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69화 (69/528)

〈 69화 〉 [68화]작전명 : S.P.Y

* *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열렬한 팬을 만난 그때.

블랙 그룹 본사 근처에서는 방황하는 어린 양이 있었다.

"분명히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블랙 그룹의 비밀 연구소에서 나온 밴시 박사는 양털 같이 복슬복슬한 머리를 엉망으로 헝클어뜨리며 머리카락만큼이나 복잡한 머릿속을 표현했다.

자신이 잘못 생각한 걸까? 착각한 걸까?

밴시 박사는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자기 가설에 대한 의문을 쏟아내고는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닉 경. 페럴란트 출신. 징집병 출신의 기사.

오빠와 이름이 같고, 오빠와 같은 출신지에 오빠와 같은 징집병 출신.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에메랄드 색 눈.

모든 증거가 도미닉 경이 오빠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중간에 끼어든 한 여자 때문에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처음부터 찾는 수밖에..."

밴시 박사는 이내 도미닉 경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었다.

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질 뿐, 정답이 도출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밴시 박사는 이 엉망인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평소 자주가던 곳을 향해 걸어갔다.

바 올드 월드 블루스.

머리가 아플 때마다 밴시 박사는 그곳을 찾았다.

사이버 펑크 틱한 네온사인과 금속재질로 도배된 이 미래지향적인 바는 과학 기술에 매료된 밴시 박사에게 있어 가장 편안한 안식처였다.

"바텐더, 나 왔어요.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해요."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밴시 박사는 평소에 듣던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바텐더와 비슷한 분위기의 저음의 여성 목소리를 들었다.

아마 새로운 직원을 뽑은 게 아닐까? 라며 밴시 박사는 늘 앉던 바텐더 바로 앞 자리에 앉았다.

"여기 딸기우유입니다."

"곰돌이 컵 받침도 있어요."

바텐더들이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 들었다.

딸기우유. 곰돌이 컵 받침.

밴시 박사는 성인이었기에 술을 마실 수 있었으나, 도대체 무슨 맛으로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다.

밴시 박사가 투덜거리는 동안 뒤에서 딸랑.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오셨군요."

바텐더들은 들어온 손님을 향해 평소와 같이 응대했다.

밴시 박사는 오늘은 손님이 많은가 보네. 나만 알던 곳이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같이 나온 빨대로 딸기우유를 쪽쪽 빨아 마셨다.

"늘 마시던 걸로 부탁합니다."

제법 앳된 목소리. 밴시 박사는 슬쩍 고개를 눈을 돌려 자기 옆에 앉은 이를 바라보았다.

곱슬거리는 갈색의 단발이 엉망으로 엉켜있었다.

"여기 초코우유예요."

"공룡 컵 받침도 있습니다."

세상에. 바에 와서 초코우유를 찾는 사람이 다 있네.

밴시 박사는 그 엉뚱한 사람을 보며 황당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딸기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바에 찾아온 정적.

주크박스에서 나오는 오래된 재즈만이 바 내부를 돌고 있었다.

침묵 속에서 바텐더들이 각자 컵과 접시를 닦기 시작했다.

누가 더 멋지다고 단언할 수 없는 유려한 움직임.

밴시 박사는 바텐더의 손길을 유심히 바라보며 참 멋진 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복잡한 얼굴로 찾아온 것은 오랜만이군요."

컵을 다 닦은 남자 바텐더가 나비 넥타이를 매만지고 까끌한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셨나요?"

반짝이는 접시를 선반에 놓은 여자 바텐더가 조끼의 구겨진 부분을 조심스럽게 펼치며 물었다.

"그게­"

"저­"

내가 말하려는데 왜 중간에 끼어드는 거지?

밴시 박사는 자기 말을 끊고 끼어든 옆의 사람을 쳐다보았다.

옆의 사람도 밴시 박사가 자기 말을 끊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오빠?"

"...누나?"

마치 털을 깎지 않고 방치한 양처럼 엉망으로 곱슬거리는 갈색 장발의 소녀.

그리고 역시나 오랫동안 숲을 거닐다 돌아온 양처럼 제멋대로 곱슬거리는 갈색 단발의 소년.

성별은 달랐으나, 그 분위기만큼은 서로 닮아 있었다.

"아냐, 오빠는 좀 더 직모에 가까웠는데."

"누나는 항상 단발을 선호했지."

둘은 서로를 보며 각자의 형제자매를 생각했으나 이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은한 미소를 짓던 남자 바텐더가 말했다.

"이번 주간은 평행세계 이벤트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의 옆에 푸딩을 하나씩 놓은 여자 바텐더가 말했다.

"서로가 나 자신을 만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평행세계?"

"이벤트?"

