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67화]마이 리틀 유니버스
* * *
도미니카 경은 팔을 뻗은 자세 그대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을 들고 있었다.
참모장은 총구에서 튀어나온 산탄을 건틀릿으로 막아 냈으나, 상태 이상 제압은 그대로 들어갔다.
"이... 비... 열... 한..."
"이상하네. 제압에 말이 느려진다는 설명은 없었는데."
도미니카 경이 총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후 불어내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리고 도미닉 경을 향해 곁눈질로 신호를 보냈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신호를 알아듣고 행정관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큭. 아직 캐스팅이 덜 되었"
행정관은 달려오는 도미닉 경을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도미닉 경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깊숙이 행정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다고 생각했나?"
행정관은 코앞에 다가온 도미닉 경을 향해 표정을 바꿨다.
곤란한 표정은 연기였다. 도미닉 경을 끌어들일 연기.
도미닉 경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이미 방패가 행정관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벽에 막힌 방패.
"마법사가 캐스팅을 보호할 아티팩트 하나 없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렇다.
행정관은 자신이 마법사이며, 마법사가 가장 취약해질 때가 바로 캐스팅 할 때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장신구 슬롯엔 캐스팅 중 공격당할 시 보호막이 생성되는 아티팩트를 끼웠던 것이다.
딜러였다면 몇 번의 추가 공격이나 특수 능력으로 캐스팅 이전에 보호막을 깰 수 있겠지만, 도미닉 경은 탱커였다.
캐스팅이 끝날 때까지 보호막을 뚫을 수단이 없었다.
"마침내 이 무례한 것들에게 진정한 마도의 힘을 보여 줄 수 있겠구나."
도미닉 경은 필사적으로 검으로 보호막을 내려쳤으나 약간의 흠집만 남은 채로 행정관의 캐스팅이 끝났다.
행정관의 뒤에 떠 있던 책들과 양피지들 위로 기이한 도형이 떠오르며 마법의 화살들이 장전되었다.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지."
평소라면 이 정도로도 충분히 과잉 화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탱커들이었다.
행정관은 최선을 다해 화력을 최대한 높이기로 마음먹었다.
[행정관 쯔바이가 [자크 대공국의 칙령]을 사용합니다. 마법의 화살의 개수가 증가하며, 피해의 일부가 관통 피해로 들어갑니다.]
행정관이 가진 궁극의 기술.
칙령을 발표하자 등 뒤에 엄청난 길이의 양피지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알 수 없는 신비한 글자들로 가득한 칙령에 마법적인 도장이 찍히자, 행정관의 등 뒤로 추가적인 책들, 그것도 기존의 책 두께의 두 배는 될 법한 책들이 나타났다.
"내 콤보에는 자비심 따윈 없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하나하나 엄청난 위력을 가진 마법의 화살을 보며 방패를 몸 앞으로 내세웠다.
화살 하나하나에 담긴 위력이 만만치 않아 보였으나, 그는 이보다 더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마족들과도 싸워왔다.
"흐."
그래. 그는 지금 상황에서 행복함을 느끼고 있었다.
힘들고 고된 전투일수록, 도미닉 경은 더 행복해진다.
과도한 행복으로 인해 시야가 조금 좁아지긴 했으나, 도미닉 경은 한쪽 눈을 빠르게 굴리며 화살들을 쳐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이제 죽어라, 무례한 것."
책에서 모든 화살들이 발사되기 시작했다.
"방패 들어!"
아직 제압 디 버프가 걸려 있는 참모장을 걷어차 일어나지 못하게 하던 도미니카 경이 달려와 바로 옆에 섰다.
하나의 방패보다는 두 개의 방패가 더 나은 법이다. 이는 페럴란트의 병사라면 꼭 배우는 진리 중 하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화살을 막을 준비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방패로 막아야 할 부위가 적어지기 때문이었다.
마침 뒤에선 참모장이 제압 디 버프가 풀린 상태로 둘을 향해 주먹을 앞세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그 화살과 주먹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닿는 일을 없었다.
"살려주세요! 도적이야!"
골목길에서 달려나온 소녀가 이 격렬한결투가들 사이를 지나갔다.
"거기 서라! 지금 서면 얌전히 죽여주마... 억!"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도적 떼가 나타나 소녀가 지나간 길을 따라갔다.
그리고 맹렬하게 발사된 마법의 화살들은, 그 도적 떼를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 그리고 행정관은 갑자기 일어난 해프닝에 놀라 결투 중이었다는 사실도 잊고 멍하게 쓰러진 도적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직 결투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등 뒤에서 달려오는 참모장이 남았던 것이다.
"납치범 놈! 한눈을 팔다니!"
