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 [72화]작전명 : S.P.Y
* * *
도미닉 경의 조가 한참 분위기를 내고 있을 무렵.
다른 대기실에선 도미니카 경의 조가 모여 여러 겹의 모자를 쓴 코더의 말을 듣고 있었다.
"여러분들은 독재자의 처소에 잠입해 독재자 M.A.N.I.A.C을 처치하거나 그를 실각시킬 증거를 찾아야합니다."
"처소는 삼엄한 경비로 개미 한 마리 들어갈 틈도 없지만, 다른 조가 여러분들을 위해 시선을 끌어 줄 겁니다."
"임무를 완수하고 여기까지 돌아오는 것. 그러면 이벤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신 겁니다."
엄숙하게 말하던 코더는 이내 설명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과도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렇게 말하지만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아요. 사내 내부 테스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리어했거든요."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사소한 정보였지만, 도미니카 경의 조원들은 표정이 어두웠다.
"왜 도미닉 경과 같은 조가 아닌 거지?"
"오빠라고 물어봐야 하는데. 왜 조가 갈려서..."
히메와 밴시는 도미닉 경에게 볼일이 있었지, 도미니카 경과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조가 나뉘는 바람에 생긴 해프닝.
"...그, 제가 뭘 잘못했던가요?"
조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코더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 말했나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 그리 찡찡거리나, 제군들!"
도미니카 경은 이 암울한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대기실의 책상 위로 오른쪽 군화를 턱하고 올린 도미니카 경은 올라간 무릎에 팔을 기대며 조원들에게 연설을 시작했다.
"다들 보아하니 또 다른 나에게 볼일이 있는 모양인데 말이야."
도미니카 경이 여전히 여우 귀를 달고 있는 히메와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제로의 뒤에 숨은 밴시 박사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내가 또 하나의 나를 잘 아는데, 걔는 이런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당당하고 확실하게! 그리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이 또 다른 자신이기에 자신과 똑같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니까, 이번 임무 확실하게 성공하고 나서, 도미닉 경에게 당당하게 다가가! 포상이 필요하면 임무를 완벽하게 성공 시키고 머리라도 쓰다듬어달라고 부탁하던가!"
도미니카 경은 그 말을 끝으로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다시 책상 위에 올렸던 다리를 치웠다.
다시 조원들을 둘러보니, 모두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도미니카 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적어도 눈에 생기는 가득하구만. 좋은 징조야."
하나 남은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섬뜩하게 웃은 도미니카 경이 작게 중얼거렸다.
"어, 그럼 여러분? 시작해도 될까요? 저쪽 조는 이미 준비가 끝난 것 같아서 말이죠."
"물론."
도미니카 경이 이들을 대표해서 말했다.
"뭐, 그렇긴 하죠."
"네."
히메와 밴시도 떨떠름하게 말했다.
여전히 도미닉 경과 떨어진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아 있었지만,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이 조는 도미니카 경의 타고난 카리스마에 우유부단한 히메와 심약한 밴시가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나마 도미니카 경에게 위축되지 않은 이는 안드로이드 제로였으나, 제로는 박사의 명에 따르는 존재였기에 자연스럽게 도미니카 경이 대장이 되었다.
"좋습니다. 그럼 곧 이 문이 열릴겁니다. 목표지점은 바닥에 형광색 점선으로 표시되며, 목표에 화살표가 보일 겁니다. 주요 목표와 선택 목표는 따로 창으로 표시되니 참고하시고"
코더가 모자를 슬쩍 들어 그 안에 있던 회중시계를 꺼냈다.
셋, 둘, 하나. 지금. 이라고 외치자, 코더의 뒤에 있던 문이 열렸다.
"가자고. 친구들. 우리가 빨리 끝내야 도미닉 경과 빨리 만날 수 있지 않겠어?"
도미니카 경이 방패를 들고 앞섰다. 그리고 뒤에 있던 조원들을 재촉하듯 손을 흔들었다.
히메와 밴시는 그런 도미니카 경의 뒤를 따랐다.
그 뒤를 제로가 뒤따랐다.
...
도미닉 경의 조.
도미닉 경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밖을 확인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정도의 시간.
장소는 썩어가는 기둥과 뒤틀린 판자로 이루어진 뒷골목처럼 보였다.
"문제는 없는 것 같군. 이동하겠소."
도미닉 경은 뒤에 있던 이들에게 손짓했다.
[주 목표 : 다른 조 도와주기]
[여러분들은 다른 조가 침입할 틈을 만들어 주기 위해 소동을 일으켜야합니다. 최대한 크게 소동을 일으킬 수록 침입 조의 성공률이 올라갑니다.]
[필수 : 소란을 피워 시선을 끄십시오.]
[선택 : 제국 중앙 공장을 파괴하십시오.]
