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30화]블랙&블랙
* * *
"네놈! 절대로 용서 못한다! 이 납치범! 아동성애자!"
이성을 잃어버린 참모장은 도미닉 경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으로서는 환장할 일이었으나, 우선 오해를 푸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 참모장에게서 장갑이 날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깡!
도미닉 경은 엄청난 충격에 선 자세로 열 걸음 정도 밀려났다.
"네 이놈...! 마왕님의 명예를 위해서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마도 공학 건틀릿 MK.3.
참모장이 던진 중장갑의 이름이었다.
이내 기계로 된 건틀릿은 스스로 날아올라 참모장의 왼손에 장착되었다.
참모장의 늙은 얼굴에 간사한 수염이 꿈틀댔다.
아마, 도미닉 경을 비웃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표정을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자기 결투 신청에도 열 걸음은 물러나는 도미닉 경이 우습게 보이기도 하겠지.
도대체 왜 참모장의 공격이 도미닉 경의 초보자 보호 프로그램을 뚫고 들어왔는가?
도미닉 경은 혼란스러웠으나 자신이 가차랜드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렇다. 초보자 보호 프로그램이 만료되었다.
도미닉 경은 쓰러지려는 자세에서 바로 기사답게 바로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흐트러지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참모장을 노려보았다.
"흐."
도미닉 경은 흐릿하게 웃었다.
기사에게 있어 결투란 양날의 검과도 같다.
명예.
이기면 얻고, 지면 잃는 것.
명예만 잃으면 다행이다. 실전에선 목숨마저 잃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웃었다.
행복했으니까.
본능적으로 삶의 위기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익숙해지자, 비슷한 상황에서 그는 행복해졌다.
행복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
"흐."
도미닉 경은 오만하게 서 있는 눈앞의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의 하나뿐인 동공이 축소되며 섬뜩하게 변했다.
오랜만에, 행복해질 수 있는 상대다.
"흐."
도미닉 경은 평민이었고, 귀족 출신 기사들의 오만한 결투 신청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기술도, 실력도 없이 그런 귀족들을 여지없이 박살 내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눈앞의 오만한 참모장도, 그들처럼 되리라.
이 팽팽한 긴장감.
도미닉 경이 한 달이란 시간 동안 잊고 살았던 것.
마왕은 도미닉 경의 참모장의 대치 상태를 보며 흥미진진하게 솜사탕을 먹기 시작했다.
말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녀는 잔혹한 마왕으로 자랐으니까.
이 대치 상태마저 행복한 도미닉 경.
텅. 하고 도미닉 경의 앞에 깃발이 떨어진다.
페럴란트의 문장이 그려진 갈색의 깃발.
어느새, 도미닉 경의 전투 본능이 다시 깨어났다.
"비열한 납치범 놈. 한 수는 있는 모양이군."
참모장은 건틀릿을 한 번 매만지고 자세를 취했다.
도미닉 경은 그 자세가 의미하는 것은 몰랐으나, 예전에 주먹을 잘 쓰던 기사가 떠올랐다.
본능적으로 방패를 바깥쪽으로 슬쩍 기울였다. 당시의 결투를 기억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대치는 도미닉 경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오랜만의 싸움에 너무 행복해진 도미닉 경이 참지 못하고 튀어 나간 것이다.
참모장은 하체를 굽힌 채 왼쪽 주먹을 앞으로 향하던 자세에서 순식간에 횡으로 이동했다.
도미닉 경의 경로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도미닉 경의 왼쪽으로 파고든 참모장은 도미닉 경의 뒤편으로 향해 그의 등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본능적으로 방패를 끌어당기며 왼쪽으로 반 바퀴 회전하여 방패의 뒷 모서리로 참모장의 주먹과 마주했다.
모서리의 뾰족한 부분은 휘둘러지는 주먹의 힘과 마주쳐 주먹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까.
그러나 참모장도 보통은 아니었다.
