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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랜드의 행복한 도미닉 경-11화 (11/528)

〈 11화 〉 [10화]가차랜드 2­2

* * *

이튿날 아침.

도미닉 경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실 밤새도록 복잡한 마음을 달래려 산책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목적. 목적이라..."

그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그 한 단어.

도미닉 경의 걸음은 목적을 찾으려는 그와 같이 헤매고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활기찼다.

다양한 옷과 장비를 입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팔고 있었고, 높은 마천루 사이에서는 재화를 벌기 위해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이 출입문을 통해 드나들고 있었다.

저 사람들도 다 목적을 가지고 있겠지.

도미닉 경은 저 사람들이 부러웠다.

행복하겠다.

정말로 부러워했다.

한참 동안 정처 없이 떠돌던 도미닉 경의 발이 멈춘 건 잠깐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정확하게는 도미닉 경이 아는 몇 안 되는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스토리 모드.

점검은 이미 끝났는지 스토리 모드로 향하는 길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도미닉 경은 문득 자신이 아직 2­1만 깬 상태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래. 싸우다 보면 뭐든 정리가 되겠지."

도미닉 경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초보자 패키지에서 나온 100의 에너지와 시간이 지나 충전된 약간의 에너지를 쓴다면 오늘 안에 2지역을 모두 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봐! 거기 기사! 보상 받아 가!"

스토리 모드 입구로 걸음을 옮긴 도미닉 경은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주변에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없었으니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을 것이다.

"누구, 저요?"

도미닉 경은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듯 혼란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래. 당신."

입구에 서 있는 뚱뚱한 사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점검 후에 들어오는 보상이야. 받아 가."

뚱뚱한 사내는 비단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연신 자기 말려 올라간 콧수염을 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보상이라."

도미닉 경은 그 사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사내는 주머니에서 점검 보상이라고 적힌 주머니를 꺼내 도미닉 경의 앞에 내려놓았다.

"6시간 점검이었으니 210 가차석이야."

"가차석?"

이건 또 새로운 재화였다.

지금까지 크레딧으로만 물건을 파는 것을 보았기에 도미닉 경은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가차석은 무슨 재화란 말인가?

"뭐야, 지금 보니 뉴비였구만?"

남자는 거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차석은 그 용도가 다양하지. 가차랜드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살 수 있어. 옷, 집, 심지어 성급이나 한계 돌파에도 필요하지. 크레딧으로도 교환 가능하지만 반대는 불가능하니까 알아 두고. 가차석으로 사는 물건은 대체로 교환 불가야. 문제가 없다면 말이지."

뚱뚱한 사내는 간사하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뱃살이 출렁거렸으나 도미닉 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군요. 가차석이라..."

"자, 일단 받아 가. 뒤를 보라고. 아직 보상을 줄 사람이 많단 말이야."

남자는 갑자기 정색하며 말했다.

자기 스스로 기분 좋게 떠들어놓고는 인격이 바뀐 듯 행동하는 모습에 당황한 도미닉 경은 무심코 보상을 받고 길을 비켜 주었다.

"210 가차석이라... 얼마나 큰 가치인지는 모르겠군."

도미닉 경은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은은하게 오색 영롱한 보석이 가득 보였다.

도미닉 경은 사실 이렇게 비싼 물건, 특히 생존에 필요 없는 사치품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농노였을 당시에도 물물교환이 주된 거래였고, 병사가 되고 나서는 보급품이 그의 전부였다.

그나마 기사가 되어서 주급을 받기는 했으나, 그는 말이 없었기에 받는 것은 돼지 반 마리, 혹은 밀 두 자루가 전부였다.

페럴란트는 그만큼 척박한 곳이었기에 식료품의 가격이 비쌌던 탓이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지금은 스토리가 먼저야."

도미닉 경은 인벤토리를 열어 주머니를 가져다 놓았다. 그러자 아래에 보석 모양의 아이콘 옆에 210이라고 적히는 것을 보았다.

"인벤토리라. 신기하단 말이지."

인벤토리는 그가 초보자 패키지를 열자 해금된 것이다.

주입된 지식에 의하면 가차랜드의 모든 사람은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나중에 특별한 재화를 통해 확장시킬 수 있다고 한다.

도미닉 경은 정신을 가다듬고 2­2를 눌렀다.

그러자 이전에 겪었듯이 주변의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2­2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2는 특수 능력의 발현입니다.]

[특수 능력이란, 당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패시브와 액티브. 들어 보셨습니까?]

[패시브 능력은 상시지속입니다. 이 능력은 침묵과 기절 등의 상태 이상에도 발현되며, 그만큼 유용하지만 효과가 미미할 수 있습니다.]

[액티브 능력은 당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힘입니다. 순간적이라는 제한과 코스트의 소모가 있지만 그만큼 강력한 힘입니다.]

[당신의 행동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시스템이 분석해 최적의 특수 능력을 드립니다.]

[다만, 특수 능력은 하나만 가질 수 있으니 유의하세요.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특수 능력을 바꾸러 이곳에 오실수 있습니다.]

이번 스테이지의 설명은 매우 길었다.

