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 [71화]작전명 : S.P.Y
* * *
"왜 갑자기 여우 귀를 단거요?"
"그게, 아버지께서 여우가 되라고..."
"정정. 여우같다는 말은 여우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보완. 여우라는 말은 말 그대로 여우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여우처럼 요망해지라는 뜻입니다."
"으..."
도미닉 경은 갑자기 급발진한 히메에게 급발진한 이유를 물었다.
히메는 아버지가 말한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으나, 두 제로의 말에 자신이 잘못 알고 행동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츠키는 얼굴이 빨개진 채, 벽에 머리를 박으며 오해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이벤트 스테이지를 깨면 스킨을 준다는 건가요?"
"탈 것 장비도 같이?"
그 사이, 밴시와 팬텀은 코더들에게 이번 스테이지 보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정확하게는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이들 중에 추첨으로 뽑는 거지만..."
"아무래도 재고가 남을 것 같아서 말이죠."
코더들은 생글생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이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분명히 자신들의 역작을 플레이해주리라.
그렇게 행복 회로를 최대로 돌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오퍼레이션 : S.P.Y라고 중간에 띄워서 말하는 걸 보니 무슨 약자인가?"
가만히 옆에서 대화를 듣던 도미니카 경이 의문을 가지자마자 질문했다.
"그 말대로 입니다."
여러 개의 모자를 겹쳐 쓴 코더가 말했다.
"스팀 펑크 요먼즈(Steam Punk Yeomans). 새로운 세계관의 확장이죠."
"사실 수상할 정도로 퍼주는 이벤트(Susanghaljungdoro Perzuneun Yivent)의 약자이기도 하죠. 줄여서 스파이. 처음에 붙인 임시 명칭이었거든요."
"...그 말을 줄이면 수퍼이가 되는 거 아닌가?"
"이벤트를 기획한 팀장님이 지방 사람이라서요. '스상할 증도로 파쥬는 이벵뜨' 정도로 발음하셨거든요."
코더들은 지금 모인 이들을 최대한 붙잡기 위해 있는 정보 없는 정보 다 긁어모아 대답해줬다.
"그래서, 우리 이벤트 스테이지 한 번 안하실래요?"
"이렇게나 퍼주는데? 이렇게나 재밌는데?"
바니걸 복장을 한 코더와 모자를 여러 개 겹쳐 쓴 코더는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며 반드시 영업을 성공 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한번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가장 마음이 여린 팬텀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애초에 우린 이벤트 스테이지를 경험하려고 온 거요."
"그렇지. 총선거 이벤트는 좀 그러니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긍정의 의사를 내비쳤다.
"아버지께서 이벤트 스테이지는 한 번 경험을 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하셨어요."
"음."
히메와 츠키도 혼란에서 벗어나 긍정했다.
제로 들은 어차피 박사들의 결정을 따를 것이었기에, 모든 이들이 수락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말이죠? 말 바꾸기 없어요?"
"중간에 포기하고 욕하셔도 안 됩니다?"
코더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만큼 그들의 결과물은 그들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었다.
"지금 당장 이벤트 스테이지로 보내드리죠. 분명 재밌을 겁니다. 암. 누가 만들었는데요."
"아직은 파일럿 프로젝트라 내용이 좀 빈약하긴 해도, 분명 즐기실수 있을 거예요."
모자를 쓴 코더는 공중에 창을 띄우고 무언가를 조작하더니, 그들의 앞에 포탈이 나타났다.
가장자리에는 정교한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가끔 황동 파이프에서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따라오세요! 이벤트 스테이지 첫 참가자들 입장하십니다!"
바니걸 복장의 코더가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며 포탈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포탈이 움직여 네 쌍의 인원을 삼켜 버렸다.
미처 대비도 하지 못한 채, 도미닉 경은 일렁거리는 기묘한 감각을 느끼며 포탈 안을 유영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도미닉 경은 포탈의 끝자락에 도착해 땅을 밟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다른 이들도 비슷한 시기에 왔는지, 모두 포탈을 넘어 땅을 딛고 있었다.
밴시와 팬텀만 빼고. 그들은 포탈에서 나오자마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코더 들은 그런 밴시와 팬텀을 애써 무시하며 밝은 목소리로 스테이지에 온 것을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오퍼레이션 : S.P.Y의 세계관에!"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이 스팀 펑크 세계관에서 하나의 큰 스토리를 깨시게 될 겁니다."
서로 손을 마주 잡고 하늘로 치켜올린 코더들이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두 조로 나뉘어 활동하시게 될 겁니다."
"한 조는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할 겁니다. 그리고 다른 한 조는 침입 작전을 성공해야 하죠."