소년과 소녀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의문을 표했다.

그들의 뒤에 있던 네온사인이 깜빡거리며 켜졌다.

밴시 박사는 순간 자신이 연구를 할 동안 이벤트 알림을 꺼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급하게 카드를 꺼내 공지사항을 확인한 밴시 박사는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듯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래... 그런 거였어...! 도미닉 경의 옆에 있던 건 평행세계의 도미닉 경인 거야! 이러면 아직 가능성이 있어!"

"맞아. 그렇군. 도미니카 경의 옆에 있던 건 남매가 아니라 또 다른 도미니카 경이야. 가능성은 열려 있었어!"

소년과 소녀는 또 한 번 동시에 말을 뱉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방해되는지 홱 하고 고개를 돌려 마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저기, 평행세계의 나. 내가 생각중인데 좀 조용히 해 줄 수 없을까?"

"내 이름은 팬텀이야. 팬텀 박사. 너야말로 조용히 해줄래, 평행세계의 나?"

둘은 서로를 보며 다투기 시작했다.

아마도, 동족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오른 것은 아닐까?

혹은 그녀와 그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던 자기혐오를 상대에게 풀어내는 것일까?

아직은 알 수 없었다.

"진정들 하세요. 마음의 평화를 위해 찾아온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얼마나 서럽습니까."

"여기 서비스로 한 잔 씩 더 드릴게요. 당분은 머리를 원활하게 돌리는 윤활유와 같답니다."

바텐더들은 능숙하게 이들을 달랬다.

오랜 단골이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을 보고 상대해온 바텐더들은 지금 상황에서 이들을 달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밴시 박사와 팬텀 박사는 각자의 빨대로 딸기우유와 초코우유를 쭉 빨아들였다.

절반이나 빨아들인 상태가 되어서야 나름 진정이 된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이봐, 팬텀. 만일 그 사람이 진짜 오빠라면, 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넌 그래도 여동생이니까 애교라도 부리면 되겠지, 밴시. 반대로 다 큰 남정네가 뭐라고 해야 할까?"

당분이 머리에 도는 탓일까?

서로가 평행세계의 자신이라는 걸 알아낸 둘은 비효율적인 다툼 대신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둘은 만일 도미닉 경, 그리고 도미니카 경이 어렸을 적 헤어진 가족일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정말 그들이 자기 형제자매라면, 기쁘겠지.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헤어져 있던 상태에서 다시 만났을 때, 과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둘은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다.

"바텐더. 조언이라도 해 줄 수 있어?"

"그래. 바텐더는 현명하니까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지도."

결국 생각의 흐름이 막힌 둘은 바텐더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글쎄요."

남자 바텐더가 볼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다른 집안의 일에 참견하기는 그렇지만­"

여자 바텐더가 다 마신 컵을 가져가며 말했다.

"우선순위는 만났을 때의 인사가 아니라, 일단 만나서 가족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요."

남자 바텐더가 컵을 넘겨받아 싱크대에 놓았다.

"원래 진정으로 오랜만에 재회했을 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계획했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답니다."

여자 바텐더는 바 아래에서 새로운 컵을 집어 들었다.

"만일 정말 진정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말을, 그대로 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바텐더들의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조언이었으나, 믿음직한 저음의 목소리는 그 말에 신뢰성을 높여주었다.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말..."

"일단 만나서 진짜인지 확인한다..."

둘은 박사였고, 지금 상황에서 가장 비슷한 느낌의 단어를 떠올렸다.

이론과 실험.

생각하고 고뇌하며 새로운 사실에 대해 예측하는 '이론'.

그리고 그 예측을 실제로 행해 결과를 알아내는 '실험'.

이론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실험에서 변수가 일어나 이론이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실험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이론이 없다면 방향성을 상실하기도 한다.

자신들은 현재 이론만 세웠을 뿐, 아직 실험해 보지는 않은 단계.

이제 실험을 통해 변수와 틀린 부분을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밴시 박사와 팬텀 박사는 머릿속이 명확해졌다.

"고마워. 바텐더."

"언제나 도움이 되네."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위에 팁을 포함한 크레딧을 올려 두었다.

그리고 바텐더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이론이 명확하게 정립 된 이상, 남은 건 빠른 시일 내로 실험을 하는 것만 남았다.

밴시와 팬텀은 블랙 그룹 비밀 연구소를 향해 뛰어갔다.

오랜 연구로 인해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박사들은 직접 대화하기엔 너무 심약했기에 그나마 도미닉 경, 그리고 도미니카 경과 마주친 적 있는 제로를 통해 접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로는 연구 시설에 있었고.

바텐더들은 박사들이 떠나간 자리를 치우며 은은한 미소를 띄웠다.

박사들의 실험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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