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23화]나만의 작은...?
* * *
슈퍼 디럭스의 말이 옳았을지도 모르겠다.
기본 캐릭터로 설정할 세 명의 인원이 구해지자, 이후 진행은 순조롭게 나아가고 있었다.
"많지는 않게. 3층 정도로 시작하자."
"층이라는 단어는 이미 많으니까, 지역으로 나누어서"
이 열정적인 개발자들의 시너지는 대단했다.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말다툼이 있기는 했으나, 오색바람의 하네스가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순식간에 게임처럼 보이는 프로토타입까지 나왔다.
개발자들이 이렇게나 바쁜 사이, 기본 캐릭터로 선정된 세 명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당신은 블랙 그룹의 비밀연구소에서 개발된 전투 보조용 안드로이드라는 말이오?"
"코드 제로 백은 프로토타입으로 제조되어 현재 개량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대당 삼천만 크레딧 정도로 가성비를 맞추는 것입니다."
도미닉 경은 새롭게 온 사람... 아니, 안드로이드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난 안드로이드, 제로.
은은하게 은색으로 빛나는 피부와 그 피부 사이사이 보이는 결합부의 흔적이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블랙 그룹이라. 도대체 그건 뭐요?"
"블랙 그룹은 가차랜드를 구성하는 빅 3 중 하나입니다. 행정부, 시스템 인더스트리, 그리고 블랙 그룹. 그중 블랙 그룹은 가차랜드에 필요한 모든 재료와 생필품 등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거래하는 기업들의 연합입니다."
세상에나. 가차랜드는 역시 파면 팔수록 뭔가가 더 튀어나왔다.
도미닉 경은 이미 알고 있는 시스템 인더스트리와 행정부에 블랙 그룹을 끼워 넣었다.
셋은 안정적인 숫자지. 도미닉 경은 시답잖은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미닉 경과 제로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쿠노이치 히메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히익."
쿠노이치 히메는 벽 너머에 숨어 여전히 해적 복장을 한 도미닉 경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히메는 개발자들의 필사적인 설득으로 해적에 대한 오해가 다소 풀렸으나, 몸이 기억할 정도로 해적에 대한 트라우마를 스스로 만들어 낸 그녀로서는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아직이었다.
자기 오해로 도미닉 경이 얼마나 황당했을지 미안해진 히메는 도미닉 경에게 사과라도 하고 싶었으나, 육체에 새겨진 해적에 대한 공포가 자꾸 발길을 막았다.
"으긱으그극"
하지만 역시 냉정한 이성과 놀라운 근성의 닌자답게,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나아가는 히메였다.
그러나 그런 히메의 노력을 깨부순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봐! 벽이랑 바닥은 이걸로 해 봐. 끝내주는 걸 가져 왔어!"
문 너머로 돈 카스텔로가 연구실과 어울리는 타일과 벽지를 한아름 들고 들어왔다.
개발자들은 고개를 돌려 그 타일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한결같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컨셉에 딱 맞는 타일이잖아! 어디서 구한 거야?"
"아버지의 비밀 연구실에서 좀 뜯어왔지."
오색바람의 하네스는 돈 카스텔로가 블랙 그룹의 일익을 담당하는 블랙 바이오 사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회장 바로 아래에 속한 세 명의 후계자중 하나인 만큼 블랙 바이오의 비밀 연구실의 규모도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중 보이지 않는 귀퉁이를 떼어온 모양이었다.
"어차피 아버지도 모를 거라고. 무엇보다 데이터화시켜서 복사 붙여넣기하면, 누가 알아보겠어? 그저 비슷하구나, 하고 넘어가겠지."
돈 카스텔로는 빌런다운 웃음을 지었다.
그의 세 겹짜리 턱이 푸들푸들 흔들렸다.
"이제 스테이지를 구성할 수 있겠어."
안드로이드와 짝이 된 뱀파이어 레오나르도가 웃었다.
"실험실 컨셉은 그 자체로 안드로이드와 어울리지. 이것만 해도 느낌이 확 살 거야."
레오나르도가 타일 중 일부를 받아들고 개발실로 들어섰다.
"거기 제로 양! 지금부터 회의할 예정이니까 들어오세요!"
"인식. 확인. 행동을 실행합니다."
제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개발실로 향했다.
이제 대기실에는 해적 모자를 가다듬는 도미닉 경과 어정쩡하게 선 히메만 남았다.
도미닉 경은 아무 생각 없이 종이컵에 담긴 녹차를 마셨다.
떫은맛이 확 올라왔으나, 페럴란트에서 차라는 것은 나무뿌리 말린 것을 우리거나 먹지 못 하는 독초의 독을 중화시켜 먹을 만하게 만드는 작업이었기에 오히려 달달한 느낌이 어색할 정도였다.
히메는 그런 도미닉 경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해적 모자에 톡 떨어질 때, 숨이 멎는다.
