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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43화 (43/528)

〈 43화 〉 [42화]전멸전

* * *

"사령관 님, 방금 전 그건 뭡니까?"

사령부 깊은 곳, 작전 회의실.

오랫동안 사령관을 보좌해온 참모가 책상을 내려치며 인상을 찌푸렸다.

사령관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그저 머그컵에 담긴 위스키를 마시며 격자가 그려진 전장 지도를 바라볼 뿐이었다.

"스토리 작가죠? 스토리 작가가 시키덥니까?"

그는 무려 세 명의 사령관을 보좌해온 베테랑 중 베테랑이었기에 현재의 사령관과도 격식 없이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 전략과 전술 외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령관은 언제나 참모의 조언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이상하군. 잘 먹힐 거라고 했는데. 자네까지 이러는 걸 보니 내용이 엉망이었나보지?"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참모는 말문이 막혔다.

전쟁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 허당 사령관은 가끔 사람의 속을 뒤집어 엎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진짜 이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현하는 게 서투르단 말이지."

참모가 사령관이 들으라고 크게 투덜거렸다.

사령관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로 그저 머그컵에 든 술을 홀짝였다.

"돌아가면 지금 스토리 작가의 후원을 그만 받아야겠습니다. 사령관 정도면 원하는 스토리 작가를 골라 잡아도 돼요. 어려울 때 도와줬다지만, 이렇게 무능해서야."

사령관의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잖습니까. 라고 참모가 역정을 내었다.

"그 말은 그만하도록 하지."

사령관은 슬슬 격해지는 잔소리를 피하려고 말을 돌렸다.

"시너지가 발동되었으니, 이제 작전이 시작될 것 아닌가. 차라리 혹시 모를 적의 한 방을 대비하자고."

사령관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지도 위엔 나무로 깎은 검고 흰 말들이 놓여 있었다.

지도에 그려진 격자와 합쳐져 마치 체스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령관은 하얀 말을 잡아 8번 고지가 있는 H3으로 옮겼다.

8번 고지에 있던 검은 말이 쓰러졌다.

...

집결지에 도착한 도미닉 경은 하늘에 떠 있는 쇳덩이를 바라보았다.

날개도 없이 어떻게 저렇게 하늘에 떠 있는 것일까?

마법이나 특별한 이유로 떠 있던 마족들도 보았으나 눈앞의 쇳덩이는 그런 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신기함이 있었다.

"저건 무엇이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도미닉 경이 스트렐치에게 물었다.

자기 군장을 자체적으로 점검하던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이 지목한 것을 바라보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베헤모스급 수송함이지. 반중력 엔진인가 뭔가로 날아다닌다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방산비리로 가득한 쇳덩이야."

속도는 느리지, 바로 이전 세대보다 내구도도 약하지. 스트렐치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도미닉 경은 의문을 해결하려다가 더 큰 의문으로 돌려받았으나, 수송이라는 말을 듣고 저 하늘을 나는 강철의 배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용도라고 추측할 수는 있었다.

"작전 시간입니다! 모두 수송함에 승선하시길 바랍니다!"

용기병들이 사용할 법한 투구를 쓴 이가 크게 팔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우리도 가자고."

군장을 정리한 스트렐치가 마지막으로 자기 허리춤에 야전삽을 끼우고 일어섰다.

도미닉 경은 그저 스트렐치가 걷는 대로 따라 걸었다.

전장을 모를 때는 향토병을 따라 하라는 격언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었다.

수송함에 가까이 다가가자 하늘을 나는 배에서 엄청난 풍압이 느껴졌다.

수송함에 올라타며 자세히 보니 배의 좌우에 맹렬하게 회전하는 무언가가 달려 있었다.

아마 저게 하늘을 날 수 있게 하는 장치겠지. 도미닉 경은 자기 스스로 납득했다.

배 안에 들어서자 양쪽으로 긴 의자들이 있었고, 그 의자에는 이미 탄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제일 안쪽으로 가자고. 자네는 이 수송함이 처음일 테니 얼 탈 것 같아서 말이야."

스트렐치가 도미닉 경을 이끌고 제일 안쪽으로 향했다.

복잡한 장치들이 가득한 수송함의 내부를 신기하게 바라보던 도미닉 경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몸에 감는 것을 보았다.

"저게 뭐요?"

스트렐치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안전벨트. 아까도 말했듯이 이 수송함은 방산비리 투성이라 충격 흡수가 잘 안 되거든. 안전벨트 없으면 안에서 대참사가 일어나지."

가장 안에 도착한 스트렐치는 익숙하게 자리에 앉고는 안전벨트를 맸다.

도미닉 경은 곁눈질로 어설프게 따라 하며 겨우 벨트를 맬 수 있었다.

"여기 이걸 누르면 벨트가 풀릴 거야. 조금 있다가 내릴 때 누르고 들어온 곳으로 뛰쳐나가면 돼."

스트렐치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도미닉 경을 어느 정도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승객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이 수송함은 지옥, 지옥으로 향하는 특급입니다. 최전방으로 향하시는 여러분들께 미리 심심한 애도를 표합니다. 물론, 저도 거기서 내리겠지만 말입니다."