휘두르던 오른쪽 주먹을 그대로 펼쳐 모서리를 잡아낸 참모장이 놀라운 힘으로 방패를 아래로 내리고 왼쪽의 건틀릿을 방패 너머의 도미닉 경의 코를 향해 휘둘렀다.
애초에 참모장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만일 도미닉 경이 첫 수에 반응하지 못했더라면 오히려 실망했을 것이다.
도미닉 경은 첫 수에 훌륭하게 대처했다.
그러나 참모장은 더 나아가 도미닉 경이 대처를 했을 경우까지 상정했다.
솔직히, 참모장은 도미닉 경이 이 후속타가 결정타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도미닉 경이 그대로 방패를 놓고 뒤로 빠지기 전까진.
"방패를 놓았다고...?"
참모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적으로 방패를 든 탱커 족속들은 방패를 제 몸처럼 여긴다.
다른 이들이 방패를 천시하기에 그 반동으로 더욱 방패에 대한 예찬이 심했다.
그런 탱커가, 방패를 포기한다?
가차랜드의 결투에 익숙한 참모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도미닉 경은 가차랜드에서 아직은 겉도는 사람.
페럴란트 식 결투에 익숙한 도미닉 경은 방패도, 검도 소모품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방패를 당기며 왼쪽 주먹을 내지른 참모장은 허공에 뜬 방패 때문에 자세가 조금 틀어지고 말았다.
도미닉 경은 그 틈을 노려 검의 손잡이, 그것도 뒷부분으로 후려쳤다.
거리상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빠르게 타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대응하기도 전에 도미닉 경의 검 손잡이가 참모장의 뺨을 후려쳤다.
도미닉 경은 이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참모장의 옷깃을 잡고 그대로 몇 번을 더 후려졌다.
그러나 참모장은 녹록치 않은 관록을 가지고 있다.
도미닉 경의 공격이 순간 그를 당황시켜 상황 파악이 어려웠으나, 노련한 참모장의 경험이 무의식에서 튀어나와 도미닉 경의 오른쪽 팔을 붙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 싸움은 개판이었다.
서로의 공격수단을 붙잡은 둘은 결국 힘겨루기로 들어갔다.
전체적인 스펙은 참모장이 더 높았으나, 도미닉 경의 노련함과 참모장에 비해서 젊다는 점이 합쳐져 둘이 느끼는 힘은 비슷했다.
참모장은 비겁하게 오른발로 도미닉 경의 왼발의 복숭아뼈를 후려쳤다.
그리고 도미닉 경은 현명하게 오른발을 들어 참모장의 왼발 복숭아 뼈를 공략했다.
서로의 노림수가 너무 완벽하게 통한 나머지, 둘은 서로를 붙잡은 채로 땅을 구르기 시작했다.
"이거 놔라...!"
"흐."
"놓으라고 했다!"
"흐."
참모장은 입식 타격에 있어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나, 너무 입식 타격만 고집한 나머지 이렇게 땅을 구르며 견제하는 개싸움에 약했다.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린 도미닉 경이 검마저 던지고 참모장이 일어나지 못하게 구질구질할 정도로 관절과 힘줄 사이를 공략했다.
"그만해!"
마왕은 흥미진진하게 이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인절미 같은 손가락 끝에 녹은 솜사탕을 마지막 한 입까지 남김없이 먹으며 이 명예로운 결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하라고...!"
이제 참모장은 거의 울 것 같았다.
그가 질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마왕님 앞에서 볼품없는 꼴을 보이는 것이 싫어서였다.
고결한 마족, 그중에서도 마왕가를 보필하는 참모로 시작해 가장 가까이서 마왕님들을 모시는 참모장까지 오른 엘리트로서, 차마 이런 수모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결국 이 노인은 추하더라도 충분히 이 상황을 이겨 낼 수 있었음에도, 그리고 도미닉 경을 충분히 압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더 이상 나를 추하게 만들지 마..."
