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45화]패치노트 2.13.0104.1
* * *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중년의 배불뚝이 남성이 마호가니 책상을 쾅 내리쳤다.
그의 양복 옷깃에 달린 검과 검이 교차된 모양의 금뱃지가 요동쳤다.
"아무리 탱커의 보급을 위해 편의를 제공했다지만 이건 선을 넘었습니다."
배불뚝이 남성은 침을 튀기며 자기 의견을 뱉어냈다.
그가 보는 영상에서 마침 도미닉 경이 전장 초반에 50명이 넘는 인원과 대치하면서 32명을 죽이고 고지를 방어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말이나 됩니까? 1성과 2성의 차이는 그렇다 쳐요. 하지만 50명 중에는 2성에 장비도 빵빵한 인원들이 다수 있었단 말입니다!"
"다 딜러잖아요. 게다가 보아하니 원거리 계열이거나 광역 피해 계열이던데."
배불뚝이의 말을 듣다 못한 여성이 말했다.
그녀의 옷깃에는 양손을 기도하듯 모은 모양의 금뱃지가 달려 있었다.
"원거리 딜러는 탱커에게 물리면 죽어야 한다. 의원님께서 말한 밸런스 공략이 아니던가요?"
"그러니까 말이야."
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넘긴 남성이 말했다.
그의 옷깃엔 활과 총이 교차된 금뱃지가 있었다.
"원딜 다음엔 탱커입니까? 근딜련이 아무리 현재 제 1당이라지만 이건 독재나 다름없죠."
"줄여 부르지 마시죠. 근접 딜러 연합입니다. 줄이면 욕 같잖습니까."
"욕하고 싶은데 참느라 그 정도로 부른 겁니다. 근딜련 소속 의원님."
"차라리 근딜당이라고 하세요. 당에 대한 공격은 저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습니다."
배불뚝이와 올백머리가 눈을 마주치자 마치 그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듯했다.
"당은 무슨. 달달하게 당만 빨고 싶다는 걸 그렇게 표현하는 건가?"
가만히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성이 비웃듯이 말했다.
"이익...!"
배불뚝이 남성은 이 협조성 없는 이들의 언행에 혈압이 올라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게 근접 딜러 연합의 업보였다.
근접 딜러들은 지금까지 온갖 혜택을 받으며 성장해 왔다.
온갖 게임과 소설, 그리고 만화를 보라.
대부분의 주인공은 검을 들고 다니거나, 혹은 마법사. 또는 둘 다였다.
이도 저도 아니면 성직자의 길을 걸었으나, 보라. 둔기나 검을 들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게 근딜련의 지속적인 로비의 결과였다.
근딜은 멋지다.
총은 몬스터에게 딜이 안 박힌다.
근딜이야말로 주인공에 적합하다.
마법을 쓰는 주인공이라도 단검이나 검을 들려주었다.
혹은 배틀 메이지로 만들어 창을 쥐어 주었다.
그렇게 로비와 여론 조작으로 커온 근딜련이었기에 다른 정당에서 고깝게 볼 리 없었다.
지금까지는 당의 위세에 눌려 말하지 못했으나, 최근 패치 노트를 대비해 근딜 내려치기를 한 상황이 드러난 상태였기에 조만간 있을 총선을 위해선 조금 자제해야 하는 시기였다.
다른 정당들도 그 사실을 알기에 오히려 근딜련 소속 의원들의 속을 뒤집어놓는 것이다.
"너희들,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근접 딜러 연합 차원에서 정식으로 항의를"
"실례합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회의실 내부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가차랜드의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사는 탓에 키가 큰 편이었으나, 지금 들어온 이는 그런 사람 세 명이 모여야 겨우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크고 근육질인 사내였다.
그가 입은 양복은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는데, 가슴엔 방패 모양의 금뱃지가 달려 있었다.
"이야, 작당모의를 하고 계시는군요."
들어온 이의 이두와 삼두가 꿈틀거렸다.
손을 들어 흘러내리는 안경을 끌어올린 근육질의 남성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그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사람들이 움찔거리며 몸을 떨었다.
"혹시 무슨 일로 작당하고 계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근육질의 남자는 보디빌더가 취할 법한 자세를 취하며 환하게 웃었다. 트라이셉스. 업도미널 앤 타이. 사이드 체스트.
자세가 바뀔 때마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근육이 꿈틀댈 때마다 근접 딜러 연합 소속 의원의 눈가도 못마땅한 듯 떨리고 있었다.
"별 건 아니오."
마침내 근접 딜러 연합의 의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탱커에게 너무 큰 혜택이 돌아가고 있기에 조금 줄이는 게 어떨까 의논 중이오."
배불뚝이 의원은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근육질의 의원이 배불뚝이 의원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
"이상하군요."
더블 바이셉스. 그는 양팔을 들어 올렸다.
"탱커에 대한 의논에, 탱커가 빠진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랫 스프레드. 그는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상체를 굽혀 배불뚝이 의원을 내려다보았다.
