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15화]이런이런 빌런!
* * *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슈퍼 디럭스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흠흠. 슈퍼 디럭스라니. 도대체 누구길래 나랑 헷갈리는 건지. 흠흠."
다른 사람들처럼 3등신에 커다란 머리를 가진 슈퍼 디럭스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신체 비율상 머리가 커서 그런지 가면 너머로 땀방울이 흐르는 모습이 그대로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로 속이려는 노력이라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가차랜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도미닉 경은 그런 순진한 생각하고 말았다.
결국, 도미닉 경은 슈퍼 디럭스을 모른 척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실례했소. 잘못 봤나 보군."
도미닉 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아직 2+1 상품을 결제하지 않았기에 점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도 실례일 것이다.
"잠깐, 잠깐."
그러자 오히려 당황한 쪽은 슈퍼 디럭스였다.
"끝까지 추궁해야지, 거기에선!"
사실 슈퍼 디럭스는 관심 종자였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좋아하는 관심 종자.
애초에 이벤트 도중 식사 시간과 휴식 시간 동안 슈퍼 디럭스는 분장을 할 필요가 없었으나, 누가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굳이 화려한 복장을 고수하며 밥을 먹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빌런이 되지도 않았겠지.
"아이고, 세상에. 이 순진한 사람 좀 보소. 내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연기한 것이 뭘 위한 것인지 모르겠어? 괜히 누가 봐도 수상하게 행동한 의미를 모르겠어?"
슈퍼 디럭스는 괜히 도미닉 경에게 화를 냈다.
이제 당황한 쪽은 도미닉 경이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몰랐소. 미안하오."
도미닉 경은 무심코 사과하고 말았다.
"됐고. 혹시 SNS 계정은 있어? 이 멋진 슈퍼 디럭스가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기회를 주지. 대신 해시태그 '#슈퍼디럭스 #짱멋짐' 이라고 적어 주기만 하면 돼. 그럼 추가 보상이!"
"그게 뭐요?"
도미닉 경은 슈퍼 디럭스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가차랜드의 문화를 다 알지 못했던 도미닉 경으로서는 그 말이 마법사들이 외치는 알 수 없는 주문처럼 들렸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없소."
"맙소사, 없다고?"
슈퍼 디럭스는 천연 기념물이라도 본 것처럼 가면의 눈 부분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없을 리가 없는데."
슈퍼 디럭스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눈물을 글썽일 정도였다.
"그나저나 당신이 슈퍼 디럭스라면, 이벤트 스토리는 성공한 것 아니오?"
"그럴 리 없어. SNS가 없는 사람이 존재할 리가 없어. 그건, 그건... 성녀인데 가슴이 없는 것과 같다고."
도미닉 경은 이벤트에 대해서 생각이 났기에 슈퍼 디럭스에게 보상에 대해 물었으나, 슈퍼 디럭스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도미닉 경은 잠깐 슈퍼 디럭스를 바라보고는 걸음을 옮겨 음료수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 2개를 꺼내 계산대로 다가 갔다.
"네. 총 3개 하셨구요, 3000크레딧입니다. 아, 봉투 필요하세요?"
"필요 없소. 그나저나 저기 슈퍼 디럭스가 있던데, 혹시 알고 계셨소?"
도미닉 경은 주섬주섬 사이다들을 인벤토리에 넣고 계산대 너머의 직원에게 물었다.
"그럼요. 단골이신걸요. 애초에 슈퍼 디럭스 이벤트는 연례행사 같은 거라서요. 이벤트 기간 동안 점심은 항상 여기서 라면 하나랑 삼각김밥 하나, 그리고 제로 콜라를 드시죠."
직원은 친절하게도 도미닉 경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무엇보다 DX 25 광고모델이라 모르는 게 더 이상하죠."
점원은 엄지를 들어 유리 벽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켰다.
도미닉 경이 고개를 돌려 포스터를 보니, '슈퍼 디럭스의 마음을 훔친 맛, DX 25 독점 판매!'라는 문구와 함께 한 손에 컵라면을 들고 엄지를 치켜든 슈퍼 디럭스가 보였다.
"그렇소이까. 답변해주셔서 감사하오."
"별말씀을요."
도미닉 경은 다시 슈퍼 디럭스에게 다가 갔다.
여전히 슈퍼 디럭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를 모른다고? 이 유명한 나를? SNS 팔로워만 해도 100만 명이 넘는 나를?"
슈퍼 디럭스의 관심병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십 번이 넘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매번 팔로워가 만 명 단위로 오르는 슈퍼스타로 거듭났건만, 아직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니.
그의 머리는 이해하기를 거부했고, 그의 마음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뚝.
하고 슈퍼 디럭스의 무언가가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성을 잃은 소리였다.
"그래... 맞아... 그랬던 거였어..."
슈퍼 디럭스는 고개를 숙이고 기분 나쁘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갔어야 했어. 지금이라도 가챠튜브에 짧은 영상을 올리"
"아니, 아니야. 저 사람이 나를 모르는 건 그냥 SNS가 없는 뉴비라서"
"좋은 생각이야. 이 슈퍼 디럭스의 팔로워가 3만 명은 더 늘 계획이"
도미닉 경은 슈퍼 디럭스와 가까웠기에 그의 중얼거림의 일부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워낙 작았던 데다가 알 수 없는 단어가 가득해 흑마법사가 악마 소환 의식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슬슬 그의 상태가 걱정이 된 도미닉 경은 슬슬 슈퍼 디럭스를 말릴까 생각했다.
