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63화]마이 리틀 유니버스
* * *
"그러고 보니 침대를 사려고 상업지구에 온 건데 말이야."
"당신도? 그나저나 둘이 되었으니 침대를 두 개를 사야 하는지 고민이오."
"이벤트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텐데 두 개는 과소비 아닐까? 하나를 사서 같이 쓰자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사소한 잡담을 나눴다.
둘은 성격이나 성향이 조금 달랐지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친해졌다.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도 한몫 했으나 기묘한 동질감을 느낀 탓이었다.
도미닉 경은 농노 출신의 기사로서 편하게 말을 터놓고 대화할 기사가 없었다.
그나마 기사들이 데리고 다니는 종자들과는 편하게 대화했으나 종자들은 도미닉 경을 대놓고 꺼려 하거나 예의를 차리는데 급급했기에 격식없는 잡담은 나눌 수 없었다.
도미니카 경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으나, 마찬가지의 이유로 도미닉 경이 편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전투 수녀단에 들어가 여성들의 보이지 않는 암투 사이에서 살아왔다.
말 한마디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도태되는 곳. 수녀단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도미닉 경은 생각한 바를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었고, 오랜만에 쓸데없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는 대화를 나누며 호감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서로 손님이나 다름없으니, 주인과 같이 자는 건 예의에 어긋나오."
"우리가 같은 삶을 살아왔다면, 건초더미가 뽀송뽀송한 것만으로도 행복해 했을 거잖아. 침대 같이 쓰는 것 정도면 정말 사치인 거지."
"그럴지도. 응?"
도미닉 경은 도미니카 경과 대화하던 도중 싸우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도미니카 경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도미닉 경과 눈을 마주쳤다.
둘은 말없이 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둘 다 호기심이 많은데다가,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좀이 쑤시는 성격이었다.
"네 이놈! 마왕님의 행차시다! 길을 비키지 못할까!"
"뭐라고! 네놈이야말로 대공이자 적법한 용사님의 행차를 막아서다니! 무엄하다!"
도미닉 경은 큰길을 막을 정도로 큰 인파를 보았다.
다들 무슨 일인지 구경하러 나온 모양새였다.
"실례하오."
"잠깐만, 좀 비켜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인파를 뚫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마침내 가장 앞 줄에 도착한 둘은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
"!"
도미닉 경은 2등신의 말랑말랑한 마왕 뚜 르 방이 자신과 비슷한 이를 보며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것을 보았다.
반대편에는 금발에 작은 왕관을 얹고 털달린 붉은 망토를 입은 2등신의 말랑말랑한 이가 있었는데, 허리에는 스폰지로 된 검을 차고 바퀴 달린 장난감 조랑말을 탄 채 뚜 르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는 참모장과 외눈 안경을 낀 노인이 목에 핏줄을 세우고 서로를 삿대질하며 비난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마왕님이 가장 완벽하며, 이는 그 귀여움으로 증명할 수 있다!"
"감히 대공님을 두고 세계 최고의 귀여움을 논하다니 뻔뻔하구나!"
도미닉 경은 아마 반대편의 인물들이 평행세계 이벤트로 나온 뚜 르 방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세세히 뜯어보면 서로 달랐으나, 누가 보더라도 비슷한 부류였으니까.
도미니카 경도 그렇게 생각한 건지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뽀 르 작 대공과 그 행정관이야. 사천왕 중 세 명을 심장마비로 물리친 거물이지. 그 공로로 대공직을 받았더라고."
"마왕 뚜 르 방. 뒤에 있는 이는 참모장이오. 전대 마왕이 귀여움을 이기지 못해 마왕직을 물려줬다는 이야기가 있소."
둘은 서로가 가진 정보를 교환했다.
서로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정보의 교환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 사이, 뚜 르 방은 뽀작뽀작 걸어가더니 주머니에서 테니스 공을 꺼냈다.
뽀 르 작은 장난감 조랑말을 끌고 뚜방뚜방 걸어가더니 검집을 쥐고 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바라보고 있던 관중들이 한 발자국 물러날 정도였다.
"하! 보아라! 우리 마왕님께서 너의 무례함을 징치하고자 직접 행차하시는구나!"
"대공님이야말로 너의 헛소리를 듣고 더 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셨다!"
여전히 참모장과 행정관은 유치한 말싸움하고 있었고.
이 팽팽한 기 싸움에서 먼저 움직인 쪽은 마왕이었다.
양손에 테니스 공을 꺼낸 마왕은 용사를 노려보더니, 이내 테니스 공을 위로 던졌다.
용사는 검 손잡이를 잡고 단숨에 벨 듯 온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그 작고 귀엽지만 전혀 귀엽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마침내 테니스 공이 공중에서 멈추고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상황이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
"!"
테니스 공들은 정확하게 마왕의 뿔에 꽂혔다.
뾰족한 뿔에 사람들이 다치면 안 되기에 외출할 때면 참모장이 뿔 끝에 안전장치를 달아주었으나, 마왕은 무려 혼자서 그 일을 해낸 것이다.