"탱커 없이 탱커 패치를 논한다니, 좀 그렇지 않습니까, 의원님."
완벽한 사이드 체스트와 완벽한 미소.
티 없이 맑은 근육질의 의원의 이빨이 반짝거렸다.
배불뚝이 의원은 사람 좋게 웃는 근육질의 의원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오랫동안 정치질을 하며 쌓아온 눈치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되면 자신이 계획한 모든 것이 무효가 된다.
그러나 배불뚝이 의원은 탐욕스럽게도 자기 계획 일부라도 살리고자 머리를 굴렸다.
"좋소. 우리 근접 딜러 연합은 이번에 탱커는 건드리지 않으리다."
"역시나. 의원님께서 경우를 아는 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슈가 된 2성 탱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너프할 수 있도록 용인해주시오."
근육질 의원의 자세가 멈췄다.
환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경멸하듯 내려다보는 눈빛만 남았다.
"역시나, 탱커에 대한 규제를 포기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어쩔 수 없소. 탱커는 건드리기 싫지만, 그자는 선을 넘었소."
배불뚝이 의원은 뻔뻔하게 말했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기엔 탱커에 대한 혜택은 지금이 딱 적당하지. 하지만 보시오. 탱커가 너무 큰 혜택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소. 그 와중에 저런 규격 외의 탱커가 나타난 거요. 그런데 저런 규격 외 인원조차 너프를 안 한다?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탱커라서, 그저 탱커라서 혜택을 받는다. 다른 탱커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라고 생각할 거라는 생각 안 해 보셨소?"
근육질 의원은 갈라진 턱을 매만지며 배불뚝이 의원의 말을 경청했다.
배불뚝이 의원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는 너프를 진행해야 탱커들이 욕을 덜 먹는 법일지도 몰랐다.
결국 배불뚝이 의원의 말에 넘어간 근육질의 의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이 부분은 제가 양보하지요. 대신 다른 혜택들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재미없기 전에."
"흥. 좋소. 서로 이렇게 양보하니까 얼마나 좋아."
둘은 협상이 타결되었다는 의미로 서로의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보이지 않게 힘을 주어 서로 꽉 쥐어진 손은 피가 통하지 않아 창백해지고 있었으나, 두 사람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웃는 척하고 있었다.
...
"집이 없다니."
왈록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상점에서 2,580 가차석이나 35만 크레딧이면... 아니, 가장 싼 원룸으로 계약하면 월 20 가차석이나 4,200 크레딧이면 얻을 수 있는 방 하나도 없다고?"
뜻밖에 싼 편이군. 도미닉 경은 생각했다.
"심지어 차원 상점에서 거주 지원 패키지를 팔 거 아니야. 혹시 차원 상점을 들린 적이 없나?"
"차원 상점?"
왈록은 확신했다. 도미닉 경의 저 의문스러운 말은 정말 모를 때 나오는 반응이었으니까.
"세상에.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거야?"
"잠을 안 잤습니다."
그랬다. 지금까지 도미닉 경은 거리를 산책하거나 스테이지를 돌거나 했지만, 잠을 잤다는 말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잠이 부족한 것으로 미쳐 버렸을 수도 있으나, 도미닉 경은 싸우다가 기절한 것도 잠으로 쳤고, 죽고 부활할 경우 모든 컨디션이 회복되었기에 심하게 피곤하다 싶으면 몰래 죽었다가 부활했다. 버그 리포트 당시 죽음을 겪으며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후의 일이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하지 못할 발상. 그러나 도미닉 경은 그 간단한 일에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항상 흐. 하고 웃거나 엉뚱한 곳에서 행복해하던 모습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도미닉 경은 왈록의 예상보다 더 미친 사람이었다.
"일단 오늘 돌아가면 집부터 사라. 혹시 돈이 부족하면 말해. 빌려줄 순 있어. 세상에. 후배가 집 없는 노숙자였다니."
하우징 시스템. 가차랜드에서 집을 사고 꾸미는 일은 그렇게 불렸다.
그리고 이 하우징 시스템은 가차랜드에서 어느 정도 산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것이었으나, 눈앞의 도미닉 경은 그 누구에 포함이 되지 않았다.
"집이 필요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도미닉 경은 그렇게 물었다.
왈록은 최대한 도미닉 경이 관심이 있을 만한 요소를 끄집어내 반드시 도미닉 경이 집을 사도록 유도할 생각이었다.
"집에 가구를 들이면 쾌적도가 올라. 쾌적도가 일정 이상이 되면 에너지 생산량이 늘어나지."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느린 에너지 충전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기본적인 스탯이 올라... 잠깐. 지금 너 추가적인 요소 없이 깡 스탯으로 산 거냐?"
왈록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급하게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깡 스탯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으나 행간을 통해 그저 본래 능력이라고 유추한 도미닉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왈록이 골치가 아픈지 이마를 짚었다.
도미닉 경은 정말 아직 갈 길이 먼 사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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