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0화]국지전?
* * *
예카테리나는 5번 고지를 보았다.
그리고 짐승처럼 싸우는 도미닉 경을 보았다.
"그놈이군."
예카테리나는 자기 활약을 막아 낸 기사를 바라보았다.
스트렐치를 저격할 때 자신을 방해한 기사를.
그녀는 묵묵히 도미닉 경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자기 어깨에 걸친 저격총으로 도미닉 경을 조준했다.
저격총의 스코프에 도미닉 경의 미소가 가득 담겼다.
예카테리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방아쇠를 당겼다.
화약이 터지는 소리는 바람 소리에 묻혀 침묵했다.
그리고 예카테리나는 도미닉 경이 그 소리처럼 침묵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도미닉 경은 또 하나의 목을 벴다.
지금까지 몇 명을 막아 냈을까?
도미닉 경은 어느 순간부터 세는 것을 잊고 있었다.
"흐."
하지만 잊으면 어떠하랴. 이렇게나 행복한 것을.
도미닉 경은 점점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가는 방패를 다시 들어 올렸다.
"괴물 같은 놈. 지친 척이라도 좀 하지 그래?"
첩보대장은 질린 눈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탱커 특성을 가진 이들이 부조리할 정도로 보정을 받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도미닉 경은 그 궤를 벗어난 이였다.
[(ALL) 성좌 백수의 거인과 성좌 촉수의 탐구자가 동시에 전쟁 확장을 완료했습니다!]
[(ALL) 전장이 더욱 확장됩니다! 추가적으로 두 개의 고지와 추가적인 지형이 연결됩니다.]
1스테이지의 인원은 대체적으로 소모품이었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1스테이지의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1스테이지 인원인 도미닉 경이 두 번째 전쟁 확장까지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도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첩보대장은 도미닉 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가 보기에 도미닉 경은 3지역의 망령이 될 자격이 충분했고, 반드시 3지역을 다시 들릴 것이라 보았다.
지금은 적으로 만났으나, 아직 모르는 일이다.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는 아군으로 만날 가능성이 있다.
첩보대장은 그때를 대비해 도미닉 경과 안면을 익혀두기로 했다.
"이봐, 기사 나으리. 보아하니 꽤 괜찮은 사람 같은데 통성명이나"
그때, 백수의 거인 측 주둔지에서 큰 불꽃이 일어나며 폭발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큰 폭발이었는지 거센 바람 소리를 뚫고 도미닉 경의 귀에 닿을 정도였다.
도미닉 경과 첩보대장은 무의식적으로 폭발이 일어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도미닉 경의 이마에 직격했다.
차마 반응하지 못한 도미닉 경은 천천히 기울어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연기가 흩어지고 있었다.
시야가 넓어지며 연기 사이로 희미하게 웃는 저격수를 보았다.
"흐."
도미닉 경은 그 웃음을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정말, 여긴 즐겁고 행복한 곳이구나.
도미닉 경의 시야가 암전되기 전 마지막 생각이었다.
"헛."
도미닉 경은 시야가 돌아오자마자 비틀거렸다.
그리고 주변의 상황을 살폈다.
익숙한 곳이다.
도미닉 경은 이곳을 어디서 봤더라?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스토리 모드 로비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 당연한 사실을 잊을 만큼 전장에 열중한 탓이었다.
분명히 자신은 전장에서 싸우다가 총알을 맞고
아.
도미닉 경은 분명히 한 번 죽었다.
'에너지가 충분하다면, 죽어도 일정 시간 후에 다시 들어올 수 있어.'
스트렐치의 말이 떠올랐다.
도미닉 경은 바로 자기 에너지 잔량을 확인했다.
에너지는 다시 도전하기에 충분할 만큼 있었다.
도미닉 경은 바로 3지역 입구로 달려갔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줄을 서고 있었다.
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으나, 그사이 죽은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서며 줄어드는 것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초조한 마음으로 줄의 끝에 섰다.
지금 도미닉 경은 행복으로 가득한 상태였고, 이 행복이 멀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중독이나 PTSD 증상이 의심되지만 도미닉 경에게 있어 이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성질의 일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줄은 길었고, 도미닉 경은 서서히 이성을 되찾아갔다.
"허."
행복한 감각이 빠져나가면서 도미닉 경은 조금씩 허탈해졌다.
하나에 몰입한 만큼, 몰입이 깨지는 순간 찾아오는 허탈함은 놀라울 정도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법이다.
도미닉 경은 줄을 서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전장에 돌아가면, 다시 그 감각을 느낄 수 있겠지.
그런 기대감을 가지며 줄이 줄어들길 기다렸다.
도미닉 경이 그렇게 생각할 때, 앞에 서 있던 이도 같은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아."
도미닉 경은 땅이 꺼질 듯 내뱉어진 한숨 소리에 앞에 선 작은 꼬마 장교를 보았다.
타는 듯 붉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아가씨였다.
"하필이면 자폭이라니. 진짜 상도덕을 모른다니까."
"도대체 왜 그런 놈이 전장에 들어오는 거야? 앞에선 정정당당하고 뒤에서 음험해야지, 앞에서 그렇게 치사한 방법을 쓰는 게 어딨어!"
"돌아가면 어느 때려나? 일단 지휘관 유지는 물 건너 갔고..."