도미닉 경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미 자기 코앞에 다가온 참모장의 주먹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도미닉 경은 급하게 방패를 내세웠으나, 참모장의 주먹이 더 빨랐다.
그러나 예상하셨겠지만, 주먹이 닿는 일은 없었다.
"왜 다들 누워 있 억!"
크게 도약해 골목에서 튀어나온 도적 두목은 갑자기 나타난 주먹에 맞은 후, 도미닉 경의 방패의 경사를 따라 빗겨져 날아갔다.
그리고 한 번 크게 꿈틀하더니, 축 늘어지고 말았다.
결투 도중 일어난 황당한 상황!
이젠 참모장마저 갑자기 나타난 도적 두목을 때리며 느낀 손의 기묘한 감각에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건틀릿을 매만졌다.
이 열혈 결투가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건, 골목에서 도망쳐 나온 소녀의 목소리였다.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 도미닉 경? 도미니카 경?"
소녀의 정체는 아임 낫 리틀이었다.
아임 낫 리틀은 도망치던 도중 도적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개를 돌린 아임 낫 리틀은 쓰러진 도적 떼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러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아임 낫 리틀은 자신을 도와준 이들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크게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아, 골목에서 봤던 그...!"
"또 쫓기고 있었군. 아무래도 그때 에스코트 해드렸어야 했소."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도 이 소녀가 낯이 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골목에서 도적들에게 잡혀 있던 소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와! 세상에! 도미누스 트리스메기스투스! 세 번 위대한 도미닉 경! 세 번 위대한 도미니카 경!"
아임 낫 리틀은 오늘만 해도 세 번이나 자신을 구원해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을 향해 자신만 아는 말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도적에게서 한 번, 카드 팩으로 한 번, 그리고 또 이번 한 번.
첫 만남은 우연, 두 번째 만남은 인연, 세 번째 만남은 필연이라고 했던가.
아임 낫 리틀은 자신이 이들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이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거기... 소녀 분? 지금 결투 중이니 비켜 주시게."
"그래. 저 무례한 것에게 예의를 가르쳐야"
참모장과 행정관은 결투를 막아선 소녀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부탁했다.
강제로 소녀를 치워 버리기엔 마왕과 대공의 최측근이라는 명예가 발목을 잡은 탓이다.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렸다.
참모장과 행정관은 고개를 돌려 박수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
"...!"
마왕과 대공이 팝콘 통을 내려놓고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얼굴에 만족스러운 홍조가 띄워진 마왕과 두 눈을 크게 뜨고 만족한 눈썹을 한 대공은 싸움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이 놀라운 결투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얼마나 열중해서 봤던지 마왕과 대공의 볼에는 팝콘 부스러기가 엉망으로 붙어 있었다.
"...마왕님께서 만족하신 모양이군."
"흥. 무례한 것. 대공님의 은총으로 살아남은 줄 알아라. 다음엔 반드시 네놈에게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말 것이야!"
마왕과 대공의 찬사에 머쓱해진 참모장과 행정관은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악당다운 말을 건네고는 자기 주군들에게 돌아갔다.
"아이고, 마왕님. 이렇게 막 뭘 묻히고 다니시면 마왕님의 위엄이"
"대공 전하! 팝콘은 하루에 하나만 드시라고 했잖습니까! 오늘 푸딩은 없습니다!"
"!"
"!"
참모장은 안주머니에서 고급스러운 실크 손수건을 꺼내 마왕의 볼에 묻은 팝콘 부스러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행정관은 대공의 절제심을 위해 큰 마음을 먹고 저녁에 올릴 푸딩을 뺄 각오를 다졌다.
마왕과 대공의 커다란 눈망울이 촉촉해지며 일렁거렸으나, 참모장은 빌런답게, 행정관은 충신답게 주군의 슬픔을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돌아가시지요. 가는 길에 사탕이라도 사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눈물을 뚝! 그치세요."
"!"
"푸딩은 없지만... 대신 쿠키 하나는 괜찮을 겁니다."
"!"
그러나 그들은 주군에게 충실한 신하.
결국 주군의 기대를 배신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 허무한 결과에 대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행정관은 왜 저리 허당이오?"
"그러는 참모장이야말로 왜 저렇게 허당이지?"
이 엉망진창인 결과를 서로의 결투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서로에게 이 결과의 원인을 미루고 있을 때, 눈치를 보던 아임 낫 리틀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저... 여기에다가 싸인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성좌 아임 낫 리틀은 오늘 뽑은 도미닉 경의 카드와 도미니카 경의 카드를 네임펜과 함께 내밀었다.
아임 낫 리틀은 그들의 열렬한 팬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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