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29화]블랙&블랙
* * *
저 비율이 이벤트 때문이 아니었구나.
도미닉 경은 마왕 뚜 르 방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마왕은 비율도 비율이었으나, 키가 도미닉 경의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마왕의 정수리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도미닉 경은, 마왕의 뿔을 감싼 보라색 천을 보았다.
아무래도 뿔 끝이 뾰족하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다칠 수 있어 감싸놓은 것처럼 보였다.
"...!"
마왕은 그렇게 도미닉 경이 자기 정수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유리창 너머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선이 움직일 때마다 마왕은 점점 유리창에 융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리창에 바짝 다가갔다.
도대체 무엇이 마왕을 저리 욕망과 탐욕으로 물들였을까?
도미닉 경은 마왕의 시선을 따라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인기! 멜론 맛 사탕 재입고!'라고 적힌 팻말 위에, 초록색 사탕이 가득한 투명한 유리 통이 보였다.
그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사탕과 젤리, 기타 달달한 것들이 가득했다.
도미닉 경은 미묘한 표정이 되었다.
고개를 들어 가게의 간판을 바라보자, '버터비터의 세상천지 달달함!'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그 아래에 적힌 'since AD 103 on New Terra'라는 문구가 무엇을 말하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달콤한 것들을 파는 가게라는 것은 알아보았다.
도미닉 경은 무시하고 지나갈 수도 있었으나, 새 옷을 입고 자신만만해진 상태였기에 무심코 마왕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그... 사탕이 먹고 싶은 거요?"
"!"
마왕은 황급하게 유리창에서 조랭이떡 같은 볼을 떨어뜨리고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붙어 있었던지 볼이 빨갛게 눌려 있었다.
마왕은 팔을 뻗어 최대한 크게 원을 그리며 한쪽 발을 들어 올렸다.
도미닉 경은 마왕의 행동을 보고 도대체 마왕이 뭘 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했다.
정작, 마왕은 도미닉 경이 자기 감각을 속이고 다가왔다고 생각해 위협을 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제 양팔을 위로 번쩍 들어 올리고 들어 올린 발끝으로 뽁뽁 거리며 발차기를 시작한 마왕은 이내 자신이 아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본지는 몰랐으나, 이 작은 마왕은 마치 토끼나 다람쥐 같은 느낌으로 도미닉 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기 참모장이 언제나 자신을 착한 마왕이라고 불렀으니,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도 다 착하다는 어린아이스러운 천진난만한 논리가 발동한 것이다.
"?"
마왕은 인절미 같은 손을 들어 말랑말랑한 볼을 조물거렸다.
착한 사람이긴 하지만 모르는 사람인가? 라는 제스쳐였다.
물론, 도미닉 경은 마왕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름 행동을 유추해 하고 싶은 말을 알아낼 수 있었다.
"사탕이 먹고 싶은 거요?"
"!"
마왕은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쳐다보았다. 아니, 사실은 전혀 다른 소리를 하는 모습에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라고 놀란 것이다.
지금까지 마왕의 주변 사람들은 마왕의 행동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그러나 눈앞의 사람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왕의 마음에 쏙 드는 말이었기에, 마왕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사탕을 먹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끙, 마왕이라면 돈이 많을 텐데. 왜 들어가서 사지 않고 여기서 구경만 하고 있었던 거요?"
"...!"
도미닉 경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으나,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해 용돈을 모두 참모장이 관리하는 마왕에게 있어선 충격적인 말이었다.
도미닉 경이 자신보다 키가 크다는 사실은 지금 보고 있으니 알지만, 용돈을 스스로 쓸 정도로 어른일 줄은 몰랐던 탓이다.
세상에. 용돈을 마음대로 쓴다니!
마왕은 도미닉 경이 마치 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도미닉 경이 새로 산 옷과 그 옷 때문에 자신만만해진 분위기가 겹쳐져, 이 어린 마왕에게 동경심을 불러일으켰다.
"혹시...아니오."
도미닉 경은 마왕이 돈이 없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으나 그럴 리는 없었다.
애초에 마왕의 측근인 참모장이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사줄 것 같기도 했고.
그러나 이는 도미닉 경의 오판이었다.
참모장은 마왕의 무시무시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절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마왕이 좋아하는 사탕과 젤리도 통제하며 마왕의 무시무시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악의 조직다운 악독함!
마왕은 참모장의 존재가 생각나자마자 조금은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기분의 흐름에 따라 갑자기 서글퍼진 마왕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도미닉 경은 갑자기 시무룩해진 이 작은 생명체를 보며 당황했다.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전투는 잘 알아도 사람의 마음은 잘 모르는 도미닉 경은 도대체 왜 마왕이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마왕을 달래는 법을 깨닫고 마왕에게 말했다.
"울지 마시오, 마왕. 내가 사탕을 사주리다. 울음을 그치시오."
"!"
마왕은 도미닉 경의 말에 환한 표정을 되찾았다.
여전히 울던 관성이 남아 눈물은 흘렀으나, 마왕은 양손을 높이 들고 폴짝폴짝 뛰며 기쁨을 표현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원하는 만큼 사줄 테니, 울지만 마시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평생을 마족과 싸워온 도미닉 경이 어째서 마왕에게 이리 친근하게 구는지.
