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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3화 (13/528)

〈 13화 〉 [12화]가차랜드 2­3

* * *

[축하합니다. 당신은 3스테이지마저 통과했습니다.]

[당신은 237명에게 총 787점, 평균 약 3.3점을 얻으셨습니다.]

"어머나 세상에. 여캐가 아닌 남캐 중에서 이렇게 높은 점수를 받는 건 오랜만이네용."

남작 부인은 호들갑을 떨었다.

"이 정도 적합성이면 다음 성급 심사에서도 무난하게 통과하겠어용."

"성급 심사?"

도미닉 경은 새로운 지식에 흥미가 동했다.

성급이라고 하면, 아마도 자기 이름 앞에 붙는 별을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하시는 것이 맞을 거에용. 성급은 강함만을 나타내는 수치가 아니에용. 당신이 얼마나 유니크한 개성을 가졌는지 판단하는 척도랍니당."

남작 부인은 얼마나 흥분했던지 천장에 닿아 엉망이 된 머리를 매만졌다.

"가차랜드에서 당신의 가치가 높을수록, 당신이 가진 별도 많아질 거에용. 그리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바로 성급 심사죵."

남작 부인은 자기 머리 위에 별을 띄웠다.

3개. 아직 1성인 도미닉 경은 그 별의 수치가 제법 높아 보였다.

"저는 이 말투 하나로 별 하나를 더 얻었죵. 그만큼 개성이란 것은 중요한 것이랍니당."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그저 강함만 추구하는 것보다 스스로가 가진 개성을 더더욱 갈고닦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에 새겼다.

"그나저나 아쉽네용. 벌써 스테이지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어용."

남작 부인은 정말로 아쉬웠던지 목소리가 시무룩하게 변했다.

"여기 당신의 정보가 담긴 카드에용."

남작 부인은 도미닉 경에게 카드가 든 편지 봉투를 건넸다.

도미닉 경은 그 자리에서 봉투를 열어 카드를 꺼내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 도미닉 경][3코스트]

가죽으로 된 누비 갑옷과 방패.

막 징집 되었을 당시의 모습일까?

앞면엔 자신을 미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뒷면엔 [페럴란트 출신], [탱커], [기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림의 배경엔 페럴란트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세상에나 마상에나!"

남작 부인도 카드를 받아 넘겨 줬을 뿐, 그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랬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당장 항의해야겠어용! 거리에서 파는 싸구려 그림보다 더 못하잖아용!"

도미닉 경과는 다른 의미로 놀랐던 것 같지만 말이다.

"난 마음에 드오."

도미닉 경은 정말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카드를 계속해서 만지작거렸다.

"다만 좀 아쉽긴 하오."

도미닉 경은 아쉬운 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나는 이렇게 잘생기지도 않았고, 또 이 그림을 보면 징집되었을 당시의 모습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좋은 옷과 장비가 아니라 여든 번은 기워 놓은 누더기와 창고 구석에서 썩어가던 방패여야 고증에 맞소. 또한 머리에 삼색 깃털을 그렸는데, 이 깃털은 기사들 사이에서 서로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장식이니, 농노인 내가 쓰는 것 역시 고증에 어긋나오. 그리고­"

"도미닉 경? 경의 말은 잘 알겠어용."

남작 부인이 황급하게 도미닉 경의 말을 끊었다.

예의가 아닌 것은 알았으나 도미닉 경의 불만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긴 가차랜드라구용. 고증에 신경 쓰다가는 오히려 캐릭터성을 해칠 우려가 있어용. 이 정도 오류는 너그럽게 넘어가는 것이 좋답니당."

도미닉 경은 남작 부인의 말을 듣고 잠시 손 위에 놓인 카드를 보았다.

하긴. 여긴 가차랜드였지. 하고 납득할 때까지 말이다.

"그것도 그렇군요. 가차랜드에는 가차랜드의 법도가 있는 법일 텐데."

"그래용. 게다가 모델링과 일러스트의 괴리가 조금 있어도 개성이 있으면 사람들은 그럭저럭 납득할 거라구용."

나름 납득한 도미닉 경에게 남작 부인은 나름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지 카드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1성 일러스트네용. 성급 심사를 통과하고 2성, 3성이 되면 그에 맞는 일러스트를 또 받을 수 있어용. 무엇보다도 후원자 분들께서 원하신다면 당신의 카드는 이렇게­"

남작 부인은 예시용으로 만들어진 카드를 꺼냈다.

그곳엔 [★ 굴러가는 공][2코스트] 라고 적혀 있었는데, 카드 위에서 그림이 움직이고 있었다.

테두리도 검은색이 아닌 은색, 그리고 금색으로 칠해진 카드였다.

"라이브 2D라는 기술로 만들어질 수도 있죵. "

저게 바로 라이브 2D라는 마법인가?

