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19화]★성급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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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 심사는 온라인으로 신청한 이후에 행정부 산하 부서 중 하나에서 칠 수 있어.'
"여기가 그곳인가?"
이제 다시 뽀작뽀작한 3등신이 아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도미닉 경은 왈록의 조언대로 온라인으로 성급 심사 신청을 완료한 후 날짜에 맞춰 시험장으로 향했다.
행정부 산하 전쟁의회 회의장.
캐릭터의 가치는 무력에 있다고 선언하듯, 검과 날개, 그리고 닻을 합친 문양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무기질적인 회색의 벽과 위장이라도 하는 듯 녹색의 지붕을 가진 단순하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웅장한 건물을 올려다보며, 도미닉 경은 걸음을 옮겼다.
"성급 심사를 보시려는 분들은 왼쪽으로 가셔서 두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시험장이 나옵니다. 무신 칭호 심사는 오른쪽으로 가셔서 쭉 가시면"
전쟁의회 회의장은 커다란 건물에 걸맞게 여러 가지 심사를 같이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도미닉 경은 언젠가 자신도 저런 심사를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왼쪽으로 꺾었다.
혹시나 이 넓은 공간에서 길을 잃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으나, 벽과 바닥에 대충 화살표가 인쇄된 종이가 붙어 있었기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마침내 성급 심사장에 도착하자, 입구에서 누군가가 친절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성급 심사하러 오셨나요? 몇 성이신가요?"
"1성이오."
도미닉 경은 당당하게 말했다.
안내 데스크 직원은 대기열 표 하나를 뽑아 도미닉 경에게 건넸다.
"번호가 불리면 3번 심사장에 들어가시면 돼요. 그동안은 앞에 의자에 앉아 기다려주시겠어요?"
도미닉 경은 12번 이라고 적힌 대기열 표를 바라보며 자리로 걸어갔다.
생각보다 1성 심사를 원하는 사람이 적은 모양이었다.
잠깐의 기다림 동안 방패와 검집을 매만지며 있자니 어느새 도미닉 경의 차례가 돌아왔다.
"12번, 12번 수험자님?"
도미닉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3번으로 향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 하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도미닉 경은 그런 경비병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약간 숙이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은 여러 가지 의미로 예상을 벗어났다.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마감된 방 안에는 긴 책상 하나와 의자 3개만 있었는데, 심사위원이라고 적힌 팻말들 너머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1성이네요."
도마뱀 머리의 여성이 쉭쉭거리듯 말했다.
"보아하니 캐릭터성은 괜찮은 것 같고."
돌로 된 골렘이 중얼거렸다.
"자자, 그래도 확실하게 심사해야지. 카드를 좀 보여주시겠어요?"
쨍한 황금빛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말했다.
도미닉 경은 가운데 앉은 황금빛 남자에게 카드를 건네주었다.
그 남자는 머리를 원뿔 모양으로 세 갈래, 콧수염을 곧게 두 갈래로 뻗은 상태였는데, 황금빛 머리카락과 합쳐져 마치 별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잠깐 그 남자는 카드를 매만지더니 감탄을 내뱉었다.
"이야, 오랜만에 보는 성실한 사람이네."
"어디 봅시다. 얼마나 대단하다고?"
도마뱀 머리의 여성은 혀를 날름거리며 도미닉 경의 이력을 보았다.
그러곤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지 도미닉 경에게 물었다.
"여기 버그를 해결했다고 적혀 있는데, 혹시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인장이 담긴 증명서가 있나요?"
"아니, 없소."
도미닉 경은 증명서까지 필요한가 싶기는 했으나, 일단 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기에 당당히 말했다.
"캐릭터성은 충분하군. 들어오고 나서 지금까지 컨셉이 무너지지 않았어."
골렘은 영롱한 보석 같은... 아니, 보석으로 된 눈을 빛냈다.
"일단 여기에 적힌 것만으로는 합격입니다만, 아무래도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못한 사람이 이런 업적을 세웠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죠."
황금의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이번 심사의 기준을 말해드리죠. 캐릭터성, 이력, 그리고 확장성. 보시다시피 캐릭터성과 이력은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세 번째 기준인 확장성이 애매해 보이는군요."
남자는 카드를 돌려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추가적인 심사가 필요할 것 같으니 혹시나 급하다면 행정부 심사단으로 연락해 '미스터 노바에게 심사받으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세요. 그럼 제가 언제든지 재심사 해드리겠습니다."
"그, 확장성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도미닉 경은 스스로 미스터 노바라고 한 남자에게 확장성에 대해 물었다.
"아, 그렇군요. 아직 한 달도 안 된 분이라는 것을 깜빡했어요. 꽤 노련해 보이는 모습이라서 말이죠."
미스터 노바는 웃으며 확장성에 대해 설명했다.
"최근 심사가 엄격해짐에 따라, 확장성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답니다. 그래요. 장르를 넘나드는 캐릭터성을 말하는 것이죠. 말 그대로 확장을 위한... 자기 소개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뭘 그리 장황하게 설명하십니까, 위원장. 그냥 여기저기 잘 팔리는 캐릭터성이라고 말하면 되지."