"외부와 내부를 잇는 거대한 규모! 서로 협동해야 깰 수 있는 재밌는 구조!"
코더 둘은 솟구치는 흥을 참을 수 없었는지 서로의 양손을 마주 잡고 왈츠 스텝을 밟았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여러분들은 러다이탕스가 되어 독재자 M.A.N.I.A.C이 지배하는 증기 제국을 무너뜨릴겁니다."
"회로에 문제가 생긴 M.A.N.I.A.C은 당신들을 막아설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그런 독재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을까요?"
"아, 생각만 해도 너무 즐겁지 않나요?"
"정말 이 시나리오를 위해 지금도 13명의 작가가 감금... 아니, 노력하고 있답니다!"
코더들은 이제 완전히 흥분한 상태가 되어 도미닉 경의 파티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말했다.
그때, 밴시 박사와 팬텀 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러다이탕스라니. 러다이트 운동과 관련이 있나요?"
"레지스탕스랑 합쳐서 부르는 건가 보죠?"
"아, 난 이렇게 우리가 숨겨둔 피스를 찾아주시는 분이 좋더라."
"그러니까. 진짜 우리가 열심히 한 걸 알아주는 기분이야."
두 코더는 옷섬에서 손수건을 꺼내 감동의 눈물을 닦아냈다.
"정말 이름 잘 짓지 않았어요? 잠입이 들어가는데 스파이란 이름을 쓸 수 있다니."
바니걸 복장의 코더가 말했다.
"그래서, 언제 시작하는 거야? 재밌어보이긴 한데 설명이 너무 빈약하다고. 직접 하면서 알아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도미니카 경이 투덜거렸다.
도미닉 경은 겉으론 표현하지 않았으나 내심 도미니카 경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당장 시작하죠."
"아. 파일럿 프로젝트라 조는 랜덤으로 정해질 거예요. 그럼 모두 화이팅."
코더들은 자신들의 야심만만한 설명이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시무룩해지며 사람들을 각 조로 배정했다.
그 시작은 도미닉 경이었다.
새로운 공간에 도착한 도미닉 경은 고급스러운 벨벳 소파에 떨어졌다.
"여긴 어디지?"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도미닉 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동으로 된 물건들이 가득한 공간에는 삶에 찌든 눈을 하고 있으나 입은 웃고 있는 고위 관직 인물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벽에 난 문을 확인한 도미닉 경은 문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열지 못하는 문인지 모르겠으나,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긴 대기실인 모양이군."
도미닉 경은 3지역에 진입했을 때 사람들을 대기시키던 공간을 떠올렸다.
아마 여기도 그런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벨벳 소파에 떨어졌다.
한 명이 아닌, 한 명과 하나의 개체가.
"으, 제발 새로운 장소로 진입할 땐 안정적으로 보내주면 안 될까?"
"새로운 장소 진입. 주변을 탐색합니다."
짧고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과 에메랄드빛 눈을 가진 소년.
반달 모양의 금속 몸통에 커다란 보석 같은 렌즈.
팬텀과 평행세계의 제로였다.
이내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 인물은 아직 소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팬텀을 보고는 몸을 뒤틀어 소파의 옆에 착지했다.
가벼운 금속으로 된 철립과 두 자루의 검.
방랑무사 츠키도 도미닉 경의 조에 합류했다.
그럼 나머지는 다 반대편에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분명히 잠겨 있던 문이 열리더니 바니걸 복장을 한 코더가 나타났다.
"조 편성이 다 끝났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조가 해야 할 일을 알려드릴게요."
코더는 방금 전 시무룩했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작전을 설명했다.
"여러분들은 지금부터 외부를 혼란스럽게 해야 합니다. 제국의 중심부, 독재자의 거처에 다른 조가 잠입하려면 틈이 있어야 하니까요."
"분명 독재자는 여러분들을 제압하기 위해 병력을 보낼겁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조가 미션을 성공하고 빠져나올 때까지 그 병력들과 싸우시면 됩니다."
"즐거우실 거예요. 정말 다양한 기믹을 넣어 뒀거든요. 여러분 측에도, 반대 측에도."
"처음이니까 힌트를 드리자면,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이 됩니다. 잘 활용하세요."
"이상,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아, 혹시 좀 더 기분 내실 분 있나요? 세계관과 맞는 옷을 대여해드릴 수 있거든요."
도미닉 경의 조는 서로를 물그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어차피 이벤트를 즐기기로 했으니 조금 더 기분 내는 것도 좋겠지.
도미닉 경과 츠키, 팬텀과 평행세계의 제로는 거의 동시에 코더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도미닉 경의 조는 스팀 펑크 세계관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다시 대기실에 모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