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1화]전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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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스테이지에 재진입한 도미닉 경은 백수의 거인 측 주둔지로 추정되는 곳에서 부활했다.
확신이 아니라 추정인 이유는 자신이 기억하던 주둔지의 모습과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건..."
도미닉 경이 기억하는 주둔지의 모습은 어설픈 목책과 대충 쌓여 있던 상자가 전부인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당장 포탄 옮겨! 대구경 지각변동탄은 아직 연구 덜 끝났어?"
"30초! 30초만 더 기다려! 성좌가 내려 준 자원 수습하고!"
올려다보면 목이 아플 것 같은 거대한 사령부.
백수의 거인을 상징하는 듯한 백 개의 손바닥 문양이 새겨진 깃발과 휘장들.
사령부와 연결된 높은 첨탑에는 통신장치가 가득 달려 돌아가고 있었고, 그 너머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땅에 떨어지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연기를 뿜어내는 공장들이 가득했다.
공장들 앞에는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건축물들이 있었는데, 도미닉 경은 지금까지 그 건축물에 달린 대포만큼 큰 대포를 본 적이 없었다.
대포가 엄청난 연기와 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도미닉 경은 멍하게 그 대포가 발사한 기다란 포탄의 궤적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지평선 너머로 겨우 보이게 된 고지 중 하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한 번 일어난 폭발을 시작으로 지속해서 포탄이 비처럼 쏟아지며 땅거죽을 뒤집었다.
도미닉 경은 이 광경을 보며 말문이 막혀 버렸다.
[(ALL) 성좌 촉수의 탐구자가 신의 힘 [승천]을 사용합니다. 촉수의 탐구자 측 인원 중 일부가 신화적인 힘을 얻고 차원과 차원 사이를 거닙니다!]
[(ALL) 성좌 백수의 거인이 신의 힘 [기간토마키아]를 사용합니다. 잠깐 오컬트적인 힘과 신화시대의 영광이 봉인됩니다!]
신의 힘도 자신이 알던 것과 달랐다.
유성우도 분명히 경악스러울 정도의 신의 힘이었으나, 전쟁 확장을 통해 더욱 강한 힘을 쓸 수 있게 된 성좌들의 수싸움은 가볍게 내질러도 한 왕국을 무너뜨릴 만한 힘을 담고 있었다.
인지를 벗어난 전장의 상황에 도미닉 경은 전의를 불태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전장은 평범함의 궤를 벗어나 있었다.
"벌써 전멸전이라니."
도미닉 경은 옆에서 들려오는 한숨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미 승리는 예정되어 있단다, 스테이시 중위."
도미닉 경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전장과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티테이블과 머그컵, 그리고 위스키 병이 있었다.
테이블의 양쪽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 뒤에 스트렐치가 곧은 자세로 서 있었다.
한쪽은 도미닉 경도 아는 얼굴인 스테이시였고, 반대편에 앉은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으나 도미닉 경은 두 사람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긴, 아빠가 지휘관이니 질 수가 없죠."
"스테이시 중위,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사령관이라고 호칭하도록."
"네. 네. 사령관."
스테이시보다 약간 어두운 붉은 머리에 창백하고 거친 피부를 가진 군인은 어깨에 걸친 코트를 추켜올리며 머그컵을 들어 올렸다.
절제적인 움직임으로 머그컵 안의 내용물을 마신 군인은 스테이시의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옆에서 긴장하고 있던 스트렐치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요즘 애들은 다 저런가, 아니면 내 딸이 유독 사춘기가 늦게 온 건가? 어떻게 생각하나, 스트렐치 상사?"
"방금 부활하셨잖습니까. 원래 죽은 뒤에 부활하면 사람이 까칠해지는 겁니다, 사령관님."
"그런가?"
전장의 바람 소리가 거세졌으나, 바람 소리를 뚫고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스트렐치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사령관이라 불린 이는 머그컵을 홀짝이며 스테이시를 응시했다.
스테이시도 아버지. 아니, 사령관을 마주 보며 팽팽하게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뭐, 그런 거로 하지. 지금은 가정사가 중요한 게 아니잖나. 승리. 그게 중요한 포인트지."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남성은 소리가 나지 않게끔 조심스럽게 머그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테이시를 한 번 보고는 냉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조금 있으면 시너지가 활성화 될 거다. 시너지가 터지는 때가 공세 시작이니 알아두도록, 스테이시 중위."
"...알았어."
사령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어깨에 걸친 코트를 여미며 사령부로 들어갔다.
스트렐치는 사령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사령관이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스테이시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이제는 빈 테이블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한숨을 쉴 뿐이었다.
"아버지가 날 싫어하는 게 아닐까."
지금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으나, 평소의 아빠는 무뚝뚝하고 냉철한 사람의 표본이었다.
