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71화 (71/528)

〈 71화 〉 [70화]작전명 : S.P.Y

* * *

이튿날 아침.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기사로서 아침 일찍 일어나 수련 하던 습관 때문이었다.

"이거 너무 푹신하네. 못 써먹겠어."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긁으며 기지개를 켠 도미니카 경이 하품했다.

대충 인벤토리에서 상가에서 10크레딧에 120개를 파는 싸구려 빵 하나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던 도미니카 경은 침대에 도미닉 경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자, 상쾌한 공기와 함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이 집을 사길 잘했어. 라고 생각한 도미니카 경은 이내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잠깐,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라고 생각한 도미니카 경이 시선을 조금 더 돌리자, 한쪽 눈의 사각에 가려져 있던 도미닉 경이 보였다.

도미닉 경은 '이건 티셔츠야'라고 적힌 하얀 티셔츠를 입고 예전에 스테이지 퍼펙트 보상으로 획득한 장식물 허수아비를 향해 방패를 밀어내는 수련하고 있었다.

"일찍 일어났네.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아. 깼소?"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렸다.

둘은 꽤 경험이 많은 기사들이었으나 농노 출신이었기에 다른 기사들보다 먼저 일어나 행동해야 욕을 먹지 않았다.

둘 다 겪었고 지금도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이지만, 도미닉 경은 유독 일찍 일어나곤 했다.

"일어난 김에 아침이라도 먹겠소? 난 빵을 먹은지라서."

"마찬가지야."

도미니카 경이 손에 든 반쯤 남은 빵을 흔들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렇게나 닮은 사람이었다.

"그럼 준비하도록 하시오. 나도 준비하고 나오리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과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갑옷 거치대에 걸린 갑옷을 가지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무래도, 여성이 옷을 갈아입는데 같이 있기는 좀 뭐 했다.

오해하지 마시길.

둘 다 서로에게 그렇고 그런 감정은 전혀 없는 상태다.

둘은 평행세계의 자신이었으니, 어쩌면 남매나 가족과 다름없는 상태.

가족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부끄러움을 느끼는 건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다.

마침내 기본 장비로 단단히 무장한 둘은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서 밖으로 나가는 숲길을 터치했다.

"스테이지가 어디쯤 있다고 보시오?"

"일단 스토리 모드를 찾아보자고. 가장 유력한 곳이지."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가장 유력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스토리 모드에 도착한 둘은, 마침 입구를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이벤트 스테이지 하고 가세요! 이벤트 스테이지 한 번 하고 가세요!"

"으, 세상에. 홍보팀은 왜 공지에 장소를 기입하지 않은 거야? 다들 카드 팩이랑 선거 이벤트에 미쳐서 스토리 모드는 오지도 않는데!"

도미닉 경은 바니걸 복장을 한 채 확성기를 들고 열심히 외치는 직원을 보았다.

코더였다.

예전에 버그 해결을 위해 만났던 바로 그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코더.

반대편에는 모자 위에 모자 위에 모자를 쓴 이상한 남자가 있었는데, 아마 그가 평행세계의 코더인 모양이었다.

"저기인가 본데? 그나저나 익숙한 얼굴이네."

도미니카 경도 코더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는지 모자를 겹겹이 쓴 남자를 바라보았다.

"일단 가서 말을 걸어보는 것이 좋겠소. 이벤트 내용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그래도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주지 않을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나란히 서서 두 코더에게 다가 갔다.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제식을 맞춰 걸었기에 꽤 그 위용이 대단했다.

"여기가 이벤트 스테이지에 진입하는 곳이오?"

"어라? 도미닉 경! 여기서 보네요?"

"도미니카 경도 있네. 안녕하세요! 이벤트 스테이지하러 오셨어요?"

두 코더는 마침내 사람이 찾아왔다며 엄청 밝은 표정으로 하이 파이브를 했다.

"이제 한 쌍이네요. 네 쌍이 모여야 깰 수 있게끔 만든 스테이지인데..."

"그나저나 이벤트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더군. 혹시 내용을 좀 알려줄 수 있겠소?"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이 가지 않는단 말이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정보를 얻기 위해 두 코더에게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아."

"맞아. 스테이지 정보 하나도 기입 안 했지? 홍보팀 놈들..."

두 코더는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가 곧 홍보팀의 일 처리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쉰 코더들이 말했다.

"이번 스테이지 이름은 오퍼레이션 : S.P.Y라고 합니다."

"레이드 개발이 끝난 뒤 저희가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죠."

"이번에 이벤트 성으로 파일럿 스테이지를 만들어 보고 반응을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하필이면 홍보팀 놈들이 총선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아직 스테이지 시작도 못 해 보고 있죠."

