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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32화 (32/528)

〈 32화 〉 [31화]후일담&후일담

* * *

도미닉 경이 자리를 뜬 이후, 히메는 자기 집으로 향했다.

조금 더 도미닉 경을 지켜보고 싶었으나, 아버지가 정한 통금시간이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히메는 자기 자취방인 동양풍의 거성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마른 체격에 큰 키를 가진 남자가 합장을 하며 히메를 반겼다.

그는 몸에 딱 맞는 양복을 입고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긴 머리를 넘겨 비녀로 고정시킨 머리가 인상적인 닌자였다.

"다녀왔어요, 집사."

히메는 자취방을 관리하는 집사에게 대충 인사하고는 방으로 향했다.

히메가 좋아하는 붉은색으로 가득 찬 방.

벽에는 닌자에게 필요한 일곱가지 도구가 걸려 있었고, 침대엔 하늘하늘한 자홍색 커튼이 걸려 있었으며 침대 위에는 히메가 어릴 적부터 껴안고 잔 닌자 복장의 낡은 토끼 인형이 있었다.

히메는 문을 닫자마자 바로 침대에 누워 토끼 인형을 껴안았다.

낡아 한쪽 눈이 사라진 토끼 인형이 도미닉 경과 겹쳐 보였다.

"도대체 난 왜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히메는 도저히 자기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히메는 토끼 인형을 껴안고 한참 동안 침대 위를 뒹굴었다.

"우사기 상, 당신은 뭔가 알고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던 그녀는 자기 오래된 인형에게 물었다.

그러나 인형이 말을 할 리 없다. 대신 그녀는 토끼 인형의 목소리로 변조한 채 자신에게 되물었다.

"아무래도, 우리 히메가 관심 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군."

낮게 깐 히메의 목소리가 달팽이관을 거쳐 히메의 귀로 들어갔다.

"그러게요. 도대체 왜 관심이 있는 걸까요?"

"그건 나야 모르지."

토끼 인형이 말했다.

"하지만 너는 답을 알고 있어. 그동안 배운 것들을 생각해 보렴. 그리고 주변에서 너에게 깨달음을 준 이들의 말을 경청해 보렴."

현명한 토끼 인형은 히메에게 조언했다.

히메는 토끼 인형을 꼭 껴안았다.

닌자 마을에서도 명문가에서 태어난 히메는 부족한 것 없이 살아왔다.

그 누구보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모두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사는 자기 자취방인 히메 캐슬도 혼자 살며 다양한 경험을 하겠다는 히메에게 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것이다.

명문가에서 자라고 부족한 것이 없이 자란 만큼, 히메에게는 다양한 스승이 있었다.

모두 다방면으로 최고의 스승들이었다.

'걸음을 걸을 땐 마치 고양이처럼 걸어야합니다. 도도하고 매력있되,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람은 무언가를 찾을 때 왼쪽과 오른쪽을 먼저, 그리고 아래를 그다음으로 찾아봅니다. 위는 마지막이죠. 닌자가 천장에 숨는 것은 바로 그 심리적 맹점을 노리는 일입니다.'

'닌자란 암살과 첩보에 능한 이들이 아닙니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살아 돌아오기에 닌자인 겁니다. 히메 사마. 생존을 잊지 마십시오.'

히메는 스승들의 현명한 경험담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지금까지 들었던 조언들은 모두 머릿속에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남자는 모두 늑대들입니다. 두 눈으로 당신을 훓어본다면 더욱 확실합니다. 남자를 조심하십시오.'

히메는 조언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다가 문득 생각이 멈췄다.

자신에게 남자의 위험성을 알려 준 쿠노이치 스승의 말.

정작 그 스승은 문란한 생활을 들켜 스승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히메는 유독 쿠노이치 스승이 한 말이 신경 쓰였다.

히메는 다시 토끼 인형에게 물었다.

"우사기 상. 남자는 모두 늑대인가요?"

"기억하고 있겠지? 두 눈으로 훑어보는 이는 다 늑대라고 한 말을. 거기에서 답을 찾아봐."

"하지만 우사기 상. 제가 찾는 것은 왜 그에게 관심이 가는 것인지에 대해서지, 남자가 늑대라는 것이 아니잖아요."

"답은 거기에 있어. 히메. 답은 거기에 있어."

히메는 토끼 인형에게 자문자답하며 자신을 되뇌었다.

그녀의 놀라울 정도로 발달한 감과 지금까지 쌓여 온 지식과 경험이 그 문구가 답이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두 눈으로 보는 이들은 늑대..."

