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 [66화]마이 리틀 유니버스
* * *
"떴다아아아아아!"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카드가 나오자, 성좌 아임 낫 리틀은 환호성을 질렀다.
분명히 운명이 자신의 열렬한 팬심을 보고 소원을 이뤄 준 것이 틀림없었다.
심지어 도미닉 경 카드는 2장! 소숫점 7자리의 제곱!
아니, 도미니카 경 카드까지 합쳐 세 제곱!
그녀의 기쁨과 환호성도 세 제곱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떴...다고?"
"신종 기만질인가?"
현재 도미닉 경을 뽑으려고 수백, 수천 팩을 까고 있던 성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는 사실을.
기쁨이 넘쳐흘러 분위기 파악 못하던 아임 낫 리틀은 뒤통수가 따가워지는 감각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 자리엔 흉흉한 눈빛의 성좌들과 개척자들의 냉혹한 시선들이 있었다.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성좌 아임 낫 리틀에게 있어, 그 시선들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망자들의 것처럼 보였다.
"어...비밀 통로 필요하냥?"
고양이 수인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임 낫 리틀에게 물었다.
아임 낫 리틀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 수인이 잡아끌기도 전에 아임 낫 리틀은 책상을 뛰어넘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친다! 잡아!"
살아 있는 카드 팩의 망자들이 몰려들었으나, 거래소의 방벽이 가로막았다.
성좌들과 개척자들은, 마치 예리고의 성벽을 두드리는 좀비들처럼 방벽에 분풀이를 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이쪽으로 가라냥!"
고양이 수인이 뒷문을 열었다.
아임 낫 리틀은 살면서 가장 빠른 속도로 문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무작위 좌표로 이동되는 비밀문이 작동하며 아임 낫 리틀이 거래소에서 사라졌다.
"제길! 성능이라도 보여주고 가!"
아임 낫 리틀이 문에 들어가기 전, 누군가가 외친 절규였다.
아임 낫 리틀은 달리고 또 달렸다.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달렸다.
이윽고 사람이 없는 으슥한 골목길에 도착했을 때, 더 이상 달리기에는 지쳐 버린 아임 낫 리틀은 그 자리에 멈춰 숨을 골랐다.
"여기까진 오지 않겠지.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아임 낫 리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 급하게 달린 나머지 주변을 살피지 못해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가차랜드의 골목은 미로처럼 얽혀 있어 위치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임 낫 리틀은 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켰다.
일단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골목이라니. 또 도적이 나오진 않겠지."
플래그.
"돌아가면 꼭 도미닉 경에게 감사 선물을 보내야지."
플래그.
"이것 봐요. 도미닉 경이에요. 멋지지...?"
플래그의 연속.
아임 낫 리틀은 방금 뽑은 도미닉 경의 데이터를 꺼내 옆에 있는 이에게 자랑했다.
"그래. 멋지군. 가지고 싶을 정도로."
섬뜩한 감각이 아임 낫 리틀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삐걱거리며 고개를 돌린 아임 낫 리틀의 눈에 이빨이 몇 개 빠진 모히칸이 보였다.
"그러니까, 이 도적님에게 다 적선하고 가라고."
도적이었다.
도적은 양손에 하나씩 든 단검을 슉슉 휘두르며 아임 낫 리틀을 위협했다.
아임 낫 리틀은 남은 돈이라도 넘겨줘야 하나 생각했으나, 도적의 말에 마음을 바꿨다.
"돈만 줄 거라면 집어쳐. 그럴 거면 죽이고 다 가져가는 게 나아."
아임 낫 리틀은 공포에 질리다 못해 도적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도적도 아임 낫 리틀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아임 낫 리틀은 주머니를 뒤져 크레딧이 담긴 주머니를 꺼냈다.
"그래. 협조적이군. 얼마나 좋아."
도적이 비열하게 웃으며 그 주머니를 가져가려하자, 아임 낫 리틀은 주머니를 도적의 얼굴에 집어던지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살려 줘요! 도둑이야!"
"이,이익! 잡아! 잡아서 오체를 분시해 버려!"
도적의 얼굴에 뿌려진 크레딧 동전들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으나 자존심이 상한 도적이 자기 부하들에게 외쳤다.
골목길마다 잠복해 있던 도적의 부하들이 나타나 아임 낫 리틀을 쫓아가기 시작했다.
도적은 그런 부하들을 보더니, 땅에 떨어진 크레딧 동전들을 주섬주섬 주웠다.
티끌모아 태산인 법이다.
...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참모장과 행정관의 흉흉한 분위기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역시나. 귀족들은 이런 거 안 해주던데."
"그야 징집병이나 배우는 기술 아니오."
자연스럽게 방패의 모서리를 맞댄 둘은 참모장과 행정관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납치범 놈...! 저번에 내게 준 설욕을 갚겠다!"
"그래! 무례한 것, 저번엔 비열한 수에 당했지만, 이번엔 다르다!"
참모장은 마도 공학 건틀릿 MK.5를 꺼내 장착했다.
저번에 도미닉 경에게 진 것은 장비 탓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행정관도 두꺼운 책과 둘둘 말린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신비한 도형이 두루마리에서 튀어나와 은은한 마법의 빛을 뿜어냈다.
[참모장 아인츠가 특수 기술 [마도 공학]을 발동합니다. 마도 공학 기술이 적용된 장비의 성능이 상승합니다.]
