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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51화 (51/528)

〈 51화 〉 [50회]역전 청문회

* * *

'부디, 탱커의 부흥을 위해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쉽게도 힘들 것 같소. 아직 내게 가차랜드는 버거운 곳이거든.'

'그렇습니까... 아쉬운 일입니다. 혹시 마음이 바뀌시면 찾아오세요.'

"그렇지! 이럴 줄 알았어!"

청문회가 시작되기 전, 청문회장 근처 의원 대기실.

배불뚝이 트롬은 자기 보좌관이 조작하는 도청기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는 협조하는 척하면서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너프 예정자와 접촉해 정보를 흘린다. 이는 공정성을 중시해야 할 의원의 태도가 아니지 않은가!

정작 트롬은 공정성과 가장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나 지금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도청은 불법이었기에 지금 상황은 숨겨야 했으나, 나중에 머슬만을 압박하는 패로 쓸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탱커 측의 입장과 전략을 알아낸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번 청문회에서 탱커 측은 방금 말했던 입장을 고수할 것이고, 이미 그 사실을 안 자신은 그들의 의견을 논파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리라.

"대형의 지원을 받을 땐 좀 의심스러웠지만, 이렇게 되면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처음부터 그가 이렇게 다른 직업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트롬이 처음 정치의 높은 벽에 부딪혔을 때, 한 사내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양산박의 일원이라고 소개하며 저 먼 중원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수상할 정도로 트롬을 지원해줬으며, 근접 딜러에 대한 예찬에 갈채를 보내며 트롬의 자존감을 북돋아주었다.

그 덕분에 자신은 다시 재기하여 이 위치까지 올라온 트롬은, 얼마 전 도움에 대한 보답을 바란다며 찾아온 대형에게서 제안을 받았다.

지금의 체제를 갈아 엎고, 당신이 가차랜드의 1인자가 되는 것.

그리고 자신이 도운 만큼 보답을 받길 바란다는 요구.

양산박의 사내는 제안을 수락한다면 다음 대선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광고'를 마구 뿌리겠다고 장담했다.

트롬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 어디에서나 보이는 광고로 다져진 인지도로 다음 대선에서 당선은 확실할 테고, 어쩌면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침내 근접 딜러만의 세상이 올 것이야."

그리하여 권력의 너머에 도착하는 순간, 탱커를 필두로 근접 딜러를 제외한 직업은 사라지리라.

"저, 의원님? 곧 청문회 시작입니다. 지금 나가셔야 눈에 띄지 않으실수 있지 않겠습니까?"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배불뚝이 트롬은 보좌관의 말에 그 환상에서 깨어났다.

기분 좋은 망상에 빠져 있던 트롬은 못마땅한 눈으로 보좌관을 보았으나, 보좌관의 말이 옳다고 여겼는지 급하게 외투를 챙기며 문을 열고 나섰다.

"뒷정리는 잘해 줄 거라 믿네. 알겠지?"

"걱정 하지 마십쇼, 의원님."

트롬은 웃는 얼굴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표정을 바꿨다.

믿어? 하. 세상에 믿을 건 하나도 없어.

트롬은 보좌관과 꽤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사이지만 여전히 보좌관을 믿지 못했다.

배신해도 좋다. 이미 모든 건 준비되었으니. 트롬은 자기 안주머니에 있을 녹음기를 매만졌다.

여차하면 이 녹음을 조작해 자신을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둔 상태였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겨 낼 수 있다.

트롬은 자신만만하게, 그러나 비열하게 웃으며 청문회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트롬은 보지 못했다.

자신의 뒤에서 트롬보다 더 비열하게 웃는 자의 미소를.

...

"이제 곧 청문회 시작이군요."

도미닉 경과 머슬만은 청문회장으로 향했다.

도미닉 경 혼자서 길을 찾기엔 행정부의 복도는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청문회가 시작되면 어설프게 자기변호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당당하게 나가세요. 약점을 보이는 순간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뜯어먹으려고 달려들 겁니다."

저도 의원이지만 의원들은 약자에게 심각하게 강하고 강자에게 협상을 내밀며 우위에 서려는 이들이죠. 머슬만이 말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머슬만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미닉 경에게 당부했다.

"혹시나 눈앞에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깨지고 부서져도 당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자리에서 벗어나 벽에 붙거나 하세요. 어쩌다 같이 참여하는 것까진 좋지만, 멍하게 있다간 더 심한 꼴을 볼지도 모르니까요."

도미닉 경은 애매한 말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머슬만을 바라보았지만, 머슬만은 자세히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 왔습니다. 여기가 청문회장입니다."

도미닉 경은 방금 전까지 걸어온 복도의 높이보다 더 높아 보이는 성문을 바라보았다.

안개처럼 자욱한 연기가 흘러나오는, 신들의 세계로 향할 법한 문이.

머슬만은 익숙하다는 듯 그 문 앞에 서서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양쪽으로 있던 문이 열리며, 마침내 청문회장의 모습이 드러났다.

...

"하필 왜 내가 이걸..."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대표, 운영팀장 '존슨 리'는 거의 신세 한탄을 하는 수준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시스템 인더스트리는 시간 축이 이상하게 뒤틀려 있어 회장이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다 보니 대표가 필요한 일이 생길 때마다 보낼 인원을 로테이션으로 정해 보내기로 했다.

솔직히 대표를 뽑아두면 이런 번거로운 일할 이유가 없겠지만,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직원들은 하나같이 대표직을 꺼렸다.