히메는 누운 자세로 토끼 인형을 들어 올렸다.

낡은 토끼 인형의 하나밖에 없는 눈이 히메의 눈에 들어왔다.

"아...!"

히메는 마침내 왜 자신이 도미닉 경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깨달았다.

아직은 추론의 영역이었으나, 히메는 스스로 확신했다.

"두 눈으로 보는 이들은 늑대지만, 한 눈으로 보는 이는?"

명제가 문제였다.

지금까지 남자는 모두 늑대라고만 생각했으나, 사실은 아니었던 것이다.

쿠노이치 스승이 두 눈을 가진 남자는 모두 늑대라고 한 말은, 사실 외눈의 남자는 괜찮다는 말이었다!

"고마워요, 우사기 상. 덕분에 답을 찾았어요."

히메는 낡은 토끼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꼭 껴안았다.

히메는 또 한 번, 외눈의 낡은 토끼 인형을 보며 도미닉 경과 겹쳐보인다고 생각했다.

...

블랙 그룹.

가차랜드를 이끌어가는 빅 3의 한쪽 날개.

행정부가 가차랜드의 중심을 잡고 시스템 인더스트리가 가차랜드의 기초를 다진다면, 블랙 그룹은 가차랜드의 모든 것을 움직였다.

칫솔과 구두약부터 전차와 헬기, 심지어 땅과 건물과 같은 부동산과 하늘과 바다와 같은 자연까지 돈만 되면 무엇이든 사고팔았다.

사고파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나은 것, 그리고 더 싸고 좋은 것을 찾는 법이다.

결론적으로 기존 상품에 만족하고 의존하는 것보다 실험적이고 더 진보된 상품을 위한 연구도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블랙 그룹은 그 간단한 명제에 충실한 기업들의 연합이었다.

그리고 여기, 블랙 그룹 회장의 개인 연구실에 지금까지 도미닉 경을 미행하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닮았어..."

하얀 가운을 입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이 여성은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액자를 집어 들었다.

액자 안에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 하나 들어 있었는데, 파피루스로 만든 종이에 목탄으로 그려진 흑백 그림에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 농민들이나 입을 법한 낡고 거칠고 허름한 튜닉을 입은 가족들은 무엇이 그리 행복한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성은 액자 속 가족들의 그림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꺼내 봤던지 접힌 자국은 이미 너덜너덜하게 변했고 목탄으로 그린 부분의 일부는 흐려졌으나, 여성은 여전히 가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마을에서 가장 키가 컸지만 고블린들의 습격에 다리를 절던 아버지.

고된 농사일에 허리가 굽었지만 언제나 인자하게 자신들을 안아주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를 닮아 키가 멀대같이 컸으나, 허당이었던 오빠.

여성은 한참 동안 액자 속 가족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이내 머리가 복잡해졌는지 양털처럼 복슬복슬한 자기 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던 여성이 문득 자기 머리가 엉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랍 안에서 빗을 꺼내 끙끙거리기 전까지.

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박사님. 코드 제로 백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한참 동안 엉망진창 꼬여 버린 머리카락을 풀어내던 여성은 아무리 노력해도 풀리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빗을 던졌다.

"들어와."

머리를 정돈하는 일을 포기한 박사라고 불린 여성은 문밖에 대기하고 있을 안드로이드를 불렀다.

개인 연구실의 문이 열리고 코드 제로 백이 들어와 책상 앞에 허리를 펴고 공손한 자세로, 그러나 곧은 자세로 서서 박사에게 말했다.

"회장님께서 호출하셨습니다. 지금 당장 회장실로 오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도대체 무슨 일이지? 저번에 내가 예산 일부로 희귀 광석을 산 게 들켰나? 아니면 머릿결 관리를 위해 산 린스 영수증이 누락되었나?"

박사는 이미 복잡한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회장의 호출은 중대한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면서 생각하자. 제로, 앞장서."

"확인. 길잡이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박사는 안드로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복도를 걸어갔다.

회장이 업무를 보는 이 블랙 그룹의 본사는 본래 3층짜리 작은 건물이었으나, 회사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점점 증축해 이젠 미로처럼 변해 버렸기 때문에 아직 박사는 길을 외우지 못했다.

차라리 원소 주기율표와 각 원소의 특성, 그리고 상호작용시 일어나는 모든 효과를 외우는 게 더 쉬웠다고 생각하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 박사가 현재 이 건물이 지탱하는 하중과 지금 건물이 버틸 수 있는 하중을 계산해 몇 개의 기둥이 빠져도 괜찮을까에 대한 고찰에 빠지기 직전에 안드로이드의 말이 들렸다.

