가는 비밀통로의 출구겠지.
"잠시 내가 나가 확인해 볼게요. 쿠노이치라 은신은 자신 있어요."
히메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아직 머리에 달린 여우 귀가 쫑긋거렸다.
"척후는 중요하지."
도미니카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척후가 걸리면 경비가 더 삼엄해질 위험이 있지만, 반대로 정찰 없이 돌입했다가 경비에게 걸릴 확률이 더 높았다.
무엇보다 도미니카 경이 히메를 척후로 보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하수도에서 걷고 있음에도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만큼 뛰어난 은신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도미니카 경은 전장에서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전황을 알기 위해 아무리 미약한 소리도 들을 수 있도록 훈련했다.
그런 도미니카 경의 귀를 속일 정도면, 충분히 들키지 않고 정찰할 수 있으리라.
"좋아. 그럼 바로"
"있잖아요, 도미니카 경."
밴시 박사가 도미니카 경의 말을 끊었다.
도미니카 경은 말이 끊겼다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고 밴시 박사를 쳐다보았다.
밴시 박사는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걸어왔던 통로를 바라보며 떨고 있었다.
"저거, 우리가 지나왔을 때... 있었던가요?"
밴시 박사가 손을 뻗어 통로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도미니카 경은 그 손의 경로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어두컴컴한 통로.
도미니카 경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데다가 약간의 야맹증을 앓고 있기에 밴시 박사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도미니카 경이 눈을 찌푸렸다. 좀 더 어둠에 익숙해지자 흐릿하게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저건...?"
아직 도미니카 경은 흐릿한 무언가의 정체를 알 수 없었으나, 히메는 어둠 속을 꿰뚫어 보았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오류. 데이터에 없는 상황입니다. 보호 모드를 실행합니다."
심지어 안드로이드 제로도 그 형체를 보았는지 밴시 박사의 앞을 가로막으며 보호 역장을 충전했다.
"도대체 뭐길래 그래?"
도미니카 경은 자신만 모르는 상황에 괜히 투덜거렸으나, 이내 그것은 도미니카 경이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마침내 그 정체를 확인한 도미니카 경은 한쪽 눈을 크게 떴다.
하수도 벽을 따라 기어 오는 검은 물체.
그냥 검은 물체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충분히 무서울 만 하지만 저것은 궤를 달리했다.
이미지가 깨진 검은 것들이 벽에 새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혐오감을 일으켜 경기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끔찍한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도미니카 경은 잠시 멍하게 그 괴상한 이미지들을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저거 열어."
"네?"
도미니카 경의 옆에 있던 히메가 도미니카 경의 중얼거림에 반문했다.
"저거 열고 밖으로 나가! 빨리!"
"아, 네!"
히메는 뒤로 돌아 맨홀 뚜껑을 향해 다가 갔다.
스탯이 충분했기에 맨홀 뚜껑은 쉽게 열렸으나, 구멍이 작아 한 번에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었다.
"일단 박사부터 보내! 다음엔 너! 마지막에 안드로이드!"
도미니카 경이 방패를 들어 올리고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당신은요!"
밴시 박사가 소리쳤다.
"일단 나가! 난 전에 버그와 싸운 적 있으니, 혼자서 빠져나갈 수 있어!"
도미니카 경이 버럭 소리치자, 천천히 하수도의 벽면을 잠식하던 검은 것들이 움찔거리며 멈췄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간에! 빨리 나가야 내가 도망칠 수 있을 거 아냐!"
도미니카 경의 말은 옳았다. 밴시 박사는 더 할 말이 있었으나, 늦장을 부리다간 도미니카 경이 저 검은 것에 잠식될 것 같았다.
주먹을 쥐고 이를 악 문 밴시 박사는, 히메의 도움을 받아 먼저 밖으로 나갔다.
다음으로 히메가 민첩한 도약으로 그 좁은 틈을 헤집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안드로이드가 올라가자 도미니카 경은 다시 전진하기 시작한 검은 것들과 거리를 두며 뒷걸음질을 쳤다.
저 멀리 검은 것들 사이, 어둠과 섞인 부분이 갈라지며 핏발 선 눈이 나타났다.
그 눈마저 이미지가 깨지며 더욱 끔찍하게 바뀌었다.
툭. 도미니카 경의 등에 무언가 닿았다.
도미니카 경은 바로 검을 집어넣고 방패를 등에 멘 채 뒤를 돌았다.
"도미니카 경!"
그러나 그곳에는 사다리가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끔찍한, 깨진 눈동자가 있을 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