배 내부에 달린 스피커들에서 조종사의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이 수송함은 집결지에서 출발해 8번 고지로 향할 예정입니다. 중간에 적들의 요격이 있을 예정이오니 항상 충격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운전이나 똑바로 할 것이지."

스트렐치가 방송을 듣고 투덜거렸다.

"항상 흔들리면서 핑계는 잘 대요."

"30초 후에 이 수송함은 이륙합니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수송함의 문 옆에 붉은 등이 점멸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문이 서서히 닫히며 점점 수송함 내부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토하지만 마."

스트렐치가 장난스럽게 도미닉 경에게 겁을 주었다.

"진짜, 방산비리라는 게 뭔지 몸으로 체득하게 될 테니까."

잠시 후, 수송함이 이륙을 시작했다.

...

8번 고지.

초반의 전장의 중심이 3번 고지에 있던 요새였다면, 후반부의 중심은 바로 이 8번 고지였다.

"요호! 모두 숨을 크게 들이쉬어라! 잠수를 시작한다!"

거대한 유령선이 긁힌 자국 가득한 땅 위를 매끄럽게 움직이다가 땅 아래로 사라졌다.

잠깐 땅 아래를 움직인 유령선은, 뭉쳐 있던 사람들 사이에 솟아올라 그 자리에 있던 운이 나쁜 이들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유령선 사이에 있던 이들은 전장을 이탈했으나, 그 주변에 있던 이들은 침착하게 유령선을 향해 공격을 시도했다.

[(RED) 성좌 촉수의 탐구자가 신의 힘 [계몽]을 사용합니다. 일부 인원들이 변이합니다.]

그러나 유령선도 만만치 않았다. 촉수의 탐구자가 계몽을 시전하자 여기저기 썩고 뒤틀린 배에서 촉수가 솟아올랐다. 여덟 개의 거대한 촉수가 나타나자 마치 배를 뒤집어쓴 크라켄과 같았다.

유령선은 촉수로 주변의 사람들을 쓸어담으며 배 위에서 음험하고 으스스한 유령 포탄을 쏘아 댔다.

"유령선은 지금 인원들로 막고, 나머지는 유령선 대신 저기 달려오는 놈들을 막아! 방어선이 뚫이면 안 된다!"

4스테이지 지휘관이었던 정치장교 이골로스키가 달려오던 변이체의 머리를 권총으로 쏴 저지하며 말했다.

"전시에서 비겁함은 즉결 처형이다! 그리고 뒤틀린 사상을 가진 이들은 사형이야! 비겁하고 뒤틀린 놈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골로스키는 하늘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예광탄이 들어 있던 것인지, 탄환은 빛을 내며 하늘로 솟구쳐올랐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아군의 발치에 붉은빛 무리가 생성되더니, 더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제길. 이 정도론 유지밖에 할 수 없는데."

이골로스키는 권총의 탄창을 갈아 끼우며 전장을 살폈다.

어느 고지나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8번 고지는 유독 심했다.

이골로스키는 급하게 엎드려 자신을 향해 급강하한 와이번의 발톱을 피했다.

고개를 들어 와이번에 대해 경고를 하려던 찰나, 아군 측에서 온 전투기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와이번은 날개가 찢어져 추락했다.

떨어진 와이번은 전차와 부딪혀 튕겨 나왔다. 그 전차는 갑자기 땅에서 솟아오른 촉수에 잡혀 으스러졌다.

촉수는 다시 사격을 받고 땅 아래로 숨어들었다.

[(ALL) 성좌 촉수의 탐구자가 신의 힘 [뒤틀린 시공]을 사용합니다. 촉수의 탐구자 측 인원에게 전장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표시됩니다.]

"도대체 지원군은 언제 오는 거야?"

자리에서 일어난 이골로스키는 은신을 쓰고 몰래 도망치려는 사람을 보았다.

조준도 하지 않고 도망치는 이를 쏴서 넘어뜨린 이골로스키가 적진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적들이 땅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마 방금 말했던 신의 힘으로 온 거겠지.

적들의 지원군이 온 이상, 아군의 지원군을 바랄 수밖에.

만일 제시간에 아군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이곳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BLUE) 스테이시(블루) : "아아, 8번 고지에게 전한다. 곧 지원군이 도착한다. 다시 한번 말한다. 곧 지원군이 도착한다."]

"양반은 못 되는군."

이골로스키는 등 뒤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온 수송함이 점점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응?"

그러나 그 수송함은 속도를 최대한 늦췄음에도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이골로스키의 머리 위를 지나쳐 적진으로 향했다.

쾅. 하고 유령선과 수송함이 부딪혔다.

"어, 어어! 쓰러진다아­!"

유령선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있었고, 이미 충격에 앞부분이 완전히 찌그러진 수송함은 땅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마침내 뒷문이 뒤틀려 제멋대로 열리고 나서야 멈춘 수송함에서 사람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방산비리. 그놈의 방산비리."

"으. 충격에 대비하라는 줄 알았더니 충각에 대비하란 거였구만."

곡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것 봐. 안전벨트는 꼭 매야한댔지. 그나저나 도착은 제대로 한 것 같군."

"그게 문제가 아니오. 아무래도 우린 적진 가운데 떨어진 듯 하오."

그나마 곰처럼 강인한 스트렐치와 탱커 특성을 가진 도미닉 경은 무사히 걸어 나올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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