앞에 선 이 작은 아가씨는 쉴 새 없이 투덜거리며 불만을 쏟아 냈다.
"하아. 제발 전면전이나 전멸전까지는 아니었으면 하는데. 적어도 국지전 끝자락이라도"
도미닉 경은 그 말을 이상하게 여겼다.
고개를 들어 줄이 줄어드는 속도를 확인한 도미닉 경은 앞으로 10분, 늦어도 15분 정도면 자기 차례가 돌아올 것 같았다.
전장에서 전쟁 확장까지 걸린 시각은 수십 분은 걸리지 않던가.
자신이 죽기 전에 새로운 확장이 일어났으니, 지금 들어가더라도 아직 추가적인 확장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앞의 여성은 적어도 자신보다 3지역을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으니,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지.
그리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저기, 이야기를 엿들어서 죄송하오. 다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소."
도미닉 경은 붉은 머리의 장교 아가씨에게 말을 걸었다.
장교 아가씨는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도미닉 경을 째려보았다.
"가뜩이나 짜증 나 죽겠는데 말 걸지 말아 잠깐. 도미닉 경?"
장교 아가씨는 도미닉 경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전에 본 적이 있었나? 라며 머릿속을 뒤졌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아가씨와 만난 적이 없었다.
"날 아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난 당신을 본 적이 없는데..."
"알다마다요. 딕 스테이시예요. 2스테이지 지휘관을 맡았죠. 전체 채팅으로 제 말을 들은 적 있을 텐데요?"
도미닉 경은 눈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시스템 메시지 중 스테이시란 이름을 본 것 같기도 했다.
"지휘관이었구려. 그나저나 여기에 있다는 말은 당신도 죽은 거요?"
"그렇죠. 자살 폭탄테러에 당해서 죽었어요. 으, 진짜 짜증 난다니까."
도미닉 경은 자신이 죽기 전 들렸던 폭발음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이 아가씨는 그 폭발에 휘말려 사망한 모양이었다.
"지휘관이 없으면 전장이 불안정해져요. 제발 다음 전쟁 확장까지 별일 없으면 좋겠는데."
"폭발이 일어난 다음에 바로 전쟁 확장이 일어났으니 괜찮을 거요."
"그래요? 그럼 안심할 수 있겠네요."
짜증을 내던 스테이시는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얼마나 순식간에 감정이 바뀌었는지 오히려 도미닉 경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나저나 아까 뭐 물어볼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스테이시는 줄어드는 줄을 따라 앞으로 한 걸음 걸었다.
"아. 그게 말이오, 기다리는 시각은 고작 10분에서 15분 정도인 것 같은데, 안에서 들은 말로는 전쟁 확장 하나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소. 어느 것이 진짜인지 헷갈려서 말이오."
도미닉 경은 정중하게 궁금했던 점을 말했다.
"둘 다 맞아요. 다만 한 가지 전제가 있다면 말이죠."
스테이시는 도미닉 경을 보며 한 발자국 더 걷다가 앞에 멈춰 선 사람의 등에 부딪혔다.
스테이시는 부딪힌 사람에게 가볍게 사과하고는 다시 도미닉 경에게 말했다.
"혹시, 배속이라는 말 알아요?"
"배속?"
도미닉 경은 처음 듣는 단어였다.
"시간 가속과 비슷한 거죠. 스테이지 내부의 시각은 외부의 시간과 다르게 흘러가요. 생각해 보세요. 3스테이지가 그렇게 빨리 끝날 것 같던가요?"
도미닉 경은 고개를 저었다. 대략 반나절은 싸웠던 것 같다. 그런데도 고작 두 번의 전쟁 확장이 있었지 않은가.
"3스테이지는 싸우는 성좌의 성향에 따라 최저 4시간, 최고 12일 3시간을 싸운 기록이 있죠. 현실에서 그 정도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수많은 컨텐츠들은? 혹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이 엉망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일상으로 돌아가기에는, 전장은 너무 즐겁고 흥미진진한 곳이죠."
스테이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의 어깨에 달린 견장이 어깨를 따라 살짝 접혔다가 펴졌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3배속, 시간의 경과에 따라 최대 12배속까지 올라가죠. 그래서 한 번 죽으면 부활이 오래 걸리는 거예요. 이 배속 때문에 성좌가 아니면 전쟁을 열 수 없는 거구요."
도미닉 경은 간단한 산수를 시작했다. 기다리는 시간을 넉넉히 15분을 잡고 3배라고 했으니 거기에 15분과 15분을 더하면 45분이었다.
45분이면 방금 전까지의 감각으로 봤을 때 시작하고 나서 첫 전쟁 확장이 일어난 순간까지의 길이였다.
도미닉 경은 이제야 전장의 메커니즘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벌써 재진입 할 때가 되었네요."
도미닉 경은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도미닉 경과 스테이시 앞의 두 사람만 넘어가면 자신들의 차례였다.
순식간에 두 사람이 스테이지에 재진입하자, 스테이시는 뒤를 돌아 도미닉 경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럼, 전장에서 봬요. 기사 씨."
그리고 스테이지 진입 버튼을 눌러 눈앞에서 사라졌다.
도미닉 경은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향해 한 발자국 몸을 옮겼다.
"전장에서 봅시다, 장교 아가씨."
도미닉 경은 스테이지 진입 버튼을 눌렀다.
이제 다시 전장에 도미닉 경이 참전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