사실, 도미닉 경은 마왕을 마족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마족과 거리가 떨어져 있을뿐더러, 어린아이의 모습과 행동을 하는 마왕을 보며 기사도가 솟아오르면 솟아올랐지, 마족에 대한 증오심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마왕은 악독하기 그지없었다.
역전의 전사인 도미닉 경마저 홀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라고 말하지만 마왕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
도미닉 경과 마왕은 사탕과 젤리가 가득한 유토피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여자가 있었...
"도대체 저 여자애는 누구지? 혹시, 딸?"
"이상하네... 비슷한 것 같은데..."
"응?"
"어... 누구시죠?"
아니, 두 여자가 있었다.
하나는 여러분께서도 잘 아는 이였다.
쿠노이치 히메.
이 이국적인 의상을 입은 자는 자기 특기인 암행을 활용해 도미닉 경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전봇대의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전단지를 붙이는 아르바이트생인 것처럼 도미닉 경을 미행한 것이다.
어째서일까? 그녀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직 우리는 나름의 추측을 할 뿐, 아무것도 모른다.
그리고 히메의 반대편 전봇대 뒤에는 연한 갈색 머리를 가진 맹한 눈의 여성이 있었다.
무릎에 닿을 정도로 길고 풍성하지만 양털처럼 넘치도록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 여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미닉 경의 뒤를 밟고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왜 도미닉 경의 뒤를 쫓는가?
...
마왕은 천국에 온 듯 화려하고 달콤한 세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세상에, 여기가 바로 유토피아일까?
마왕은 사탕을 사러 들어왔다는 사실마저 잊은 채 알록달록한 사탕과 젤리를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원하는 만큼 사시오."
"!"
도미닉 경은 말을 꺼내고 아차 싶었으나, 이 작은 꼬마가 먹으면 얼마나 먹을까라며 자신을 납득시켰다.
무엇보다개수가 아니라 무게로 재서 팔았는데,뜻밖에 가격이 저렴했다.
이 정도라면 도미닉 경도 한아름 사서 돌아갈까 싶을 정도로.
마왕은 도미닉 경의 말에 경쾌한 발걸음으로 폴짝폴짝 뛰며 마음에 드는 색깔을 마구 골랐다.
팔이 닿지는 않았기에 도미닉 경의 도움을 받아 봉투 가득 사탕과 젤리를 담은 마왕은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
"기분이 좋다니 다행이구려."
도미닉 경은 자신이 먹을 계피맛과 땅콩버터맛 사탕을 따로 담은 뒤 계산대에 섰다.
뱃살 가득한 만큼 사람 좋은 미소가 가득한 대머리의 중년남성이 콧수염을 정리하며 봉투를 밀봉하는 기계에 두 사람의 봉투를 집어넣었다.
"340크레딧이군요. 그나저나 옆에 아이가 귀엽네요. 기사님 따님인가요?"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럼 친척을 돌보시는 모양이군요. 요즘 보기 드물게 착한 기사님과 조카분이시군요."
도미닉 경은 아니라고 하고 싶었으나, 가게 주인은 제멋대로 알아듣고는 밀봉된 봉투들을 도미닉 경에게 건넸다.
"여기 귀여운 꼬마 아가씨에겐 서비스예요."
가게 주인은 카운터에 꽂혀 있던 커다란 솜사탕을 마왕의 손에 쥐여주었다.
마왕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발갛게 볼을 상기시키며 팔을 버둥거렸다.
도미닉 경은 그 모습에 가게 주인을 향해 반박하려는 마음조차 솜사탕 녹듯이 사라졌다.
마왕은, 정말 무시무시한 존재였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이 열렸다.
마왕은 너무 아까워서 아껴 먹겠다는 듯 솜사탕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밖으로 나왔고, 도미닉 경은 밀봉된 봉투를 뜯어 계피맛 사탕을 하나 입에 집어넣었다.
너무 단 것은 도미닉 경의 취향이 아니었으나, 이 사탕만큼은 도미닉 경의 입맛에 딱 맞았다.
"그, 마음에 드셨소?"
도미닉 경이 말하자 마왕은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참모장이 모르는 사람이 사탕 준다고 하면 따라가지 말라고 했지만, 도미닉 경은 언젠가 본 사람이었고 사탕과 젤리와 솜사탕을 사줬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는 마왕의 희망에 불과했다.
"마왕님! 여기 계셨군요!"
참모장은 날씨가 좋아 마왕과 나들이를 나왔다가 문득 마왕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충신인 참모장의 실책! 그러나 참모장은 훗날 질책 받더라도 마왕을 찾기 위한 노력을 다 했다.
미아보호소에 연락을 넣어보고, 순식간에 미아 전단지를 만들어 전봇대에 붙였다.
저 멀리 도미닉 경을 감시하는 두 여자들 옆에도 그 전단지들이 붙어 있었다.
"너, 너는 그때 우리 비밀 기지에 침입한!"
그만큼 절박했던 참모장이었기에, 오히려 진실을 보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하고 말았다.
"네가, 네가 납치범이구나!"
명예를 아는 도미닉 경에게 있어서, 참모장의 말은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