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49화]패치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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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빅 머슬만이라고 소개한 이는 엄청난 근육질의 사내였다.
팔뚝이 웬만한 남성의 허리만큼이나 굵은 이 의원은 제법 두꺼운 재질의 양복을 입고 있었음에도 천 위로 근육의 갈라짐이 보일 정도였다.
"일단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사실 청문회는 한 시간 뒤에 열릴 예정이지만, 부득이하게 몰래 만날 사유가 있어서 말이죠."
머슬만이 티 없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이빨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당신은 누구며, 왜 나를 부른 것이오?"
도미닉 경이 경계하며 되물었다.
눈앞의 남자는 무기는 들고 있지 않았으나, 돌덩이같이 단단한 피부와 상처투성이 손등을 통해 그 강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저는 당신을 알지만, 당신은 저를 모르니."
머슬만은 분위기를 완화시키기 위해 사이드 체스트 자세를 취했으나, 오히려 역효과였다.
도미닉 경은 더더욱 이 수상한 근육 덩어리를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 상처받은 표정이 된 머슬만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의원으로서 이 정도의 심리 컨트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저는 빅 머슬만이라고 합니다. 탱커 노조의 위원장이자, 탱커당의 의원이기도 합니다. 이번 청문회에도 참석하죠."
탱커 노조라.
도미닉 경은 어디선가 그 단어를 들어 본 기억이 있었다.
아마 SD 이벤트 당시 푸념을 늘어놓던 도적이었던가? 아니면 궁수였던가?
탱커의 수가 적은 만큼 탱커의 권위와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런 곳에서 나를 보려고 했다면...
도미닉 경은 내심 짐작 가는 바가 있었으나, 확실하지 않았기에 머슬만에게 물었다.
"내가 탱커라서 부른 것이오?"
"잘 아시는군요."
머슬만은 자기 책상에 올려진 잔을 들어 올렸다.
철로 된 커피잔에는 쇠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그 쇠사슬의 끝에는 엄청난 크기의 쇠공이 달려 있었다.
그 잔을 들어 내용물을 마신 머슬만은 도미닉 경과의 대화가 잘 풀릴 것으로 생각했다.
"제가 보낸 편지에 적혀 있다시피, 당신은 이번에 너프 예정입니다."
머슬만은 잔을 내려놓았다.
보통은 가벼운 소리가 나겠지만, 그의 잔은 쿵 소리를 내며 나무로 된 책상의 일부가 찌그러졌다.
"그리고 제 목적은, 당신의 너프에 대한 겁니다."
도미닉 경은 머슬만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꼈으나 오히려 의문이 들었다.
"왜 청문회에서 나를 너프시키려고 하며, 왜 당신은 나를 도와주려는 거요?"
도미닉 경의 하나 남은 눈의 동공이 축소되며 머슬만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분명히 그 내면엔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확실히 그렇습니다. 가는 게 있다면 오는 게 있고, 세상엔 공짜가 없으며 특히 의원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익에 민감하죠."
머슬만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꺼운 목이 반으로 접히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격하게.
"너프에 대한 것은 간단합니다. 당신의 위치에 비해 너무 높은 성능을 가졌기 때문이죠."
"그게 문제가 되는 거요?"
"물론입니다."
도미닉 경은 아직 성급과 코스트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다.
그저 성급이 높으면 좋구나, 코스트가 낮으면 좋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 그것들이 얼마나 가차랜드에서 중요한 부분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잠깐의 대화에 그 사실을 알아차린 머슬만은 도미닉 경에게 간단하게 성능에 대해 설명했다.
"성급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유용한지 보여주는 지표입니다.제가 아는 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별 하나는 골목, 별 둘은 마을, 별 셋은 도시, 별 넷은 국가, 별 다섯은 대륙 급의 강자라고 할 수 있다더군요."
뭐, 이것도 수백 년 전의 평가라 지금과 다를 수 있지만 말입니다. 라고 덧붙인 머슬만은 손가락 하나를 들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코스트는 당신의 몸값을 나타냅니다. 3코스트 정도면 아주 저렴한 편이죠."
도미닉 경은 그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심 이해되지는 않았다.
강한 이를 싸게 고용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닌가?
"혹시 강한 이를 싸게 고용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셨다면, 지독하게 이기적인 생각인 겁니다. 가차랜드는 그 기저에 자본이 들어가 있습니다.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신만 있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럴 리가 없죠. 당신의 강함보다 저렴하게 당신의 가치를 제공한다면, 당신과 비슷하거나 약한 이들은 그보다 더 낮은 가치에 자기 힘을 팔아야 하는 겁니다."
머슬만은 도미닉 경의 의문을 읽기라도 한 듯 가려운 곳을 긁어 주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너프라는 것을 하는 게 옳지 않소?"
도미닉 경은 새로운 의문을 입 밖으로 꺼냈다.
어째서 머슬만이라는 자는, 나를 너프에서 도와주겠다는 것인가?
"오해를 하셨군요."
머슬만은 환하게 웃으며 사이드 트라이셉스 자세를 취했다.
"저는 당신의 너프를 막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지? 도미닉 경은 머슬만의 말에 오히려 혼란스러워졌다.
