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5화 (55/528)

〈 55화 〉 [54화]뒤집힌 청문회

* * *

"당시의 상태창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싸움을 상정하지 않았기에 판정이 싱글, 즉 상태창을 가진 이의 판정에만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개편된 상태창은 더블, 즉 서로의 상태창의 수치를 비교해 그 차이만큼 효과를 내는 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도미닉 경이 이렇게 활약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죠. 다른 이들은 서로의 스탯의 차이만큼 보정받지만, 도미닉 경은 그 보정치에 추가로 싱글 스탯의 영향을 받았던 겁니다."

청문회장은 갑자기 여관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이 너무 긴 설명에 지쳐 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트롬은 눈앞에서 나불거리는 시스템 인더스트리 운영팀장을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았다.

아는 것이 나왔다고 말이 허황되게 길어지는 건 시스템 인더스트리 소속 직원들의 특징이긴 했다.

"보아하니 스탯 자체는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니, 최신 패치를 적용하면 충분한 대처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운영팀장의 말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트롬은 머리를 감싸며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불안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부터 혼란스러운 상황이 일어나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으나, 오히려 지루해지니 바로 떠오르는 의문.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시간을 끄는 거지?

처음 일어난 대난투도 그랬고, 지금 운영팀장의 말이 계속 늘어지는 것도 그랬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도대체 왜?

트롬은 고개를 돌려 청문회장의 입구를 바라봤다.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왜?

트롬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답을 유추해내고야 말았다.

이들은 나를 여기에 묶어두려고 한다.

사실 이 정답은 그의 과대망상에 가까운 편집증과 자의식 과잉에서 나온 것이었으나, 그렇기에 더더욱 정답에 근접할 수 있었다.

트롬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나를 여기 묶어서 뭘 하려고?

"큰일이군.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머슬만은 도미닉 경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트롬은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머슬만은 트롬이 계획을 알아차리고 여길 빠져나가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계획은 어찌 된 거요?"

도미닉 경이 한쪽 눈으로 입구를 흘낏 보며 말했다.

"자물쇠 하나로 막기엔, 자물쇠가 빈약해 보이는데."

"틀린 말은 아닙니다."

머슬만은 도미닉 경의 의문에 대답했다.

"하지만 행정부의 자물쇠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한 번에 내구도 이상의 피해를 주지 못하면 바로 복구됩니다. 무엇보다 지금 청문회장을 잠근 자물쇠는 몇 없는 최상급의 자물쇠구요."

도미닉 경은 저 평범해 보이는 자물쇠에 그런 기능이 있는 줄은 몰랐으나, 다시 생각해 보면 또 하나 허점이 있었다.

방금 의장석 뒤에서 나눈 대화에서 트롬은 딜러라고 했다.

지속 딜러임에도 그는 노력해서 새로운 특성 [차지 샷]으로 위력을 충전해 최대 체력 비례 데미지를 입힌다고 얼핏 들었던 것 같다.

도미닉 경은 몰래 책상 아래에서 폰을 만지작거리는 트롬을 바라보았다.

"외부에서 정보를 얻으려는 모양이군요. 확실히 우리 계획의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입니다. 곧 자리를 뜰지도 모르겠군요."

여전히 운영팀장은 장황한 연설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트롬 : 보좌관, 너 어디야? 지금 분위기가 이상하다.]

[보좌관 : 네? 어제 저보고 오늘은 쉬라고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보좌관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방금 전까지 있었던 보좌관은 누구란 말인가?

트롬은 보좌관의 문자를 보며 마침내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지? 논란이 되는 말을 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던 트롬은 자기 발언이 밝혀지면 총선에서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정치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근접 딜러 우월주의적인 발언은 그나마 나았다.

대형이라고 부른 것이 문제가 된다.

대형은 양산박의 인원들에게만 허락된 명칭이었다. 그리고 양산박은 가차랜드에서도 가장 위험한 반동분자로 이름 높은 이들이었다.

만약 자신이 대형이라고 한 발언이 공개된다면, 자신은 반동분자와 손을 잡고 가차랜드를 몰락시키려는 이로 낙인찍힐 것이다.

물론 그가 행한 행동은 가차랜드를 몰락시킬 일이었으나 트롬은 가차랜드의 번영을 위해서라고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트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주변 의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초조한 척을 계속하며 몰래 특성을 발동시켰다.

