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18화]이벤트 스테이지 후일담
* * *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었네요."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경비실.
도미닉 경은 경비 왈록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했다.
"가차랜드는 정상인 놈이 비정상인 곳이지."
왈록은 기분 좋게 웃으며 도넛 하나를 베어 물었다.
"애초에 정상적인 녀석들이 가차랜드에 올 리가 없잖냐."
도미닉 경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으나 무언가 마음에 걸렸다.
왈록의 말대로라면 자신도 이상한 녀석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나저나 이상한데."
도넛의 남은 조각을 입에 털어 넣은 왈록은 정말 의문이라는 듯 말했다.
"빌런들과 만났다고 했지?"
도미닉 경은 자신도 이상한 사람에 포함되냐고 묻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왈록은 도미닉 경의 의문점을 해결하는 대신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졌다.
꽤 오랜 시간을 가차랜드에서 살아온 왈록으로서도 이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언가 이상한가요?"
도미닉 경은 방패에 묻은 형광 녹색의 무언가를 행주로 닦아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패에 묻은 이 진득한 무언가는 쉽게 닦이지도 않았다.
"그게 말이지."
왈록은 생각을 정리하다가 막혔는지 아직 의구심 가득한 소리로 말했다.
"빌런이란 존재가, 그렇게 착하게 굴 리가 없거든."
왈록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다른 도넛 하나를 들어 크게 베어 물었다.
너무 머리를 쓴 탓에 당분이 부족하다고 몸이 신호를 보낸다.
"애초에 가차랜드에선 목숨이 의미가 없어. 알다시피 가치만 입증되면 다시 살아나니까. 저 아래에 태생 1성들 중에선 죽는 게 가치라며 단돈 몇 크레딧에 생명을 팔기도 한단 말이야."
그렇다고 후배님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라고 왈록은 덧붙였다.
"목숨을 유희 거리로 쓰는 이런 세상에서 사람의 목숨을 벌레보다 못하게 보는 애들도 수두룩하단 말이지. 특히 빌런들이라면 더더욱."
형광 물질을 닦아내던 도미닉 경의 손이 멈췄다.
생각해 보니 자신도 버그와 싸울 당시 몇 번이고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너무 당연하게 죽어서인지 죽음에 대한 감흥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 빌런들의 이름이 뭐라고?"
왈록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지, 다시금 중심이 될 법한 질문을 던졌다.
"자신들을 비밀결사 '나.쁘.다'라고 하더군요. 나펠린 쁘띠 다우트였나."
"나펠린 쁘띠 다우트..."
왈록은 잠깐 그런 이름의 빌런 단체가 있는지 생각했다.
"나펠린... 나펠린... 어디서 들어 본... 아."
왈록은 마침내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렸다.
10년 전, 가차랜드 대학살을 주도했던 주범.
유흥의 대마왕, 나펠린 3세.
"당시에 가차랜드에 퍼진 광기가 너무 큰 탓에 100년간 인디게임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왈록은 더욱 머리가 아팠다.
만일 그 나펠린이 이 나펠린이라면, 정말 도미닉 경에게 상냥하게 대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뭐, 뉴비라서 그런 모양이죠."
마침내 형광 물질을 다 닦아낸 도미닉 경이 말했다.
얼마나 깨끗하게 닦았으면, 방패가 거울이 되어 도미닉 경의 낡은 안대가 그대로 비춰질 정도였다.
"뉴비... 뉴비라..."
나름의 단서라고 생각했던지, 왈록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자신만 도넛을 먹는 게 미안했던지, 무의식적으로 도미닉 경에게 도넛 하나를 건네면서.
"아. 그건가?"
왈록에게서 도넛을 받은 도미닉 경은 볼이 빵빵해지도록 도넛을 밀어 넣었다.
3등신의 몸은 굉장히 유연해서 입보다 큰 도넛을 한입에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신기할 정도로 유연한 느낌에 빠져 있던 도미닉 경은 순간 왈록이 내뱉는 감탄사에 도넛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이봐, 후배. 지금 당장 설정 창에 들어가 볼래?"
한순간 사라져 버린 도넛에 시무룩해진 도미닉 경은 왈록이 말하는 대로 설정 창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가차랜드의 조작법에 익숙하지 못한 도미닉 경은 도대체 설정 창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그러니까, 카드 뒷면에 톱니바퀴 모양을 눌러 봐."
한참을 헤매는 모습에 왈록은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침내 톱니바퀴 모양을 찾아낸 도미닉 경은 그 버튼을 눌렀다.
음향 설정, 비디오 설정, 조작 설정.
다양한 칸이 나타났으나 도미닉 경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계정 보안을 눌러봐. 그래. 위에서 12번째. 아래서 세는 게 더 빠른가? 아래서 3번째."
왈록의 지시대로 버튼을 누르자 그곳엔 자기 정보가 있었다.
[도미닉 경]
가차랜드 시민권자
페럴란트 출신 기사
시스템 인더스트리 경비
현재 뉴비 보호 프로그램 작동 중 (22일 남음.)
"아, 역시."
왈록은 그중 하나의 문구를 보며 납득했다.
"이거 진짜 시행되는 법률이었구나. 말로만 들었는데."
도미닉 경은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납득하는 왈록과 달리, 지금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설명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납득하신 겁니까?"
"응? 아. 저거. 뉴비 보호 프로그램."
왈록은 도미닉 경의 말에 가장 아래에 있는 문구를 손으로 짚었다.
