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13화]이벤트 스테이지!
* * *
도미닉 경은 오늘 내로 2지역을 끝내놓고 싶었다.
아직 남아 있는 에너지도 충분하겠다, 그는 24을 눌러 2지역 마지막 스테이지에 들어섰다.
'사실 마지막 스테이지는 별거 없어용.'
남작 부인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녀의 말대로 별거 없으면 좋겠는데.
스테이지에 진입하자 역시나 환경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길고 좁은 복도였는데, 고풍스러운 정도는 아니었으나 깔끔한 하얀색 타일로 전체를 도배하고 중간중간 작은 화분들이 배치된 장소였다.
[길을 따라 가세요. 바로 전 스테이지에서 발급받은 카드를 미리 준비하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시스템 창의 안내에 따라 도미닉 경은 카드를 미리 꺼내 손에 쥐고 복도를 걸어갔다.
복도의 끝까지 걷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나, 도미닉 경은 여기서 진행이 막혔다.
복도의 끝은 막혀 있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또 당황스럽네."
그때였다.
청량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도미닉 경은 그 소리가 마치 자그마한 종소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 소리가 복도에 울려 은은한 잔향을 만들어내자, 분명히 막혀 있던 복도의 끝에 문이 나타났다.
언제 나타났는지는 모른다. 계속해서 벽을 바라보고 있었던 도미닉 경조차 그 문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문에는 '다음 사람 들어오세요.'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 작은 종이 걸려 있었는데, 아무래도 방금 들었던 종소리는 여기서 난 듯 보였다.
도미닉 경은 문에 적힌 글귀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본 것과 같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검은색의 무언가가 있었는데, 이미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는 도미닉 경은 무심코 걸어들어가려고 하다가 멈췄다.
'입장할 때는 점프로.'
왈록의 말이 도미닉 경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입장할 때는 점프하라고 했었지.
도미닉 경은 점프하며 검은색 안으로 들어갔다.
[로딩 중]
[차원 관문 관리인을 호출하는 중...]
[차원 관문 관리인에게 부재중 전화가 7통째 쌓이는 중...]
[차원 관문 관리실장이 차원 관문 관리인을 혼내는 중...]
여전히 이상한 글귀들이 지나가는 느낌은 몇 번을 봐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도미닉 경은 문득 이 하얀 공간에 검은 글씨 외에도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자수와 바다가 그려진 그림과 심플한 소파 하나.
별거 아닌 것처럼 보였으나 슬쩍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정말 고친 모양이네."
도미닉 경은 시스템 인더스트리의 긴급 상황 당시 로딩창에 갇혀 있었던 직원들이 생각났다.
분명 그 사람들도 로딩창 속에서 로딩창에 대해서 이야기했었지.
이런저런 생각하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다.
어느새 도미닉 경은 로딩을 끝내고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
"어, 네. 어서 오세요."
시스템 인더스트리에서 본 사무실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
다만 다른 점은 이 공간에 있는 건 책상 하나와 그 너머에 앉은 사람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가차랜드에 오신 걸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군요. 오신 지 꽤 되셨겠지만 사실상 가차랜드의 첫날은 바로 여기를 지나고 나서니까요."
제국의 관료들이 입을 법한 하늘하늘한 법복을 입은 남자는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꺼운 안경을 치켜올렸다.
안경이 슬쩍 움직이며 아주 잠깐 그의 눈이 보였는데, 그 주변이 새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음. 일단 카드를 주시겠어요? 등록과 질문을 동시에 해야 시간이 절약되거든요."
남자는 책상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도미닉 경은 그의 손 위에 자기 카드를 올려주었다.
남자는 그 카드를 가져가더니 이내 책상 위에 있는 얇고 네모난 유리판에 무언가를 기입하기 시작했다.
"이름... 페럴란트의 도미닉 경... 1성... 3코스트..."
도미닉 경의 카드에 있는 것을 그대로 적고 있던 남자는 카드를 뒤집었다.
"어라? 탱커셨네. 게다가 버프기도 있으시고."
남자는 감탄 어린 탄성을 내질렀다.
"금수저셨네. 처음부터 금수저를 물고 가셔."
금수저라.
도미닉 경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귀족들이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다는 말은 얼핏 들어 봤어도 금수저라는 말은 생소한 말이었다.
"음. 이상 없네요. 계신 동안 범죄 기록도 없고. 특이사항으로 시스템 인더스트리에 이미 취직한 상태시네. 부지런하게 사시나보다."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카드를 다시 돌려주었다.
도미닉 경은 카드를 받아 옷 안쪽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면 끝나요. 성인인가요?"
"성인식 이후를 말하는 거라면, 맞습니다."
"그럼 뭐, 끝이네요."
그때,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오르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상황이었다.
[이벤트 주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이벤트는 '슈퍼 디럭스'입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이벤트 스테이지를 통해 이벤트 재화를 수급, 보기 힘든 진귀한 물건들을 교환하세요!]
[자세한 내용은 공지사항을 확인해 주세요!]
