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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3화 (53/528)

〈 53화 〉 [52화]소생하는 청문회

* * *

"그래서, 일단 어떻게 할 거요?"

도미닉 경은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지금 저리 난장판이 되었으니 일이 잘못되는 게 아니오?"

"다행스럽게도 지금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네."

의장이 날아오는 장풍을 쳐 내며 말했다.

"시간. 시간을 끌어야만 하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의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거고."

현재 청문회장의 상황을 보면 매우 혼잡해 보이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본다면 탱커 노조 소속 의원들이 이 혼란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단 트롬을 의회 내부에 묶어두어 대처할 시간을 주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필요한 일은 없지 않소."

도미닉 경은 그저 트롬이라는 자를 묶어두기만 한다면, 자신이 할 일은 없다고 여겼다.

도미닉 경은 대검에 치여 날아오는 신관을 방패로 빗겨내며 의문을 표했다.

"도미닉 경의 특수 능력이 필요한 겁니다."

머슬만이 말했다.

그는 어깨에 화살 세 개가 꽂혀있었다.

"우리만으론 시간을 끄는 건 가능하지만 완벽하게 막아두는 것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당신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머슬만의 발아래에서 뿌리가 자라나 머슬만의 발목을 묶었다.

머슬만은 힘으로 그 뿌리를 끊어내며 도미닉 경이 필요한 이유를 말했다.

아쉽게도, 대난투가 벌어지는 의회의 비명 소리에 묻혀 듣지는 못했지만.

...

"­그리하여 현재 2성 탱커, 도미닉 경이라고 불린 이는 그 성급과 코스트에 비해 과도하게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기존 탱커와 비교해도 3성급, 딜러와 비교하면 4성 말석에 비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에 스탯 공개를 요청합니다. 또한 도미닉 경이 가진 특성은 다수의 싸움에서 과도하게 효과적이라는­"

트롬은 이 난장판에서도 묵묵히 도미닉 경에 대한 너프가 왜 필요한지 외쳤다.

어디 정치 하루 이틀 하던가. 트롬은 이 부자연스러운 난투가 탱커 노조의 주도 하에 일어난 일임을 알아차린 지 오래였다.

청문회 특성상 의원 하나하나의 발언 시각은 한정되어 있었다.

발언 시간이 끝나면 다시 발언을 할 기회는 거의 모든 의원을 거쳐야 돌아오는 법이다. 적어도 가차랜드에선 그랬다.

그 말은, 발언 시간 동안 자기 주장을 끝내지 못할 경우, 청문회 내내 자기 주장이 다뤄지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트롬은 그 사실을 알았기에 이 난장판에서도 묵묵히 발언을 이어갔다.

"이에 저는 도미닉 경의 너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

마침내 발언을 마친 트롬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의장이 자리에 없었으나, 가차랜드 식 청문회에서 의장은 의견을 조율하는 사람일 뿐 발언권은 없었다.

애초에 필경사가 현재 의견들과 주장을 적어두고 있었으니, 발언을 완전히 끝마치는데 성공한 지금 오히려 의장과 다른 의원들을 압박할 카드가 생긴 셈이다.

이 대화록이 공개되었을 때, 트롬이 묵묵히 자기 할 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좋게 볼 것이었다.

"망할."

탱커 노조의 의원 하나가 의장석 뒤로 다가왔다.

"머슬만, 그가 발언을 완전히 마쳤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이제 우린 빠진다."

머슬만은 의원의 말에 신호를 보냈다.

이 난장판에서 탱커 노조 측 의원들은 혼란을 부추기는 일을 그만두고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자 서서히 사람들이 진정하고 자리에 앉았다.

청문회장이 진정되는 모습을 바라보던 트롬은 더욱 비열하게 웃으며 시계를 보았다.

아직 발언 시각은 충분히 남았다.

"의장님? 듣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이 트롬은 '도미닉 경' 씨를 이 자리에 불러 의견을 들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럼 도미닉 경은 가운데로 나오시길 바랍니다."

의장은 장내가 정리되자마자 의장석에 올라갔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뗀 의장은 잠시 시계를 보고 나서 도미닉 경을 가운데로 소환했다.

이제부터 도미닉 경이 얼마나 시간을 끌어 주느냐, 그리고 그 시간 안에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하느냐가 관건이었다.

...

양복을 입은 닌자는 최대한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착하기 위해 달렸다.

아니, 달리려고 노력했다.

하필이면 저녁 퇴근 시간과 겹쳐 버리는 바람에 도로가 꽉 막혀 오도 가도 못 하는 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지하철로 갈 걸 그랬나..."

닌자는 답답한 마음에 빵­ 하고 경적을 한 번 울렸다.

그 소리에 화난 이들이 경적소리로 답을 해주었다.

...

도미닉 경은 가운데 놓인 단상에 올라갔다.

싸우고 있을 때는 몰랐으나, 둥근 책상 너머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수백 명의 사람의 시선을 견디는 것은 꽤 긴장되는 일이었다.

"의장님? 일단 '도미닉 경' 씨에 대한 질문을 몇 개 해도 되겠습니까?"

"허락합니다."