도미닉 경은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인쇄된 그림이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카드를 받았다는 것은 당신이 가차랜드의 시민이 되었다는 뜻이에용. 지금까지 거쳐 온 스테이지를 통해 당신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마침내 가차랜드의 정식 일원이 되었다는 증거죵."

남작 부인은 콧소리 가득한 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제 이 카드는 당신을 증명하는 것이에용. 잃어 버리지 않게 잘 간수하세용. 잃어 버리는 순간 곤란해질 테니까용."

곤란한 일이라. 도미닉 경은 구체적인 상황을 물었다.

"곤란한 상황이라면 어떤 것이오?"

"재발급받아야 해용."

도미닉 경이 생각한 상황은 불법적이거나 혹은 시민의 자격을 잃는 정도의 일이었으나, 상상 이상으로 스케일이 작은 곤란함이었다.

"재발급 신청하고 다시 받는 데 사흘이나 걸린다구용. 공무원들 느린 건 어딜 가나 똑같다니깡."

"그...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거나 시민 자격을 박탈당한다거나 하는 일은..."

"세상에, 그럴 리가용!"

남작 부인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좋은데용. 그랬다가는 당장 인터넷에서 조리 돌림 당할 거에용."

가차랜드는 생각보다 살기 좋은 곳이군.

도미닉 경은 황당하게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 인지부조화가 일어나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작 부인은 방금 펄쩍 뛰었더니 천장에 부딪혀 살짝 꺾인 머리카락을 바로 세우며 말했다.

"이제 곧 2지역도 마지막이군용. 사실 마지막 스테이지는 별거 없어용. 그저 지금까지 성실하게 했다면 바로 통과가 가능한 수준이죵."

도미닉 경은 남작 부인의 충고를 경청했다.

"시민권이라고 할 수 있는 카드도 받았고, 특성과 특수 능력도 받았죵. 당신은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니깐 걱정도 되지 않는군용."

"그렇습니까."

"오히려 어려운 것은 그 뒤일 거에용."

"뒤라고 함은?"

"클랜 가입이죵."

클랜 가입이라.

그러고 보니 3지역 1스테이지를 깨면 클랜이 열린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클랜은 정확히 뭘 하는 곳이오?"

"명확하게 정의할 순 없지만..."

남작 부인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자신이 생각하는 클랜의 정의에 대해 말했다.

"일종의 특성과 같은 거죵. 협동 미션에서 같은 클랜과 파티를 맺을 경우 추가적인 보상이 있다던가 하는."

아하. 도미닉 경은 나름 이해했다.

전장에서 징집된 병사들이 그랬다.

서로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라도 같은 고향을 가진 이들이 함께 배치가 되면 유독 잘 싸우긴 했지.

도미닉 경은 대충 그렇게 이해했다.

"게다가 클랜 위주의 이벤트나 레이드, 그리고 클랜 단위로만 거래하는 상점들도 있으니 가입하는 게 이득인 셈이죵."

도미닉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살면 손해 보는 곳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손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다.

"그럼 도대체 왜 클랜 가입이 어렵다는 것입니까?"

도미닉 경은 이참에 궁금하던 것을 다 물어볼 기세로 말했다.

"클랜이라고 다 같은 클랜이 아니에용. 클랜장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죵."

남작 부인은 목이 탔던지 급하게 물을 찾았다.

그리고 보라색 커튼 뒤에서 컵과 주전자를 꺼내 우아하게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친목을 위한 클랜이나 그냥 머릿수만 채우는 클랜은 들어가기 쉬워용. 하지만 자신의 가치를 위해선 이런 곳은 넘기는 것이 좋죵. 가치를 위해선 대형 클랜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곳은 심사가 빡빡해용. 기본적인 능력부터 성급, 그리고 개성 모두 보는 곳이죵."

대신 들어가면 그만큼 보상이 있긴 하지만용. 하고 남작 부인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니 이왕이면 대형 클랜에 들어가길 바래용. 그런 기회들을 포기하기엔, 당신은 너무 매력적인 사람이니까용."

남작 부인은 흥겨운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사실 물어볼 것이 더 있­"

"쉿. 도미닉 경. 이미 시간이 다 되었어용. 다음 사람을 위해서 양보를 해 줘야죵. 혹시 그게 기사의 명예에 위배되는 일인가용?"

남작 부인은 조용히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엔 괘종시계가 있었는데, 어느덧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가 있었다.

"그건 아니오. 부인과의 시간이 너무 즐거운 나머지 실례를 했군."

"말도 잘하셔랑."

부인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2성이 되면 꼭 다시 들려 줘용. 제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아는 사람들에게 당신에 대해서 말해 두죵."

"영광이오, 부인."

그 순간 주변 환경이 확 바뀌었다.

스토리 모드를 선택하는 장소로 돌아온 것이다.

도미닉 경은 안타까움에 혀를 한 번 크게 찼다.

"마지막 예의도 차리지 못했건만."

그는 기사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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