그의 한쪽을 가리는 안대를 바라볼 때마다 다시 심장이 뛴다.
도대체 이 감정이 뭐지?
누군가는 이 감정을 부정맥이라고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이 감정을 흔들다리 효과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정확한 답변은 바로 공포였다.
히메는 스스로 개발자들의 설명을 통해 트라우마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지만, 거의 반평생을 함께 한 트라우마가 그리 쉽게 해결되겠는가?
그러나 평생 명문가에서 살아왔으며, 평생 닌자 수업만 받은 그녀가 그런 심리학적 소양에 밝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웠다.
"히메 양? 대충 맵을 만들어 봤거든요? 디테일을 위해 좀 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
"아! 네!"
히메는 개발자 라파엘이 부르는 소리가 반가웠다.
적어도 도미닉 경이 곁에 없다면 혼란스러울 일도 없을 것으로 생각하며 자리를 떠났다.
이제 도미닉 경만 남았다.
"네. 가차랜드 대학 인디 게임 동아리, 가차업지입니다. 누구십니까?"
로비에 있던 전화기가 울렸다.
마침 근처에 있던 슈퍼 디럭스가 그 전화를 받았다.
"네. 아, 네. 가차업지 맞습니다. 네. 네. ...네?"
수화기 반대편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릴 때마다 슈퍼 디럭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에픽 앤더슨 씨요? 그 가차튜브 구독자 1200만의 성좌 말씀이십니까?"
슈퍼 디럭스의 자세가 가지런해졌다.
자세를 바로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기도를 하듯 양손을 맞잡았다.
"네. 그럼요. 당연히 알죠. 팬인데요.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야 감사하죠."
한참 동안 흥분한목소리로 전화에 답변하던 슈퍼 디럭스는 이내 통화가 끊어졌는지 거칠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야! 우리 음악은 해결했다! 에픽 앤더슨 씨가 해주신댄다!"
슈퍼 디럭스의 호들갑에 개발실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문을 열고 빼꼼 바라보았다.
그리고 슈퍼 디럭스의 말을 이해하자마자 환호성을 내질렀다.
에픽 앤더슨. 어디서 들어 본 이름이었다.
분명 23에서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던... 작곡가의 이름이었다.
동아리 로비는 이제 축제 분위기였다.
그사이, 슈퍼 디럭스가 다가와 도미닉 경의 양손을 잡고 격하게 흔들기 시작했다.
"이 복덩이! 역시 내 광팬다운 스펙! 네 덕분에 에픽 앤더슨 씨와 협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슈퍼 디럭스는 아직 이해하지 못해 멍한 도미닉 경에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저번에 네가 시민권을 땄을 때, 네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으셨댄다! 마침 SNS를 보다가 우리 게임에 네가 나온다는 걸 얼핏 보셨던 모양이야."
"세상에. 그런 사람이었다고?"
도나텔로는 놀란 눈으로 도미닉 경을 쳐다보았다.
그저 평범한 1성짜리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자책하며 말이다.
"이럴 때가 아니야. 에픽 앤더슨씨가 바로 샘플을 보내주신다고 하셨으니, 바로 들어봐야 해. 우리가 더 열심히 해서 에픽 앤더슨의 명성에 누를 끼치면 안 되는 건 당연한 거고!"
아직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슈퍼 디럭스는 바로 노트북을 꺼냈다.
에픽 앤더슨은 가차튜브에서 정말 유명한 음악 채널을 가진 거대한 성좌였다.
고작 SNS에서만 유명한 슈퍼 디럭스와는 차원이 다른 유명인!
슈퍼 디럭스는 자기 SNS에 에픽 앤더슨과 협업한다는 사실만 올려도 자기 팔로워가 10만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음악 파일의 용량은 제법 컸다. 아무래도 원음 그대로 보내준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파일을 연 슈퍼 디럭스는, 과연 에픽 샌더슨이 왜 에픽 샌더슨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기사다운 엄숙함.
외눈박이 기사다운 시니컬함.
그 모든 게 들어간 음악이었다.
분명, 이 음악이 도미닉 경을 위한 캐릭터 송이리라.
"캐릭터 선택 화면에 틀면 좋겠네."
도나텔로가 말했다.
"각자 캐릭터에 맞는 느낌으로 구성해서, 누가 들어도 아, 이 캐릭터는 이렇구나. 하고 생각하게끔 하는 거야."
도나텔로는 지극히 개발자스러운 발언했다.
그러나 이미 음악의 여운에 빠진 슈퍼 디럭스는 감동의 물결에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광팬."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을 불렀다.
"왜 이런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있으면서, 내게 말을 안한 거야? 이랬으면 내가 이런 인디 게임 동아리가 아니라, 진짜 A급 개발사로 갔지!"
"뭐?"
도나텔로는 슈퍼 디럭스의 말에 발끈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생각보다 프로젝트가 거대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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