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25화]나만의 작은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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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확장성 항목을 위해서 게임 하나를 만드는 것을 도왔다고?"
왈록이 도넛을 먹으며 피식 헛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하긴 하지만 귀찮은 일을 골랐구만?"
도미닉 경은 계약서에 싸인하고 받은 선금으로 산 스마트 폰을 매만졌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을 보니 유용할 것 같아 샀지만, 페럴란트 출신인 도미닉 경은 이 작은 유리판을 어떻게 조작해야 하는지 고민 중이었다.
이윽고 상자에서 설명서를 꺼내 든 도미닉 경은 그 설명서를 보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계약이라니. 캐릭터 인센티브 계약이라고 했던가?"
왈록이 벌써 다섯 개째의 도넛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왈록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과하게 먹는 감이 있으나, 이번 도넛은 글루텐 프리니까 살이 안 찐다고 스스로 위안 했다.
"네. 캐릭터 인센티브."
돈 카스텔로는 돈에 있어선 결함이 없는 자였다.
도미닉 경에게 캐릭터 인센티브에 대한 상세한 설명한 뒤, 원한다면 좀 더 프리한 계약으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까딱 잘못하면 사기 당할 뻔했구만. 그래도 좋은 사람 만난 것 같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캐릭터 인센티브. 그 캐릭터를 사용하는 대가로 비용을 지급하는 식의 계약이었다.
캐릭터 독점과 달리 다른 게임에 합류하더라도 계약은 유지되는 것이 장점이었으나, 그 게임이 커졌을 때 추가적인 지분을 요구하지 못하는 것이 단점인 계약.
하지만 가차랜드의 뉴비인 도미닉 경에게 있어선 꽤 훌륭한 계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후배가 나오는 게임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나중에 나오면 한 번 보려고."
"언찬트(UNCHANT)라더군요. 신앙의 대척점인 과학의 이야기라던가."
사실 도미닉 경은 이미 게임의 내용을 알고 있었으나, 비밀 유지 계약을 따로 맺었기에 적당한 말로 포장했다.
이젠 어느 정도 가차랜드에 적응한 모습을 보이었다.
도미닉 경은 마침내 설명서에 적힌대로 스마트 폰을 조작해 가차튜브에 접속하는 데 성공했다.
슈퍼 디럭스가 성좌를 통해 게임을 홍보하는 날이라고 문자를 보내 왔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도미닉 경이 소속된 가차랜드는 우주에 비하면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세상에 게임이 그렇게나 많은데, 어떻게 수집형 가챠게임의 세상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라는 설정인 거죠."
"설정이라는 말 쓰지 마라. 필멸자들 들을라."
여기는 어디인가? 그리고 이들은 누구인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우주처럼 영롱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자와 덩굴에 휘감겨 하나의 기둥처럼 보이는 자가 있었다.
"인테리어 바꾸라니까 진짜. 언제적 신비주의야?"
"그렇지? 요즘 트렌드는 이게 아니라니까?"
이 아름답고 신비한 장소에 또 다른 이들이 나타났다.
인간처럼 생겼으나 그 아름다움이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자.
그리고 부정형으로 꿈틀대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도형으로 된 자.
"그나저나 막내는 왜 안 와? 오늘 회의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저 왔습니다! 여기예요! 안 보인다는 말 하면 밴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앉은 책상 가장자리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의자에 앉은 어린이.
여기서 짐작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들은 성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모인 곳은 그들의 성운, 즉 그들의 본거지였다.
"자, 그럼 다 모였으니 회의를 시작하지."
온몸이 우주로 된 성좌가 회의의 시작을 엄숙하게 알렸다.
그는 성운들이 휘몰아치는 자기 양손을 마주해 깍지를 끼고 그 너머로 다른 성좌들을 바라보았다.
"제 8888577회. 컨텐츠 회의를 시작한다."
성좌란 무엇인가? 바로 신, 혹은 신에 준하는 이들.
당연하게도 신은 신앙이 없다면 그저 옛 이야기에 불과한 이들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신앙을 위해서 다양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수였다.
현대의 성좌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그들은 과거의 성좌들에 비해 좀 더 노력해야 했다.
성운마다 상징적이고 특징이 뚜렷한 선교방법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선교방법은 항상 특허를 신청해 후발주자들이 쓰기 어렵게 만들었다.
당연하게도 후발 성좌들은 이런 구식 선교방법 대신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성좌도 먹고살기 힘든 직업이었다.
"회의의 내용은, 방송 컨텐츠에 대해서다."
그렇다. 이 성운의 성좌들은 방송으로 신앙을 모으는 방법을 택했다.
방송이라는 것은, 과거 신앙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규율을 내리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 예배를 보듯이 방송 채팅 룰을 정하고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켠다.
사람을 홀리는 것을 업으로 살아온 성좌들에겐 꽤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아, 전 빠질게요. 아직 포인트가 남아 있어서."
"어허. 당장 앉아. 네가 저번에 개입하는 바람에 내 회귀자가 망가졌다고. 그때 뭐라고 했더라?"
성좌의 성향에 따라 달랐으나 대체적으로 성좌들은 사람들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다만 그 방향성이 해피 엔딩인가, 배드 엔딩인가로 나뉠 뿐이다.
최근엔 포인트 도박이라는 것이 생겨 둘 다 챙길 수 있기도 하고.
성좌들이 서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여기 지루한 성좌가 있었다.
가장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이 가장 작은 어린이는 자기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이들과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아 진짜 회의 지루하네 : 아임 낫 리틀]
[뒤질 것 같아. : 아임 낫 리틀]
[관심종자 : ㅋㅋㅋㅋㅋ]
[관심종자 : 아]
[관심종자 : 너 오늘 홍보해주기로 안 함?]