"회장님, 밴시 박사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여보내."

안드로이드가 정확한 간격으로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안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군림하는 자 특유의 힘이 넘치고 자신만만한 소리가 들리자, 안드로이드는 문을 열고 밴시 박사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는 몸짓 했다.

밴시 박사는 안으로 들어서며 가장 먼저 회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회장님, 오랜만이에요. 정말 오랜만에 불러 주신 것 같네요."

밴시 박사는 회장실의 내부를 둘러보기도 전에 회장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밴시 박사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더라도 회장실이 얼마나 화려하게 꾸며졌는지보다 회장을 먼저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 블랙 그룹의 회장은 압도적으로 시선을 집중시킬 만큼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밴시 박사에게 살갑게 굴었다.

그러나 아직 호출한 이유를 알지 못한 밴시 박사는, 일단 공적인 태도를 취했다.

"부르신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블랙 회장님."

밴시는 회장의 눈을 마주 보며 방실방실 웃었다.

그녀의 순박한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회장이 자기 마음을 읽지 못하게 최대한 눈을 보호하는 형태였다.

"너무 야박한 거 아니니, 우리 사이에?"

회장은 자기 고급스러운 양복의 옷깃을 정리하고 검은 단발을 슬쩍 매만지며 흑단으로 된 책상 너머 백금과 벨벳, 그리고 에메랄드로 장식된 의자에 앉았다.

"이 에메랄드의 의미를 안다면, 내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텐데."

에메랄드. 밴시 박사의 눈 색깔과 똑같은 색깔의 에메랄드만 엄선해 장식된 의자.

원래 회장의 의자엔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으나, 밴시 박사와 만난 이후로 바꾼 것이었다.

"알고는 있지만, 일단 부른 이유부터 좀 말해주세요."

"언니."

회장은 밴시에게 강요하듯 말했다.

밴시 박사는 회장의 요구에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언니."

회장은 그 말에 기분이 좋아진 듯 빙글빙글 웃으며 흑단으로 된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상체를 기울였다.

"다른 건 아니야, 우리 밴시. 요즘 네가 혼란스러워 보인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말이야."

사실인지 확인할 겸 불렀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이네. 회장이 밴시 박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눈은 무언가 먹잇감을 찾은 듯 초승달처럼 휘어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 밴시의 머리를 어지럽힌 것일까?"

밴시 박사는 한숨을 쉬며 꼬일대로 꼬인 머리를 벅벅 긁었다.

본인은 복잡해서 한 일이겠지만, 안 그래도 양털 같이 푹신한 머리카락이 더욱 폭신폭신해져서 한 번 만져 보고 싶다는 생각 마저 들 정도였다.

"...가족 문제예요."

"아."

블랙 회장은 예전에 밴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가족이 망자에게 습격당해 죽었다고 했던가.

처음 밴시와 블랙이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혼자 이 가차랜드에 떨어진 충격으로 폐인처럼 지내던 밴시의 재능을 알아보고 찾아갔을 때, 밴시는 손에 가족이 그려진 그림을 꼭 쥐고 있었다.

그만큼 밴시에게 있어 가족 문제는 민감한 문제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혹시 가족을 찾은 거야?"

평소라면 이 친한 동생을 어떻게든 놀려 먹을 구석을 찾았겠지만, 블랙 회장은 선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확실한 성격이 그녀가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겠지.

"글쎄요. 모르겠네요."

밴시는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렇단 말이지."

회장은 그런 밴시를 바라보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블랙 회장은 외동딸에 부모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항상 아들을 원했던 그의 부모는 죽을 때까지 블랙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번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살가운 성격의 밴시는 친동생 그 이상의 존재가 된 지 오래였다.

그런 동생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회장은 밴시 박사에게 제안했다.

"혹시 헷갈린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알잖아? 내 능력."

밴시 박사는 블랙 회장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녀의 도움이라면 빠르고 확실하게 사실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대가는요?"

하지만 밴시 박사는 블랙 회장을 잘 알았다.

그녀는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었고,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을 확실하게 받아 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그게 두 곱절이든, 세 곱절이든.

그 사실을 알기에 밴시는 차마 회장에게 부탁하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아주 큰 대가가 필요하지."

밴시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맹하게 내려간 눈초리가 파르르 떨렸다.

"블랙 언니가 아니라, 모르가나 언니라고 불러. 그러면 얼마든지 도와주지."

대가는 뜻밖에 싼 편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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