대표가 되면 강한 권한을 얻을 수 있지만 그만큼 책임이 무겁게 돌아온다는 점도 그랬으나, 귀찮은 것은 아무리 권한을 많이 줘도 거부하는 회사 분위기 탓도 컸다.

무엇보다 앞으로 회장님이 '태어나실' 텐데 굳이 대표를 만들어 회사 내부에 혼란을 일으킬 필요가 있냐는 의견도 한몫했다.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기피당하는 직책 1위에 빛나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대표는 이미 정해진 자기 운명에 순응하며 살기로 했다.

운영팀장 존슨 리는 어차피 내일이면 또 대표가 바뀌니까, 오늘 자신이 무언가를 해도 인수인계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하고 있었다.

금뱃지를 단 의원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 회의장에서, 이 소시민적인 대표는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회장님, 직접 오실 필요가 있었을지는­"

"조용. 그 말은 더 이상 그만. 내가 이야기 한 건 다 끝내고 조언하는 거겠지?"

복도에서 울리던 높은 하이힐의 굽소리가 멈췄다.

블랙 그룹의 총수, 모르가나 블랙은 짙은 썬글라스를 내리며 비서를 노려보았다.

"물론입니다. 아무래도 단독으로 행한 일인 듯합니다. 자세한 사안은 전문가에게 부탁했으니, 오늘 저녁까지는 정확한 리포트를 받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비서가 당당하게 말했다.

그 당당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가나 블랙은 다시 썬글라스를 추켜올리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오늘 저녁까지라면, 내일까진 모든 게 끝나겠지."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이힐의 얇고 높은 굽소리가 복도에 퍼져나갔다.

그녀는 무엇을 꾸미고 있기에 직접 청문회에 참석한 것일까?

...

"여긴..."

도미닉 경은 청문회장 안이 넓고 위압감 넘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가운데에는 원형의 무대처럼 된 공간이 있었고, 의원석이 그 주변을 둘러싼 형태로 단차를 두어 멀어질수록 점점 높은 곳에서 보는 형식이었다.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도미닉 경이 어디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었나 고민하고 있자, 머슬만이 설명을 덧붙였다.

"저기 높이 솟은 곳이 보이십니까? 여기서 가장 높은 곳 말입니다."

머슬만의 말에 도미닉 경은 자신이 있는 입구의 반대편, 높게 솟아 이곳의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장소를 바라보았다.

"저기가 의장석입니다. 의원이라면 모두가 원하면서도 욕하는 자리죠."

의장은 항상 중립을 지켜야 하기에 소수 정당에서 뽑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라고 말한 머슬만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아직 사람이 덜 왔군요. 청문회가 곧 시작할 텐데­"

"어이쿠! 머슬만 의원 아니십니까?"

문이 열리며 배불뚝이 트롬이 만면에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들어왔다.

"트롬 의원."

머슬만도 가식적인 웃음을 띠고 트롬을 바라보았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그야 그럴 것이, 오늘따라 일이 술술 풀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하하."

저렇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는데. 머슬만이 의구심을 가졌다.

트롬이 근접 딜러 우월주의자라는 것은 의원직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이번에 탱커 하나를 너프하긴 하지만 트롬은 근접 딜러를 뺀 나머지를 모조리 관짝에 넣어야 만족할 인물이 아니던가.

트롬은 인지도로 의원이 된 사람이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인지도가 없으면 무능한 딜러라는 것을 모두가 안다는 뜻이었다. 트롬 자신만 빼고.

"여기 계신 분이 이번 청문회의 중심이 될 분이군요?"

트롬은 실실 웃으며 도미닉 경을 기분 나쁘게 위아래로 훓어보았다.

"부디, 가차랜드의 밸런스를 위해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트롬은 그 말을 끝으로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무언가를 꾸미는 모양이군요.하지만 지금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머슬만이 트롬의 모습에서 무슨 계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나 트롬의 성격상, 분명히 당장 꺼낼 계략은 아닐 것이다.

트롬은 맛있는 것을 마지막까지 아끼고 아끼다가 썩어버릴 때까지 미루는 성격이었으니까.

당장 트롬의 계략을 알지 못하는 이상, 언젠가 드러날 계획에 연연하는 건 의원으로서 좋은 일은 아니었다.

곧 트롬에 대해 신경을 끈 머슬만은 아직 청문회장 내부를 보며 감탄하는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청문회가 시작되고 나서 바로 당신의 너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할 겁니다. 이미 다른 안건은 처리된 지 오래거든요."

머슬만은 양복의 옷깃을 빳빳하게 세우며 허리를 펴고 환한 미소를 장착했다.

창문 너머에서 비춰진 빛이 하얀 치아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무엇보다도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중간에 무언가가 날아다니거나,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당당하게 참여하거나 벽에 붙어 엮이지 않도록 하세요."

그 순간,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긴 수염의 마르고 병약해 보이는 노인이 청문회장 가장 높은 곳에서 망치를 두드렸다.

"정숙! 정숙하시오! 곧 청문회가 진행될 예정이니 혹시나 밖에 계신 의원님들은 빨리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입구가 폐쇄될 예정입니다."

그 말에 의원들이 하나둘 자리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더 이상 들어오는 이들이 없자, 입구에 있던 직원이 문을 닫고 거대한 자물쇠를 걸었다.

"그럼 지금부터 패치 노트 2.13.0104.1의 밸런스 규정에 의거, 도미닉 경의 성능에 대한 청문회를 개최하겠습니다."

땅땅땅. 하고 망치가 울렸다.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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