[관심종자 : 곧 방송 시간 아님?]
"아."
가장 작은 성좌의 탄성이 회의실에 울렸다.
얼마나 날카롭게 들렸던지, 본 회의에 들어가기도 전에 서로 싸우기 시작한 성좌들이 하던 행동을 멈추고 돌아볼 정도였다.
가장 작은 성좌가 그 관심이 부끄러웠던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저 조금 있다가 가 봐도 될까요? 광고가 들어와서."
"광고라고?"
부정형으로 꿈틀대는, 현존할 수 없는 도형이 말했다.
삼각형, 사각형, 십이각형, 십면체, 팔면체.
부정형의 성좌는 자기 몸을 격하게 꿈틀거렸다.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뾰족한 모서리가 드러났다.
"광고라고!"
마침내 온몸이 빨갛게 변한 부정형의 성좌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온누리에 울려 퍼졌다.
필멸자라면 분명히 미쳐 버렸을지도 모를 사악한 소리가.
마침내 세상에 종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느껴진 순간
"우리 막내가 드디어 광고를 받을 정도로 컸구나!"
그렇다. 사실 부정형의 성좌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감격한 것이다.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초월하는 성좌였기에, 그저 필멸자의 눈엔 화가 난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아, 좀."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아름다움을 가진 성좌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광고 안 받아본 성좌 있답니까? 애초에 어정쩡한 성좌가 오히려 광고 잘 받잖아요."
미의 화신과 같은 성좌가 역정을 내었다.
그러나 회의를 주관하는 우주를 담은 성좌는 가장 작은 성좌의 반응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게임이군. 그렇지?"
움찔. 하고 가장 작은 성좌가 몸을 떨었다.
그 말대로였다.
예전에 SNS에서 사귄 친한 친구가 보내준 게임 하나.
꽤 재밌어 보였기에 홍보 겸 주력 컨텐츠로 밀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음을 우주를 담은 성좌는 알아낸 것이다.
"그런 게 있다면 공유하는 것이 어때?"
덩굴로 가득한 성좌가 말했다.
"안 그래도 요즘 종합 게임 방송하면서 컨텐츠가 부족한 건 다들 같다니까? 혹시 그 게임, 협동 가능하니?"
"그건 아니에요."
가장 작은 성좌가 고개를 저었다.
지인에게 받은 홍보용 게임은 싱글 플레이만 지원하는 로그라이크형 게임이었고, 그마저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했으니까.
"그럼 일단, 오늘은 다들 방송 쉬고 막내 방송에서 모이도록 하지."
우주를 담은 성좌가 선언했다.
이는 지고한 명령이었으며, 가장 작은 성좌에게 있어선 거절할 수 없는 명분이었다.
애초에 오늘 방송 키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대신 룰을 어기면 밴. 아시죠?"
가장 작은 성좌가 할 수 있는 저항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스마트 폰 사고 처음 하는 일이 영상 보는 일이군?"
왈록은 입안이 텁텁한지 종이컵에 커피를 타 마셨다.
보통은 번호 교환을 하거나 그러지 않나? 어느 정도 과거의 사람인 왈록에게 있어, 전화기는 정말 전화에 필요한 물건이었다.
"도대체 무슨 영상을 보길래...?"
13만 가차튜버, 아임 낫 리틀.
도미닉 경이 보는 가차튜버의 정체였다.
["아아니! 그러니까 안의 사람이 뭔데! 그러니까 버츄얼 아니라고!"]
["아무튼 오늘 1부 방송은 광고가 들어왔어요. 공지에도 적어 놨을 텐데."]
["오늘 할 게임은 스팀펑크 세션에 얼리액세스로 등록된 인디 게임 언챈트를 해 볼 거예요."]
["일단 영상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까, 그것부터 보시고 가실게요."]
도미닉 경은 이 유리로 된 네모난 판 위에서 움직이는 화면을 마주하자마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마 가차랜드에서 익숙해지지 않았더라면 악마의 장난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화면 안에서 나오는 영상은 도미닉 경에게 자극적이었다.
"아, 나도 이 가차튜버 구독해놨는데."
왈록은 묘한 동질감에 사로잡혔다.
"그나저나 언챈트라면, 네가 나왔다던 그 게임 아닌가? 이야, 뜻밖에 본격적으로 홍보하나 봐?"
도미닉 경은 그저 게임 영상에 출연한 경험을 위해 한 일이었으나,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러니까 캐릭터가 세 명 있네요. 해적이랑... 닌자하고 안드로이드? 무슨 조합이야? 일단 가장 기본 중의 기본으로 보이는 해적으로 해볼게요. 아. 도미닉 경이라는 이름이구나. 해적이자 기사라는 컨셉이네? 검과 방패를 든 걸 보면 근접 탱커 같죠? 스킬은 깃발. 깃발? 이건 또 재밌는 조합이네요? 일단 한 번 해 보죠!"]
도미닉 경이 영상을 보며 감동에 빠져 있던 그 시각.
"오호?"
"이거 이거, 아주 재밌어 보이는 사람이 나왔군."
머나먼 황무지, 그 너머의 미지의 땅에서 이 영상을 보는 이들이 있었다.
"이 사람, 내 파티에 넣으면 좋을 것 같은데."
"큭! 지를까? 그래. 마스터의 뜻대로."
"탱커라. 마침 탱커 자리가 공석이지?"
"이건... 수집할 가치가 있겠어."
"좀 더 키워서? 아니야. 누가 뺏어가면 누가 날 위로해주지?"
기괴한 외형과 장비가 눈에 띄는 이들이, 집단적 독백을 내뱉었다.
정말 기묘한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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