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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29화 (29/528)

〈 29화 〉 [28화]블랙&블랙

* * *

도미닉 경은 저울 위의 마네킹에 걸쳐진 옷을 보며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백금의 빛.

눈처럼 하얀 셔츠와 광택 없이 고급스러운 검갈색의 코트.

황동과 금으로 덮어 찬란하게 빛나는 목 보호대와 흉갑.

말을 타기 쉽도록 높은 굽이 달린 징 박힌 긴 가죽 장화.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황금처럼 빛나는 끈이 마감되어 있어 움직임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일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도미닉은 눈앞에 나타난 이 우아한 기사의 예복이 마치 보물처럼 느껴졌다.

문득, 선술집에서 이야기로 먹고 살던 음유시인의 노래가 생각날 정도로.

'용맹한 기사가 왕의 명령받고 나아가네.'

'사나운 거인과 끔찍한 괴물을 뚫고 전진하네.'

'마침내 찬란한 보물을 찾아 손에 쥐었다네.'

그래. 그 기사가 온갖 역경을 겪고 나아가 보물을 손에 쥐었듯이, 도미닉 경도 가게들 사이에서 역경을 겪지 않았던가.

마침내 도미닉 경은 그 보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당장에라도 이 옷을 입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옷이었으니까.

[경고! 성급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 이미 등록된 의상이 있습니다. 새로운 의상을 착용하려면 성급 심사를 끝내고 와주시길 바랍니다.]

옷에 손을 대자마자 떠오른 상태창.

도미닉 경은 그 경고창을 무시한 채 옷을 잡으려고 노력했으나, 그 노력은 번번이 경고창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이것 참, 이런 건 또 처음 보는군."

남작이 볼멘소리로 말했다.

"행정부 놈들은 융통성이 없어. 도대체 왜 심사 중에는 의상을 바꿀 수 없도록 하는지."

"어쩔 수 없죵. 대리 시험의 문제 때문이라잖아용."

도미닉 경은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건 대체...?"

"심사 때문이에용."

남작 부인이 도미닉 경에게 설명했다.

"예전엔 심사 도중에도 옷을 얼마든지 갈아입을 수 있었지만, 성급 심사에서 막힌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옷을 입고 대신 시험을 친 이후로 규제가 강화되었다는 모양이에용."

남작 부인은 나름 정세에 밝았다.

사실, 이 사실들은 귀족 부인들이 모이는 살롱에서 주워 들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옷은 입을 수 있지 않습니까."

도미닉 경은 '이건 티셔츠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잡고 내밀었다.

"그건 기본 복장에 포함되니까용."

"전 연령판에선 장비를 벗어도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규정이 있긴 하니까."

남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남작 부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아직 이 옷을 입을 수 없는 거요?"

"아직은 말이죵. 심사가 끝나면 입을 수 있을 거에용. 그나저나 희한하네용. 심사 중이 아닌데도 심사하고 있다고 뜨다니용. 혹시 무언가 아는 것 없나용?"

도미닉 경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으나, 이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바가 있었다.

'아무래도 추가적인 심사가 필요할 것 같으니 혹시나 급하다면 행정부 심사단으로 연락해 '미스터 노바에게 심사받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그럼 제가 언제든지 재심사 해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재심사 준비 기간도 심사 과정으로 치는 모양이라고.

도미닉 경은 방금 전 생각했던 음유시인의 노래의 뒷부분이 기억났다.

'보물이 말했네, 넌 자격이 없어!'

'네가 아무리 바래도, 날 다룰 수 없어!'

아무래도, 오늘만큼은 도미닉 경이 그 노래에 나오는 기사가 된 기분이었다.

...

"이야, 정말 재심사를 보러 와주셨군요."

도미닉 경은 급한 대로 남작 부인이 소개해준 코인 세탁소에서 급하게 예전 옷을 빨았다.

처음 보는 문명의 이기에 허둥대기는 했으나, 그림으로 된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

아무튼, 행정부 내부에 있는 미스터 노바의 개인 사무실.

여전히 세 갈래의 삼각뿔과 곧은 콧수염을 가진 금발의 남자, 미스터 노바는 별처럼 환하게 웃었다.

"올해 재심사를 준 사람 중에선 도미닉 경이 세 번째입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말이죠."

그만큼 가차랜드에 진심이라고 느껴져서 보기 좋습니다. 라며 미스터 노바는 신기할 정도로 하얀 이빨을 반짝거렸다.

도미닉 경은 금속 조각을 미스터 노바에게 내밀었으나, 미스터 노바는 다 안다는 듯 그 USB를 돌려주었다.

도미닉 경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미스터 노바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출연한 언찬트는 꽤 입소문이 퍼져서 말이죠. 이야, 저도 심의 위원회를 통해 잠깐 해 보긴 했지만, 인디 게임다운 재미가 있더군요."

1스테이지에서 죽어 버렸지만. 요즘 게임은 왜 이렇게 난이도가 높은 건지. 미스터 노바가 작게 투덜거렸다.

"아무튼, 가차튜브에서도 당신의 영상이 심심찮게 보이는 만큼, 확장성도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재심사가 들어오면 바로 승급시키자고 잠재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죠."

