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58화]가챠 인 가차랜드
* * *
가차랜드에는 탈것이라는 태그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장신구 슬롯에 장착시 이동 속도를 증가시켜 주는 장비지만, 가끔은 탈것으로 인해 특성이나 특수 능력이 바뀌기도 한다.
기사 컨셉의 사람이 말을 탔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종심돌파]나 [마상창 시합]같은 경우처럼 말이다.
그리고 여기, 황야에서 오랜만에 탈 것을 꺼낸 이가 있었다.
"총독, 어디 가는 거야?"
핑크색 머리에 맹한 눈. 몸에 딱 맞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검은 군복을 입은 채 기관단총을 어깨에 멘 여군이 차고로 다가왔다.
"아, 크리그."
차 앞 보닛을 열고 쇠사슬을 매단 채 끌고 나오던 사내가 반가운 듯 말했다.
총독이라고 불린 이는 검은 군복 위로 화려한 훈장과 휘장을 달고 있는 기괴하게 생긴 사내였다.
광대뼈는 과도하게 나와 있고, 관자놀이는 과도하게 들어가 있으며 눈썹은 너무 위에 있고 눈은 너무 튀어나와 있었다.
입은 좌우로 길게 찢어져 주먹 두 개는 들어갈 것 같았고, 무엇보다 피부가 보라색이었다.
"오랜만에 가챠 돌리러 간다."
"에? 총독, 드디어 여기에도 새로운 인원이 오는 거야? 남자? 여자?"
"글쎄. 일단 남자야. 확실한 건 드디어 우리도 전열이 생길 거라는 사실이지."
내가 가진 가차석 내에서 뽑을 수 있다면 말이지. 라고 덧붙인 이 보라색 피부의 총독은 차를 어깨에 들쳐올렸다.
"총독. 총독은 왜 차를 타지 않고 어깨에 메고 다니는 거야?"
맹한 눈이 졸린 듯 끔벅거렸다.
"이동 속도를 올려주니까."
크리그라고 불린 여군이 말한 것은 그쪽이 아니었으나, 크리그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 헤실헤실 웃으며 기뻐했다.
"그렇구나아."
"이제 이 총독님께서 새로운 친구 데려올 테니까, 잠시 탐험 좀 돌리고 있어. 곧 올게."
총독은 환하게 웃으며 여군을 안심시켰다.
안 그래도 큰 입이 더 크게 찢어지며 더욱 괴상한 얼굴이 되었다.
그런데도 여군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는지 여전히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머리는 쓰다듬어 주고 가. 호감도가 오르니까."
게임 내부의 팁이었다.
대충 머리를 쓰다듬자 여군의 머리 위로하트 표시가 떠오르며 호감도가 올랐다는 표시가 떴다.
"이제 진짜 다녀올게. 탐험 꼭 돌아야 해?"
보라색 총독은 차를 어깨에 들쳐메고 엄청난 속도로 황야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총독은 멋지다니까. 총독 닮은 오빠나 동생이 있었으면"
남아 있던 크리그라는 여성은 그렇게 말하며 총독이 간 방향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총독의 명령... 아니,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서.
총독은 흙먼지를 일으키며 황야를 달려 가차랜드로 향했다.
그리고 가차랜드의 외곽에선 총독과 비슷한 이유로 가차랜드로 가는 이들이 있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평범한 이가 없었는데, 남자임에도 여장한 이,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검고 우울한 코트를 입은 채 큭큭거리며 웃는 이, 방독면을 쓰고 온몸을 가릴 정도로 큰 우의를 입은 이 등 하나하나 개성이 강한 이들이었다.
전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가차랜드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가챠 풀 등록 말입니까?"
"그래. 가챠 풀 등록."
도미닉 경은 한 번에 도넛을 두 개씩 입에 집어넣는 왈록을 보며 의문을 표했다.
오늘은 딸기 맛 시럽을 뿌린 모양인지 도넛 위에는 분홍색의 시럽이 발려져 있었다.
"가챠 풀 등록이 뭡니까?"
도미닉 경은 몇 번 들어 본 적 있다고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까먹은 모양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왈록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고는 입에 남아 있던 도넛 잔해를 씹어 삼켰다.
"가차랜드에서 가장 손쉽고 빠르게 재화를 벌어들이는 방법 중 하나지. 반대로 가장 어렵고 느린 방법이기도 하고."
여전히 왈록은 어정쩡하게 설명했다.
왈록은 이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를 살살 놀리는 맛을 알아버렸다.
"좀 제대로 설명해 주실 수 없습니까? 얼마 전에 배운 게 있는데, 가차랜드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불법이지만 사유가 있다면 정상 참작이 된다는"
"아, 그래. 알았어. 오케이. 바로 알려주지."
왈록은 검을 뽑아 협박하는 도미닉 경을 보며 농담도 못하냐며 투덜거렸다.
이 순진한 뉴비를 더럽힌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다가 떨어지는 화분이나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가차랜드는 여러 가지 게임적 요소가 가득하지만 역시나 기본이 되는 건 수집이지. 그런 거야. 과자를 사면 안에 들어 있는 씰을 모으는 느낌."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 도착한 이후에 과자를 먹어 본 적은 있으나 왈록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왈록은 '아, 맞다. 얘 아무것도 모르지?'라는 표정으로 이마를 탁 치더니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후배의 사진이나 카드를 넣고 확률적으로 뽑게 하는... 에이. 모르겠다. 따라나와 봐. 일단 가챠 풀이 뭔지 직접 하면서 설명해 주마."