그때였다.
슈퍼 디럭스는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들어 올리고 양손을 꾹 쥔 상태로 무언가를 다짐했다.
"그래! 나를 모른다고 했으니, 나에 대해서 알려주면 되는 거야! 지니어스! 스마트!"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과 눈이 마주쳤다.
도미닉 경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은 인간의 지성이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으며, 마치 마족이나 오크들이나 보여 줄 법한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부터 나랑 같이 다니는 거야. 나에 대해서 잘 알 때까지. 나의 열렬한 팬이 되어 내 굿즈를 살 때까지!"
슈퍼 디럭스는 괜히 빌런이 아니었다.
도미닉 경은 순간 숨을 쉴 수 없었다.
무언가 강한 힘이 자기 허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일수 가방처럼 슈퍼 디럭스의 옆구리에 끼인 도미닉 경은 발버둥을 쳤으나 아직 1성인 데다가 가차랜드에 익숙하지 않았던 도미닉 경으로서는 슈퍼 디럭스의 팔을 풀 방도가 없었다.
알아차렸는가? 슈퍼 디럭스의 악독함을!
그는 불어터진 라면을 그대로 취식대에 둔 채, 편의점에서 도망치고 만 것이다.
무의식마저 편의점 직원을 괴롭히는 악한 빌런!
과연, 그는 빌런이었다.
뽀작뽀작.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을 옆구리에 낀 채 있는 힘껏 지붕을 박차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한참 동안 발버둥을 쳤으나 이내 슈퍼 디럭스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슈퍼 디럭스가 놓아 줄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했다.
적에게 인질로 잡혀 몸값과 교환하는 것에도 예법이 있듯, 도미닉 경은 당당했다.
"자, 거의 다 도착했어. 예비 팬? 나에 대해 알 준비는 되었나?"
슈퍼 디럭스는 톳. 하는 귀여운 소리와 함께 지붕 위 옥탑방 중 하나에서 멈췄다.
높은 건물 위 옥탑방 옆에는 무언가 양파 같은 것들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끼익 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도대체 날 왜 납치한 거요?"
"팬 미팅이지. 납치라니! 내가 빌런인 것 같잖아!"
큰 충격에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의 말에 버럭 화를 냈다.
"예비 팬도, 안티 팬도 모두 내 팬이야! 알 수 있어! 그들은 내 관심을 갈구한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머리가 이상하군. 도미닉 경은 이제 격식도 예의도 내팽겨친 슈퍼 디럭스를 보며 안쓰럽게 생각했다.
"자, 여긴 내 비밀기지. 세계를 훔칠 놀라운 계획을 세우는 곳이지."
슈퍼 디럭스는 낡은 옥탑방 앞에서 짜잔! 하는 효과음을 입으로 내었다.
"내가 수십 번의 이벤트를 하면서 비밀기지를 공개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아두라고, 예비 팬!"
사실 다음 달에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예정이지만.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뽀작뽀작.
문을 열기 위해 화분 아래에서 열쇠를 꺼낸 슈퍼 디럭스는, 이내 다시 뽁뽁 소리를 내며 도미닉 경에게 다가왔다.
사악하게 웃은 슈퍼 디럭스는 도미닉 경의 뒷목을 덥썩 잡더니 질질 끌고 문 안으로 도미닉 경을 집어 던졌다.
데굴데굴. 원래의 몸이라면 우당탕이나 와장창 같은 효과음이 나겠지만, 이 3등신의 몸은 상상 이상으로 말랑말랑한지 데굴데굴이라는 효과음으로 그쳤다.
"이제 넌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미칠 정도의 팬이 되기 전까지는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사악하게도 이 잔인한 빌런은 골판지 상자를 밟고 올라서 문을 잠궈버렸다.
그리고 골판지 상자를 곱게 접어 문 옆 신발장 사이의 틈새로 쏙 집어넣었다.
원래의 몸이라면 3초 내로 열 수 있는 문이었으나, 3등신의 작고 짧은 몸으로는 도저히 저 문을 열 방법이 없었다.
도미닉 경은 도망치려는 대신 방 안을 살펴보았다.
방 안은 창문 하나 없어 어둠이 가득했다. 기껏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문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러게 미리 날 알았어야지! 날 모르더라도 날 알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이럴 일은 없었잖아!"
슈퍼 디럭스은 삼류 악당처럼 헛소리 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이제 공개할 거야! 지금까지의 내 업적과, 역사와 굿즈를!"
탁! 하고 불이 켜졌다.
슈퍼 디럭스는 끝에 손모양의 말랑말랑한 고무가 달려있는 지팡이로 조명 스위치를 누르고 있었다.
그러자 좁은 방 안에 무서울 정도로 많은 사진과, 조형과 종이들이 있었다.
무서울 정도의 자기애.
과연, 빌런의 품격에 걸맞은 무시무시함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