[선택 : 제국 석탄 창고를 파괴하십시오.]
[선택 : 제국 병참 기지를 파괴하십시오.]
[선택 : 제국 의회를 점령하십시오.]
.
.
.
도미닉 경과 그 일행들은 눈앞에 뜬 목표창을 보았다.
소란을 일으키라는 말은 일견 불친절하게 들렸지만, 도미닉 경은 그저 날뛰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필수 항목 아래 적힌 선택 항목들은 꽤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었고, 저 멀리 작은 화살표로 위치가 나타나 있었다.
아마 이 선택 항목들을 수행하면 자연스럽게 필수 항목을 이룰 수 있으리라.
"일단 병참기지나 중앙공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아 보이오."
츠키가 제안했다.
"잠입을 위해선 반드시 그 주변에 있는 병력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법. 그러기 위해선 병력들에게 민감한 곳을 타격하는 것이 좋아 보이오."
"저도 찬성이에요."
팬텀이 츠키의 제안에 동의했다.
"아마 여기 적힌 것들 중, 몇 개는 함정일지도 몰라요. 설명으로 들었을 때 우린 제국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투사의 포지션이었어요. 그렇다면 시민들과 척을 질 미션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세 사람은 미션에 대해 토론하며 깊은 전략을 수립했다.
그 사이, 반달형의 제로는 광각렌즈로 주변을 훑어보며 현재의 지형을 분석하고 있었다.
"분석 완료. 목표엔 적혀 있지 않았으나 지하를 관통하는 커다란 증기 배관이 존재하는 듯합니다. 그 배관을 터뜨리면 선택 항목 두세 개를 한 번에 깰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거 괜찮은 제안이네, 제로."
팬텀이 제로의 말에 동의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그냥 막 해 보죠. 어차피 이벤트 스테이지니까 일회성이잖아요?"
"음."
도미닉 경의 조는 여차할 때를 대비한 플랜도 세워두었다.
"좋소. 그럼 일단 가장 가까운 곳 부터 가봅시다."
"굴뚝과 사선형의 지붕으로 보아 공장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나저나 길이 좀 복잡한 것 같은데... 제로? 네비게이션 모드로 전환해."
"확인. 길 찾는 일은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도미닉 경의 조는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
"쾅! 하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발 좀 조용히 잠입할 생각은 없습니까?"
히메는 독재자의 처소까지 이어지는 비밀 통로의 문을 발로 뻥뻥 걷어차는 도미니카 경에게 핀잔을 주었다.
제국의 하수도는 모두 하나로 이어진 커다란 미로였으나, 땅에 그려진 점선을 따라 걸어가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으. 좁고 습한 곳은 질색인데..."
"긍정. 습기는 회로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밴시 박사와 제로는 이 으스스하고 축축한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임무를 위해선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이니만큼,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참으며 이 미로같은 하수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응?"
가장 뒤에서 투덜거리며 따라가던 밴시 박사는 네 갈래로 이어진 통로를 지나다가 문득 진행 방향이 아닌 곳에서 무언가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로. 저기 뭐가 있어?"
"확인 중... 스캔 결과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로의 고화질 카메라로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밴시 박사는 분명 무언가를 본 것 같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앞서간 이들을 따라갔다.
제로는 회로를 관통하는 알 수 없는 전기에 잠깐 발을 멈췄으나, 이내 습기로 인한 오류라고 판단하고 박사의 뒤를 따랐다.
모두가 지나가고 한참 후.
박사가 보았던 곳에서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검은 도형으로 된 깨진 스프라이트가 나타났다.
[LV.■5 ■■임]
스프라이트가 깨진 채 살아 움직이는 검은 도형은 부르르 떨더니 잠시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곧이어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네 개로, 네 개에서 여덟 개로 분열하며 하수도를 침식하기 시작했다.
하수도의 끝자락에서부터 시작된 침식은, 곧 균열과 깨짐, 그리고 부식으로 이어졌다.
...
"음?"
방랑무사 츠키는 목표 지점에 가기 위해 골목을 꺾다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땅을 밟는 느낌은 분명 평상시와 다름없었으나, 지금은 무언가 빈 공간이 지반 아래에 있는 듯싶었다.
하지만 그냥 빈 공간은 아니었다. 감각이 예민한 츠키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렸다.
뭐, 아직 덜 만들어졌다고 했으니 이런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지. 라고 생각한 츠키는 이 특이한 상황을 그냥 넘겨 버렸다.
다른 이들에게 위화감에 대해 말할 수도 있었으나, 지금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더 중요했으니까.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좋아. 곧 전투가 시작될지도 모르겠네요, 도미닉 경."
"같이 갑시다!"
츠키는 문득 저 멀리 앞서나간 이들을 보고 그들을 따라잡으려고 뛰어갔다.
그리고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깨진 검은 도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