왈록은 마지막 도넛을 입안에 털어 넣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설명이 어려운가? 라고 생각하며 왈록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왈록은 거리를 가로질러 행정부와 시스템 인더스트리 사이에 있는 골목으로 향했다.
점점 음산해지는 골목길이 이어지자 도미닉 경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했으나, 곧 왈록이 발을 멈췄기에 도미닉 경도 따라서 멈췄다.
"여기야. 가챠 풀 등록소가."
도미닉 경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좁은 골목에 이끼가 잔뜩 낀 높은 벽과 어두컴컴한 흙바닥, 그리고 하수구 맨홀과 쓰레기가 가득 찬 쓰레기통과 고장 난 자판기만 보였다.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도미닉 경은 미심쩍은 눈으로 왈록을 바라보았다.
"가차랜드가 어떤 곳인지 까먹은 건가?"
왈록은 히죽 웃으며 이끼 낀 벽을 두 번, 쓰레기통을 한 번, 그리고 하수구 맨홀 뚜껑을 발바닥으로 한 번 두드렸다.
그러자 고장 난 자판기가 옆으로 움직이더니 길이 드러났다.
"고전적이지만 재밌는 트릭이지."
왈록은 그렇게 말하며 열린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도미닉 경도 그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열린 공간 안은 골목과 달리 굉장히 따뜻한 톤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전체적으로 나무로 되어 있어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왈록은 구석구석 쌓여 있는 종이 뭉치를 피하며 낡은 복도를 걸어갔다.
도미닉 경도 왈록이 걸은 길을 똑같이 걸었으나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탓인지 자꾸 왼쪽에 쌓여 있던 종이 더미를 넘어뜨리고 말았다.
마침내 삐그덕대는 복도의 끝에 다다르자 역시나 전체적으로 목재를 사용해 따뜻한 분위기가 나는 넓은 로비가 나타났다.
로비에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거나, 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도미닉 경은 슬쩍 봐도 수백 명은 될 법한 인원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왈록은 이 상황이 익숙한지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직원이 있는 접수 창구로 향했다.
"여. 오랜만이다?"
"왈록. 내가 뒷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정문으로 들어오라고 몇 번을 말했지?"
수염을 길게 기른 동양풍 용의 머리를 한 이가 사나운 눈으로 왈록을 쏘아보았다.
왈록은 그 엄청난 눈빛에 휘파람을 불더니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알지. 그런데 내가 필요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필요해서 뒷문으로 들어왔어."
"다른 사람?"
왈록은 엄지를 펼쳐 도미닉 경을 지목했다.
"네가 뒷문으로 들어오는 것도 안 되지만, 도대체 다른 이는 왜 뒷문으로 들여보낸 거지?"
용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의 손은 책상 서랍을 당장에라도 열 듯 대기하고 있었는데, 슬쩍 서랍을 빼자 그 안에는 영롱한 구슬 하나가 있었다.
"뉴비라서 그래. 뉴비라서."
"뉴비?"
용의 콧구멍에서 거센 콧바람이 새어 나왔다.
"그럼 이야기가 다르지. 1성이겠지?"
"아니. 2성."
"아."
용은 흥미가 팍 식은 듯 고개를 돌렸다.
"돌아가."
"에이. 이봐, 그래도 좀 들어봐. 한 달 조금 넘은 뉴비야. 하지만 루키지! 한 달이면 감안 할 수 있지 않나?"
"한 달 넘게 뉴비라니, 무슨 유니콘이 유부녀 좋아하는 소리 하고 자빠졌어?"
"그럴 수도 있지. 이 넓은 가차랜드를 다 찾아보면 유부녀 좋아하는 유니콘 하나 정돈 있지 않을까?"
용머리의 사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왈록이 이렇게나 매달리는데는 이유가 있을 터. 용은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데려와 봐. 잠시 이야기만 해 보고 마음에 들면 해주지."
"고마워. 나중에 술 한 잔 살게."
"나 알콜 분해 효소 없는 거 알면서. 엿먹이는 거지?"
"아, 그럼 안주나 먹던가."
왈록은 여전히 로비를 두리번거리는 도미닉 경에게 돌아왔다.
"이제 저 친구에게 가 봐. 아마 바로 등록시켜 줄 거야. 설명도 해 줄 거고."
왈록이 도미닉 경의 어깨를 툭툭 치며 환하게 웃었다.
도미닉 경은 여전히 이 거대한 목재 건축물의 위용에 감탄해 두리번거리며 용이 있는 자리로 갔다.
"...도미닉 경이군.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알겠어."
용은 안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걸쳤다.
도미닉 경은 이 신비하고 이국적인 용이 자신을 알아봤다는 사실에 놀라 되물었다.
"어떻게 아시오?"
"다 아는 수가 있지."
도미닉 경은 마음을 읽는다거나 마법을 통해 알았다는 말이 나오길 기대했으나, 용의 말은 좀 더 현실적이었다.
"가차튜브에서 자주 보이거든."
도미닉 경은 전혀 신비하지 않은 대답에 실망했으나 오히려 가차튜브에서 자신에 대해서 자주 나온다는 사실에 의문이 생겼다.
"내가 왜 자주 보인단 말이오?"
"그거야 뭐 이런 거지."
용은 자기 폰에서 가차튜브를 틀어 도미닉 경을 검색했다.
도미닉 경에 대한 영상이 쭉 나오고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그중 한 영상을 보고 시선을 멈췄다.
'도미닉 경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승승장구하는 비법? 요즘 핫한 루키 도미닉 경의 115가지 사실.'
도미닉 경은 115개나 되는 자신도 모르는 사실이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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