"아, 또 이거야?"
눈앞에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미닉 경은 이 상황이 전혀 짐작 가는 바가 없었기에 남자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이벤트라는 게 뭡니까?"
"아."
남자는 도미닉 경이 가차랜드의 뉴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 건 아니에요. 말 그대로 이벤트죠. 느슨해진 사람들의 인식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거랄까."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으나 도미닉 경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다.
"겪어보면 알아요. 겪어보면. 처음 해 보면 꽤 괜찮거든, 이게."
"이벤트라..."
확실히 이벤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려면 직접 겪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이벤트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신 도미닉 경은 가장 기본적인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자동으로 시작돼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동으로 참가한다라."
"보아하니 이벤트에 관심 있나 보군요."
남자는 투덜거리며 말했다.
"이벤트 자체는 꽤 재밌긴 해요. 다만 이벤트 기간 동안 일어나는 일이 문제지."
"대충 어떤...?"
"실례지만."
남자는 단호하게 도미닉 경의 말을 끊었다.
일견 짜증을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 당신 뒤에 2명 정도가 밀렸거든요. 게다가 한 명은 위험지역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 더 오래 걸려요."
"합격 불합격도 말하지 않았잖습니까."
도미닉 경의 말에 움찔한 남자는 괜히 찔렸는지 거칠게 말했다.
"합격이에요. 합격이라고."
남자는 부끄러움을 숨기려 목소리를 높이며 책상의 오른편에 나타난 문을 가리켰다.
"저기로 나가시면 이제 가차랜드의 정식 시민이 되시는 겁니다. 축하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빠르게 제 할 말만 한 남자는 더 이상 대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미닉 경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축하합니다! 2지역을 모두 클리어하셨습니다!]
[보상으로 탈 것 교환권 조각 2장(2/10)을 드립니다!]
도미닉 경은 시스템 창을 보며 웃었다.
정말 이 세계는 알아갈수록 더 알아야 하는 것들이 많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웃는 사이, 새로운 창이 또 나타났다.
[이벤트 : 슈퍼 디럭스!]
[이런! 여러분들은 빌런 슈퍼 디럭스가 만든 변이 장치에 노출되었습니다!]
[슈퍼 디럭스는 여러분들을 작게 만들어 힘을 제약하려고 합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슈퍼 디럭스의 장치를 무력화시키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슈퍼 디럭스를 혼쭐 낼 수 있을까요?]
[자세한 내용은 공지사항을 확인해 주세요!]
공지사항이라.
도미닉 경은 공지사항을 보려고 했지만 어디서 보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도미닉 경은 주변에 지나가던 사람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공지사항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앙? 그것도 모르냐! 뉴비냐!"
머리를 기괴할 정도로 전방으로 내민 남자는 목을 긁는 듯한 소리로 화를 냈다.
"공지사항은 카드 뒷면에서 책 모양을 누르면 나온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도미닉 경을 씹어 먹을 듯 두 눈을 부라리던 불량배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도미닉 경에게 던졌다.
"뉴비면 재깍재깍 도움을 청하고 그러는 모습이 보기 좋으니까 앞으로도 그래라!"
도미닉 경은 불량한 건지 친절한 건지 모를 사람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아무리 개성이 중요하다지만, 저런 것도 괜찮다고?
도미닉 경은 왠지 가차랜드에 적응하려면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 주머니는 뭘까? 도미닉 경은 주머니를 풀어보았다.
안에는 '초보자에게 유용한 포션'이라는 이름의 고급 포션 10개가 들어 있었다.
'돈이 없어서 더 주지 못해 미안!'이라는 쪽지와 함께.
갑자기 행복한 기분이 든 도미닉 경은 자신이 이벤트를 확인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보자. 카드 뒷면에 책 모양..."
선량한 사람의 말대로 카드 뒷면엔 23에서 보지 못했던 아이콘들이 생겨 있었다.
아무래도 24를 지나 시민권을 얻으며 활성화 된 모양이었다.
그 많은 아이콘 중 책 모양을 누르자 공지사항이라고 적힌 창이 떠올랐다.
도미닉 경은 그중 '슈퍼 디럭스!'라고 적힌 게시글을 눌렀다.
[슈퍼 디럭스!]
[이런! 슈퍼 디럭스가 당신을 뽀작뽀작한 3등신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은 이벤트 스테이지를 통해 슈퍼 디럭스의 계획을 저지해야 합니다!]
[이번 이벤트는 일주일간 진행되며, 매일 이벤트 스테이지 진입을 통해 하루에 한 번 특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벤트 스테이지에서 재화를 모으세요. 이벤트 재화로 구하기 힘든 희귀한 물건들을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 이 이벤트는 00:00 뒤에 시작합니다!]
공지사항을 다 읽기도 전에 도미닉 경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평소 보던 높이가 아니라, 마치 무릎에 눈이 달린 것처럼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도미닉 경이 급하게 창을 끄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차랜드의 모든 사람이 뽀작뽀작 걸어 다니는 귀여운 3등신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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