시각은 오래 걸리지만, 저 자물쇠를 한 번에 딸 수 있는 비장의 수였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머슬만은 입을 가리고 씨익 웃었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한 머슬만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나 머슬만은 여전히 히죽히죽 웃으며 트롬을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다.

...

잠시 후, 트롬은 이젠 상태창의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 운영팀장을 바라보았다.

차지가 완료되었다. 이제 다음 공격은 체력이나 내구도의 100%의 공격으로 들어갈 것이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펴는 척한 트롬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뱃살을 출렁이며 입구로 달려갔다.

의원들은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구에 다다른 트롬은 주먹을 들어 자물쇠를 내려쳤다.

분명히 자물쇠가 박살 날 테고, 자신은 이곳을 빠져나가 저들의 계획을 망쳐 놓으리라.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물쇠는 망가지기 직전까지 가더니,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도미닉 경의 특수 능력, [기수]가 가진 4%의 피해감소가 변수를 만들었다.

트롬은 적이다. 그럼 트롬이 공격하는 이는 아군이다라는 엉망진창인 논리에, 자물쇠도 이 4%의 피해감소가 적용되어 버린 것이다.

트롬의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

"트롬 의원, 뭐 하자는 거지요? 청문회 동안은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으셨습니까?"

의장이 높은 곳에서 굽어보며 말했다.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셨던 겁니까?"

머슬만이 이어 말했다.

"화장실은 저쪽입니다만."

힐러 협회장이 말했다.

그 외에도 트롬의 돌발행동에 건수를 잡았다는 듯 물어뜯는 의원이 내뱉는 한 마디들.

트롬은 자기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과 저들의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합쳐져 완전히 미치기 직전까지 몰렸다.

"다 닥쳐! 닥치라고! 모두가 날 싫어해! 모두가 날 미워해!"

아니, 미치고야 말았다.

과도한 불안감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힌 트롬은 결국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내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모든 의원을 죽여야겠어. 의원이 나 혼자 남으면 가차랜드의 방향성을 혼자서 이끌 수 있다고!"

참으로 비극적인 상황이었다.

트롬은 이제 궁지에 몰려 망상에 빠지고 말았다.

여기 있는 모두를 제압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의원들은 최소 4성 이상의 실력자들만 지원 가능한 자리였으니.

그러나 트롬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는 양산박에서 준 힘을 사용했다.

"난 최고야! 최고라고! 그 누구도 이제 날 이길 수 없어! 내가 짱이야!"

그의 옷이 찬란한 황금색의 갑옷이 되었다.

그의 손에 '봉황지검'이라고 조각된 화려한 대검이 쥐어졌다.

그의 등 뒤에 커다란 날개가 돋아났다.

그의 레벨이 빠르게 오르며 엄청난 스탯이 흘러들어왔다.

그는 눈앞에 떠오른 [광고 보고 추가 보상 받기]라는 항목을 신경질적으로 끄고는 청문회장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렇다. 그는 양산형 게임에 나오는 '조금만 투자해도 서버 1위'라는 힘을 쓰고 만 것이다.

양산박은 오래전부터 가차랜드의 해악이었다.

판에 박은 듯 양산한다해서 양산박이라고 불린 이 그룹은, 약간의 대가로 큰 힘을 주는 척하면서 그 힘에 취하자마자 결제를 유도하는 아주 악독한 집단이었다.

비슷비슷한 게임을 만들지만, 결국 캐릭터가 부족한 상태에서 사람들에게 힘을 대가로 꼬드겨 죽을 때까지 우려먹고 버리는 범죄자들이었으며, 허위 광고를 통해 또 다른 희생자들을 끌어들이는 수법으로 뒷골목에서 가장 큰 범죄자 집단이 되었다.

여기 있는 의원들은 양산박의 해악을 잘 알고 있었다.

거짓된 힘을 줬더라면 속는 이가 없었겠지만, 그들은 언제나 진심이라는 듯 진짜 힘을 넘겨주었다. 그게 그들이 더욱 악독한 범죄자로 불리는 이유였다.

힘에 취한 이들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양산박은 그 혼란을 즐겼다.

이내 그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자 그들은 잠시 잠잠해지는 듯 보였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트롬의 힘에 경악하고 말았다.

숨어들었던 양산박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젠 내가 1등이야. 내가 1등이라고."

이제 완전히 싸구려 같은 최고등급 황금 장비 세트로 무장한 트롬이 미친 듯이 웃었다.

청문회장에 다시 혼란이 찾아왔다.

이번엔 더 악독한 혼란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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