트롬은 자신이 준비한 도미닉 경의 스펙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 2성 3코스트. 확인된 특성과 특수 능력은 [탱커]와 [기수]. 맞습니까?"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입 밖으로 꺼내서 하세요! 지금 여기에 확인 된 특성과 특수 능력을 합쳐도 2개인데, 남은 특성과 특수 능력이 어떻게 됩니까?"

트롬은 당연하다는 듯 숨긴 특성이 있다고 여겼으나, 도미닉 경은 그 말이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특성과 특수 능력은 하나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외까?"

그 말에 청문회장에 잠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당신은 아직 하나씩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의장님! 분명히 이 자는 자기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트롬은 어이가 없었다.

가차랜드로 초대된 사람은 특전을 받는다.

이 특전은 보통 특성이나 특수 능력으로 발현되었고, 심지어 받은 특전이 하나가 아닐 때도 있었다.

도미닉 경의 말 대로라면 그는 특전을 받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트롬의 처지에서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이 어떤 사람인가?

페럴란트 출신의 이 무식한 기사는, 정말 특전을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고른 특이한 별종인 것이다.

"의장님! 지금 당장 저 자의 상태창을 공개해 스탯과 스킬을 확인할 것을 요구합니다."

"도미닉 경. 가능하겠습니까?"

"물론이오. 그나저나 어디서 볼 수 있는 거요?"

도미닉 경은 특성과 특수 능력을 보여주는 건 캐릭터 카드를 꺼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스탯이란 개념은 처음 안 것이었다.

"스탯을 모른다니, 뻔뻔한 작자로군."

트롬은 도미닉 경이 거짓말을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정말 스탯을 보는 방법을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의장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운영팀장, 존슨 리의 도움으로 그의 스탯창을 볼 수 있었다.

[★★☆☆☆ 도미닉 경 (3코스트)]

LV.7(177/380)

[근력 16(2) 민첩 12(0) 체력 18(3) 지능 9(­1) 지혜 16(2) 매력 15(1)]

[예비 포인트 2]

[보유 기술 : [탱커], [기수]]

[스킨 : 기본 / 해적(한정) / 근위대]

그의 상태창을 본 이들은 다시 한번 침묵했다.

그들이 아는 상태창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상태창을 띄운 이후 나온 시스템 창 때문이었다.

[상태창을 처음 열어 보셨습니다. 상태창에 대한 튜토리얼을 진행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거짓말로 가득한 코딩을 짜더라도 시스템은 자동으로 '제대로' 작동한다.

이는 먼 미래에 만들어져 과거로 나아가는 시스템의 특징 때문이었다.

그런 시스템이 처음으로 창을 열었다고 선언했으니, 도미닉 경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가차랜드에서 활약했다는 뜻이 되었다.

"그나저나 저런 식의 시스템은 처음 봅니다만."

마탑주 학술모임당의 의원이 손을 들고 물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상태창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 말에 트롬은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저자는 핵을 쓰고 있거나, 치트를 쓴 겁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트롬에게로 몰렸다.

"그게 아니라면, 아예 시스템을 해킹하는 특전을 얻어 제멋대로 먼치킨 플레이를 하려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트롬의 말은 시스템에 대해 깊게 파고든 사람에게는 헛소리나 다름없었다.

가차랜드의 시스템의 보안은 완벽하다 못해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성좌의 힘도, 고인물의 트롤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해커의 공격도 통하지 않는 완벽한 데이터.

시스템 인더스트리 운영팀장은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코웃음을 쳤으나, 대부분의 사람은 시스템의 심층부에 대해 무지했기에 트롬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존슨 리 운영팀장께서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발언해 보시겠습니까?"

마침 의장이 그런 운영팀장의 표정을 보고는 발언권을 주었다.

트롬은 어디 말해 보라는 듯 팔짱을 끼고 운영팀장을 노려보았다.

"우선 발언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운영팀장, 존슨 리입니다."

우선은 인사부터.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 본 적이 없는 존슨 리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나 이내 평소에 프레젠테이션 하듯해보자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일단 이 상태창은 엄연히 시스템에 등재된 스탯 표현법임을 알려드립니다."

운영팀장의 말에 웅성거림이 멎었다.

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은 시스템 인더스트리를 따라갈 곳이 없었기에 논란의 여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상태창은 고대 TRPG시대의 유물입니다. 즉 1세대 상태창이라는 소립니다. 정확하게는 1.5세대, 1.7세대 정도 되는 상태창이죠. 여기 있는 괄호 안의 숫자와 기호가 보이십니까? ( 2)라고 되어 있는 이것이 보정치인데, TRPG식 상태창의 특징이죠."

의원들은 그런 것이 있던가? 라는 표정이 되었다.

그만큼 이 상태창은 오래되어 사람들이 쓰지 않는 탬플릿이었다.

"이제야 이해되는군요. 도미닉 경은 치트나 핵을 쓴게 아닙니다. 상태창의 특성 때문에 오해를 받은 겁니다."

운영팀장의 안경이 반짝하고 빛을 내뿜었다.

그가 아는 영역에서, 그는 신이요, 투 머치 토커였다.

"아! 좀! 하... 차라리 뛰어갈까..."

그 사이, 닌자는 여전히 교통체증에 막혀 사거리에서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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