마왕은 해냈다는 성취감과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자신만만함을 그 말랑말랑한 얼굴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왕의 볼이 살짝 상기된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을 드러냈다.
용사는 눈이 휘둥그레져 열렬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참 박수를 치던 용사가 검을 뽑았다.
그러나 그건 검이 아니라 막대사탕이었다.
용사는 장난감 조랑말을 끌고 마왕에게 다가가 막대사탕을 건네주었다.
막대사탕을 받아 든 마왕은 참모장 몰래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막대사탕을 인벤토리에 숨겼다.
"!"
"?"
그들의 고차원적인 언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으나, 분위기로 유추할 수는 있었다.
마왕과 용사는 서로에게 다가가 포옥 안아주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맞이하듯이.
"보아라! 우리 마왕님께서 용사를 감화시키셨다! 네놈은 끝이야!"
"아니! 그 반대다! 우리 용사님께서 마왕을 정화시킨 것이다!"
여전히 참모장과 행정관은 유치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그래도 귀여우니 괜찮지 않을까?"
도미닉 경은 삭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도미니카 경은 도미닉 경보단 감성적인 사람이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두 사람의 반응과 다를 건 없었다.
이 황당한 전개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우니 괜찮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꽤 재밌는 걸 봤네. 라며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칭 세상에서 가장 치열한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참모장과 행정관에게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
"!"
"?"
"...?"
마왕과 대공은 여전히 대화를 나누는 듯 움직임과 표정이 바뀌고 있었다.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은 이제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으나, 묘하게 빠져드는 둘의 행동을 조금만 더 지켜보기로 했다.
"!"
"!"
문득 마왕이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마왕이 도미닉 경에게 뽀작뽀작 걸어와 인절미같은 손을 뻗었다.
저번에 사탕을 준 사람이다! 라는 표현이었으나, 마왕의 고차원적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도미닉 경은 그 행동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또 사탕을 달라는 거요? 아쉽게도 지금은 계피맛 사탕 밖에 없어서 말이오."
도미닉 경은 그 행동을 줘! 라고 판단했다.
마침 주머니에는 격렬하게 움직인 후 당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계피맛 사탕이 몇 개 들어 있었으나, 뚜 르 방에게는 너무 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
마왕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한 도미닉 경의 말에 실망했으나, 생각해 보면 마왕은 사탕을 먹고 싶었다.
그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에 의해 마왕은 전혀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마음에 든 해석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공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
도미니카 경은 장난감 조랑말의 바퀴를 끌며 뚜방뚜방 걸어오는 대공을 보았다.
대공은 도미니카 경을 올려다보더니 스폰지로 된 검을 들고 휘둘렀다.
또 한 번 자신과 대련을 하자는 표현이었으나, 도미니카 경은 그런 대공을 바라보다가피식 웃으며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그래. 용사님 같네. 그동안 열심히 했구나?"
도미니카 경은 착한 아이를 칭찬하듯 뽀 르 작 대공을 꼭 안아주었다.
"...!"
말랑말랑한 뽀 르 작 대공의 볼에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다.
도미니카 경의 단련된 흉부는 그 자체로 위험한 무기였다.
뽀 르 작 대공은 그 엄청난 위압감에 놀라 팔다리를 버둥거리다가 곧 추욱 늘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위압감에 놀란 것치고는 조금 행복해 보이기도 했다.
"네놈, 마왕님께 무슨 짓이냐!"
"대공님에게서 손을 떼라! 무엄하다!"
참모장과 행정관.
이 노인 콤비는 서로 싸우던 중에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에게 납치당한 마왕과 용사를 보았다.
실제로는 전혀 납치가 아니었으나, 과보호로 무장한 이 두 노인은 생각의 흐름의 가운데 토막 없이 납치라고 결론을 지어 버렸다.
그만큼 그들이 모시는 이는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던 탓이 컸다.
참모장은 도미닉 경을 보며 콧잔등을 쓰다듬었다.
"네놈, 또 네놈이구나. 저번에 당한 상처가 아직 욱신거린다..."
도미닉 경은 참모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결투라고 할 수 있던가? 그저 처절한 개싸움 아니었던가.
그러나 참모장은 그때를 결투라고 지칭했고, 그 처절했던 결투를 생각하며 건틀릿을 소환했다.
반면.
"무례한 것. 저번에도 내게 굴욕을 주더니, 이젠 대공님을 납치해?"
행정관은 도미니카 경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미니카 경이 피식 웃었다.
"아직 모자랐나 봐? 2성에게 당하고도 입이 살아 있는 걸 보면."
도미니카 경이 행정관의 하체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에 움찔하며 다리 사이를 양손으로 가린 채 움츠러들었던 행정관은, 곧 본능적으로 행한 보호 본능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분노하며 화려한 책을 꺼내 들었다.
"네노옴!"
참모장과 행정관, 그리고 도미닉 경과 도미니카 경의 태그 매치! 어떻게 보면 2차전!
그 처절하면서도 화려한 막이 올라가려고 하고 있었다.
"?"
"!"
물론, 마왕과 대공은 어디서 꺼낸지 모를 팝콘을 교환하며 구경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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