[행정관 쯔바이가 특수 기술 [공학적 마법]을 발동합니다. 마법이 연계될수록 추가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전열 권사와 후열 법사의 조합.
오로지 공격 일변도의 완성도 높은 진법이었다.
그러나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둘 다 탱커.
딜을 버티는 데에는 이골이 난 이들이었다.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의 특수 기술 [기수]가 발동되었습니다. 아군이 받는 피해가 감소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평행세계의 차이점이 드러났다.
패시브는 도미닉 경의 기수 하나만 발동한 것이다.
"도미니카 경. 도미니카 경은 혹시 액티브요?"
도미닉 경은 특수 기술을 얻었을 때 알아낸 지식을 더듬어 말했다.
"마음에 들 거야. 꽤 괜찮은 능력이지."
도미니카 경은 섬뜩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의 능력을 모른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으나, 누구나 비장의 한 수 정도는 숨기는 법이었다.
"놈!"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이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느꼈는지 잔뜩 화가 난 참모장이 땅을 박차고 빠르게 돌진했다.
순식간에 도미닉 경의 앞에 도착한 참모장은 힘의 차이로 방패를 부숴 버리겠다는 듯 방패를 향해 건틀릿을 휘둘렀다.
"어림없지."
도미닉 경만 있었더라면 참모장의 공격은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도미닉 경의 옆에는 도미니카 경이 있었고, 도미니카 경은 자신의 방패로 도미닉 경의 방패를 살짝 밀어 경사를 만들었다.
정확한 점을 향해 나아가던 주먹은 앞으로 살짝 기운 방패의 경사에 미끄러져 허공을 갈랐다.
자연스럽게 참모장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기회요!"
도미닉 경은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도미닉 경에게 도미니카 경이 있듯, 참모장에게도 행정관이 있었다.
날아오는 마법의 화살.
도미닉 경은 눈앞에 점처럼 보이는 화살에 검의 궤도를 급하게 바꿔 그 화살을 쳐 냈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행정관의 등 뒤에 수많은 책과 양피지가 공중에 뜬 채로 펼쳐져 있었다.
"무례한 놈이 더 마음에 안 드니 이번만큼은 협력해주지."
행정관은 작게 주술적인 언어를 뱉었다.
그러자 하늘에 떠 있던 책과 양피지들이 빛나더니, 수많은 빛의 화살들이 나타났다.
"상황이 좋지 않소."
도미닉 경이 말했다.
"하지만 재밌군."
흐. 하고 도미닉 경이 웃었다.
저번에 겪었던 참모장과의 결투는 꽤 허무했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 같았다.
"그래. 하지만 행정관의 마법이 문제야. 들었다시피 이동기 없는 탱커에게는 위협적이지."
도미니카 경이 흐. 하고 웃었다.
그녀 역시도 행정관과의 결투가 흥미로웠던 것이다.
그 사이 자세를 바로잡은 참모장이 행정관 곁으로 복귀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우린 꽤 시너지가 출중한 것 같군."
"나도 인정하기 싫지만, 구성도 나쁘지 않아."
참모장과 행정관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노인은 눈빛으로 서로의 작전을 공유했다.
서로에게 잘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둘은 평행세계의 자신이었기에 충분히 계획을 읽어낼 수 있었다.
"먼저 가지."
"조금만 버티게."
행정관이 영창을 시작했다.
그리고 참모장이 그런 행정관의 영창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사이로 달려들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도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 역시 평행세계의 자신이니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도미닉 경이 달려드는 참모장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 방패를 들이밀었다.
이는 참모장의 공격 타이밍을 엇갈리게 하려는 수였으나, 참모장은 저번처럼 방심하지 않았기에 그저 방패를 흘리며 도미닉 경의 뒤로 돌아갔다.
도미닉 경은 방패를 당겨 모서리를 참모장에게 향하게끔 휘둘렀다.
그러나 참모장은 역시나 이 수를 읽고 모서리를 잡아 바깥으로 밀쳐 냈다.
도미닉 경의 자세가 흐트러졌다.
얼마나 강하게 밀쳐 냈던지, 도미닉 경은 중심을 잃고 바닥에 손을 짚었다.
"위기는 곧 기회지."
도미닉 경이 위기에 처하자, 마침내 도미니카 경은 숨겨둔 한 수를 꺼냈다.
[페럴란트의 도미니카 경이 특수 기술 [충격과 공포]를 발동합니다.]
특수 기술이 발동된다는 말이 들리자마자 도미니카 경의 방패가 은은하게 빛났다.
도미니카 경은 바로 참모장을 향해 달렸다.
"윽!"
전속력으로 달려 충분한 위력을 가진 방패치기가 참모장을 덮쳤다.
[참모장이 0.5초 동안 기절 상태에 빠집니다!]
위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나, 참모장은 온몸을 관통하는 저릿한 감각에 순간 신체의 통제권을 잃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그러나 도미니카 경의 기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방패치기로 '충격'을 보여줬으니, 이제 '공포'의 차례였다.
도미니카 경은 허리춤의 가방에서 기사의 무기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을 꺼냈다.
탕!
[참모장이 [제압] 상태 이상에 걸렸습니다! 30초, 혹은 엄폐물에 숨을 때까지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크게 감소합니다.]
도미니카 경이 꺼낸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야말로 '공포'에 어울리는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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