"5년 전이었나? 고인물이 뉴비를 배척하던 시기가 잠깐 있었거든. 그때 행정부에서 뉴비 보호를 위한 정책을 실행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게 저건가 보네. 라고 왈록이 중얼거렸다.
"아무튼, 내 기억이 맞으면 저 프로그램이 작동되는 동안은 외부에서 오는 모든 위협이 막힐 거야. 뉴비가 적응할 기간을 버는 거지."
그나저나 생각보다 더 뉴비였군. 보통 한 달 지속일 텐데.
왈록은 도미닉 경을 바라보았다.
도미닉 경은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설정 창에 뜬 자기 정보를 꼼꼼하게 읽고 있었다.
꽤 흥미로운 경험인지,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펼처져 있다.
뭐, 재밌으면 됐지. 가차랜드에선 그게 전부니까. 라고 생각한 왈록은 도넛을 하나 더 꺼내 베어 물었다.
그러다 목이 막히는지, 종이컵을 꺼내 믹스 커피를 뜯어 커피포트에서 물을 받아 마셨다.
달달한 쓴맛이 혀를 감싸자, 좀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왈록은 눈앞에 천진난만하게 시스템 창을 바라보는 도미닉 경을 바라보며 생각한 바를 말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 생각해 보면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시스템에 대해서 알아가고, 빌런에게 납치 당하고, 버그를 잡고..."
"그게 대단한 일입니까?"
도미닉 경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3등신의 몸과 거대한 머리의 언밸런스함에 순간 넘어질 뻔했으나, 도미닉 경은 자세를 바로잡는 데 성공했다.
흥미롭네. 정말.
파면 팔수록 행복해져.
도미닉 경이 갑작스러운 행복감에 빠지려는 상황에서 왈록이 말을 이어갔다.
"보통 한 달 정도가 신규 유입의 기준점이라서."
왈록은 도넛을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신규 유저들의 평균을 따져 보면, 대부분 스토리 모드에서 상주하는 녀석이 대부분이거든. 뭐랄까, 효율적인 동선? 그런 말을 하는 애들이 많아."
인생을 효율적으로 산다니,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지만. 왈록은 투덜거렸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은 너처럼 이것저것 즐기면서 사는 애들이 드물어. 다들 최고의 장비를 파밍하거나 가치를 높인답시고 사기 특성을 얻을 때까지 허수아비를 치거나 하거든."
도미닉 경은 왈록의 말을 이해했다.
자신은 이 이상한 세계에서도 유독 이상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행복하니까 하는 건데, 이상하군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너도 정상은 아니야."
도미닉 경은 순수하게 그렇게 말했으나, 왈록의 처지에선 도미닉 경이야말로 이 세계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끅. 그나저나 요즘 도넛이 너무 맛있단 말이지. 밀가루를 위트워트 산으로 바꿔서 그런가."
"오늘따라 달고 사시긴 하죠."
왈록은 오늘만 해도 도넛을 서른 개나 먹어 치웠다.
심플한 맛의 글레이즈 도넛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먹어댄 셈이다.
그 사실이 부끄러워진 왈록은 무안한 듯 헛기침하며 볼을 긁었다.
무의식적으로 도넛 하나를 더 집은 왈록은 아차싶었는지 도넛을 다시 봉투에 담고는 화제를 돌리려 아무 말이나 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생각해 보니 후배 너도 슬슬 성급 심사 준비해야 하지 않아? 올해 심사는 이벤트 끝나고 바로던데."
"성급 심사요?"
도미닉 경은 성급 심사가 뭔지 생각하다가 이내 자기 별, 그러니까 가치를 올리는 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성급 심사라."
도미닉 경은 고민했다. 심사라는 단어가 붙은 것을 보면, 분명 무언가 기준이 있을 것이었다.
가차랜드에 익숙하지 않은 도미닉 경으로서는 꽤 부담스러운 단어임이 분명했다.
"나는 올해는 패스할까 봐. 3성이라면 모를까, 4성 진급은 진짜 최소 2박 3일로 압박 면접이 있는지라서. 게다가 아직 스킨 개수도 부족하단 말이지."
자연스럽게 나오는 고인물의 알 수 없는 단어의 행렬.
도미닉 경은 그 말들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아직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가만히 있었다.
대신, 그는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1성에서 2성으로 가는 시험은 뭔가요?"
"그때마다 다르지."
왈록은 자신이 2성이 될 때는 어땠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내 때는 늑대 하나 잡는 거였어. 당시엔 능력치가 기준이라 늑대 하나를 혼자 잡을 수 있으면 2성, 혼자 못 잡으면 1성이었거든. 그런데 요즘엔 뭔가 이것저것 붙어서 잘 모르겠다."
왈록은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했으나, 도미닉 경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조언이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난이도를 보면, 후배라면 얼마든지 2성으로 진급 가능할걸? 잠깐, 그러면 최단기간 2성인가?"
왈록은 스마트폰을 꺼내 무언가를 검색해 보았다.
최단기간 2성.
"아, 아니네. 최단기간은 시민권 얻고 바로 시험친 사람이었네. 최연소는 13살이고. 에이. 후배가 업적 달성할까 설렜는데 말이지."
도미닉 경은 왈록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꼈다.
"성급 심사라..."
도미닉 경은 새롭게 나온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왈록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마트폰은 어디서 삽니까?"
도미닉 경의 관심사는 스마트폰에 치중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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