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59화]리미티드 에디션
* * *
"뭐, 저런 식으로 어그로를 끄는 건 오히려 내용이 별로지.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모으려다 제대로 된 정보도 왜곡하거든."
경악하는 도미닉 경을 보며 용이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튼, 가차 풀에 등록하려고 온 거지? 도미닉 경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이틀 뒤 이벤트 시작이 대목이거든. 조금만 더 힘써서 픽업까지 간다면 충분히 좋은 결과가"
"그 전에, 가차 풀이 뭔지 설명을 듣고 싶소."
용은 도미닉 경의 말을 듣고 저 멀리 도넛을 먹기 시작한 왈록을 째려보았다.
왈록은 그 시선을 느꼈으나 애써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도넛을 먹었다.
"저 친구가 설명하기 귀찮다고 내게 떠넘겼구만."
용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쩐지 거절할 수 없는 부탁 방법을 쓸 때부터 알아봤어."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이라."
도미닉 경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뒷골목에서 들어오는 것이 부탁 방법이라는 것일까?
"왈록과 나와의 약속이지. 이미 왈록에게 받은 은혜는 다 갚았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필요하면 저 방법을 쓰거든."
용은 차마 왈록을 내치지 못하는 자기 여린 마음을 탓했다.
"아무튼 가챠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했지."
어디부터 말하면 좋을까. 라며 용은 수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가차랜드에서 가치를 산출하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가챠 풀일세. 바로 자네의 정보를 넣고 다른 이들에게 공개하는 작업이지."
도미닉 경은 시작부터 어려운 말에 어지러웠으나 일단 모두 듣고 질문하기로 했다.
이렇게 운을 뗀 경우는 중간에 설명을 끊는 순간 더욱 혼란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차 풀은 다른 사람이 당신의 정보를 뽑아 복사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네. 뭐라고 해야 할지. 굿즈나 카드. 혹은 포스터 같은 느낌일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진보한 경향이 있기는 한데..."
용의 설명이 점점 장황하게 길어졌다.
결국 도미닉 경은 참을 수 없었는지, 지금까지 이해한 것만 말했다.
"그러니까, 나에 대한 정보를 집어넣고, 다른 사람이 그 정보를 '뽑아' 간다는 거요?"
"그렇지. 요약하자면 그렇게 볼 수 있겠군."
도미닉 경은 어중간하게 말하는 용의 화법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으나, 현재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은 용이었다.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을 알기 전까진 용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말로 하자니 좀 어려운데, 실제로 해 보면 바로 알걸세. 뜻밖에 행동으로 배우면 더 쉬운 경우가 있는 법이지."
용은 도미닉 경과 자신 사이에 하얀 카드 하나를 꺼내 내려놓았다.
"자네의 카드를 여기 대게. 그럼 자동으로 카드가 완성될 거야. 일단 하나를 실험적으로 만들어 보고 다음 카드를 만드세."
용의 말은 설명을 한참 뛰어 넘었으나 해 보면 알 거라는 말을 믿고 카드를 하얀색 카드에 대었다.
그러자 하얀색 카드에서 금색의 빛이 나더니 도미닉 경의 얼굴이 그려진 카드가 나타났다.
자기 카드와 다른 점은, 뒷면에 시스템 메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돌 같은 게 달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바로 자네의 복사본일세. 자네의 정보를 담고 있지. 그리고 이걸 상자에 넣고... 이번엔 설명을 위한 것이니 자네 카드만 넣어 두겠네. 단차로 해보지."
용은 카드를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약간의 가짜 가차석을 집어넣자 상자에서 빛이 나오더니 자기 카드가 튀어나왔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카드는 잠깐 도미닉 경의 얼굴이 그려진 면을 보여주더니 사라졌다.
"아직 등장 장면과 등장 대사가 없기에 바로 확인 절차가 되었지만 잠시만 기다려보게."
용은 다시 상자에 도미닉 경의 카드를 넣고 가짜 가차석을 넣고 단차를 돌렸다.
그러자 도미닉 경의 카드가 다시 나타나더니 이번엔 초상화를 보여주는 절차 다음으로 카드 뒷면에 붙여놓은 이상한 돌을 보여 주었다.
"이게 바로 중복일세. 그리고 이 돌은 자네의 정보를 조각내어 보관한 것이고. 정보를 온전히 모으면 카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네."
도미닉 경의 카드에서 뽑아낸 돌을 다시 카드에 대자 카드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살짝 바뀌었다.
별이 하나에서 둘이 된 것이다.
"신기하구려."
도미닉 경은 가챠라는 것을 단번에 이해했으나, 여전히 의문점은 남았다.
"그렇다면, 이 카드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거요?"
"외부에서."
용은 바로 대답했다.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자네의 정보들은 외부의 탐사대들이 가져갈걸세. 자네도 들은 적 있을지도 몰라. 지휘관, 제독, 선생님, 기사, 퇴마사, 소환사, 여행자 같은 칭호들을 말일세."
"기사?"
도미닉 경은 기사라는 말에 반응했으나, 용은 고개를 저었다.
"말 타는 기사가 아니라, 기이한 일을 일삼는 기사 말일세."
아무래도 동음이의어인 모양이었다.
"탐사대들이 이끄는 인형들이 있네. 그 인형들에게 자네의 정보를 집어넣으면, 자네의 행동을 따라 하는 안드로이드들이 생겨나지."
안드로이드라.
도미닉 경은 인디 게임 제작 당시 만났던 코드 제로 백이 생각났다.
제로는 스스로 전투 보조용 안드로이드라고 말했다.