"낭만없기는."
심사위원들은 서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심사위원장을 제외한 둘은 사이가 나쁜 모양이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도미닉 경과 같은 캐릭터는 바로 2성으로 진급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요즘엔 콜라보나 이스터에그, 혹은 만우절 장난으로 섞이는 게임이 많다 보니 부득이하게 불합격인 점,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금 말하지만 재심사를 원하신다면 최소 하나 이상의 게임에서 조연 이상의 캐릭터성을 확보한 후 다시 연락해주세요. 언제라도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친절한 미스터 노바는 이내 다음 사람을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고 도미닉 경에게 부탁했다.
도미닉 경은 그런 미스터 노바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을 나서는 순간에도 도미닉 경은 캐릭터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분명 엉망진창인 심사에 불만을 품거나 심사의 난이도에 문제를 제기했겠지만, 아직 순수한 도미닉 경은 그런 문제를 알기엔 너무 순박한 것이 문제였다.
고작 1성에서 2성으로 가는 심사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그 이상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그러나 도미닉 경은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었다.
지겨울 정도로 피와 싸움으로 점철된 삶을 살던 그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다.
"아이고, 요즘 성급 심사 어려워졌다 말만 들었지 이렇게 어려워졌을 줄은. 작년에 따둘 걸 그랬구만."
엇차. 하는 소리와 함께 도미닉 경의 옆에 누군가가 앉았다.
"응? 어라? 내 광팬 아냐!"
슈퍼 디럭스였다.
슈퍼 디럭스의 상징과도 같은 탑 햇과 황금 가면은 그대로였으나, 아래에는 검은 선이 세 개 그어진 너절한 국방색 츄리닝을 걸치고 있었다.
실용성과 관심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놀라운 패션!
슈퍼 디럭스는 납치를 했다는 사실마저 까먹은 건지 도미닉 경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저번엔 미안했어. 이벤트 이틀 전에 오퍼가 들어와서 말이야.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더니 이성이 날아가 버린거 있지?"
도미닉 경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아직 그때의 기억이 도미닉 경의 무의식에 남아 무심코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 그렇게 행동하면 나 또 상처받는다고. 또 납치당하고 싶어?"
과연 빌런! 슈퍼 디럭스는 범법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협박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나저나 여긴 무슨 일이오?"
도미닉 경은 여전히 슈퍼 디럭스를 경계하며 물었다.
"뭐, 나도 성급 심사 하러 왔지. 자, 보라고. 이 찬란한 별을!"
슈퍼 디럭스는 달려 있는 것이 기적인 츄리닝복 주머니에서 명품 지갑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캐릭터 카드를 꺼냈다.
그 캐릭터 카드에는 탑 햇, 황금 가면, 비단 망토를 모두 착용한 슈퍼 디럭스가 우아한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믐달이 뜬 밤을 배경으로 화려한 폭죽이 연신 터지고 있었는데,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은 그 자체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3성에 움직이는 그림.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이젠 알겠어? 광팬 할 만하지?"
슈퍼 디럭스는 자신만만한 자세로 실실 웃었다.
정작 그가 입은 낡은 츄리닝 때문에 볼품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말이야, 진짜 올해가 유독 힘든 것 같은데, 기분 탓이려나? 그렇지 않아?"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사실 작년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몰랐기에 그저 분위기를 맞춰주려는 움직임에 불과했다.
슈퍼 디럭스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아 진짜, 확장성이니 뭐니 하는 게 도대체 뭔지 궁금해서 내가 규정집을 훔치... 빌렸거든? 그런데 이렇게 적혀 있더라?"
슈퍼 디럭스는 어디에서 꺼낸지 모를 규정집을 펼치더니 확장성이라고 된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2성 확장성 : 캐릭터 소개 영상이나 트레일러에서 조연 이상으로 등장한 경력이 있을 것.
3성 확장성 : 캐릭터 소개 영상이나 트레일러에서 주연 이상으로 등장한 경력이 있을 것.
4성 확장성 : 단독 캐릭터 소개 영상, 혹은 이 캐릭터가 주가 된 트레일러에 등장한 경력이 있을 것.
5성 확장성 : 이 캐릭터가 주연인 게임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 등 최소 GOTY급 멀티미디어 매체가 있을 것.
주의 : 올해가 지나면 위 기준은 변동될 수 있다.
그 문단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지금까진 성급이 올라가면 행정부에서 소개 영상을 만들어 주거나 비용을 지원해줬거든. 그런데 그마저도 아까운지 미리 만들어 오라는 뜻이야. 이게 말이나 돼? 이러니 내가 빌런 소리 들어도 기분이 안 나쁘지."
투덜거리던 슈퍼 디럭스는 문득 도미닉 경이 아무런 말도 없이 규정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슈퍼 디럭스는 그 순수한 행복의 아우라에 압도 되어 아무 말도 이어가지 못했다.
아무래도, 슈퍼디럭스가 말을 건 이 광팬은 정상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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