"이번 반응을 보고 개발 방향을 정하려고 했는데."

"홍보팀이 다 그렇지 뭐."

그러면서 코더는 계속해서 홍보팀에 대한 350가지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코더는 여전히 투 머치 토커의 기질이 강했다.

하나만 있어도 시끄러운 코더가 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두 배로 투덜거리는 그들의 수다에 정신이 아득해지려 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을 구원할 사람이 나타났다.

정확히는 사람들이.

"제로가 도미닉 경에게 반갑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의 제로가 도미니카 경에게 잘 있었냐고 말합니다."

인공 지능 제로였다.

인간형의 안드로이드 코드 제로 백은 도미닉 경이 잘 아는 모습 그대로였으나, 제로의 옆에 있는 반달형의 부유하는 기계는 아마 평행세계의 제로일 가능성이 컸다.

"와 세상에. 이쪽은 안드로이드였군?"

도미니카 경도 인간형의 제로가 신기했던지 한쪽 눈을 크게 뜨며 안드로이드 제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 사람은 누구?"

도미니카 경은 안드로이드를 살펴보다가 후드를 푹 눌러 쓴 두 명을 보았다.

후드 아래로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보였는데, 도미닉 경도 도미니카 경도 그 머리카락이 마치 양털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곱슬거리고 폭신했다.

"박사님이십니다. 이 쪽도 박사님이십니다."

"저쪽은 밴시입니다. 이쪽은 팬텀입니다."

"제 말을 듣고 도미닉 경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제 말을 듣고 도미니카 경에게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합이 잘 맞는 두 제로가 박사들을 소개해 주었다.

박사들은 수줍음이 많은지 무언가 말을 할 듯 말 듯 머뭇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 혹시 당신­"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 오랜만이외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히메였다.

히메의 옆에는 가벼운 철립을 쓴 무사가 있었는데, 둘의 체형이 비슷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끊겨 버린 박사들은 시무룩해지고 말았다.

"그... 도미닉 경. 그게..."

히메는 설마 도미닉 경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인연을 만날 것이라는 아버지의 점괘가 있었지만, 아버지께서 그저 경험을 하고 오라며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히메는 아버지가 친 점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면 바로 아버지에게 점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츠키도 마찬가지였다.

츠키는 도미니카 경의 허리춤에 슬쩍 보이는 총구에 움찔했다.

해적 리얼리티 쇼크가 있는 히메처럼, 그녀도 한 가지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리고 도미니카 경의 총을 볼 때마다 그 트라우마가 발동되어 그녀의 마음을 뛰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

아버지의 점괘는 과연 용하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는 역시 현명한 분이다.

"그러니까...도미닉 경? 그... 뭐랄까... 그..."

"잠깐, 지금 네 쌍의 인원이 모였죠? 다들 평행세계의 파트너가 있는 상태죠?"

"이거 완전 이벤트 스테이지 각이죠? 다들 동의 하시죠?"

히메가 무언가를 말하고자 했으나, 코더들이 인원수를 세어보더니 호들갑을 떨었다.

그만큼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스테이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픈 마음이 컸던 것이다.

말이 끊긴 히메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방금 무엇을 말하려고 했소?"

그러나 도미닉 경은 히메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은 도미닉 경은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에 히메에게 다시 되물었다.

"네? 그, 그게... 저... 아, 그러니까..."

히메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선 당황해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밴시 박사는 그런 도미닉 경과 히메를 쳐다보았다.

둘은 무슨 관계일까? 그리고 도대체 무얼 말하려고 저리 뜸 들이는 것일까?

밴시 박사도 히메 못지 않게 대화가 힘든 사람이었으나, 이런 상황을 보는 것은 좋아하는 편이었다.

흥미진진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밴시 박사는, 곧 경악하고 말았다.

"그, 그러니까... 뿅!"

갑자기 히메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손바닥을 펼치자 히메의 머리에 여우 귀가 돋아났다.

그리고 그녀의 꼬리뼈 부근에서 탐스러운 여우 꼬리가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둔갑한 여우.

"...귀와 꼬리는 뭐요?"

도미닉 경은 갑자기 나타난 귀와 꼬리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이미 부끄러움이 한계에 다다른 히메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선 여우가 되어야 한다.'

무사시가 했던 말은 여우처럼 행동하라는 뜻이었지만,히메는 여우가 되라는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 버린 것이다.

히메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기 직전인 그때.

"...캥."

츠키도 마찬가지로 도미니카 경에게 여우 귀와 여우 꼬리를 보여 주며 부끄러움에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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