미스터 노바는 품속에서 무지개처럼 영롱하고 별처럼 반짝이는 도장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빛으로 어둠을 개어놓은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를 도장의 문양에 찍더니, 도미닉 경의 카드에 대고 쿵. 하고 찍었다.

[★★☆☆☆ 도미닉 경][3코스트]

도미닉 경의 카드에 별이 하나 더 새겨졌다.

"이로써 당신의 승급은 끝입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라도?"

도미닉 경은 아직 잉크가 마르지 않은 별을 바라보다가 미스터 노바의 말에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꺼냈다.

"2성이 되면 무엇이 좋소?"

"이런. 거기서부터 입니까."

미스터 노바는 곤란한 듯 관자놀이를 짚고 환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역시 성능이 좀 오르죠. 그 외에는 조금 더 대우 받는다 정도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군요."

"대우 받는다?"

"그렇습니다. 1성과 2성의 차이는 겨우 별 하나지만 사이에는 '아예 쓰지 않는다.', 혹은 '가끔 쓸 가치가 있다.'의 차이가 있죠."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1성과 2성이 그렇다면 2성과 3성, 그리고 3성과 4성의 가치 차이는 더욱 크겠지.

"무엇보다도."

미스터 노바는 은하수처럼 크게 웃으며 말했다.

"2성부터는 가끔 픽업 리스트에 올라갈 가능성이 생기니까요."

픽업 리스트?

이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도미닉 경은 새롭게 나온 용어에 대해 물어보고 싶었으나, 미스터 노바의 말이 먼저였다.

"아쉽게도 제가 할당할 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나가 버렸군요. 이제 다음 일정이 있어서 이만 가보셔야겠군요."

미스터 노바는 아쉬운 얼굴을 한 도미닉 경을 웃으며 배웅했다.

"다음 심사 때에는 더욱 멋진 모습으로 보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도미닉 경."

쾅. 하고 미스터 노바의 사무실 문이 닫혔다.

행정부 건물을 나온 도미닉 경은 잠시 행정부 앞 주차장에서 자기 카드를 꺼냈다.

[★★☆☆☆ 도미닉 경][3코스트]

별이 두 개.

도미닉 경은 2성이 된 상태가 체감이 되지는 않았으나, 그저 별 하나가 늘었을 뿐인데도 꽤 행복해졌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취감.

페럴란트에서 싸울 당시, 자신이 하는 일들이 정말 자신을 위한 것인가라고 고민할 때와 달리 바로바로 알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도미닉 경은 행복해지고 있었다.

"아, 그렇지."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에서 쇼핑 백을 꺼냈다.

'일단 포장해 드릴 테니까, 심사가 끝나면 입어보세용. 마음에 든다면 다음에 또 들러 주세용.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용!'

쇼핑 백 안에는 이번에 새로 구입한 옷이 있었다.

도미닉 경은 근처에 있던 공원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손 하나만 까딱하면 옷이 바뀌면 어떨까 생각했으나, 이런 곳에서만 묘하게 현실적인 가차랜드였다.

마침내 옷을 다 갈아입은 도미닉 경은 잠시 화장실 세면대에 있는 유리를 보았다.

그냥 기사복만 입었을 때에는, 도미닉 경은 그저 기사로 보였다.

그러나 예복을 입은 도미닉 경은 마치 근위대나 친위대를 보는 듯 정예의 풍모가 느껴지는 듯했다.

물론 이는 거울을 보는 우리가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듯 착각일지도 몰랐으나, 도미닉 경은 머리를 매만지며 이 정도면 꽤 괜찮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머리를 새로 해야 하나? 아니면 안대를 바꿔야하나?

도미닉 경은 패션의 세계에 눈을 뜬 모양이다.

화장실을 나오는 도미닉 경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기사의 품격을 보여주듯, 곧은 자세와 절도 있는 걸음 걸이가 도미닉 경이 얼마나 행복한지, 그리고 자신감이 넘치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마치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는 느낌.

물론, 휴가 나온다고 멋을 부린 군인 만큼이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만 말이다.

도미닉 경은 길을 걷다가 문득 반짝반짝 잘 닦인 가게의 유리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멋지군. 도미닉 경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유리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나름 멋진 포즈를 지었다.

얼마나 그 행위에 심취했는지, 옆에 누군가가 온 것도 모를 정도로.

도미닉 경의 옆에서, 도미닉 경과 같이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도미닉 경의 무릎에 겨우 닿는 키.

2등신의 흔히 볼 수 없는 비율.

보랏빛이 감도는, 땅에 끌릴 정도의 긴 머리와 하늘 높이 솟은 그녀의 몸보다 더 커 보이는 두 개의 검은 뿔.

도미닉 경은 이제 머리를 어떻게 다듬어야 더 어울릴까 고민하며 손으로 턱을 매만지다가 그제야 옆에 다가온 이를 알아차렸다.

도미닉 경은 자기 옆에서 유리창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열심히 쳐다보는 이 꼬마 친구를 알고 있었다.

"!"

마왕, 투 르 방 공주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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