너프에 대한 안건을 도와주겠다면서 막지 않겠다니,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도미닉 경의 혼란은 그대로 표정으로 나타났고, 그 표정을 본 머슬만은 여전히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이어갔다.
"조금 있다가 보면 아시겠지만, 너프는 필연적인 상황입니다. 다만, 너프란 것은 참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머슬만은 손가락을 모두 펼치고 하나하나 접으며 말했다.
"하나, 성능을 제한한다. 구속구나 저주받은 장비로 당신의 힘을 봉인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건 저희가 완강히 반대할 생각입니다."
머슬만의 두 번째 손가락이 접혔다.
"둘, 코스트를 늘린다. 저희 처지에선 이게 가장 베스트입니다. 너프라고 쓰고, 오히려 가치가 올라간다고 읽죠."
"가치가 올라간다?"
머슬만의 말은 아직 남아 있었으나, 도미닉 경은 머슬만의 말이 너무나 이상한 나머지 말을 끊어 버리고 말았다.
"그렇습니다. 저 위의 성좌들의 처지에서야 너프겠지만, 코스트의 증가는 당신이 받을 정산 비용이 늘어난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당신의 가치가 올라가는 셈이죠."
정산 비용이라.
가차랜드를 살아가려면 재화의 획득은 필수였다.
그런 재화를 더 얻을 수 있다는 뜻인가?
지금으로서도 제법 만족스러운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번째, 당신의 특성이나 특수 능력을 너프한다. 사실 이게 가장 일어날 확률이 큽니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첫 번째와 세 번째가 동시에 일어나는 거죠. 저희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당신을 도우려고 하는 겁니다."
"이상한 일이군."
도미닉 경은 머슬만의 말을 들으며 어딘가 찜찜함을 느꼈다.
"어째서 지금까지의 말에 당신이 얻을 이득 이야기는 없는 거요?"
분명 자신에게는 유리한 이야기였으나 이렇게까지 해서 머슬만이 얻는 이득은 무엇이란 말인가?
머슬만은 순간 뒤통수라도 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도미닉 경의 말에 더욱 크게 웃으며 본심을 내보였다.
"그거 아십니까? 탱커 노조는 뜻밖에 그 역사가 짧습니다."
머슬만은 다시 잔을 들었다. 잔에 연결된 쇠사슬이 찰랑거리며 머슬만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역사를 보더라도 돌을 무기로 쓴 것이 먼저였고, 가차랜드로 규모를 줄여서 따지더라도 어그로 패치 이전까지 탱커란 존재가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곧 힐러와 버퍼, 그리고 디버퍼가 되었고, 돌창과 돌검을 든 이들은 딜러가 되었죠."
머슬만은 목이 타는지 잔에 든 내용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무엇보다 어그로 패치 직후에도 문제였었죠. 쇳덩어리를 둘러 둔한 사람이 더 위협적일까요, 아니면 같은 무게의 쇳덩어리를 들고 휘두르는 사람이 더 위협적일까요?"
당연히 후자지요. 머슬만은 씁쓸하게 말했다.
"탱커가 제 몫을 못 하니 인식은 나날이 나빠지고 탱커를 하려는 이들은 줄어만 갔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탱커들이 물러날 수 없을 때, 탱커 노조가 만들어졌지요."
그의 잔은 이제 비어 있었다. 그가 말했던 탱커에 대한 인식과 탱킹을 할 수 있는 이들의 수처럼.
"노조는 탱커를 부흥시키려고 존재한 게 아닙니다. 그저 살려고 발버둥친 것에 불과했지요. 그 필사적인 발버둥이 좋게 보였는지 사람들의 인식도 조금 나아지고, 무엇보다 탱커를 하려는 인원도 조금 늘었지요. 올해는 2% 조금 넘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탱커 노조가 발족되었을 때엔 0.2%에 불과했구요."
머슬만은 잔을 다시 채워 넣었다.
물을 반쯤 채운 그는 프로틴을 덜어 넣기 시작했다.
"탱커가 점점 늘어나지만, 아직 유의미한 수치는 아닙니다. 네. 아니고 말고요. 도대체 왜 탱커가 이토록 적을까요? 왜 탱커에 대한 인식은 좋아지는데, 탱커를 하려는 이들은 한없이 부족할까요?"
마지막 한 숫갈의 프로틴을 넣은 그는 잔을 쭈욱 들이키더니 책상에 잔을 세게 내려놓았다.
책상에 또 하나의 균열이 생겼다.
"바로 스타의 부재입니다. 지금까지 딜러들은 화려함을 미끼로 사람들을 모아왔어요. 누가 보더라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딜량. 화려한 이펙트로 강한 적을 꺾는다는 쾌감. 하지만 탱커는 어떻습니까? 얼마나 화려하게 맞는지, 얼마나 잘 막아 내는지, 피해 감소량이 얼마인지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수는 극히 적죠."
손에서 잔을 놓은 머슬만이 도미닉 경을 보았다.
책상에 있던 강철잔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마침내 스타성을 가진 인물을 찾았습니다. 바로 당신이죠."
도미닉 경은 그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그저 감정이 격해져서 일어난 일일 뿐,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머슬만의 눈은 정직하고 올곧았으니까.
"부디, 탱커의 부흥을 위해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머슬만이 손을 내밀었다.
도미닉 경은 잠깐 그 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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