도미닉 경은 이 노인의 서글픈 울음소리에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이 원한 건 처절한 싸움이었다.
머리가 핑 돌고, 시야가 좁아지며 오로지 적과 나만 인식하는 그런 싸움이었다.
지금처럼 엉망인 노인을 괴롭히고 싶은 게 아니라.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흙먼지와 눈물로 꼴사납게 변한 참모장을 바라보았다.
참모장은 한참 동안 충격을 받았던지 자리에 누워 눈물을 흘렸다.
마왕님에게 눈물을 보이기 싫어 손등으로 두 눈을 가리고 숨을 죽여 울었다.
이내 어느 정도 진정된 참모장은 상체를 일으켜 도미닉 경을 마주 보았다.
그 눈엔 도미닉 경에 대한 분노와 패배감, 그리고 마왕님이 실망하신 것에 대한 슬픔과 회한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결투 승자는 도미닉 경입니다! 우우~ 루저는 꺼져라!]
하필 이 타이밍에 튀어나온 시스템 창마저 참모장을 놀리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 미안하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탱커 개사기! 꿀 빠는 놈! 사기캐! 핵 쓰는 놈!"
악에 받친 참모장은 자신이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찬사를 꺼냈다.
물론, 반어법이다.
"마왕님께서 얼마나 나를 한심하게 보실까. 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이야! 이 악당! 마족! 빌런!"
도미닉 경은 그 말이 참모장에게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이 떼를 쓰는 노인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왕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참모장과 도미닉 경 몰래 사탕 하나를 더 먹고 나서야 움직이긴 했지만.
"!"
"아아, 마왕님. 제가 당신을 실망시켰나이다."
참모장은 마왕의 발아래 엎드려 죄를 청했다.
그런데도 마왕이 얼마나 작은지, 엎드린 참모장의 등이 마왕의 정수리보다 높았다.
"?"
참모장은 마왕이 실망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정작 마왕은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갑자기 참모장이 나타나더니 착한 아저씨에게 시비를 건 건 나쁜 일이었지만, 마족에게 있어 나쁜 일이란 곧 칭찬받을 일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마왕은 아직 어렸기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그리고 정의의 사도가 이기는 것을 더 좋아했다.
착한 아저씨가 이겼으니, 정의의 사도가 이긴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하고 엉뚱한 논리가, 참모장을 구원했다.
마왕은 참모장도 잘 싸웠다며 부복하며 땅에 박은 참모장의 머리를 토닥거려주었다.
"!"
"아아, 마왕님... 어찌 이리 자비로우실수가..."
참모장은 감격의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방금 그렇게나 울어놓고 어디서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까.
충분히 마왕의 토닥거림을 받고 회복한 참모장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미닉 경에게 손가락질했다.
"이번엔 졌지만, 다음엔 꼭 악이 이길 것이다! ...시간과 예산만 충분하다면!"
"!"
마왕은 참모장의 행동이 재밌어보였는지 표정을 따라 하며 똑같이 도미닉 경에게 손가락질 했다.
"이만 가시죠, 마왕님. 오늘만큼은 그 사탕, 마음대로 드셔도 됩니다."
"!"
마왕은 참모장의 말에 놀라며, 저 앞에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한 참모장의 뒤를 따라갔다.
도미닉 경은 도대체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아 멍한 상태로 자리를 떠난 둘을 바라보았다.
마왕은 착한 아저씨가 신경 쓰이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도미닉 경도 마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침내 마왕과 참모장이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도미닉 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정말 이게 무슨 일이었을까.
도미닉 경이 한숨을 내쉬던 그때.
전봇대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두 여성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딸이 아니었구나... 아니, 내가 왜 안심을 하고 있지?"
도미닉 경이 아직 딸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쿠노이치.
"저 싸움 방식... 닮았어..."
도미닉 경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는 양처럼 폭신한 장발의 여성.
"아무래도 자세히 알아봐야겠어요."
의문의 여성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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