평생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애정 어린 포옹 한번 해준 적 없었다.
일과 승리밖에 모르는 사람. 스테이시는 자기 아빠를 그렇게 생각했다.
스테이시가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그 과정에 뒷머리가 의자 사이의 틈에 끼어 헝크러졌으나 스테이시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스트렐치에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아버지를 동경해서 군인이 되었는데, 정작 군문에 들어서니 쌀쌀맞게 구시잖아."
차마 아빠를 욕할 수는 없었는지, 순화된 표현으로 말이다.
"그건 아닐 겁니다."
스트렐치는 방금 전까지 테이블 위에 있었을 사령관의 머그컵을 생각했다.
방금 전, 사령관의 뒤에서 서 있었을 때, 스트렐치는 머그컵에 적힌 문구를 보았다.
곰인지 사자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동물이 그려진 머그컵엔, '어버이날 감사 선물, 스테이시.'라고 적힌 글귀가 있었다.
스트렐치는 그저 사령관이 평생 전쟁만 겪고 살아온 사람이라 표현이 서툴 뿐,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도미닉 경이 끼어들기 전까지 말이다.
"시너지가 대체 뭐요?"
스트렐치와 스테이시는 화들짝 놀라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무안 해진 도미닉 경이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너무 궁금해서 말이오."
차가운 눈보라만큼이나 분위기가 완전히 싸늘해진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기사다운 용기로 꿋꿋하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그 뻔뻔함에 한숨을 내쉰 스테이시는 이미 분위기가 깨진 김에 그냥 도미닉 경이 궁금한 점을 알려주고 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했다.
"시너지는 같은 클랜 내에서 비슷한 특성, 혹은 서로를 보완하는 특성이 모여 더 큰 효과를 내는 것을 말해요."
스테이지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어나는 도중 끼인 머리 때문에 목이 뒤로 꺾일 뻔했으나, 무덤덤하게 머리카락을 빼낸 스테이시가 냉정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말한 시너지는, 아마 지휘관 시너지 일 거예요. 클랜 시너지 일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거나."
스테이시는 설명을 이어갔으나, 아직 클랜에 가입하지 못한 도미닉 경에게 있어 말로 들어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그저 클랜에 가입하면 특성이 강화되는구나, 정도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BLUE) 성좌 백수의 거인 측 1스테이지부터 6스테이지의 모든 지휘관이 전장에 있습니다. 시너지 [전장의 오케스트라]가 발동됩니다! 블루팀의 모든 인원은 돌격시 사격 저항 25%와 이동 속도 10% 증가 효과를 얻습니다.]
[(BLUE) 성좌 백수의 거인 측 지휘관이 모두 '스테이시 IV 클랜' 소속입니다. [지휘 계통 일원화] 시너지가 발동됩니다. 이제부터 부활할 수 있는 장소가 주둔지를 넘어 전 지역으로 확장됩니다.]
"마침 시너지가 나왔네요. 저게 바로 시너지예요. 저희는 지휘관 시너지라서 전체 버프지만 시너지에 따라 효과가 다 다르니 그냥 그렇다고만 알고 계세요."
도미닉 경은 아군에게 보이는 시스템 창을 보며 시너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것 같았다.
스테이시는 신기하게 시너지 창을 보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방금 아빠... 아니, 사령관이 시너지가 활성화 되는 즉시 공세 개시라고 했으니 이제 가보시죠. 저도 통신탑에서 명령을 하달해야 할 것 같아서. 스트렐치, 도미닉 경과 함께 전방으로."
"알겠습니다, 스테이시."
스테이시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사령부 옆 통신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트렐치는 스테이시가 사라지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올라갔던 어깨가 내려앉았다.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에게 따라오라는 뜻으로 손짓하고 고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도미닉 경의 행동에 할 말이 많았던지 히죽 웃고는 장난스럽게 핀잔을 주었다.
"자네는 참 눈치가 없군. 눈이 하나밖에 없어서 그러나?"
"전장에서 눈치 보단 눈썰미가 좋아야 하는 법이오."
도미닉 경은 당당하게 말했다.
"하긴. 자네는 기사였지. 소속 없는 프리랜서."
"창을 쓰진 않지만 말이오."
도미닉 경과 스트렐치는 주둔지 성벽을 넘어 계속 걸어가기 시작했다.
문득 스트렐치는 도미닉 경을 부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니 클랜도 모르고, 시너지도 모르는 애송이가 이렇게나 활약했으니 앞길은 창창하겠구만."
"글쎄. 아직 배울게 많다 보니 잘 모르겠소. 좋은 거요?"
"기만 멈춰. 이 기만자 놈아."
주둔지의 성벽을 넘은 둘은 성벽 아래 세워진 집결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모든 병력의 집결이 끝나면 적진을 향해 마지막 공세가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완전한 승자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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