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14화]이벤트 스테이지!
* * *
뽀작 뽀작 뽀작.
도미닉 경은 낮은 시야에 신기해하며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뽀작뽀작 귀여운 발소리를 듣고 있으면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세상에. 진짜 이 이벤트 싫어... 사거리가 확 줄어들잖아..."
"넌 그래도 원거리 딜러라 괜찮잖아. 난 쌍수 단검이라 공격이 닿지도 않아."
주변에서 한숨과 한탄이 터져 나왔다.
도미닉 경은 그저 이 신기한 현상에 행복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왕 이벤트가 열렸으니 순위권이나 노려볼까? 저번엔 파티에 탱커가 없어서 7스테이지에서 전멸했다고. 탱커만 있으면 1만 등 이내 찍고 다이아 트로피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너희 파티엔 힐러라도 있지, 나는 4딜러 팟이라 6스테이지였다고.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딜뽕 맛에 딜러하는데 탱커가 딜이 더 잘나오는 이벤트라는 게?"
등에 자기 키만 한 활을 맨 궁수와 붉은 복면을 쓰고 있는 도적은 카페테라스 쪽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서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도미닉 경은 도대체 탱커가 어땠기에 이렇게나 말이 많은지 궁금해했다.
그 역시 탱커 특성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도저히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도미닉 경은 여전히 불합리한 딜러 차별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한 두 사람에게 다가 갔다.
"그러니까 6스테이지에선 실드 스킬이 있는 마법사라도 찾아서... 응? 뭐야. 무슨 일이야.?"
붉은 복면을 쓴 도적은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놀라 옆을 바라보았다.
머리에 삼색 깃털을 꽂은 외눈박이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탱커에 대해서 궁금해서 말이오."
도미닉 경이었다.
"아, 그래. 탱커. 진짜 애증의 존재지."
반대편에서 궁수가 도미닉 경을 노려보았다.
"탱커 노조 놈들은 정도를 몰라요. 정말."
탱커 노조라니. 도미닉 경은 또다시 새롭게 튀어나온 지식에 흥미를 느꼈다.
"탱커 노조?"
"그래. 가차랜드의 기치는 가치라면서 담합하는 놈들."
궁수는 타는 속에 목이 마른지 얼음이 든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거 알아? 작년 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가차랜드에 존재하는 직업군중 탱킹이 가능한 직업 인원이 2.3% 밖에 없다고 한 거?"
반대편에서 괜히 빨대로 얼음을 달그락거리던 도적이 말을 이었다.
"순수한 탱커는 0.4%에 불과하고 말이지. 재작년엔 0.26%랬고."
"그래! 애초에 스테이지에 제한 시간을 넣었으면 빨리 잡으려고 딜러하지, 누가 느려터진 탱커하겠냐고!"
"느려터진 탱커라."
도미닉 경은 갑자기 등 뒤에 매어둔 방패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방어력이 좋은 갑옷 같은 장비들은 무거운 감이 있지.
"이번 가차랜드 행정부가 들어섰을 때 기억나? 탱커가 너무 적어서 탱커의 수를 늘리기 위해 탱커를 버프한다는 발표 말이야."
"알긴 하지. 딜러 너프는 아니어서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던 그거 말이잖아."
"그러니까. 그런데 다음에 잠수함 패치로 이벤트 스테이지랑 특수 임무에서 나오는 적들의 체력과 방어력을 늘리고 탱커에게 잡몹 피해 배수를 넣어 버렸다고!"
"광역 딜러보다 더 잘 잡긴 하지. 이젠."
"그래도 아직 보스전에선 딜러가 더 유리하긴 하지만 어느 공대가 어정쩡한 딜러를 더 넣겠어? 큰돈 써서 탱커 하나 더 고용하겠지."
이마에 핏줄이 서 기괴한 표정이 된 궁수는 순간 도미닉 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탱커들이 돈맛을 보고는 담합하기 시작했다고. 그게 탱커 노조야. 말로는 자꾸 자신들의 가치를 후려친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돈독 오른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도적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강하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던지 복면이 순간 흘러내릴 뻔했다.
궁수는 그렇게 분통을 터뜨리더니, 순간 무언가를 본 듯 도미닉 경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날 그렇게 쳐다보는 거요?"
도미닉 경은 살기 가득한 궁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마족이나 언데드만큼의 섬뜩함은 아니었으나 살기로만 따진다면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였다.
"너. 혹시 등 뒤에 있는 거, 방패"
[이벤트 스토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궁수는 도미닉 경이 탱커라는 의심을 품었고 이는 사실이었으나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는 시스템 창에서 다시 쩌렁쩌렁하게 소리가 울렸고, 궁수의 말은 그대로 그 굉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벤트 스토리! 슈퍼 디럭스를 잡아라!]
[슈퍼 디럭스가 가차랜드에 출몰합니다!]
[슈퍼 디럭스를 빨리 발견하면 발견할수록 더 큰 보상이!]
[끝이 아닙니다! 상위 1만 명에게는 추가적인 보상이!]
[지금 당장 슈퍼 디럭스를 찾아보세요!]