주변 환경은 훈련장처럼 보였는데, 허수아비가 가득했다.

"나는 싸우러 왔는데."

도미닉 경이 투덜거렸다.

"허수아비를 치는 게 무슨 소용이야."

실전은 최고의 연습이다.

그를 가르쳤던 기사 스승이 한 말이었다.

도미닉 경은 투덜거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수 능력이란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것.

그렇다면 자신이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을 고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마치 여기 약점이 있다는 듯 빨갛게 물든 허수아비.

사격 연습을 위해 겨냥판을 붙인 허수아비.

깃발을 든 허수아비.

잠깐.

도미닉 경은 깃발을 든 허수아비를 지나치려다 문득 그 깃발에 눈이 갔다.

"깃발이라."

도미닉 경은 기사가 되기 전, 기사 스승으로부터 속성 훈련받기 위해 종자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기사 스승은 도미닉 경에게 깃발을 쥐어 주었는데, 종자의 임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비록 진짜 깃발을 드는 사람들은 기사단에서도 요직에 있는 사람만이 가능했지만, 예외적으로 일반 병사들을 이끄는 기사의 경우 그 종자가 분대의 깃발을 든다는 것이다.

도미닉 경은 이제는 그저 먼 과거가 된 그 말을 기억하며 깃발을 들었다.

도미닉 경은 그렇게 한동안 깃발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던 때가 있었다.

기사 스승이 죽고, 자신이 기사가 되기 전까지 말이다.

"추억이군."

도미닉 경은 깃발을 들고 강하게 땅을 찍었다.

보통 깃발은 키보다 두세 배는 더 큰 법이었다.

그런 깃발을 들고 싸우려면 땅에 꽂고 싸우거나, 혹은 깃발의 긴 거리를 이용해 싸우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마저도 깃발이 없으면 지휘에 혼란이 오니까 깃발을 직접 사용하는 법은 위급한 상황에서나 가능한 법이다.

그랬기에 땅에 꽂는 기술이 중요했다.

한 번에 바로 꽂아야 전투에 대비할 시간을 벌 것이 아닌가.

다행히 몸이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깃발은 한 번에 땅에 꽂혀 펄럭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 무늬도 없던 깃발에 페럴란트의 문양이 새겨지더니 그 색깔마저 페럴란트를 상징하는 갈색과 흰색으로 바뀌었다.

[특수 능력을 발현하셨군요! 패시브 [기수]를 발현하셨습니다.]

[[기수] : 이 능력을 갖춘 사람은 주변의 아군에게 버프를 주는 대신 배치 코스트가 1 늘어납니다. 버프의 속성은 당신의 특성을 따라갑니다!]

[[탱커][기수] 시너지 : 주변의 아군이 받는 피해를 2+(★)% 만큼 감소시킵니다. 이는 성급의 영향을 받습니다.]

오늘따라 알 수 없는 것이 참 많았다. 배치코스트는 무엇이란 말인가?

주입된 지식을 더듬자 이 코스트란 개념은 서클에 소속될 때 필요한 것이었다.

서클장은 자기 서클에 소속된 캐릭터를 코스트를 소모해 소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웠으나 도미닉 경은 아직 알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다.

[특성을 발현했으니, 실전으로 넘어가 봅시다. 역시 실전만큼 실험하기 좋은 곳도 없죠!]

도미닉 경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시스템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다시 주변 풍경이 바뀌었다.

이번에 있는 곳은 목책 아래였다.

목책은 겨우 사람 키 만한 크기였는데, 아래에 없느니만 못한 해자가 있었다.

목책의 위에는 활을 든 허수아비가 수십 개가 늘어서 있었고, 도미닉 경의 주변에도 활을 든 허수아비들이 있었으나 수가 조금 적어보였다.

[그럼 실전을 시작합니다. 3, 2, 1, 시작.]

시스템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목책 위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우리 쪽 허수아비도 쏘아내고 있었으나 높이의 차이가 있어서인지 명중률이 조금 낮았다.

문득, 이 상황에서 도미닉 경은 머릿속으로 새로운 지식이 들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렇게 알려주는군."

도미닉 경은 자기 시야 상단에 배치 코스트라고 적힌 문구를 바라보았다.

[배치 코스트]

[◆◆◆◆◈◇◇◇◇◇(4/10)]

[★ 도미닉 경(◆◆◆)]

아무래도 자기 이름 옆의 문양이 코스트를 말하는 듯했다.

배치 코스트에 적힌 문양과 똑같았으니까.

도미닉 경은 자기 이름을 클릭해 보았다.

그러자 시야가 잠깐 낮아지는 느낌이 들더니 두 다리가 땅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아, 내가 잠깐 하늘에 있었던가?

그런 생각하는 사이 퉁. 하는 소리와 함께 깃발이 날아와 땅에 꽂혔다.

[도미닉 경이 전장에 진입합니다. 도미닉 경 주변의 모든 아군은 피해를 3% 덜 받습니다.]

[첫 순위 진입! 3턴 동안 도미닉 경의 효과가 2배가 됩니다!]

시스템 창이 자기 이름을 외쳤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이었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것도 꽤 행복한 경험이라는 사실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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