같은 안드로이드라도 좀 다른 걸까? 도미닉 경은 호기심이 끓어올랐으나 지금 당장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대신 다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그 내 정보를 가진 안드로이드들이 나를 대신한다거나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겠소?"
"그럴 리 없지."
용은 재밌는 말도 다 한다는 느낌으로 웃었다.
"외부의 안드로이드들은 한계가 명확해. 우리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정보에 기입된 대로 움직이거든. 그래서 도대체 왜 이 상황에서 이런 짓을?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나. 중앙 시스템이 있는 이상 절대 안드로이드들은 인간과 같아질 수 없어."
차라리 스테이지를 구성하는 데이터 투성이 몬스터가 더 인간다울 걸세. 라며 용은 헛웃음을 지었다.
"만일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는 안드로이드가 있다면, 오히려 가차 풀에 넣고 싶군. 안드로이드에 탑재된 안드로이드의 정보라. 아주 재밌겠어."
한참 동안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웃던 용이 천천히 웃음을 멈췄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아무튼, 이번 이벤트는 두 개가 겹친 대형 이벤트라 분명히 외부 개척자들이 돈을 쓰러 가차랜드로 돌아올 거란 말이지. 그래서 내가 대목이라고 말한 걸세. 뭐랄까. 그들은 새로운 캐릭터를 뽑지 않으면... 뭐였더라... 그래. '꼽다'고 말하더군. 반면에 한 번에 뽑으면 '기만'이라고 하고."
"그만. 가차 풀에 등록하면 어떤 것이 좋소? 그것부터 말합시다."
"아, 그래. 자네는 확실히 뉴비구만. 진짜 아는 게 없어."
잠깐 다른 이야기로 샐 뻔한 용이 도미닉 경의 제지에 투덜거리며 비꼬았다.
약간 삐진 모양이었다.
"자네는 자네의 데이터를 얼마나 뿌릴건지, 그리고 어떤 카테고리에 넣을 건지 정하게. 예를 들면 자네가 100개의 데이터를 뿌리겠다고 하고, 탱커 팩과 올드 원 아이 팩을 고르면 지금까지 그 팩에서 모인 전체 데이터에 자네의 데이터가 섞일걸세. 그럼 사람들이 이 카테고리의 팩을 살 테고, 그 안에서 무작위로 100개의 데이터가 뽑히겠지."
용의 설명은 엉망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사탕 주머니에서 원하는 사탕을 뽑아 먹는 느낌이오?"
"비슷해! 좀 더 정교하고 우아한 방식을 사용하겠지만 말일세."
자신이 하려던 설명과 비슷한 요약에 맞장구를 친 용은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대신, 자네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제공할지, 그리고 자네의 성급이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달라지네. 보통 선금으로 10% 분량을 받고 나머지는 팔리는 대로 받는 방식을 선호하더군. 이게 또 인기 없는 팩에선 잘 안 나가는지라서."
용은 자신이 아주 설명을 잘한다고 생각했으나, 도미닉 경이 알아들은 것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정도였다.
도미닉 경은 여기 온 김에 가차 풀에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드로이드가 자기 정보로 자신을 따라 한다는 건 조금 소름 끼치는 일이었으나, 본체를 위협할 만큼은 아니라는 사실에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가차 풀에 등록하고 싶소."
"좋아. 대략 이해한 듯하니, 제대로 해보지. 일단 예시로 만든 정보는 파기하겠네. 예전에 정보를 빼돌린 스파이가 있어서 본인이 보는 앞에서 폐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거든."
실험용 도미닉 경 카드가 분쇄기에 갈려 사라졌다.
"자, 여기 서류를 작성해주게. 필수적으로 적어야 하는 부분은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일세. 날짜는 기입 안해도 되네. 어차피 오늘 날짜로 갱신되거든."
도미닉 경은 성급을 기입하고 풀에 등록할 데이터의 양을 적었다.
일단 가볍게 열 개로 시작할까. 어차피 자신이 가차 풀에 등록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 심심풀이처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뜻밖에 도미닉 경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박한 사람이었다.
원하는 팩, 즉 패키지를 기입하는 항목에서 스타터 팩과 기사 팩을 고른 도미닉 경은 한 번 더 서류를 읽었다.
마침내 모든 기입이 끝나고 도미닉 경의 이름과 서명까지 들어가자, 용은 서류를 다시 받아들고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정말 10장 정도로 괜찮겠나? 아무리 적어도 100장 정도는 돼야지. 많이 만든다고 손해 볼 일은 아닐세. 내가 본 한 1성은 아예 연금처럼 타먹겠답시고 10억 장을 요구한 적도 있어."
그러나 도미닉 경은 요지부동이었다.
페럴란트는 넘치는 것보다 부족함이 미덕인 사회였다. 그런 페럴란트 자체와도 같은 도미닉 경은 많이 찍어서 남기느니 적게 찍는 게 나을 것이라 여겼다.
100장은 너무 많은 수치라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용은 한숨을 내쉬며 도미닉 경에게 경고했다.
"일단 2성이니 한 번 더 가차 풀에 등록할 수 있겠지만, 아마 그동안은 좀 시달릴지도 모르네. 그래도 괜찮겠나?"
"뭐, 별일이야 있겠소?"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도미닉 경 같은 유명하지도 않은 카드를 뽑겠답시고 난동을 피우겠는가.
용은 한숨을 내쉬며 열 장의 하얀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도미닉 경이 자기 카드를 하얀 카드에 대었다.
마침내 열 장의 2성 도미닉 경 카드가 카드 풀에 추가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