[주의 : 오프닝이 끝나면 시작됩니다. 오프닝에서 본 슈퍼 디럭스는 발견으로 치지 않습니다.]
이벤트의 일부일까?
아무래도 이벤트에도 스토리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너 탱커"
"아니잇! 네놈은 그 유명한 슈퍼 디럭스가 아니더냐앗!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내 눈은 못 속인다!"
궁수가 계속 도미닉 경에게 말을 걸었으나 이미 스토리 오프닝이 시작되고 있었다.
머리가 긴 경찰 모자를 쓴 콧수염의 남자가 경악하며 높은 마천루의 꼭대기에서 망토를 펄럭이는 수상한 인물에게 손가락질 했다.
경찰은 씩씩거리며 분한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으나, 망토의 인물은 그런 경찰을 무시한 채 가차랜드의 전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우아한 탑 햇. 겉은 검은 비단으로, 안감은 붉은 비단으로 만든 망토.
물음표가 그려진 황금 가면은 눈과 코를 가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슈퍼 디럭스가 이 도시를 훔칠 것이다! 잡을 수 있다면 잡아보시지, 미스터 자베르!"
"네 이노옴! 슈퍼 디럭스으으으으으으!"
슈퍼 디럭스는 팔을 움직여 망토를 화려하게 펄럭였다.
그러고 나서야 슈퍼 디럭스의 옷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는 하얗게 S.D라고 새겨진 검은 쫄쫄이를 입고 있었다.
"거기 너! 그래! 바로 너!"
자베르 경감이라 불린 경찰이 씩씩거리며 화면 너머를 가리켰다.
"자네의 협조가 필요하네! 지금 당장 도시를 돌아다니며 슈퍼 디럭스가 있는 위치를 확인해주게! 나는 당장 중앙 경찰서로 가 지원 병력을 부르지!"
화면이 서서히 하늘로 향했다.
화려한 불빛이 가득한 가차랜드와 어두운 밤하늘이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배경으로 슈퍼 디럭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헛."
도미닉 경은 눈앞에 펼쳐진 영상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자신이 멍하게 있었다는 사실마저 늦게 알아차렸다.
이벤트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도미닉 경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가득한 가차랜드의 일상에서 행복을 느꼈다.
"저, 그러니까 너 탱커"
"이럴 때가 아니지. 즐거운 대화였소, 여러분."
도미닉 경은 거리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벤트는 막 시작되었고, 도미닉 경은 이벤트로 머리가 가득 찬 상태였으니까.
조금 전까지 도미닉 경과 이야기하던 궁수는 민망하게 뒷머리를 긁었다.
"탱커면 같이 파티나 맺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내버려 둬. 인연이 아니었나 보지."
그들도 욕하면서 이벤트를 즐기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도미닉 경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문득 무작정 달리는 것으로는 슈퍼 디럭스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차랜드는 너무 넓었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지역도 많았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혀야겠군. 이러다간 힘만 쓰고 제대로 즐기지도 못할 거야."
도미닉 경은 몸이 식자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 마실 것이 필요하다.
도미닉 경은 주변을 빠르게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편의점이라고 적힌 상점이 있었고, 깨끗한 유리 너머에는 요상한 박스에 들어 있는 수많은 마실 것들이 보였다.
도미닉 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편의점에 들어섰다.
딸랑. 하는 작은 종소리와 동시에 계산대의 직원에게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어서 오세요! DX25입니다!"
점원의 환한 미소와 활기찬 인사를 뒤로한 채 도미닉 경은 급하게 마실 것을 챙겼다.
사이다. 사과주를 뜻하는 말이지만 이 병에 든 액체는 투명하고 무언가 뽀글뽀글 올라오고 있다.
마실 것을 둘러보던 도미닉 경은 그 요상한 조합의 음료에 시선이 꽂혔다.
아무래도 가차랜드에서 모르는 것이 많으니, 이것저것 실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도미닉 경은 사이다 하나를 들어 계산대로 향했다.
삑. 투 플러스 원 상품입니다.
"아, 이거 지금 행사 중이라 두 개 사시면 하나 더 드리는데, 그냥 계산 해드릴까요?"
아. 세상에. 그런 것도 있었군.
도미닉 경은 사이다를 꺼내며 아래에 적힌 2 1이라는 문구를 보긴 했으나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라 그냥 하나만 가져온 것이었다.
"지금 두 개 더 들고 오겠소."
도미닉 경은 다시 음료수가 있는 냉장고로 걸음을 옮겼다.
툭.
"아, 미안하오."
"괜찮습니다."
도미닉 경은 좁은 통로를 지나가다가 배식대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누군가와 부딪혔다.
사과하려고 고개를 돌린 도미닉 경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고급스러운 탑 햇.
비단으로 만든 망토.
황금 가면.
도미닉 경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사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결국 도미닉 경은 그 사람의 어깨를 툭툭 찌르며 물었다.
"왜요."
"혹시, 슈퍼 디럭스 아니오?"
"그, 그런 사람 모릅니다. 슈퍼 디럭스라니, 촌스럽기도 해라."
어설픈 반응에 도미닉 경은 확신했다.
이 사람이 슈퍼 디럭스라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